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를 탄 용사의 석상이 가운데 당당히 서있는 광장의 흰 분수대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그러나 기타 소리에 제대로 집중하는 관중은 없다. 다만 장난기 가득한 꼬마들의 키득거림이 귀 언저리에 아른거릴 뿐.
이제 점심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더 분주해지고 내 억울한 음률은 이제 막 옆을 지나가는 귀족의 사치스런 마차 가는 소리에 묻혀 흩어진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나를 한 번 스윽 훑어보고는 이내 무관심한 표정을 지으며 가던 길을 이어 걷는다. 사람들의 그런 표정을 볼 때 마다 코드를 바꾸는 내 왼손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아래위로 흔들며 여섯 현을 울리는 오른손은 움직이기에 버거워진다. 어느새 여느 때처럼 긴장감에 배어나오는 식은땀이 등을 서늘하게 하고 이마에 맺힌 말라 굳은 땀은 이따금씩 양 볼을 타고 내려와 턱에 한참을 괴어있어 간드러지게 내 맘을 놀리지만, 이내 때 묻은 낡은 기타 위로 떨어져 내린다. 우습게도 여름은 다 지나 맑고 높기만 한 서늘 가을인데. 등 뒤에는 분수도 있고 북쪽에선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기분 좋은 미풍도 불고 있는데.
오른손에 힘을 주어 기타 줄을 세게 튕겼다.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녀석의 코에서 더운 피가 솟구쳐 올랐다. 기타 줄이 끊어졌다. 개가 듣기에도 우스운 소리가 나고야 말았다.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웃기 시작했다. 까르르. 녀석의 명치를 발로 냅다 차고는 넘어트려 얼굴을 때렸다. 내 손은 허탈감에 멈췄다. 내 손은 비참함에 떨려왔다. 기타 줄이 끊어졌으니 이 이상은 연주할 수가 없다. 녀석의 정강이를 후려쳤지만 패거리들이 있어 그만 턱이 얼얼하게 한 대 맞고 말았다. 난 떨리는 손과 다리를 아이들이 못 봤기를 바라며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나 챙이 긴 모자를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푸욱 눌러 쓰고는 기타 케이스를 챙기려 했다. 기타를 들고 케이스에 넣으려 다가갔을 때 열려져 있던 기타 케이스로 돌연 어디선가 동전 몇 개인가 날아 들어와 안착했다. 난 고개를 쓰윽 들어 동전이 날아 들어온 방향을 확인했다. 꼬마 아이들 가운데 유독 그 미소가 톡 쏘는 어린 소년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멋진 공연이었어, 엉터리 거지 씨.”
그러고는 주위에 서너 명인가 아이들을 이끌고는 내 가슴 들쑤시는 웃음소리만 남기고 어둔 골목으로 사라졌다. 한동안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을 넋을 잃고 주시하다 고개를 아래로 숙여 케이스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동전을 주어 셌다. 15 실프. 가까스로, 우유와 바게트 빵을 살 수 있을 듯하다. 결국엔 내가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작은 손칼을 들고 그들을 위협했다. 녀석들 중에서 키가 작은 놈이었을 것이다. 내 칼에 상처가 나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고 죽는 시늉을 한 녀석이. 최초의 칼질이었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고 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후로도 내 신경을 건들이던 녀석들은 모두 몸에 어딘가 흠집이 나곤 했다. 누구건 간에. 적어도 그 무렵부터 철이 들 때까지는 그랬다. 동전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케이스에 기타를 넣고 등에 케이스를 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이 마을에 처음 온 일주일 전부터 애용하고 있는 후미진 골목 빵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새 내가 앉아 있던 분수 바로 뒤편에서 가락이 붙은 고운 미성이 들려온다. 위대한 용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관중에게 노래하고 있다. 그는 작은 하프를 이따금씩 울리며 허리까지 오는 긴 금발을 흔들고는 꿈결 같은 노래를 하고 있었다. 뾰죽하게 솟아 하늘로 기다랗게 뻗은 귀가 그가 어느 동화 속 공주 마냥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는 까닭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직 초짜인 내가 보기에도 훌륭한 가수다. 곡도 가사도 멋지다. 그리고 그 만큼이나 외모도 수려하고 자태도 우아하다. 그야말로 고결한 음유시인. 꽃을 들고 있는 것은 비단 마을 처녀들뿐만이 아니리라. 아이들도 저도 몰래 입을 떡하니 벌려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무뚝뚝한 사내들도 몽롱한 시선을 하고 잔뜩 취해있다. 그러나 톡 쏘는 미소가 유독 눈에 밟히는 어린 소년은 내게 ‘엉터리 거지 씨’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위로하는 듯 아니 정확히 나를 비웃으며 딴에는 양질의 동전을 던져 주었다.
