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요소가 매우 큽니다. 플레이 중이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해 주세요!
사실 이 게임을 클리어한 건 처음 비타로 출시했을 때입니다.
작중에서 나온 인형극에 대한 소감을 쓰고 싶었는데, 제대로 써지질 않아서...
이래저래 미루다 보니 벌써 이렇게 세월이! ㅠㅠ 지금도 써보면서 정돈하는 느낌이군요.
작중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드로니아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인형극은 잔혹합니다. 그런데 뭔가 익숙하죠.
<형제와 악마의 이야기를 그리는 인형극>
쉽게 생각하면 이 인형극은 생전의 베르니아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그런데 루프란은 또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알기 쉬운 게 베르니아와 이사라-형제 그리고 바바예거-악마의 이야기지만, 여기에 또 다른 인물을 투입하면 누가 될까요?
베르니아, 이사라, 그리고 루카입니다.
어라? 앞의 인물이 같군요. 그런데 왜 악마가 루카지요?
루카는 참으로 착한 아이인데 악마라뇨?
물론 저도 루카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해 주세요. 일단 인형극의 내용을 간략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형극의 내용을 보면, 악마는 형제들을 계속 자기 곁에 두려고 합니다. 아무리 너덜너덜해지고 망가져도,
형제들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다른 물건을 미끼로 놔두어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형제만을 사로잡아 기어이 끌고 옵니다.
그 뒤에 혼을 내어 형제들을 서서히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이윽고는 형제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먹어 버리고는 혼자 남아서 엉엉 웁니다.
제가 신경 쓰인 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형제는 악마에게 있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냥 시종이라면 새로운 것을 잡아와서 부려먹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악마는 그렇게 하지 않고 형제만을 집착합니다.
심지어 망가뜨려셔라도 곁에 두는데, 이건 본보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종의 족쇄같은 느낌도 들죠. 이렇게 하면 안 떠나겠지. 이렇게 해도 떠날 거야? 하는 식으로요.
형제들을 먹고 나서 혼자가 된 악마는 엉엉 웁니다.
그것도 구슬프게. 이는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하는 행동입니다.
자, 그럼 다시 루카로 돌아와 봅시다.
루카에게 있어 베르니아와 이사라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다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보물이 있어도 이들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베르니아가 죽었을 때, 루카는 반혼술을 써서 인형안에 베르니아의 혼을 담아 드로니아로서 되살립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드로니아는 온전한 베르니아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기억도 여기저기 빠져 있어 생전의 자신이 좋아하던 것마저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로.
우여곡절 끝에 관의 틈새에서 이사라는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불완전하죠. 그것은 생전의 이사라와는 동일한 존재라고 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루카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실제로 죽어서 떠났음에도 순리를 거스르고
망가진(기억의 결손, 성품의 변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장애를 입은 것이죠) 존재로서 계속 두는 것이 됩니다.
심지어 꼭두각시 상태가 되어서도 계속 죽는 드로니아를 루카는 시간을 되돌려서 계속 되살려냅니다.
말 그대로 드로니아의 삶은 루카가 조작하는 인형극이 되어 버렸습니다.
루카의 바람 자체가 사악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가 잔혹하죠. 의도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소중한 이를 계속 훼손하고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작중에서 몇 번이고 말합니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베르니아는 드로니아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혼으로 구성된 존재인데 왜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지?
저도 이 개념엔 사실 익숙하지 않지만 루프란의 메시지에 비추어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꼬마루카와, EX루카가 있습니다. 그 둘은 동일한 존재일까요?
혹은, 이쪽 세계의 우리와 함께하는 꼬마루카가 죽어도, 저쪽의 EX루카가 있으면 오케이인 걸까요? 어차피 동일한 인물이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명확하게 구분이 되죠. 비록 과거와 미래의 루카이지만 이미 역사가 다르기에 그 둘은 이름이 같고 삶이 비슷한 타인입니다.
