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을 보니 날이 흐리더라.
창문을 열어보니 차가운 가을공기와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졸린 나를 긴장시키며 들어왔다.
아래를 쳐다보니 사람들이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다들 바삐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갈 곳이 없는데, 내심 그들을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창 틀 사이에 끼여있는 오래된 먼지들이 보인다. 닦아내고 싶지만 매번 그런 생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목이 뻐근하고 조금만 걸어도 불쾌한 호흡을 내뱉는데, 그리고 그때마다 나를 선명하게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금새 다시 창문을 닫았다. 처음 열었을 때의 신선함이 금새 추위로 변했다. 내가 열기 전 상상했던 느낌과 현실은 확연하게 다른 것 같다.
의자에 엉덩이를 길게 빼고 앉아서는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다.
부팅은 순식간에 이루어 졌다. 그새 켜진 화면에는 업데이트 창이 떠있었다. 나는 노련하고 정확하게 마우스로 취소버튼을 누른다. 때론 이 모습이 나를 컴퓨터전문가처럼 보이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태창에 하나 둘 시작프로그램들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당장은 필요없는 프로그램을 종료시킨 뒤, 온라인 게임을 틀었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몸이 좋지 않다.
정확하게 말해서 건강하지 않다는 말이다. 매주 나는 2갑 내지 1.5갑의 담배를 태우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정해진 시간에 음식을 먹지 않고 단 것을 즐기며 따론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지 않는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온전치 못하다.
나와 아내는 이혼하기 직전이며 아직 한돌도 되지 않는 아들은 나와 140km떨어진 곳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직장조차 얼마 전에 퇴사하였다. 통장에는 20만원 남짓의 돈이 들어 있을 뿐이고 이마져 조만간 거덜 날 것이다. 부모님과 누이들은 나를 걱정하지만 위로 혹은 충고조차 더이상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그져 내가 일어서길 기다려 주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이 나를 나락을 떨어뜨린다. 단지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평소 물을 많이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말 그대로 "그나마"나를 지탱한다. 2리터 물통에 담긴 생수가 조금씩 비워지고 화장실에서 그 물을 버리는 순간이면 적어도 내가 독을 배출하고 있다고 느낀다.
볼일을 보다 앞에 있는 거울 안에 나를 한번 쳐다본다. 얼굴이 푸석하고 턱선은 살에 파묻힌지 오래이다. 수염도 지져분하게 올라왔다.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를 신뢰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어쨌든, 이 모든 불안한 독들은 내가 아무리 생수를 들이킨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겠지.
만약에 신이 있고 그 신이 나를 흥미로워 하면서 하루 안에 6통의 생수를 먹으면 ....... 아니다. 이것은 망상일 뿐이다.
온라인 게임의 로그인 창이 보인다. 그리고 내가 박살내버릴 상대방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나는 양손에 한 정씩 석궁을 들고 있는 눈빛이 강렬한 여자캐릭터를 선택했다. 그녀는 아름답고 강했고 당당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그녀가 되는 것이다.
서스름 없이 나의 적들에게 치명적인 화살들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때론 굉음을 내는 폭탄을 덩지기도 하고 초현실적인 에너지를 담아 적들에게 쏘아보내면서 우아하게 공중제비를 돌며 적들의 공격을 피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적들의 본거지는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고 나와 함께 전투에 참가했던 동료들이 나를 칭송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영웅이 되었다. 아주 잠시동안이긴 하지만
화면이 잠시 어두워진다. 현실로 돌아온 내 모습이 모니터에 비친다. 석궁을 쥐고 있었던 손에는 마우스가 들려있었고 우습게도 나의 왼편에는 2리터짜리 물통이 놓여있었다.
실로 참혹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이 상황이 싫다고 표현하고 사고하기 전에 얼른 다시 게임시작 버튼을 눌렀다. 다리를 덜덜덜 떴다. 다시 한번 더 잠시동안의 찬란함을 즐기기 위해 그녀를 육성했다 그리고 30분 이내 모든 것이 다시 반복이 되었다. 일종의 환생 같은 것이며 그것은 20번 넘게 반복되었다.. 정확하게는 23번이었다.
30분 마다 다시 태어나지만 나는 계속 죽어있었다.
나는 영웅.. 아니 그냥 물을 많이 마시는 자이다.
안녕하세요.
32살 아재입니다.
몇 년간 힘든 시절을 히오스를 하며 보냈네요.
이젠 예전보다 삶이 안정이 됐고, 덕분에 여전히 히오스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마우스 잡을 나이되면 같이 시공으로 들어오려 합니다.
이젠 행복합니다.
(발라를 픽하고 큐 돌리다가 문득 예전 생각이 나 글을 올립니다. 허허)
(IP보기클릭)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