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의 대표적인 FPS 타이틀인 \'킬존\' 시리즈의 최신작 킬존 3\'가 지난 2월 22일 정식 발매되었다. \'언차티드 2\'나 갓 오브 워 3\' 같은 PS3 전용 게임들이 보여준 그래픽 충격에 이어 킬존 3는 다시 한 번 발전된 엄청난 그래픽을 보여준다. \'킬존 2\'도 그래픽이 좋은 편이었지만 뿌연 느낌이 없잖아 있었고 전체적으로 칙칙한 색감이었는데 반해 킬존 3는 화면이 상대적으로 선명해졌고 색감이 좀 더 살아났다. 무엇보다 헬가스트 지도부 인물들의 얼굴이 놀라웠다. 이들은 모두 나이가 많이 든 노인들인데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의 표현이 정말 대단하다.
요즘 발매되는 게임들은 웬만하면 모두 그래픽에 세세한 공을 들이고 유저들 또한 어느 정도 이러한 모습에 익숙해졌기에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 놀라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킬존 3의 그래픽 수준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화면 가득 잿더미가 풀풀 날리는 모습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연출은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놀란 것은 그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실제로 재가 날리듯 자연스럽게 표현되는데 게임을 시작했을 때 처음 조작 가능한 부분에서 넋을 잃고 배경을 쳐다봤을 정도다.
정말 멋진 그래픽이다. |
게임에 직접 돌입하면서 조작감이 전작보다 훨씬 가벼워진 것을 알아챘다. 전작의 무거운 조작감이 많은 비판을 받았는지 그 흔적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조작감이다. 마치 \'콜 오브 듀티\' 시리즈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전작의 조작감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이를 보완해 특유의 묵직함과 쾌적한 조작이 공존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다른 FPS에 비해 조금은 복잡한 기본 키배치도 아쉽다. 정밀 조준 모드는 사용 빈도가 크기에 보통 트리거나 버튼에 배치된다. 그런데 킬존 3는 오른쪽 아날로그 스틱을 눌러야 하고 보통 이 버튼에 해당하는 근접 공격은 L1에 배치되었다. 상당히 애매한 배치인데 옵션에서 배치 종류를 바꿀 수 있으니 자신의 손에 맞는 배치를 찾아 보는 게 낫겠다.
버튼 배치를 이렇게 한 것은 엄폐 버튼인 L2가 기본적으로 토글 방식이 아니라 액티브 방식(계속 누르고 있어야 엄폐가 된다)이기 때문에 손에 피로를 그나마 적게 주기 위해서라 추측된다. PS 무브를 가지고 있다면 PS 무브와 연결하여 사용하는 컨트롤러인 \'샤프슈터\'를 사용하면 기본 컨트롤러와는 다른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어깨 견착이 되는 건콘이라니!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지만 장시간 플레이하면 팔이 뻐근해진다. 아, 혹시 샤프슈터가 너무 무거울 거라는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그 가벼운 위모콘도 오래 플레이하면 힘들다.
요즘은 기본이 된 정밀 사격. |
터미네이터가 이런 그래픽으로 나오면 정말 좋을텐데. |
킬존 3의 게임 플레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슬라이딩이다. 이전에 발매된 \'메달 오브 아너\'에서도 슬라이딩 시스템이 채용되었고 본인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킬존 3의 슬라이딩은 더 우월하다. 일단 슬라이딩은 달리는 중에 엄폐 버튼을 눌려서 발동된다. 때문에 슬라이딩 도중 엄폐물과 맞닿으면 자동으로 엄폐로 들어가는데 이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슬라이딩은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할 때도 유용하다. 잘만 사용하면 "이걸 내가 했단 말이야?"라고 자문할 만큼 멋진 플레이도 가능하다.
