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셜록 홈즈: 챕터 원 | 출시일 | 2021년 11월 16일 |
개발사 | 프로그웨어 | 장르 | 어드벤처 |
기종 | PC, PS4 | 등급 | 청소년 이용불가 |
언어 | 한국어 지원 | 작성자 | PforP |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남은 것이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진실이다.
-아서 코난 도일, '네 사람의 서명' 중
셜록 홈즈 비디오 게임은 사실 198-90년대가 전성기였다. 사진은 '셜록 홈즈의 잃어버린 파일: 로즈 타투 사건'
셜록: 어째서 이 대단하고 멋진 두뇌를 비디오 게임계에서는 알아주지 않는거지? 왓슨: 그건 7퍼센트 용액으로도 해결 못할 현상이라서 말 일세
아서 코난 도일이 만든 불멸의 빅토리안 탐정 셜록 홈즈는 사실 2000년대 이후 비디오 게임계에서 사랑받긴 다소 힘든 이름이다. 우선 셜록 홈즈는 액션 히어로가 아니라 추리 히어로다. 그래도 몸싸움에 능해서 액션 장면을 넣을 수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셜록은 왓슨을 옆에 두고 증거를 찾고 시험관에다 시료를 붓고 추리를 해야 하는 캐릭터다. 이런 부류의 게임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 어드벤처 게임에 속하며, 실제로 이 시절 제법 많은 홈즈 게임이 나왔다. 대표작으로는 EA에서 만든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인 '셜록 홈즈의 잃어버린 파일'과 ICOM에서 제작한 1인칭 FMV 게임인 '컨설팅 디텍티브'가 있다.
하지만 어드벤처 게임 전성기가 끝난 후 셜록 홈즈랑 존 왓슨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탐정보다는 숨어 다니며 망치는 스파이나 쏴 죽이는 솔저를 원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가 주역으로 나오는 21세기 게임은 본 리뷰작인 프로그웨어 셜록 홈즈를 제외하면 캡콤의 대역전재판 시리즈 정도가 유명하다. 그나마도 본인 추종자라 할 수 있는 나루호도 류이치의 할아버지인 류노스케 동료로서 등장하는 정도였다. 사실 프로그웨어 셜록 홈즈도 우크라이나 게임이니 21세기 이후로 제대로 된 영미권 셜록 홈즈 게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000년대 초 어드벤처 게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프로그웨어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장수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프로그웨어 셜록 홈즈는 사실 예나 지금이나 게임 디자인을 선도하는 게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 첫 게임인 미라의 미스터리도 3D 1인칭 어드벤처 게임을 답습하고 있는 게임이었다. 프로그웨어 셜록 홈즈는, 2000년대 초 어드벤처 유행 끝물에 빈틈을 치고 들어온 쪽에 가깝다.
일단 상술한 셜록 게임을 만든 EA나 ICOM은 모두 2000년대 초에 이미 어드벤처 장르에서 손뗀 상태라, 셜록 홈즈 팬덤은 비디오 게임계에서 오갈 데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프로그웨어는 이 틈을 노려 혁신적이지 않아도, 팬덤이 만족할 만한 퀄리티의 게임을 내놓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시리즈는 누계 700만장을 기록했고 무려 20년 이상을 장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2년 셜록 홈즈의 유언장을 기점으로 입소문을 탔고 2014년 루리웹에서도 리뷰했던 죄와 벌을 기점으로 정식 한국어화가 이뤄지고 있다.
셜록 팬들에게는 긴 시간이었지만, 사실 평균적인 텀을 두고 발매된 게임이다. 바로 사이에 '싱킹 시티'가 있었기 때문.
때문에 기존 셜록 게임들보다 '싱킹 시티'랑 유사한 부분이 많다.
기록 보관소 가서 키워드를 맞춰 자료 찾기도 '싱킹 시티'에서 넘어온 디자인이다.