“난 아직 엉터리 거지야.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아. 엉터리 거지의 마음은.”
아무도 들어 주지 않을 혼잣말을 낮고 자신감 없게 하고는 꿈뻐억… 원치 않게 한 방울 똑 떨구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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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겠지. 어제 내가 발견한 조용한 장소였다. 마을 어귀, 오래된 창고 옆 낡은 상자들이 깎아지른 절벽 산처럼 쌓여있는 곳이다. 정면으론 길고 어두운 골목길 하나가 좁게 펼쳐져 있다. 삼면이 높은 건물에 쌓여 있는 탓에 햇빛이 얼마 들어오지 않았지만 큰 상관은 없다. 얼핏 봐서는 동네 얼치기들의 아지트쯤으로 보이는 이곳은 그러나 그런 곳도 못 되는 듯 찾아온 손님이라곤 찍찍거리는 쥐 부부 한 쌍 뿐이었다. 상자 산맥 앞 아무렇게나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들 중 그나마 몫이 좋은 한 곳에 자리 잡았다. 그나마 얼마 없는 양에 찍찍거리는 게 거슬리는 작은 손님들에게 부스러기라도 조금 나눠주고는 추레한 점심식사를 시작했다.
자아, 이제 무얼 할까. 어설프게 배를 채우고 난 뒤 난 무얼 하면 좋을까. 끊어졌던 기타 줄은 갈아 놓았다. 그래서? 다시 광장 분수대에 앉아 사람들의 무관심을 절절히 느낄까. 아니면 아이들의 비웃음과 함께 다시 던져질지 모를 푼돈으로 슬슬 걱정되는 저녁식사 몫이나 충당할까. 아니 벌써 몇 번이나 분수대에서 사람들에게 엉터리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무슨 염치로 그런 짓을 또 할까. 아니 그 전에 이미 그들 앞에서 연주할 자신이 없다. 난 대체 어쩔 생각으로 그곳에서, 그들 앞에서 나아가 연주를 했던가. 제대로 된 연주도 하지 못할 거면서.
얼마 생각도 못했는데, 어느새 빵도 부스러기 하나 남김이 없고 우유도 병 안에 고작 한 두 방울만이 남게 되었다. 손을 높이 들어 올려 저 멀리 앞을 향해 던져버렸다. 날아간 병이 무언가에 부딪혀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졌다. 자아, 이제 어떻게 할까. 어찌 하면 좋을까.
케이스를 열어 기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아까완 달리-한줌 주저 없이 손을 천천히 또한 부드럽게 움직여 한 서린 선율을 허공에 흩뿌린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 감은 눈에 스쳐지나가는 것은 깨어져 굴러다니는 술병들과 욕뿐인 낙서만이 가득한 잿빛 담벼락, 팔에 난 멍, 상처 입은 날 비치는 집 나간 어머니가 유일하게 남긴 깨진 손거울 하나, 게거품을 물며 누우런 침대 위 죽음의 문턱 앞에서 부서질 듯 발광하다 결국 숨을 거둔 그러나 끝까지 그 손에서 술병을 놓지 않은, 아버지라 한 번 부르지 못한 사내의 모습.
내 기타는 그 누구의 것보다 낡았고 상처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그 누구의 연주보다 고리타분하고 어두우며 구슬프고 찢어질듯 하다가도 그러지 아니하고 또 고통에 찌들어 미쳐 결국엔 우습다.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와도 같다. 이런 내 연주는 아이러니하게도 나 이외의 누구에게라도 들려 줄 수가 없다. 가락으로 묵은 하소연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귀신 음률이다. 나에게만 들러붙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려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귀신 음률이다. 기타로 하여금 내 삶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조금은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아도 귀신 음률인 탓에 아직 누구에게 한 번 들려준 적 없는, 들려 줄 수 없는 한 많은 기타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기타다. 관중들 앞에 나아가 연주하고 싶고 노래하고 싶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앞에 서면 이놈의 귀신은 내 정신을 가둬 놓고 혼을 쏘옥 빼놓는다. 감성과 손을 굳힌다.