마음에 드는 다른 한가지는 근접 공격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FPS에서 다양한 근접 공격이 나오는 걸 선호한다. 킬존 3의 근접 공격은 다른 FPS 게임들과 약간 다르다. 타 FPS 게임이 근접 공격 한 방으로(그것이 칼이든 개머리판이든지 간에) 적들을 죽이는 반면, 킬존 3는 적의 남은 HP에 따라 공격이 변화한다. 체력이 많은 적을 공격했을 때 주인공은 적을 비틀거리게 하거나 적의 방향을 돌리는 공격을 한다. 그 상태에서 한 번 더 공격하면 전용 모션과 함께 적을 죽이게 된다. 만약 주변에 벽이나 엄폐물이 있다면 적을 벽에 박거나 엄폐물 모서리에 찍는 방법으로 죽인다.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챕터 내내 근접 공격만 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전작보단 쉽지만 여전히 뛰어난 AI. |
근접 공격의 쾌감은 액션 게임 못지 않다. |
킬존 시리즈는 다른 FPS 게임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다. 킬존 3의 제일 낮은 난이도는 다른 게임의 \'보통\'과 \'어려움\' 사이라고 보면 좋다. 다른 FPS 게임들은 탄창 하나로 많으면 10명 가까이 처리할 수 있지만 킬존 3는 난전일 때 탄창 하나로 세 명을 잡기 힘들 때도 있을 정도로 적들의 방어력도 높다. 또한 인공 지능도 높아서 공격 장소를 사이사이 옮기고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사린다. 아주 가끔씩 적들이 멍청한 행동을 할 때도 있는데 이 때는 "인공 지능이 뭐 이래" 하면서 비웃기는커녕 멍청한 행동이 나온 것에 감사했을 정도다.
킬존 3의 첫 느낌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새로운 부분이 보였지만 여타 FPS를 플레이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발매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정글 스테이지는 진행의 절반이 잠입이다. 상대적으로 어둡긴 해도 절대 눈 앞의 물체를 구별 못 할 정도는 아닌데 풀숲에 숨었다고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하는 적의 모습은 의아함을 넘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게임을 점점 진행하면서 이런 느낌은 점점 가시게 되었다. 잠입 미션은 약간 엉성했으나 스나이핑, 백병전, 높은 곳에서 버티기, 제트팩을 사용하는 루트 등 다양한 미션들이 차례대로 제공되었고, 약간 심심하다 싶을 때는 탈것들이 등장했다. 게다가 보통 탈것을 사용하는 미션은 소 챕터 하나가 통째로 사용된다.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멀미다. 필자는 멀미에 약한 편인데 최근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중에 멀미를 느껴본 적은 별로 없었다. 킬존 3도 일반 플레이에서는 어지럽지 않았다(아, 킬존 2는 좀 어지러웠다). 그런데 킬존 3의 한 챕터에서 로봇을 탔을 때는 어지러운 화면에 속이 울렁거렸다. 멀미에 약한 사람이라면 이 챕터에 미리 대비하라. 다행히 로봇을 타는 챕터는 다른 탈것들과 마찬가지로 플레이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이다.
잠입이 주가 되는 정글 미션. |
잘 보면 패드 조작에 따라 로봇 조종간도 움직인다. |
I see you. |
다양한 탈것도 좋았지만 필자가 광분한 것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하나의 챕터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헬가스트의 거대한 로봇 병기와 대적한다(아머드 코어에 나올법한 디자인의 로봇이다). 세세하게 비교를 하진 않았지만 이 녀석의 크기는 주변의 높은 건물도 발로 찍어버릴 정도고 그 여파로 커다란 모래 먼지가 날아온다. 이 로봇을 저지하는 방법은 평범하지만 그 거대함과 등장 시기가 너무나 절묘하다. 블록버스터 하면 역시 마지막에 강대한 보스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SF라면 거대 로봇이 나오는 것은 최고의 조합이다.
