솔로 신곡이 나와서 집중연습을 시켰기 때문에 근 며칠간 도시락을 싸오게 했더니 야요이의 얼굴에 버짐이 퍼지기 시작했다. 풀떼기와 초간장 따위로 끼니를 때우는 야요이에게 격한 춤곡을 연습하는 것은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이었는 모양이다. 연습은 어느 정도 끝이 났고 주말을 하루 앞두고 있어서 오전 트레이닝을 끝내고 노닥거리다가 야요이에게 저녁밥을 사주기로 했다. 밥을 사주겠다는 말을 꺼낸 이후로 야요이의 표정이 날아갈것만 같더니 오후 내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
있잖아요 프로듀서~? 정말 정말 미안한데 뭘 먹으러 가는지 물어봐도 되는거에요? 나 저번에 도시락 먹은 뒤론 도통 외식이라는 걸 해본적이 없어서 에헤헤...
도시락이라 함은 콘서트를 나갔을 때 식사할 시간이 부족해서 급하게 준비한 세븐O레븐 도시락을 말하는 모양이다. 그게 벌써 석 달 전의 일이다. 나는 불쌍한 꼬마를 좀 더 놀려주고 싶어서 비밀이라고만 대답했다. 헤헤 웃던 야요이가 머쓱한지 입가의 버짐자국을 매만지고 있었다. 얼마나 못 먹고 사는 걸까? 영아에게 일어나는 버짐 외에 영양실조로 인한 버짐을 거진 들어보지 못했다. 갈라지고 터진 입가를 보자 가슴 한 쪽이 찌르르 떨려왔다. 뭐라도 좋으니까 영양가 있는 것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지갑도 두둑하니까 돈 걱정 할 필요는 없겠지. 게 요리를 먹으러 가는 것도 좋을 거야.
한참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찾아도 전에 찍어두었던 게 요리집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 간판을 보며 헤벌쭉 하던 야요이는 돌아다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의외라는 듯 입고 있는 후드의 모자끈을 계속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프로듀서 야요이는요... 세븐O레븐 도시락도 아~주 좋아해요!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런 동정어린 소리까지 들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급하게 선로를 변경해서 단골 초밥집으로 야요이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게 요리보다 한참 싸지만 마음이 너무 급했다. 야요이에겐 식후에 비싼 카페 디져트를 사주는 것으로 할당 금액을 채워주도록 하자.
자동문이 열리고 초밥집 안으로 들어가자 점원이 어서오시라며 인사를 했다. 당황해서 허리를 푹 숙이고 저야말로 만나뵈서 영광이에요...!라고 인사하는 야요이. 당황했는지 웃고만 있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 식탁으로 들어갔다. 칸막이가 있는 안쪽 타타미방은 주머니가 빵빵한 양복신사만 앉는 곳이다. 우리같은 손님은 식탁으로 족하다. 주머니 사정이 생기면 우리도 바닥에 앉아서 비싼 코스요리 시켜먹자 야요이! 기합을 잔뜩 넣고 식탁에 앉아서 야요이를 바라보는데 야요이는 좌불안석이다. 의자에 무슨 독사라도 뿌려놓은것 처럼 편하게 등을 대고 앉지 못하고 잔뜩 걱정스런 표정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다. 야요이는 식탁을 손끝으로 아기 뺨 만지듯 살살 쓸어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천장 장식이며 바닥재를 허둥지둥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모래 둔덕 위에서 사방을 살피는 미어캣 같아서 귀여웠다. 갑자기 야요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내 손을 와락 붙잡고
"프로듀서어 프로듀서~~ 야요이가 너무 민폐 끼치는게 아닐까요? 여기 너무 비싼게 아닐까요? 웃우우... 야요이 이런데는 처음인데 아... 어떡해요 야요이 엄청 민폐 끼치는거 같아 프로듀서한테에... 프로듀서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오 야요이 오늘 점심도 많이 먹었는데..."