본작인 챕터 원은 시리즈로만 보면 5년이라는 꽤 긴 공백기를 두고 나온 게임이다. 프로그웨어가 '악마의 딸' 이후 개발 노선을 대대적으로 변경했고, 시리즈에 반영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만 따라온 유저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 2년전 루리웹 리뷰란을 체크한 유저라면, '싱킹 시티'라는 게임을 기억할 것이다. 프로그웨어가 본격 크툴루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을 내세웠던 그 게임 말이다. '셜록 홈즈: 챕터 원' (이하 '챕터 원')은 기존 셜록 홈즈 시리즈랑 결별하고 '싱킹 시티'의 틀을 따라가고 있는 게임이다. 제목은 그 점에서 이중적이다. 이 제목은 예고한대로 셜록 홈즈의 기원을 다룬다는 '셜록 홈즈 프리퀄'이기도 하지만, 프로그웨어가 고전 어드벤처 게임을 버리고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으로 스튜디오의 새 장을 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악마의 딸'에서 프로그웨어는 3D 어드벤처 게임의 틀을 유지하되 공간을 대폭 늘리고 자유도 개념을 실험한 적이 있다. 이후 '싱킹 시티'에서 프로그웨어는 유비소프트나 락스타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선형적인 메인 미션과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는 하위 미션이 배치된 도시를 돌아다니며 진행되는 오픈 월드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챕터 원'이 '싱킹 시티'에서 계승한 부분 역시 주로 오픈 월드와 게임 진행 방식, 인터페이스다. 먼저 플레이어는 처음 가지고 있는 증거가 지시하는 대로 조사 장면으로 불리는 추리 장소를 찾아가거나, 탐문이나 자료 조사를 해 새로운 증거를 얻는다. '싱킹 시티'에서 추가된 자료 조사 같은 경우 경찰소나 기록 보관소 같은 특정 장소에서 키워드를 선택해 찾도록 만들어 두었는데, '챕터 원'에서도 똑같이 코르도나 신문사/경찰/시청 세 군데에서 자료 조사를 거쳐야 한다.
지도에서 이렇게 찍고 찾아가게 될 것이다.
대신 사건 장면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익숙한 프로그웨어 셜록 홈즈 게임 디자인으로 돌아간다.
전통의 마인드 팰리스도 건재하다.
사건 장면을 찾아가는 과정은, 대략적인 단서만 주어지기 때문에 지도를 보며 직접 추리해야 한다. 지도를 보면서 현장과 관련된 증거 설명으로 추론해 장소를 아이콘으로 찍어 두고 찾아가는, 매우 아날로그한 방식이다. 이렇게 사건 장면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된다. 수사 자체는 상호 작용을 찍어서 조사하는 기존 진행 그대로고, 집중을 통해 자세히 관찰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 와중에 사진 찍기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사건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상황에 대한 추리를 맞춰야 하는데, 본작에서는 이 역할을 '존'이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추리가 완료되면 프로그웨어 전통의 기억의 궁전에서 추리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도출해야 한다. '싱킹 시티'를 하지 않고 '셜록 홈즈' 시리즈만 따라왔다면 낯설겠지만, 반대로 '싱킹 시티'를 했다면 "아 이 게임은 '싱킹 시티'의 후계자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물 관찰은 전작과 유사하나 인물에 대한 인상을 기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추가되었다.
전반적으로 집중 시스템의 활용도가 다양해졌는데, 기억을 떠올리거나 흔적 추적에 주로 쓰이게 된다.