이제까지 흘러가는 관중들에게 들려준 쓰레기 연주는 진정 내 연주가 아니다. 나 혼자 연습할 때 나오는 그런 소리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 앞에선 내 기타는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깃털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난 엉터리 거지다. 아니다. 난 음유시인이다. 아니다. 난 반쪽자리 거지고 반쪽자리 음유시인이다. 가슴 한 구석 먼지같이 차지해 있긴 있는지 의심 가는 자존심에 구걸도 하지 못해 매초 가난한 나는 반쪽거지다. 목소리가 터지지 않아 노래도 부르지 못하고 관중들 앞에선 떨려 손도 마음대로 못 가누는 그래서 그들 앞에선 연주도 못하는 나는 반쪽음유시인이다.
구걸 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어찌 거지가 될 수 있고 입으로도 손으로도 그들에게 이야기 하나 제대로 들려주질 못하는데 어찌 음유시인이 될까.
- 찌찍…… 찍찍
“…….”
관중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관중 두 마리가 내 발치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날 올려다보며 방금 끝난 내 연주에 갈채를 보내왔고 앙코르를 신청했다.
“…미안한데 더 이상 빵부스러긴 없어…….”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관중 중 암놈으로 보이는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 거리고는 빠른 몸놀림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아 있던 수놈도 고개를 몇 번 갸웃 거리고는 암놈을 따라 사라졌다.
“밖으로 나가 버리고… 노랜 끝이 났지만… 이 슬픈…….”
탁한 목소리에 중저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 크지만은 않게. 굿바이 송……. 내 진정 최초의 콘서트는 쥐 부부를 관중으로 하여 모르는 사이 단 2분여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 치지잉
“아…….”
저…… 앞쪽에선가. 잔뜩 그늘이 진 곳이라 어두워 잘 안 보였지만 아까 우유병을 던진 그곳에 누군가 있던 모양이다. 깨진 유리병의 조각을 밟아 끄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자마자 내 노래는 그쳤고 나도 모르게 놀라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귓불이 벌게지진 듯하다. 누군가 내 노래를 들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겐… 치욕이라 표현하기엔 되바라지고, 한참 모자람을 남에게 들켰음에 드는 감정, 그래 창피함이란 단어로 설명 되는 기분으로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거기 누구요?”
나도 모르게 크고 높은 음으로 어찌 들으면 화난 듯한 음성으로 히든 게스트를 불렀다. 내 짧고 하찮은 노래를 들었다면 난 어떤 얼굴을 해야 할까. 아니 잘 생각해 보니 그전에 한 내 연주를 들어 줬을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을 들어 줬다면, 그는 정말 제대로 된 나의 연주를 들어 준 최초의 인간 관중이리라. 별안간 가슴에 은근히 스며오는 기대. 어떤 사람이 내 연주를-또 노래를-들어 줬을까. 어떤 근사한 사람이. 그리고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내 부름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건 내 짧은 상상처럼 기품이 흐르는 흰 콧수염을 기른 중년 귀족 신사 분도 아니었고 더욱이 눈이 밝게 빛나고 음악과 시와 이야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도 아니었다. 타는 듯한 붉은 기운이 강하게 감돌고 등까지 닿는 생머리에 맑디맑아 투명한 살결, 커다란 갈색 눈과 작고 오뚝한 콧날 그 아래 빨갛고 조그만 입술, 왜소하고 연약해 보이는 체구. 기대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직 10대 중반 즈음을 벗어나지 못해 어리고 가녀린 소녀의 모습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죄… 죄송해요.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단지…….”
소녀의 모습처럼 가냘프고 높은 또한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떠듬떠듬하며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릴 듣는 그 순간 어떤 까닭인지 정신이 화득 멍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녀의 목소리는 어쩐지…….
“단지, 뭐니?”
어째선지 딱딱한 어조로 나와 버린 내 물음에 소녀는 어쩔 줄 몰라 쩔쩔 매다가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하길,
“기타 소리가 너무 슬프고 또…너무너무 아름다워서…너무너무…으음, 너무너무 좋아서…….”
아아. 나는 어찌하여 바로 방금 전 처음 본 소녀의 어설픈 감상평 따위에 나도 모르는 새 기뻐 심장마저 쿵쾅 대는가. 어쩌면 태어나 처음으로 듣는 칭찬일지도 모르는 소녀의 높은 말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았다. 슬프다고. 아름답다고. 좋다고. 아아……, 어찌하여 이렇게 기쁜 것인지.