EX루카도 그것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공유하는 추억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 둘은 타인인 것입니다.
냉정하게, 베르니아는 죽었습니다.
적어도 베르니아라는 이름으로 살던 마녀는 꼬마 루카를 구하기 위해 끌어당기다가 실족사했습니다.
그 베르니아의 혼으로 재구성된 드로니아라는 인물은 베르니아 본인이 아닙니다.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도 엄연히 다른 인물인 것입니다.
몇번이고 강조됩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또다른 잔혹한 장치가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드로니아 양산형들입니다.
그들은 드로니아와 동일한 외모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추억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개개인이 드로니아 본인인가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사람은 되살아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 버림으로서 그 사람의 존엄성을 죽입니다. 가치를 훼손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지요. 너무나 슬픈 일이라도 그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아무리 처음 의도가 순수했고 공감이 간다 하더라도, 그 행위의 결과가 수많은 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그것은 명백한 악입니다.
그것의 구분을 하지 못하게 되면 바로 루카는 제 2의 프루라-바바예거=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드로니아가 루카와 헤어지는 선택지는 너무나도 슬픕니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했던 일입니다.
드로니아에게 있어서도, 루카에게 있어서도요.
왜요? 드로니아는 베르니아가 아니잖아요. 베르니아와 객체로 놓아야 한다면,
드로니아는 처음 탄생은 비정상적일지 몰라도 드로니아라는 인물로서 계속 같이 살면 되잖아요!
얼핏 보면 맞아보이겠지만 아닙니다.
작중에서 드로니아가 죽은 횟수를 기억하시나요. 그것 역시도 잔혹하지만 드로니아라는 인물이 죽었어야 할 가능성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억지로 되살려냄으로서 인과율을 일그러지게 하고, 그로 인해 매번 새로운 평행세계가 태어나 버렸습니다.
죽은 인물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드로니아가 나가면, 기억을 모두 잃습니다. 그리고 백지장이 되어 모습이 같은 다른 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드로니아라는 인물의 존엄성이 망가집니다. 새로 태어난 그 존재는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우리는 드로니아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드로니아가 아닙니다...
그저 닮은 모습의 인형극이 또 시작될 뿐이죠...
그래서 노말엔딩도, 트루엔딩도 소중한 이의 추억을 간직하고 온전히 루카가 자립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슬픈 인형극은 이제 끝!
요약하면, 반복되던 비극의 인형극의 순환을 우리 플레이어가 끊어준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시나리오를 만든 시나리오 라이터에게 애증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으으, 나름 정리한다고 썼는데도 역시 두서가 없네요...긴 잡담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IP보기클릭)210.91.***.***
(IP보기클릭)118.220.***.***
헛 부족한 잡담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의 이별신은 사실 저도 두엔딩 다 보고나서도 한동안 먹먹해서 다른 게임이 손에 안 잡힐정도로 후유증이 컸습니다. 아무리 억지스럽다 해도 둘이 같이 살았으면 했던... 베르니아의 죽음은 저도 당시에 헉...했는데, 이게 또 묘하게 현실감이 있어서 오히려 섬뜩하더라구요. 실제로 실족사는 불의의 사건으로 훅하고(...)죽는 경우가 대다수기도 하고..ㅠㅠ | 18.11.08 12:43 | |
삭제된 댓글입니다.
(IP보기클릭)118.220.***.***
사라사블레
헛 저야말로 2번씩이나 감사를 받다니 황송합니다...! ;ㅂ; 공감해주셔서 저도 무척 기쁘네요. | 18.11.08 21:16 | |
(IP보기클릭)211.114.***.***
(IP보기클릭)118.220.***.***
플레이할때마다 신경쓰였는데 이 세계관이 루프물이라는걸 고려하면 그렇게 해석되더군요;ㅅ; | 19.01.16 23:18 | |
(IP보기클릭)2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