이정돈 절대 무리가 아니라고 야요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는데 점원이 쟁반에 물수건과 컵 따위를 담아가지고 왔다. 점원이 물수건을 건네자 야요이는 어쩔줄 몰라 하다가 떠나는 점원에 대고 연신 감사하다고 실례가 많다고 인사를 해댔다. 점원이 떠나자 물컵을 매만지고 있던 야요이는 내 귀에 대고 왜 물수건까지 직접 가져다주는거에요... 우리가 너무 안쓰러워보였나봐요...!하는데 나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귓속말을 한다고는 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옆에 있던 테이블의 커플에게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메뉴판을 하나 펼쳐 들고 야요이에게도 보여주었다. 메뉴를 보는 야요이의 눈이 탁구공만큼이나 휘둥그레했다. "천 이백 엔 짜리는 후와아... 얼마나 양이 많은 걸 까요? 야요이는 이렇게 큰 거 절대 못먹어요!" 메뉴판에 한 참 집중하며 흘린 야요이의 말에 옆 테이블에선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손에 땀이 찰 정도로 메뉴판을 부여잡고 발만 동동 구르던 야요이에게 나는 계속 프로듀서 돈 많으니 제발 비싼것 좀 시켜서 프로듀서 면을 좀 세워달라고 말을 했다. 안절부절한 끝에 야요이는 조심스럽게 채 다 펴지도 못한 집게손가락으로 700엔 짜리 참치 초밥을 가리켰다. 장어나 학꽁치를 생각한 나로썬 좀 의외였다. 아직까지 비싼걸 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입술이 비죽비죽 나오는 것이 그래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메뉴판을 접자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안녕하세요 하고 공손히 인사하는 야요이) 저녁 특선 2인과 함께 야요이의 참치초밥을 주문했다. 점원이 주문을 받고 나가자(잘부탁드립니다 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야요이 옆 테이블은 또 터져버렸다.) 야요이는 조심스럽게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 보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프, 프프 프프프로듀서어어!! 저... 으... 2400엔??!"
"원래 초밥먹으러 와선 최소한 그정도 쓰는거야 야요이. 걱정하지마"
야요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붙잡고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고 훌륭한 아이돌이 되서 프로듀서를 기쁘게 해주겠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다. 옆 테이블 사람들은 도저히 못참겠다는듯 우리에게로 와서 무슨 아이돌그룹인지 묻고 눈가가 축축해진 야요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갔다. 별다른 하는 일 없이 물잔을 비우며 잔뜩 신이난 야요이가 말해주는 외식했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전부 규동 체인점과 라면집 이야기였다. 어제 저녁에도 지갑이 가벼워서 들어갔던 곳이라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도 물수건을 조물딱 거리며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는 야요이의 귀여운 모습에 집중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조그만 샐러드 그릇과 계란찜이 나왔다. 감격했는지 작은 감탄사를 내며 바라보고만 있던 야요이는 내가 계란찜을 떠서 입에 넣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수저를 들었다. 너무 예뻐서 못먹겠어요... 조심스럽게 귀퉁이를 잘라서 입에 넣고 좋아서 바들바들 떠는 리액션을 하는 야요이. 나조차도 이렇게 행복한 식사는 처음인것만 같았다.
"참치 나왔습니다."
계란찜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샐러드는 얼마나 훌륭했는지 칭찬을 하며 나를 기쁘게 해주고 있던 야요이가 참치 나왔단 소리에 점원을 바라보았다. 너무 기대해서 인사하는 것도 잊어버린 야요이는 자신의 앞에 안착한 참치 초밥 접시를 보곤 그자리에서 경직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야요이가 또 감탄이라도 한 것일까 하고 야요이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건 수심이 가득하고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식탁 위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젠 내가 안절부절할 차례였다. 야요이가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손을 잡고 감사하다며 글썽이기까지 한 야요이가 아니던가?
"...야요이는 오니기리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맘에 안 들어 야요이?"
"아니에요 사줘서 정말 고마워요 프로듀서 감사해요. 그런데 이건..."
"야요이?"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요. 700엔인데... 작다구요."
"아아... 야요이! 조금 있으면 세트 시킨것도 나올테니까!"
세트 초밥을 담은 작은 도마가 도착하자 야요이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야요이는 젓사락을 손에 꾹 쥐고 도통 먹을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야요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2400엔이라구요?"
"응..."
"1인분에?"
"그렇지 뭐... 근데 야요이!"
"그 돈이면 규동O에서 우나기동이 3개에요. 야요이가 데뷔 했던 날 가족끼리 큰 맘 먹고 외식하러 나가서 야요이에게만 사준 우나기동을 3개나 먹을 수 있는 돈이라구요... 야요이가 우나기 동을 먹는 바람에 야요이의 동생들은 좋아하는 카루비동을 못먹고 제일 싼 걸 먹어야 했어요."
"야요이..."
"어머니는 아주 시키지를 않으셨어요. 야요이가 걱정하니까 배부르다고 괜찮다고만 하셨어요. 야요이는 그날 밤늦게 아버지가 일 끝나고 돌아오셨을때야 어머니가 미소국에 우메보시만 차려놓고 아버지랑 둘이서 조용히 식사를 하시던걸 이불 속에서 지켜봤어요."