“그랬니……?”
나도 모르게 부드러워진 어조에 소녀는 조금 안도했는지 소녀는 마구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살며시 피면서 조금 드리워졌던 울상도 같이 폈다.
“네, 정말 너무너무 감동했어요. 아저씨… 라고 불러도 되죠? 아저씨처럼 기타 잘 치는 사람은 첨 봤어요.”
“그래. 고맙구나.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렴.”
소녀의 칭찬에 젖어 기분이 마냥 좋아지고 말았다. 몸이 부웅 떠서 날아다니는 것만 같고 입가엔 자꾸 미소가 걸린다. 소녀도 이런 내 모습에 어느 정도 경계심이 풀렸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노래는 영…….”
“오빠라고 불러.”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창피하고 겸연쩍어져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곤 어쩌다 거친 어조로 말해버렸더니 소녀는 다시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그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아냐. 부르고 싶을 데로 불러. 내 이름은 딜런이야. 그래도 아직 20대 초반이긴 하니까 아저씨라 불리는 건 조금 그런데.”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내 성격은 꽤 무뚝뚝하다 못해 차라리 차갑다고 단정 지어 왔는데 어째선지 만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은 소녀에게 부드럽게 이야기 하고 있다. 어렸을 적에 이 주둥아리서 뱉어진 거라곤 온통 욕설뿐이었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니 꽤 우스꽝스럽다. 정확히 자조적이다.
소녀는 내가 손짓으로 가까이 오라는 시늉을 하자 첨엔 쭈뼛해하다가 이내 천천히 다가오며 수줍은 미소를 띠곤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저, 전 로즈라고 해요.”
“어울리네.”
빈말은 아니었다. 소녀, 로즈의 붉은 끼 도는 머리색은 장미를 연상시킨다. 그런 소녀의 이름이 로즈라니 잔사설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 소녀에게도 가시가 있겠지. 로즈에게도.
좀 떨어진 곳에 멀건이 서있는 로즈를 손짓으로 불러 옆에다 앉혔다. 로즈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는 긴장 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쩐지 아직 사람을 대하는 게 익숙지 않아 보인다. 그런 로즈를 보니 나도 모르게 은은한 미소가 입가에 고였다. 문득 내 손엔 여전히 기타가 쥐어져 있단 사실을 상기하고는 한 가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기타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시험하기로 한다. 분수대 앞에서 요 며칠 간 두어 번 정도 스쳐지나가는 관중들 앞에서 연주를 해봤지만 제대로 된 연주는 없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리고 또 기이하게도 이렇게나 가까이-단 한명일지라도-관중을 앞에 두고서도 긴장 한 줌 되지 않고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더 구슬프고-내 스스로 표현하기엔 뭐할지 몰라도-아름다운 선율이 내 기타에서 내 손에서 내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다. 이 높고 뜨거운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말로는 그러지 못한다. 지금 느껴지는 이 기분을 맞바로 기타 에드립으로 표현한다. 등골이 오싹해 가득 떨려온다. 눈앞이 어릿어릿하다. 머릿속은 상쾌하고 심장은 굉장한 속력의 박자로 춤을 추어댄다. 내 가슴을 부술 듯이.
곧 토해내듯 한 짧은 이야기 하나를 끝마쳤다. 이리도 빠르게 한 이야기를, 소녀는 알아들었을까?
“우와 괴, 굉장해요 딜런 씨! 어쩜 그, 그렇게……!”
통한…… 모양이다. 알아들은 품새다. 그 사실에 다시 한 없이 기쁨이 밀려오려 하고 있었으나 그러나 일단은 가까스로 견디어냈다. 날 알아주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날 알아주는 사람 하나가 있다는 것이 이리도 기쁜가.
로즈는 분명 내 가슴 속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저릿하게 느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머리색 마냥 얼굴을 붉히고 흥분한 표정에 큰 소리로 감탄사를 연발 할 리가 없다.
성공이었다. 관객 한 명 앞에서 연주하기. 전혀 떨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타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어찌하여 진작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하지 못 했단 말인가.
“그, 그런데 어째서 아까랑은…… 분수대에서는 제대로 연주를 하지 않았어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아 음이 꽤 높은-듣고 있을수록 매력 있고 깊이 빠져드는 맑디맑은-목소리로 하는 물음에 가슴이 돌연 뜨끔 하고는 머릿속이 싸아아 식는듯하다.
