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
열네 살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얀 나무 기둥을 세우
고 같이 올려다보았다 나는 강 건너에 있었다 우리 집이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여섯 남매가 살았다 마루 밑에 들
여놓은 고무신에도 눈이 쌓였다 아버지는 큰방 아랫목에
서 숨을 거두어가셨다 큰아버지께서 규팔이가 가네, 규
팔이가 가네, 크게 우셨다 시집온 아내가 이웃집 샘물을
길어다가 연기 나는 부엌에서 밥을 지었다 두 아이가 마
루를 쿵쿵 울리며 뛰어다녔다 일흔두 살 때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집이 헐렸다 목재들이 차에 실려 고향을 떠나
갔다 빈 집터에 바람이 불고 나서 달빛이 가득하였다 강
에서 주춧돌을 짊어지고 오신 아버지가 빈 집터에 돌을
부려놓고 돌 위에 앉아 달을 보고 계셨다 하마터면 아버
지 하고 부를 뻔했다 어느 날 목재들이 차에 실려 귀향했
다 그때 그 기둥이 그때 그 모양 그대로 세워졌다 62년생
아내와 내가 바짝 서서 수직의 흰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밑동이 썩은 기둥과 추녀, 서까래와 중방 들이 수리되고
다듬어져 순서와 차례를 지켜 차근차근 맞추어졌다 그때
에, 튕긴 까만 먹줄을 따라 모든 선線이 이어져 집이 옛날
로 섰다 흙을 얹고 기와가 이어졌다 어머님께 기와가 이
어진 집 사진을 보여드렸다 나도 저 속에서 죽고 싶다고
하셨다 첫 서리 지나 처마 끝 기왓장 난간 주름에 싸락눈
들이 굴러 모여 희다 오늘은 큰 구름이 달을 두고 지붕
위를 지나갔다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김용택, 문학과지성 시인선 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