변장 시스템 같은 경우 매개변수 개념 및 NPC 적대/우호가 추가되어 분장 아이템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챕터 원'은 단순히 '싱킹 시티'를 답습하는 걸 넘어 기존 '셜록 홈즈' 게임들의 디자인을 가져오거나, 새로운 시도를 도입하고 있다. 먼저 집중 시스템 디자인은 '싱킹 시티'을 계승하면서도 활용도가 다양해졌다. 이능력에 가까웠던 '싱킹 시티'의 마음의 눈과 달리, '챕터 원'의 집중은 좀 더 객관적인 분석에 가깝다.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거나 행적 추적에서도 적극적으로 집중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특히 행적 추적 같은 경우엔, 집중을 켜 두고 증거를 맞춰 둬야 쫓아갈 수 있도록 변경했다. 증거나 흔적 추적뿐만이 아니라, 용의자나 NPC를 관찰하고 정보를 획득하는 디자인 역시 강화되었다. 먼저 증인 대상 인물 묘사가 있다. 증인 인물 묘사 자체는 '죄와 벌'와 '악마의 딸' 시절을 계승해 외관 특징과 연계된 상호 작용을 확인해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챕터 원'에서는 개선이 이뤄져 상호 작용 지점 파악하기 편해졌으며, 최종적으로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 정리하는 선택지가 추가되었다.
또한 게임 내 NPC 비중이 대폭 늘어, 상술한 집중을 활용해 정보를 얻거나 변장해야 하는 디자인이 강화되었다. '챕터 원'에서는 NPC가 몰래 하는 대화를 엿듣거나 집중으로 특성 및 우호도 키워드를 추출해 변장해야 하는 지점이 등장한다. 먼저 '엿듣기' 같은 경우엔 귀 아이콘이 뜨고, 누르면 제한 시간 내에 키워드를 선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답을 자주 내면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해야 한다. 한편 '변장' 같은 경우엔 전작에도 있었던 요소이긴 하나 장소와 상황에 맞춰 복장을 입었던 전작들과 달리 매개변수와 우호도 개념이 추가되어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 먼저 의복 상인에게 찾아가 추출한 키워드에 맞게 옷과 분장 도구를 구입하거나 빌려야 한다. 이렇게 구입하거나 빌린 옷은 메뉴 내 옷장에서 변장할 수 있다. 변장 매개변수인 사회 계층은 총 다섯 가지로 나뉘는데 상류층, 코르도나 현지인, 경찰, 선원/군인, 일꾼, 부랑자/범죄자로 나눠진다. 매개변수가 오른쪽으로 향할수록 그 계급처럼 보이며, 해당하는 NPC 계급에 맞게 분장해야 태도가 우호적으로 변한다.
'존의 내기'라는 퀘스트 내 도전과제가 추가되었기에, 100% 완료를 노린다면 노려야 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으로 퍼즐 요소가 줄어든 경향이 있는데, 화학 분석은 여전히 건재하다.
메인 퀘스트 구성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 해결이랑 사건이 교차 전개되는, 기존 셜록 홈즈 게임보다는 좀 더 유기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개별 사건이 정리되고 옛 집으로 돌아가 기억을 떠올리면서 진상에 접근하는 전개라 보면 좋다. 퀘스트 디자인과 관련해 주목할 변화점으로는 '존의 내기'가 있다. 일종의 도전 과제 개념로, 진행하다 보면 존이 제안하고 셜록이 푸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존의 내기'는 시퀀스가 끝나기 전에 완료해야 해결한 것으로 처리된다. 나름 게임 풀이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는데다, 진행률과 관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도전과제 매니아들이라면 반드시 거쳐가게 될 것이다. 한편 '챕터 원'은 퍼즐 개념은 줄어들고, 아이템 찾아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나마 시험관 시료를 활용한 계산하기 퍼즐인 화학 분석이 남아있다, 본작에서는 사건집에서 화학 분석이 필요한 증거를 눌러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여전히 좋은 오픈 월드 게임이라 보기엔 미묘하지만 실수로 가득했던 '싱킹 시티'에 비하면 그래도 정돈된 모습을 보인다. 동선 면에서는 확실히 개선된 편.
