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IVA 는 PSP 때부터 조금씩 하다가 퓨처톤에서 본격적으로 하다 보니 저의 GOTY가 되었습니다.
보카로이드 초창기에 기계음에 거부감을 느끼고 관심을 끊었다가, PSP 로 게임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설마 기계음으로 리듬 게임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고, 사람 목소리로 재녹음했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플레이했다가 전부 보카로이드 곡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오히려 보카로이드 곡을 사람이 부르면 어색하게 들리네요.
하츠네 미쿠 탄생 이후 9년이 되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Project DIVA 는 보카로이드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고, SEGA 가 아니라 다른 회사가 게임화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다 보니 Projec DIVA 탄생에 대한 흥미로운 인터뷰가 있어 번역해 보았습니다.
인터뷰 내용 중에는 어떻게 SEGA 가 하츠네 미쿠 게임화를 하게 되었는지, 게임화 중에 MMD(미쿠미쿠 댄스)를 상당히 의식했다든지, Project DIVA 가 하츠네 미쿠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Project DIVA Arcade 발매 전에는 잘 못했다가는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든지,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많습니다.
2010년 인터뷰이니, 그 점은 주의해 주세요.
그대로 옮기는 것이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삭제하겠습니다.
출처: http://weekly.ascii.jp/elem/000/000/024/24435/
8월 31일에 3세의 생일을 맞이한 하츠네 미쿠. PC 소프트로 태어난 하츠네 미쿠이지만, 2009년에는 PSP 용 소프트 '하츠네 미쿠 - Project Diva -' 로 게임 데뷰. 올해(2010) 6월에는 아케이드 판, 7월에는 PSP 용 '하츠네 미쿠 - Project Diva - 2nd' 발매, 그리고, '감사제' 라는 형태로 필름 콘서트가 개최되는 등, 이제는 '아이돌'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이번에는 하츠네 미쿠의 아버지인 클립톤 퓨처 미디어의 佐々木渉 씨와 하츠네 미쿠를 게임으로 만들어 히트작을 낸 'Project DIVA' 시리즈의 제작을 맡아온 内海洋(올해 SEGA를 퇴사하셨습니다)씨와 인터뷰. '보카로이드'가 게임의 주역을 맡는 '아이돌'로까지 성장해온 과정과 하츠네 미쿠의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 0세의 하츠네 미쿠는 정말 카오스였다 ###
Q: 보카로이드 '하츠네 미쿠'가 2007년에 발매되어 Project DIVA 시리즈 1탄인 PSP용 '하츠네 미쿠 - Project Diva -'가 발매된 것이 2009년 7월입니다. 그 사이 2년정도의 기간이 있었는데, 하츠네 미쿠와 세가는 어떻게 만난 건가요?
佐々木渉 (이하 佐々木): 만남은 상당히 카오스였습니다 (웃음). 최초로 연락을 받은 것이 릴리즈 직후인 (2007년) 9월 이었습니만, 도쿄 게임쇼의 회장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쇼 회장은 매우 큰 소리로 음악이 틀어져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만, 어쨌든 '하츠네 미쿠에게 흥미가 있습니다!!' 라고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거의 같은 시기에 다른 게임 메이커로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메일로 상세한 자료와 함께 연락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세가는 열정부터 보내온 느낌이었습니다.
内海洋 (이하 内海): 저는 그 때보다 조금 뒤에 프로젝트에 참가하였지만, 당시 담당자가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는 거의 노 플랜(No plan)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실제로 연락을 하기 전에 몇가지 스텝을 밟게 되지만, 이 때는 그걸 뛰어넘어 갑자기 연락부터 한 느낌이었습니다(웃음).
佐々木: 기세만으로 연락을 해 왔기 때문에, 거꾸로 이쪽도 부담없이 얘기를 꺼내기 쉬웠습니다.
Q: 다른 메이커가 아니라, 세가와 함께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佐々木: 다른 메이커는 역시 붐이 빨리 식는 것을 두려워해서 '어쨌든 식기전에 빨리 내고 싶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가는 여러가지 상담에도 응해주셨습니다. 하츠네 미쿠가 막 나온 때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시행착오를 겪어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매우 좋았습니다.
内海: 우리들은 별로 '붐'이라는 것에 집착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내 회의에서도 당연히 '언제까지 인기가 계속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만, '그건 아무도 모르죠' 라고 대답했습니다(웃음). '누가 살까?' 라는 질문에도 '음...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밖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역시나 조금 혼나기는 했습니다(웃음).
### Project DIVA 는 유저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 ###
Q: 그 때는 오리지널 곡도 거의 나오지 않은 시기였죠?
佐々木: 아직 9월이었습니다... '미쿠미쿠(하게 해줄께)' 가 나온 직후였죠?
内海: 2ch의 네타를 넣어서 노래를 만드는 게 유행하던 시기였죠.
Q: 일반적으로는 유저 커뮤니티라는 것은 메이커의 지원으로 커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佐々木: 아니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유저는 유저끼리 팬분들과 호응해가면서 이상할 정도로 커나가고 있었습니다. 점점 여러가지 것들이 나와서 커져 갔죠.