로즈는 구석에 숨어 내가 처음 이곳에 와서 한 광장에서의 연주를 지켜봤다고 한다. 처음엔 전혀 훌륭하지 못한 내 기타 소리에 별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다가 가끔 내 기타 소리가 급작스레 구슬퍼 질 때가 있었고 바로 그때를 로즈의 감성은 놓치지 않고 느낀 것이다. 로즈는 내 엉터리 기타 음률 속 무언가에 깊은 흥미를 느꼈고 결국 요 며칠 틈이 날 때마다 내 뒤를 몰래 쫓아 다녔던 모양이다.
로즈는 알아챈 것이다. 광장 엉터리 연주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내 끈적한 슬픔과 째는 듯한 고통, 내 어두운 감수성을. 난 로즈 같이 아직 어린 소녀가 그 누구보다 먼저 나라는 존재를 알아 준 것에 적잖게 놀랐고 로즈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물어봤다.
수줍은 듯 양 볼을 붉히며 자신도 두서없이 느껴질 만큼 마구 뇌까리기 시작했다. 비교적 밝은 얼굴로 뒤죽박죽 터져 나오는 로즈의 생활환경이나 성장 배경 그리고 사소한 에피소드들은 그러나 듣는 나로서는 얼굴을 싸하게 굳히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로즈는 고아다. 10살 때부터 그 5년 후인 지금까지도 마을 뒤쪽 조금 떨어진 곳 언덕에 있는 고아원 시설을 갖춘 성당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로즈의 아버진 로즈가 아주 어렸을 적에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로즈의 생모는 로즈가 10살이 되던 해 이 마을 광장에 로즈의 손에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 손에 쥐어주곤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로즈가 커가면서 들어온 이야기에 따르면 로즈의 생몬 어떤 부잣집 남자와 눈이 맞아 로즈를 버리고 그 남자와 함께 다른 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그 덕에 서릿발 내리는 세상 속에 홀로 내버려진 로즈는 한동안 시장터나 음식점 뒷골목을 전전하며 목숨을 겨우 이어 살아갔다고 한다. 가엾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어린 자신의 자식을 내버린 비정한 로즈의 생모를 생각하자 갑자기 뱃속 깊이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눈앞에 이젠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한순간이나마 아주 짧게 스쳐지나갔다.
버려진 로즈는 어찌어찌하여 성당 보육원에 들어가게 됐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10살, 버려지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다. 차라리 좀만 더 일찍 버려졌더라면 나았을까. 로즈는 붉어진 얼굴로 쑥스러운 듯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길 이어갔지만, 소녀의 눈가에 촉촉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은 솔직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늦게 버려져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 당시의 로즈는 처음부터 다른 보육원 아이들과 스르름 녹아 어울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잔인하게 버려진 자신을 아는 소녀가 쉽게 마음의 문을 열 리는 만무했다. 사실은 지금도 친구가 몇 없다고 한다. 워낙 숫기도 없고 자신감도 붙임성도 없어 텃새가 센 그곳 아이들과는 말도 제대로 붙일 줄 모르는 데다 또 그럴 기분도 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괴롭힘이나 세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란다. 언젠가는 남자아이들이 장난을 심하게 쳐서 앞으로 넘어져 코에서 피를 한 바가지 쏟아 냈다고 한다. 아파서 한참 우는데 나중에는 울고 있는 자기 주위에 다가와 걱정해 주지도 않고 별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다른 아이들이 야속하고도 서러워 또 그런 자기 자신이 창피해서 나오는 눈물이 더 늘어났다.
로즈의 과거 이야기, 현재 이야기는 내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충격적인 최초의 동질감. 내가 또 있었구나.
돌연 자기 이야기에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울먹거리던 로즈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다며 이야길 계속 하려 했지만, 오히려 듣는 내가 아파 만류하고야 말았다. 더 했다간 나도 앞이 아른아른 거릴 것만 같아서였다.
로즈에게 괜한 이야기를 묻고 만 걸까, 로즈의 울먹거림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난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움직였다. 별안간 옆에서 기타 소리가 나자 로즈는 움찔 하고는 점점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애드립으로 그리곤 이내 내 자작곡 중 제일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곡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로즈의 갈색 눈이 점점 커져 나를 바라보았다. 조용하지만 여전히 슬픈 구석 있는 내 연주에 로즈는 다시 한 번 빠져들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얼마간 연주한 걸까. 꽤 오래 연주 한 것 같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반복 할 수 있는 곡이기에 사이사이 기교를 넣으며 연주를 이어갔다. 로즈는 이제 완전히 표정을 풀었으나 이번엔 또 읽기 힘든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기타 후렴구에 다시 다다랐을 때, 이젠 눈을 감고 내 음률의 깊이를 찾으려던 나의 귓속에, 산들바람이……, 바람이 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사람 몸을 이렇게 허공에 띄어놓는 이 기분 좋은 소리는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결국 호기심에 못 이겨 눈을 살며시 뜨고 만다.