'돈' 개념을 추가하고 부가 퀘스트를 대폭 늘려 오픈 월드 탐색할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중충한 오크몬드에 비해 코르도바는 꽤 볼만한 도시라는 점도 플러스다.
'싱킹 시티'는 오픈 월드 경력이 없는 제작사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하나씩 골라서 저질렀던 게임이었다. 체계적이지 못한 공간 및 동선 설계, 꼬여 있는 도로 설계로 인해 장소 파악의 난해함, 번거로운 이동, 오픈 월드라는 무색하게 부족한 관련 콘텐츠, 퀘스트를 제외하면 별다른 내용물이 없는 도시... 좋은 소식이 있다면 프로그웨어가 '싱킹 시티'의 시행착오에서 어느 정도 배웠다는 점이다. 일단 본작에서는 돈 개념이 생겨, 간단한 하우징과 아이템 수집 개념이 도입되었다. 돈 자체는 퀘스트를 해결해 획득할 수 있으며, 변장이나 옛날 집 가구나 예술품을 수집하는데 쓰인다. 때문에 부가 퀘스트를 해결해 돈을 벌고, 수집품을 모아야 하는 목표가 생겨서 오픈 월드 게임으로써 동기 부여를 어느정도 하고 있다. 대신 필수적인 변장 같은 부분은 돈 없어도 대여하고 진행할 수 있기에 부담을 줄이고 있다. 사실상 2회차 및 수집 요소용이라 생각하면 좋다.
동선이나 공간 설계도 어느정도 나아져서 '싱킹 시티'에서는 지나치게 넓게 퍼져 있던 기록 보관소가 중앙 구역의 세 곳으로 (시청, 신문사, 경찰) 압축되어 피로도가 줄어들었다. 상술한 아날로그식 "단서 내용 보고 지도에서 찍어서 장소 찾기"는 여전하지만 적당히 찍어도 찾을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싱킹 시티'에서 지나치게 꼬여 있는 도로와 상호 작용 지점 때문에 장소 찾기가 찾기 힘들었던 점을 생각하면 큰 발전이다. 배경이 되는 코르도바 디자인 자체도 칙칙했던 '싱킹 시티'보다 훨씬 화사하고 개성이 있는 편이라 볼 맛이 난다. 물론 탈것도 없고, 빠른 이동은 알아서 찾아야 하고, 늘어난 NPC 활용도도 셴무 2 수준에 그치며, 총체적으로 오픈월드로써 깊이가 어새신 크리드 초기작 마이너 카피라는 단점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래픽에서는 발전했지만, 여전히 기술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한 몫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오픈월드에 집착해야 할 필요성 & 최적화 문제라는 답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전투 디자인은 나름 개선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별로다. 그나마 메인 퀘스트 내에서 비중이 대폭 줄어든 건 다행.
게다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공간을 밀도 높게 활용하는 추구하는 추리 어드벤처랑 드넓은 세계에서 탐험할 것을 찾아 즐기는 오픈월드는 서로 상극이라는 점이다. 프로그웨어도 이를 인지하고 있어서 나름 해결책을 내놓긴 했다. 본 퀘스트 분량은 기존 셜록 홈즈 게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대신 온 지역에 퍼져 있는 부가 퀘스트 양이 많다. 고도로 짜인 인카운터 이벤트라고 보기엔 7% 부족해 보이긴 해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가 퀘스트를 해금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여기다 사진을 보고 장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물 찾는 퀘스트도 마련해두고 있다. 프로그웨어는 지역 전체를 추리 및 보물찾기 퀘스트로 배치하면 풍성한 콘텐츠를 제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오픈월드 콘텐츠는 '싱킹 시티'처럼 퀘스트 중심에 약간의 수집 요소가 추가된 정도라 나아지긴 했어도 다양하다고 할 수 없고, 결정적으로 넓은 공간을 좁게 활용하는 건 여전하다. 한마디로 본격적인 오픈월드 게임을 기대하면 안 된다. 솔직히 프로그웨어가 왜 오픈월드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전투가 재미없다. '챕터 원'의 전투는 '싱킹 시티'처럼 분수에 넘는 욕심 부리다 망한 수준까지는 아니다. '싱킹 시티'에서 구색만 갖추고 있던 무기 및 스킬 트리 시스템은 전부 사라졌고, 권총 하나로 전투에만 신경 쓰면 된다. 