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온라인을 르네상스시대까지 열심히 즐긴 후에 나름의 느낀점을 적어보려 합니다.
오리지널 문명시리즈를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 본작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장르의 차이도 있고 세세한 차이점이야 셀 수 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하게 느낀 점 하나만 중점적으로 말해보죠.
1. 전쟁밖에 없는 문명온라인
여러분의 문명온라인의 도시를 둘러보세요.
있는 거라곤 성벽, 망루, 병영, 병원..90% 이상 모두 전쟁에 관련된 건물들
민간인들 집 한채 없고 식량개념도 없고 도시에 연결된 사치품 자원도 없습니다.
도시는 그냥 아무 건물이나 많이 지으면 도시레벨은 오르고 일정제한에서 일괄적으로 멈춥니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광장과 장터, 그리고 극장과 거주지역을 상상했던 사람들은 얼른 그 기대를 접으세요.
또 게임소개에선 전투, 건설, 생산 직업들로 나뉘어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했죠?
그런데 극히 몇가지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건설직업은 하는 일은 도시방어나 전쟁관련된 건물만 짓고
생산직업은 제한된 자원(광물과 가죽류)을 얻고 전쟁에 필요한 무기나 장비들만 생산합니다.
과학기술은 간단한 퀘스트 몇개 뿐, 대부분 유저들이 발전에 기여할 방법도 전무하고
그것이 의미있는 문명간 차이를 낳지도 못합니다.
외교는 시스템적으로 아예 지원하지 않는 듯하고(구두로 동맹한다는 걸 봐서는)
사치품같은 개념이 없으니 무역협정도 필요가 없습니다.
본작에서 초반에 막강한 위력을 뽐냈던 종교 역시 아예 구현되지도 않았죠.
2. 절대 누락시켜선 안되었던 '문화'란 코드
그러나 위의 몇몇보다 심각한 문제는 문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었던 '문화'를
시체나 다름없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문명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문화의 중요성은 전반적인 플레이에 있어서 전쟁과 더불어
쌍두마차 정도(여기에 과학이 접근한 수준)에 비유할 수 있는데
많은 게임미디어에서 흔한 컨셉이던 전쟁에 비해 문명시리즈 독점컨셉에 가까운 '문화'는
그 의의가 중대했으며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문명은 이런 게임이다' 란 생각을 심어주었죠.
중화사상이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 중국은 문화로 야만족을 다스리려고 했으며
오늘날 여러 후진국에서 사람들은 청바지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팝송을 들으며 몸을 흔들어
문화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몸소 증명해냈습니다.
문명시리즈에서의 문화 역시 이처럼 온건하고 좋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문명온라인에서 전초기지로 확대되는 타일은 본래 도시들의 문화력에 기반한 것이었고,
이 힘이 극에 다다르면 상대 도시를 총칼 없이 우리 세력으로 끌어들이기도 했죠.
승리조건 중 하나로 당당히 들어가 있다는 건 물론이었구요.
문명 프렌차이즈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던
가수, 화가, 예술가 등의 위인, 명작들, 성소와 극장
박물관과 공연들을 통한 관광(이건 5 이후에만 해당 되겠군요.)
모두 문화를 기반으로 활약한 컨셉들입니다.
이것들을 문명온라인에서 고작 불가사의 몇개 건설하는 걸로 정리시킬거라고는..
이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3. 결론
문명온라인의 전투 자체는 꽤 재미있습니다.
아이템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고 다수의 협력의 묘미가 잘 살아나죠.
다양한 탈것이나 거치대 등이 쉽고 재밌는 싸움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픽도 동화풍을 잘 살려서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습니다.
어느 정도 사양을 타협할 수 있게 만든 이점을 잘 살려서
앞으로 공방시의 렉을 줄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전쟁의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틀이 <문명>만 아니었다면요.
농경이, 문자가, 나아가 문화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건 <문명>이라 부르기엔 부족합니다.
정식출시까지 짧은 기간을 앞두고, 이런 부분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다음에야
차라리 <부족전쟁>과 같은 프렌차이즈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