로즈의 목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아주 평온한 얼굴로 아니 얕은 미소마저 새기고 허밍으로 사알사알, 배경이 되는 듯한 내 기타 소리에 맞춰서.
높고 맑은 하늘에서 내려온 바람 몇 점이 넓은 들판 갈대 인사하듯 스치고 지나간다.
“로즈!”
“예, 예에?”
난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더 있다가는 정말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연주를 중간에 끊어버리고 큰 소리로 로즈를 불렀다. 로즈는 방금 전 평온한 표정에서 바로 또 잔뜩 움츠러들며 긴장 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무얼 잘못하고 만 걸까, 그렇게 생각한 듯. 그러나 난 로즈를 혼내려는 게 아니었다.
“정말 멋진 바람 소리야!”
로즈는 벙하니 입을 벌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노래! 노래 말이야! 어디서 배운 거야? 난 말이지, 관중들 앞에 서서 연주를 시작한 건 여기가 처음이야. 하지만 그전에 기타를 배우려 다른 곳들을 많이 돌아다녔어. 그래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들어왔거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로즈, 너 같은 목소리는 처음 들어!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것만 같아! 아니, 말이 조금 이상하게 됐는데…… 아읏, 이젠 내가 뭔 소리 하는 지도 모르겠다. 원체 이렇게 누군가한테 흥분해서 말해보기도 처음이고…… 아무튼 내 말은, 정말 굉장해! 로즈 너는! 사람의 목소리가 이토록 자연에 가깝다니,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내가 미친 것인가.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고 열성적으로 누군가를 찬양했다. 또 이리도 말을 주절댄 것도 처음이다.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비정상이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적어도 내가 한 것의 갑절에 달하는 찬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이나 로즈의 목소리는, 노랫소리는…….
로즈가, 운다. 로즈의 놀라서 커진 눈동자의 틈을 비집고 이슬 몇 방울 파리한 양 볼에 흘러내린다. 로즈는, 울고 말았다. 내가 울리고야 말았다. 로즈는 자신의 볼이 따뜻해졌다는 사실을, 자신의 시야가 안개 낀 듯 희뿌예졌단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이제야 손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어어, 죄송해요. 갑자기 왜 이런 게……. 칭찬 받는 건 처음이라…… 죄송해요, 죄송해요. 금방 그칠 거예요. 익숙해졌다고, 이젠 굳어버려서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왜 이리도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도리어 로즈가 사과를 한다. 무엇을 잘못했다고. 로즈는 한 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 없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나와 같다. 로즈는 나구나.
“아냐. 괜찮아. 넌 잘못 한 게 없어. 그러니까 더 울어도 돼.”
로즈는 길게 흐느꼈다. 오래도록. 로즈의 흐느낌 소리마저 슬픈 노랫소리로 들리는 것은 왜 일까.
로즈는 흐느끼는 와중에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구도 없는 자신을 달래는 방법이라고, 정확히는 노래하는 것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었다. 노래하는 게 좋니? 대답해온다. 잘 모르겠어요. 물었다. 그럼 왜 노래를 한 거니? 대답해온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냥 나도 모르게 나왔어요. 숨 쉬듯. 말했다. 원래 친구랑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듯 자연스럽지. 물어왔다. 친구가 있나요? 대답했다. 있어. 물어왔다. 누구? 대답했다. 내 손에 들려 있잖아.
시간이 꽤 지났다. 눈은 진하게 충혈 됐고 콧잔등이나 양 볼도 벌게진 로즈는 아직껏 훌쩍거림을 해대고 있다. 난 그사이 내 몸 여기저기를 뒤져 꼬질꼬질한 누런 손수건을 찾아 꺼내어 로즈의 눈물 콧물을 훔쳐 주고 있었다. 아까 그런 목소리를 낸 아이 같지가 않았다. 이 평범한 아니 그보다도 못한 가여운 아이의 목에는 실피드라도 사는 걸까. 그 실피드가 로즈의 입이 열렸다 치면 그 안에서 가락 붙은 바람을 실어 보내는 걸까.