프로그웨어조차도 자신들이 내놓은 전투 시스템 설계가 실패했다는 걸 자인한 셈이다. 이렇게 무기/능력치 시스템은 가지치기한 대신 불렛 타임과 약점 시스템, QTE를 통한 제압, 최루탄 형식의 코담배로 전투에 전술적인 요소를 가해 재미있게 만들려고 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조준을 하면 불렛 타임이 자동으로 적용되며, 적의 약점이나 무력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노란색으로 뜬다. 여길 공격하면 적이 무력화되고, 가까이 다가가서 QTE로 조작 버튼+버튼 연타로 제압할 수 있다. 기절 수류탄 격인 코담배는 쿨 타임이 있기에 위기 상황에 탈출하는 용도로 쓰이는 경향이 크다. 문제는 이런 가지치기를 단행했음에도 전투가 여전히 단조롭기 그지없다. 갑옷 입은 적 같은 베리에이션이 나오긴 하지만 결국 약점 공격 후 QTE로 제압이라는 단순한 구조에서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매하고 어정쩡한 전투를 계속 유지할 거라면 차라리 넣지 않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워낙 인기가 많은 캐릭터다 보니 아예 셜록 홈즈 패스티시 장르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사진은 이런 패스티시 작품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명탐정 등장 The Seven-Per-Cent Solution'
프로그웨어 셜록 홈즈도 이런 패스티시 장르에 속하는데, '챕터 원'은 개중 멀리 나간 축에 속한다.
셜록 홈즈는 저작권이 만료된 이후로 무수한 패러디와 재창작이 나왔던 시리즈다. 심지어 이런 2차 창작이나 패러디만 일컫는 셜록 홈즈 패스티시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인데 영어 위키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것만 해도 150편을 가뿐히 넘을 정도다. 몇 가지만 꼽자면 아서 코난 도일 아들과 존 딕슨 카가 쓴 'The Exploits of Sherlock Holmes' 시리즈부터 영화로도 만들어진 니콜라스 메이어의 '명탐정 등장 The Seven-Per-Cent Solution'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장수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챕터 원' 역시 이런 셜록 홈즈 패스티시에 속한다. 지중해에 있는 가상의 섬인 코르도바에서 원전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홈즈 형제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을 중요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셜록 홈즈의 어린 시절은 홈즈 패스티시 계에서는 나름 인기 있는 소재긴 했다. 상술한 '명탐정 등장'에서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셜록 홈즈를 정신 분석해 어린 시절 셜록의 비극을 밝혀낸다는 꽤 참신한 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
거의 20년 가까이 홈즈 게임만 만들었던 프로그웨어로써는 나름 구상했을 법한 재해석 프로젝트인 셈인데, 그 결과는 원전 셜록 홈즈나 기존에 만들었던 셜록 홈즈 게임들의 방향성과 다소 이탈하는 게임이 되었다. 우선 '챕터 원'은 셜록 홈즈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어둠에 흥미를 보이는 게임이다. 대다수의 평자가 지적하듯이 셜록 홈즈는 추리와 관찰에 천재적이고 여러 소양이 있는 빅토리아 시절 영국 신사지만, 동시에 괴벽적이고 사람들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이 전형적인 빅토리아 영국 신사랑 대조되는 셜록만의 묘한 개성을 만들었고 사람들을 이끌어 들였다. '챕터 원'은 그런 괴벽적이고 사람들과 소통을 못하는 명탐정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보면 '명탐정 등장'과 궤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는 왜 그런 성격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작품이지만, 비슷한 제재를 다룬 '명탐정 등장'보다는 현대적인 재해석에 가깝다.