야요이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무어라 대답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미안해요 프로듀서. 프로듀서가 야요이를 생각해서 사준건데 야요이가 나빴어요. 우울한 이야기만 했네요."
"아니야 야요이 아니야아..."
"하지만 프로듀서... 이 돈이라면 동생들 셔츠를 여섯장 사줄 수 있었을거에요. 동생들은 아침마다 입고 갈 옷이 없다고 서로 싸우니까.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쓴다는 건 이런거였군요. 야요이는 좀 놀랐어요. 야요이는 이런걸 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었거든요."
"..."
"사람들이 배를 채우는 방법은 참 다양하네요. 미소 조금에 파 조금. 계란 두알에 쌀 세 컵이면 여섯 사람이 한 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요. 야요이네 집이 그렇게 하거든요. 그렇지 않더라도 이 돈이면 고기 조금에 청경채, 무, 표고버섯 약간에 곤약까지 사더라도 남겠죠? 그럼 동생 바지를 한 벌 살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야요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넉넉하게 지갑을 채우고 시장을 가신 적이 없었어요."
초밥이 식탁 위에서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지만 야요이는 도통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요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조금 이해가 안가서 그래요. 돈 많은 사람은 끼니를 채우는데 너무 많은 돈을 쓰네요... 역시 돈이 많아서 그런걸까요? 나라면 같은 돈이라면 다른걸 배불리, 아니 그렇게 많이는 못먹어요. 아 모르겠어요 프로듀서... 나는 싼 걸 사먹고 남은 것으로 다른 일을 했을거 같아요...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으니까 이런걸 먹을 수도 있다는 거 겠죠?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없을때 아끼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있을 때 아끼는 건 필수라고 하셨어요."
"야요이...?"
"헤... 웃우! 음, 야요이는... 글쎄요 야요이는 잘 모르겠네요...."
식사는 우울하게 끝이 났다. 야요이는 계속해서 맛있다고 칭찬을 했지만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연습실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야요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어린 소녀에게 어떤 상처를 준 것일까. 난 억울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이 더 컸다. 연습동안에도 야요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시선이 느껴지면 야요이는 연습하다 말고 나를 돌아보며 특유의 포즈로 "프로듀서가 사준 맛있는 밥을 먹어서 야요이 힘나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즐거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프로듀서 어디갔다 온거에요?"
근처 대형마트에 갔다온 나를 야요이가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는 야요이에게 급히 들고 온 비닐봉지를 쥐여주고 연습실의 불과 난방을 끄고 문을 잠갔다.
"그거 집에 가져가 야요이."
"이게 뭔데요?"
"가져가서 동생들 줘. 아깐 내가 미안했어."
"프로듀서가 뭐가 미안해요! 야요이가... 막무가내 야요이가 무례하게 군 거에요 프로듀서!"
"열어봐 야요이"
부시럭거리며 봉투를 열어본 야요이는 입을 크게 벌렸다. 내가 사온 것은 대형마트의 염가 초밥이었다.
"프로듀서 이거?"
"집에가서 동생들이랑 먹어 야요이. 가격 무섭다고 하지 말고. 그거 할인품이야. 한 개에 50엔 짜리라니까? 그리고 이거 아까 너랑 먹던거랑 똑같은걸 포장해온거야 부모님 드려."
"프로듀서... 정말..."
야요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나는 별달리 할말이 없어서 야요이의 머리만 쓰다듬어주었다.
초밥이 담긴 봉투를 양손에 소중히 들고 발걸음을 조심하며 멀어져 가는 야요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집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역으로 가는 계단을 하나씩 천천히 밟고 올라와서 역사 옆에 있는 흡연구역으로 들어갔다. 퇴근 시간이 지난 뒤라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해질녘에 잠깐 내렸던 비에 재떨이 통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난 담배를 꺼내 물고 천천히 불을 붙였다. 저 어린 소녀의 가느다란 팔다리를 누르고 있던 가난의 무게를 생각해 보았다. 저 소녀가 자라오면서 어깨에 딱정이가 얹고 다시 벗겨질정도로 가난은 많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 아이를 맹수 천지와 같은 사회에 밀어 넣으려고 하고 있다. 가난의 굴레에 무릎이 시릴정도로 익숙해진 저 아이는 사람들 속에서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을 것인가? 아이의 입가에 번진 버짐보다는 클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필터 타는 냄새가 날 때 까지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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