'MMD (MikuMikuDance)' 가 나왔을 때는 세가와 함께 '대단한 물건이 나왔습니만, 어떻게 할까요? 3D 포기할까요? (울음)' 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内海: 물론 우리들도 하이엔드 기기에 돈을 쏟아부으면 MMD에 가까운 것은 만들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점점 더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럼, 우리들이 프로로서 만드는 것은 MMD 와 어떻게 다를 것인가' 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은 모션캡처도 할껀데! 대단하지!' 라고 (웃음).
Q: 좋은 의미로 유저와 경쟁을 할 수 있었다?
内海: 아니오, '경쟁'은 하지 않았습니다. MMD 쪽이 훨씬 스펙이 높으니까요. 우리들은 어느쪽이냐 하면 '저항'. 하이엔드 PC로 하는 것과 같은 것을 작은 휴대기기에서 해 보이겠다. 그것이 프로의 기술. 그런 작은 고집같은 것이 있었죠.
佐々木: MMD는 매우 자유롭고 바람이 잘 불고 열량이 높은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벌판이 순식간에 개척되어 가는 것과 같은 감각이었습니다. 완전 참가형으로, 어떤 의미로는 무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MMD 에 대해, 쓸데없이 저항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했습니다.
内海: 우리들은 유저와 같은 레이스에 참가하여 경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코스로 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레이스를 서포트하는 것과 같은 도구를 만들어 간다고 할까요. MMD 를 보면서 '우리들도 무엇인가 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죠.
佐々木: 오히려 의식해야 할 것은 무드와 온도감이니까요. '분위기 파악'과 같은 것을 우선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만드는 것이 유저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알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세가, 미쿠에 대해 알고 있는데' 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
Q: 세가는 Project DIVA 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나요?
内海: 우리들이 게임을 릴리즈할 것이라고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하츠네 미쿠의) 발매일로부터 1년후였습니만, 그 때는 유저 사이에 '앞으로도 하츠네 미쿠 응원할께!' 라는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럴 때 게임을 낸다는 것은 찬반 양론으로 나뉠 수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가장 신경썼습니다. 그래서, 유저들에게 받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생각하는 중에 '8월 31일은 하츠네 미쿠의 생일이잖아!' 라고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날에 발표해서, '세가, 조금은 미쿠에 대해 알고 있는데'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Q: 실제로는 어떻게 발표하셨나요?
内海: 니코니코 동화의 분위기를 흉내낸 동영상을 만들어서 티저 사이트에 업로드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기업이 공식적으로 니코니코 동화에 투고를 하는 것은 왠만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네타바레 동화 사이트' 라는 감각이 강했거든요. RPG 타이틀을 발매하면, 발매일 전날 클리어 동영상이 업로드 되었으니까요(웃음). 당시에는 어떤 느낌이었냐하면, 적대 의식이 강했습니다.
佐々木: (니코니코 동화의) 공식 채널이 시작되기 전이었죠?
内海: 훨씬 전이죠. 어쨌든, 그렇게 만든 사이트를 꽤 많은 사람들이 봐 주었습니다.
Q: 그럼, 우선은 출발은 좋은 반응이었네요.
内海: 성공적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카운트 다운 페이지가 서버의 허용량을 초과하여 다운되어서, 카운트 다운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희한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구요 (웃음). 카운트 다운하더니 다시 업하고... 그런 실수도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Q: 비교적 웃고 넘어갈 해프닝 같은데요.
内海: 그렇네요. 그 전에 여러 실패가 있었으니까요 (쓴 웃음). 최근에는 사운드트랙 CD 상품정보에 공식 발표 전인 게임 수록곡 목록이 유출되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유저들이 재미있어 했구요. 우리들도 '아-, (정보) 유출되었네. 그럼, 슬슬 동영상도 올릴까?' 라고 웃어넘겼습니다 (웃음).
佐々木: 정말, 독특한 분위기죠 (웃음)
内海: 실제로는 꽤 곤란한 네타바레도 있었지만요. 공식 사이트가 공격을 받아서, 발표 전에 동영상이 유출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회사는 얕보이면 안 된다고 (웃음).
### 하츠네 미쿠의 폭을 넓힌 Project DIVA ###
Q: Project DIVA 는 하츠네 미쿠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佐々木: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의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roject DIVA 는 의상 갈아입히기가 가능합니다만, 그 전까지의 하츠네 미쿠는 공식 의상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사이버' 라고 할까요, '미래로부터 현대에 온 뜨내기'라는 이미지의 의상이라고 할까요... (웃음).
内海: 그런 복장에 넥타이는 왠만해서는 안 하죠 (웃음).