특히 이 "존이지만 존이 아닌 캐릭터"가 여러모로 현대적인 사이코드라마 성향을 극명히 표현하고 있다.
다만 비교적 정통적인 빅토리아 시절 탐정/모험 소설 영역에서 진행했던 '명탐정 등장'과 달리, '챕터 원'의 재해석은 현대적인 쪽에 가깝다. 특히 셜록 캐릭터 해석이라는 지점에서 보자면, 다소 당혹스러울 팬들도 있을 것이다. '챕터 원'은 사이코드라마 성향이 강한 고딕 미스터리 성장극에 가깝다. 고딕 미스터리는 원전에도 있었던 요소긴 하지만 ('바스커빌 가의 개'가 대표적이다.), 내면 묘사 쪽은 원전보다는 전작 '악마의 딸'에서 시도했던 요소들이 심화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후반부로 가면 보기 드물 정도로 격렬한 감정 표출하는 셜록도 볼 수 있다. 결말 역시 셜록 본인의 정신적 성숙 (?)과 다가올 모험에 대한 암시로 끝난다. 이 때문에 봉인된 기억의 문 같은 묘사부터 시작해 지극히 모더니즘 경향을 띄는 "개인의 주관적인 심상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이런 사이코드라마 성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는 본작 동료인 존이 있다.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아는 존 왓슨은 프리퀄에서는 나올 수 없으니, 왓슨 대타로 등장시킨 캐릭터긴 하다. 영어 표기도 Jon으로 왓슨과 확실히 구별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 조형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흥미를 유발하는 구석도 있다. 딱히 프로그웨어도 숨길 생각이 없어서 금방 밝혀지는 부분이지만 본작의 '존'은 셜록만 보는 상상의 친구다. 최종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는지는 핵심 누설이기에 설명하지 않겠지만, 셜록 본인의 결핍을 드러냄과 동시에 셜록의 가치관인 '진실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함'에 어떻게 협력하면서 동시에 갈등을 일으키는지를 음미하는 게 본작을 즐기는 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다 진실은 괘념치 않고 쾌락과 아름다움에 충실하는 가치관에, 홈즈 가의 과거사에 대한 단서를 던지는 화가 버너 보겔 캐릭터와 엮이면 '진실이란 과연 무엇이며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라는 화두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생긴다.
전반적으로 셜록 홈즈라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해 재해석을 가하는 내용이 많다.
사실 이런 어드벤처 게임에서 선택에 따라 큰 서사가 바뀌지 않는 것에 불평불만을 종종 적긴 했지만, 프로그웨어는 그래도 이런 변화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긴 하다.
그 다음 눈에 띄는 점은 배경이다. '셜록 홈즈' 원전은 영국이 중심이었다. 가끔 인도나 식민지 출신 캐릭터나 상황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국 중심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본작은 홈즈 형제 아버지가 사망한 후, 아랍 문명권에 속하는 지중해 섬 코르도바에 가족이 요양차 정착했으며, 홈즈가 재방문했다는 설정으로 영국을 떠나버린다. 게임 진행 역시 코르도바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 코르도바가 대영제국 지배하에 있으며, 영국과 식민지 코르도바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기류는 메인 퀘스트에서는 가끔 언급되는 수준이지만, 부가 퀘스트에서는 마이크로프트가 '영국'을 위해 비밀 임무를 하라는 내용의 퀘스트가 등장한다. 이를 반영했는지 본작에서 마이크로프트는 규율중심적이며 비밀주의적인 행동으로 셜록과 갈등을 빚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원작자인 아서 코난 도일이 빅토리아 왕조 대영제국을 지배하던 제국주의와 애국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나마 콩고 학살에 대한 비판을 하는 등, 아주 무감각한 편은 아니었다.), 프로그웨어가 은근슬쩍 "하지만 도일 선생님, 이제는 다릅니다..."하고 재해석을 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와 연계해 '챕터 원'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은 전작들보다도 묘하게 동시대적인 내용이 많다. 난민 문제라던가, 가정 폭력이 대놓고 언급될 정도다. 20년 경력이 어디가지 않는지라, 전반적인 사건이나 추리 퀄리티는 완성도가 높은 편이고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다. 한 사건에 대해 어느 쪽이든 말이 되도록 전개를 꾸며 놓고, 일종의 가치 판단을 추구하는 추리 디자인도 꾸준하게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런 디자인이 엄청나게 새로운 거나 신선한 것은 아니고 (기원을 따지자면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대령의 유산'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런 부류 게임 특유의 딜레마인 '뭘 선택해도 큰 줄기는 변하지 않는다'를 비롯해 스크립트 연출이 좀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강하긴 해도, 윤리적인 선택지 구성이 잘 되어 있는데다 2회차로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리 게임으로써 소임을 다하고 있다.