실피드의 아이는 한참 뒤에야 눈물을 거뒀고 드디어 웃는 낯을 보이며,
“고마워요, 딜런 씨. 딜런 씨는 참 멋진 사람이에요. 처음엔 조금 무섭게 생각했는데…… 날카롭게 생기셔서.”
“원랜 이러지 않았는데, 뭐 살다보니…….”
로즈, 넌 나다. 난 너다. 그러나 나를 닮아서는 안 된다. 이 이상 나와 같은 빗길을 걸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미 걷기 시작한 길이었다. 이젠 다른 길로 갈 순 없는 걸까. 그렇다면 어쩌면 좋을까. 로즈가 다른 길로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혼자 속으로 되뇌고 되뇌다 이내 무언가 생각이 떠올랐다. 저절로 움직인 손이 기타 케이스 속에서 어떤 악보를 꺼내었다. 그리곤 로즈의 손에 쥐어주었다.
“로즈, 악보 볼 줄 아니?”
“아뇨, 전혀요.”
로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지만,
“그럼 글자는 읽을 줄 아니?”
“네. 책을 보려면 글자는 알아야 하니까요.”
“책 좋아하니?”
로즈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나도 미소로 답해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럼 로즈, 거기 써져 있는 가사 있지? 아까 네가 허밍으로 따라 부른 곡인데 거기에 내가 가사를 붙여 놓은 거거든? 네가 한 번 불러줘. 난 기타로 연주할 테니까. 같이 해 보자.”
“아아, 아까 그 곡인가요? 이게요? 신기하네요. 요상한 모양 올챙이 같은 것들이 잔뜩…… 그런데 가사도 직접 쓰신 거예요? 와… 대단해요. 그런데 노래는 별로 부르지 못… 아, 미안해요 딜런 씨.”
로즈는 중간에 자신이 실언을 했단 걸 깨닫고는 당황해하며 급히 입을 닫았다. 난 살며시 쓴 웃음을 짓고 만다.
연주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 처음엔 나도 노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거칠고 탁해 아름다운 이야기하기엔 껄끄럽고 음정 박자를 입으로 맞출 줄 몰라 슬픈 이야기를 하기엔 서툴다. 일이 그렇다 보니 노래를 부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고 말았으나 아직도 난 노래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곡에 직접 한 맺힌 가사까지 붙여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내가 자신하는 곡과 가사였다. 내 기타 연주와 로즈의, 바람 요정의 노랫소리가 한데 어울린다면……?
난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또한 로즈가 빗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걸어갈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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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엉터리 거지 아저씨, 또 온다!」
「어허라, 저 삼류 딴따라가 아직 안 떠났네. 흥.」
「하하,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일세.」
「내 생각엔 말이야, 그냥 구걸하는 것 보단 저렇게 되지도 않는 낡은 악기를 튕기면서 불쌍한 척 하는 게 좀 더 수지에 맞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안 그래? 하하하하.」
「어머 약속시간에 늦겠어. 빨리 가야지.」
「길을 비켜라! 아론 백작님의 마차다! 길을 비켜라!」
「키득키득키득.」
「사과 사세요! 사과 사세요! 지미, 오늘은 왜 이리 파리만 날려?」
「…….」
「어이 기타리스트! 이번엔 소녀까지 데리고 와서 같이 구걸하려고? 왜? 벌이가 안 좋았나?」
「허허, 이 친구도 참! 많이 취했구만! 하하하하!」
로즈는 잔뜩 커진 눈망울로 걱정스레 날 올려다보았다. 내 손을 꼭 쥔 채로.
“딜런 씨, 괜찮으세요?”
난 그런 로즈를 내려다보며 짧게 대답했다.
“이젠 괜찮을 거야.”
그러는 내 입가에 고인 건 달관의 웃음이라 하겠다.
여느 때처럼, 물을 시원하게 내뿜는 분수대에 앉아 기타를 빼들었다. 로즈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난 그런 로즈를 보며 다시 한 번 싱긋, 오늘 이리도 미소가 여럿 새어나온다. 로즈에게 그냥 그대로 편한 데로 서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로즈는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엉거주춤 나와 마주보고 서게 되었다. 손에는 악보를 꽉 쥐고.