佐々木: 합리적인 미래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애써서 미래의 느낌을 냈습니다!' 라는 느낌이 아닐까요 (웃음). 옛날 SF에서 나왔던 것 같은 인간미도 있구요. 하지만, 공식 이미지로부터 멀어져서는 안된다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Project DIVA 에서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방향 전환을 요청해서 피아프로에서 의상을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内海: 솔직히 저는 보통 게임 유저들이 기뻐할 만한 여고생, 간호사, 메이드와 같은 복장이 응모되겠지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응모를 하지 않더라구요. 이런 표현은 이상하겠지만, 좀 더 '여자아이다운 귀여운 옷을 입혀 주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佐々木: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츠네 미쿠는 이런 것' 이라는 속박이 있었습니다. Project DIVA 로 의상이 늘어가거나, 유저가 늘어감에 따라, 그런 속박이 풀려서 감각이 확장되어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캐릭터 프리와 같은 유행에도 연결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内海: 여러가지 미쿠가 그려지게 되었죠. '어느정도라면 (하츠네 미쿠라고) 알아볼까' 라는 유저들의 감각도 점점 굳어져가는 시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아프로에서도 '아, 이런 웃을 입혀도 완전 귀엽잖아, 미쿠' 와 같은 새로운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좋은 타이밍에 게임을 낼 수 있었던 거죠.
### 하츠네 미쿠에는 언제나 서프라이즈가 있어야 한다 ###
Q: Project DIVA 1st는 결국 얼마나 팔렸나요?
内海: 20만장 약간 넘게 팔렸습니다. 나중에 나온 염가판도 포함시키면 조금 더 되겠죠. 초회 출하로 10만장 정도 팔렸습니다.
Q: 그래서, 바로 2nd 기획으로?
内海: 아니요. 그 때는 2nd를 내겠다는 얘기도 없었고,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요?' 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다시 한 번 기획 검토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들만한 기획으로 만드는 데 고생했습니다. 저는 어쨌든 佐々木 씨가 말한 한 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번은 '하츠네 미쿠로 무엇을 한다면 언제나 서프라이즈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아, 이것만은 지켜야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임이 팔리고 나서는, 어려가지 기획이 사내에서도 나왔지만, 제가 가장 놀란 것은 'Project DIVA Arcade' 였습니다. '아케이드로 만들자고!?' (웃음).
佐々木: 그런 일이 있었죠 (웃음).
内海: '가장 놀랐으니까 채용!!' 과 같은 느낌이었죠 (웃음). 그 외에도 '휴대전화에서' 라든지 '모 RPG에 내보자' 라든지,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별로 놀랄 만한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아케이드는 '클립톤, 놀랄 거예요!' 라고 (웃음).
佐々木: 아케이드가 깨닫게 해 준것과 개척해 준 것은 크죠. 커뮤니케이션 툴로서의 하츠네 미쿠라는 것의 소구력도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줄을 서 있는 사람의 등에 '보카로이드 곡 정말 좋아' 라는 연대감이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内海: 하지만, 아케이드 때는 무서웠습니다.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바보 아냐', '너무 나갔는데, 세가', '적당히 해라' 라는 의견이 집중을 해서요. 니코니코 동화의 코멘트를 끄고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입니다 (웃음).
Q: 실제로 기동이 시작되고 나서의 감각은 어땠나요?
内海: 정식 도입 전에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 수도권 근교의 6개 장소에서 로케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1월인가 2월인가, 한겨울이었지만, 추위 속에서도 무지하게 많은 분들이 줄을 서 주셨습니다. 최장 6시간 기다릴 정도로.
Q: 6시간!!
内海: 반응이 좋다고 느낀 것은, 손님들 층을 봤을 때였습니다. 아케이드 게임이라는 것은 버추어 파이터도 그렇지만, 99:1 로 남성들만 플레이합니다. 하지만, Project DIVA Arcade는 3할 가까이 여성 분들이 계서서, '이건 꽤 성공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커플들도 있었구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유저들이 플레이해 줄지도 모르겠다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 하츠네 미쿠, 해외로! ###
佐々木: 재미있는 것은 Project DIVA가 커뮤니케이션 툴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 게시판에서 유명한 일입니다만, 어떤 유저가 회사 상사에게 화장실로 오라는 소리를 듣고 갔더니, '너 Project DIVA 가지고 있지?' 라고 커밍 아웃했다고 하는데요. 거기서, '내 것도 수영복 꺼내 줘' 라고 말해서, (수영복을 꺼내 주니) '잘 했어, 승진시켜 줄께!' 라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웃음).
内海: Project DIVA 로 승진! (웃음)
佐々木: 2채널에서도 게시물이 굉장한 속도로 소비된다든지, 커뮤니케이션적인 요소가 엔드 유저간에 있습니다. 아케이드도 처음에는 네거티브한 반응도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점점 변해갔습니다. 로케 테스트를 해 보니 '여자들이 꽤 온 것 같아', ' 모두 PSP 들고 있고 프렌드리한 분위기 같아' 라는 소문이 퍼져서, '하츠네 미쿠를 좋아하는 아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을지도'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보카로이드라든지 CGM 문화라든지, 본질은 커뮤니케이션과 공감, 공유에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Q: 향후의 전개도 그런 부분이 베이스가 되는 것인가요?
佐々木: 지금, 해외 전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도 그런 부분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해외에서 보카로이드와 하츠네 미쿠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거나, Youtube 등에서 보면서 공유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전세계의 팬들도 조금이라도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따뜻한 느낌 같은 감각이 없었다면, Project DIVA 2nd도 30만개나 팔리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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