이 로봇의 존재가 거대하게 느껴진 건 일반 게임과는 약간 다른 화면 표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익히 알려진 대로 킬존 3는 3D 화면을 지원한다. 그리고 게임 외적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3D를 느끼기 적합하게 되어 있다. 하늘에 흩날리는 잿가루와 겨울 하늘을 수놓는 눈이 그렇다. 그리고 직접 조작하지 않는 탈것(예를 들면 강습정)들은 화면 연출이 마치 놀이 공원에 있는 입체 영화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연출은 게임 최후반부에 나오는 우주전에서 극대화된다. 전투기 조작은 동료에게 맡기고 주인공은 공격에만 주력하게 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가 생각나는 화면을 따라 적들을 격추하다 보면 어느새 챕터가 끝나 있다. 그 순간 아쉬움이 느껴졌는데 이는 놀이 기구가 멈췄을 때와 비슷했다.
거대 로봇과 싸우는 건 남자의 로망. |
마지막까지 화끈하게 해주는 우주 전투. |
이쯤에서 우리는 블루레이의 장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용량이 아니던가. 보통 그 용량은 사운드 쪽에 투자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양기종으로 발매되는 멀티 게임들이 그런 경우가 많으며 \'스타워즈: 포스 언리쉬드 1\'을 플레이해보면 PS3 쪽의 사운드가 더 좋다(특히 광선검이 움직이는 소리가 많이 차이 난다). 킬존 3는 사운드 쪽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다. 5.1 채널로 플레이하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로켓의 소리는 물론이고 각종 효과음이 매우 현실감 있게 들려온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실제로 그 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로켓이 스쳐 지나갈 때 5.1채널 사운드가 빛난다. |
킬존 3의 다른 강점은 완벽한 자막 한글화다. Xbox360 쪽도 그렇지만 플랫폼 홀더의 한글화 타이틀은 번역의 질이 남다르다. 특히 욕이 난무하는 게임은 보통 \'빌어먹을 놈\' 같이 순화시켜서 번역되는데 킬존 3는 그런 거 없이 대부분 순수한(?) 상태 그대로 번역되었다. 예전에 발매되었던 \'콜 오브 듀티 : WaW\'와 같이 게임 등급에 맞는 바람직한 번역은 군대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겐 특히 더 와닿을 것이다. 다만 수준 높은 번역에도 불구하고 크게 와닿지 않는 스토리 라인과 가끔씩 나오는 뜬금없는 이벤트 컷 연출은 아쉽다.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
몇몇 이벤트 연출은 뜬금없다. |
멀티 플레이 모드는 기본적인 완성도도 괜찮고 싱글 모드에서 사용할 수 없는 기능들이 있어 상당히 즐겁다. 하지만 게임성이 아니라 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이 리뷰가 작성된 시점에서는 일단 매치에 접속할 때 로딩이 길며, 렉이 상당해(주로 아시아, 일본 서버에서 플레이했다) 정상적인 게임을 즐긴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FPS 게임에서 멀티 플레이 모드의 중요도는 누구나 알 것이며, 기껏 멀티 플레이 모드 시스템을 잘 구축해놓고 플레이 외적인 부분으로 인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척 큰 문제다. 게릴라의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킬존 3는 마치 하나의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놀랍도록 뛰어난 볼거리로 가득 차 있어 눈과 귀가 즐겁고, 대부분의 유저들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성을 갖췄다. 이 정도라면 이름 높은 다른 FPS 게임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고, PS 무브와 3D 영상과 같은 PS3의 새로운 요소를 적극적으로 게임 내에 도입해 새로운 즐거움을 주려는 모습도 훌륭하다. 자막 한글화가 이루어졌으면서도 유럽 시장과 동시에 발매된 것 또한 시리즈 팬이라면 환호할만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온라인 모드의 불안정함과 로딩 문제를 비롯해서 마무리가 덜 된 듯한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며, 만약 다음 작품이 제작된다면 이런 부분이 보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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