'싱킹 시티'가 크툴루 신화에 재해석을 가하는 게임이라면, '챕터 원'은 셜록의 기원으로 돌아가 원작을 재해석하고 고찰하려는 게임이다. 한 번쯤은 해 볼만한 시도고 소정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종종 셜록 홈즈 원전에서 벗어날 정도로 현대적인 시선이 강하지 않나, 싶은 부분도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퀘스트가 '외국에서 온 뮤즈'다. 이 사건은 홈즈 식 추리/활극 보다는, 배배 꼬인 사회파 느와르에 가깝다. 퀘스트의 결말 역시 진상 밝히기보다는 진상 처리가 훨씬 중요한지라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소재나 전개 역시 아서 코난 도일이 '공포의 계곡'에서 미국 노동 운동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핑커톤 탐정 사무소 인물을 선역으로 그렸던 것을 생각하면, '외국에서 온 뮤즈'는 의도적인가 싶을 정도로 '공포의 계곡'의 안타 테제라 여겨질 부분이 있다. 여기다 대다수의 셜록 홈즈 패스티시가 그렇듯이 셜록 캐릭터만 따로 떼 놓고 원작과 다른 무언가로 만들었다는 경향도 아예 없진 않아서, 이런 거에 민감한 팬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셜록 홈즈: 챕터 원'은 여러모로 안전함과 파격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게임이다. 원전에서 다뤄지지 않은 어린 셜록 홈즈의 내면을 다루며 오픈 월드 세계에 들어선 것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추리 어드벤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안전한 영역에서 머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셜록 홈즈: 챕터 원'은 추리 어드벤처로서는 괜찮은 게임이지만, 이 두 요소가 조화롭게 얽혀 있느냐 또는 완성도 높은 오픈월드 게임 제작사로서 도약할 수 있느냐는 아직도 미지수이긴 하고 회의적이긴 하다. 그나마 피드백을 받고 노력했는지 '싱킹 시티'보다는 게임 디자인적으로 개선된 편이긴 하다. 현대적인 셜록 홈즈 패스티시에 큰 거부감이 없다든가, 시리즈 팬이라면 재미있게 할 것이고 오픈월드 게임을 찾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프로그웨어는 앞으로도 본작 노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으니, 본편 런던 배경으로 이런 오픈월드 게임이 나올 건지 궁금하긴 하다.
작성 PforP / 편집 : 안민균 기자 (ahnmg@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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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적으로 한글화 해줘서 고마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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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홈즈 시리지를 계속하면서 느꼈지만 어드벤처 장르가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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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다 좋아하지만 그쪽은 액션8에 추리2라면 이쪽은 액션1에 추리9입니다 | 21.12.16 23: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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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봇전사가 나타났다! | 21.12.17 17: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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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얘는 ㅋㅋㅋㅋㅋㅋㅋ | 21.12.18 15: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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