무관심과 냉랭한 비웃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아까완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관심이 없는 사람이건 비웃는 사람이건 간에 그 숫자가 현저히 늘었다는 점. 그러나 그런 그들을 보고 내가 미소 짓고 있다는 점. 그러나 제일 중요한 건, 내 앞에 로즈가 서있단 점.
‘제가… 잘 할 수 있을 까요?’
‘으응. 물론이야. 나와 함께하잖아.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아니, 할 수 있어. 너와 함께하니까.’
“자아, 시작.”
어느 때보다도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구슬픈 음률로 연주를 시작했다. 느릿느릿한 연주였지만, 쉬웠다. 감정을 싣기 그 어느 때보다 쉬웠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점점 미소가 사라진다. 그 아이들 중엔 유난히 미소가 톡 쏘이던 아이도 있었다. 대낮부터 얼근히 취한 사내들도 주정을 멈추고 붉어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듯 싶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여인네도 이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마차는 지나가서 내 연주 소리를 방해할 것은 아무도 없다. 소란스럽던 광장에 가득 울려 퍼지는 건 힘찬 물 뿜는 소리와 그에 대비되는 내 절절한 기타 울음소리. 이 기묘한 하모니에 이제 곧 요정님이 그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광장 안을 바람소리로 채우리라.
바로 지금.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어머니, 이 뱃지를 떼어주세요.)
I can't use it anymore. (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요.)
It's gettin' dark, too dark to see (점점 너무 어두워져서 볼 수가 없어요.)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네요.)”
로즈의, 요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리 가득히. 바람이 불어온다. 들판에 불어온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그 빗줄기는 전처럼 험하지도 차갑지도 않다. 빗줄기는 부드럽게 내 몸을 때리고 또 따스하게 녹여주다.
아이들이, 사과 장수가, 소녀들이, 취한 사내들이, 여인이, 쥐 부부가, 비둘기들이, 광장 안의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모두가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두드립니다, 두드립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립니다.)”
로즈의 목소리는 멎었고, 로즈의 깊은 여운을 따라 내 기타가, 내 낡은 기타가 속 깊이 울어대며 곡의 매듭을 짓는다. 마지막 스트로크.
요정의 여운과 함께 내 귀신의 여운도 함께했다. 곡이 끝났다. 이제 들리는 것은, 오직 분수가 물을 뿜어내는 소리. 아까의 소란은 꿈이었던가.
기타를 옆에 내려놓았다. 로즈는 얼굴 한 가득 미소 지었다. 그 누구보다, 우리 어머니보다도 예쁘게 보인다. 그런 소녀에게 손을 내민다.
“빗길이라도, 함께 걸을래?”
“그래요. 함께 걸어요. 적어도 전 보단 따뜻할 테니까요.”
“그래 적어도 전 보단 덜 엉망이 될 거야. 이젠 우산을 쓰고 걷자.”
“네. 비는 여전히 내리겠지만, 우산이라도 쓰면, 함께 걸으면 상관없어요.”
소녀는 떨려오는 가녀린 손으로 내밀어진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광장을 빠져나가는 우리의 등 뒤편으로 박수 소리와 환호성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 보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렇듯 가볍게 걷는 게 더 기분 좋게 느껴진다.
물었다. 노래하는 게 좋니? 대답해온다. 네. 좋아요.
- fin -
p.s :
안녕하세요! '게임'입니다.
요즘 연재 게시판에 작품들이 많이 올라와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 루리웹 연재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작가 분들이 서로서로의 작품을 잘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로서로의 작품을 보면서 '아, 이런 점은 내가 나은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점은
내가 못하다. 고쳐야지.' 이런 식으로 선의의 라이벌 의식도 느낄 수 있을 테고요,
댓글도 서로 달아주면서 활발하게 비평을 하고 또 그걸 겸허히 받아 들일 줄 알아야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스승님 한테 들은 것입니다만;;)
비평 능력도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실력 향상에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물론 전 이제부터라도 연재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소설들을 읽고 열심히 비평을
쓸 거라 다짐 합니다만,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비평이나 감상평을 남겨
커뮤니티도 활성화 시켰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요즘 죄송한 점이 있다면, 시험 기간이 얼마 안남은지라
진지하게 글을 읽고 비평을 달 시간이 박합니다. 시험 얼른얼른 끝내고
연재 게시판에 돌아와 비평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루리웹은 항상 뻔질나게 들어옵니다만, 연재 게시판에 올라오는
소설들의 경우 노래고 티비고 다 끄고 감정이입하면서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아마 여유를 갖고 제대로 비평을 드리려면
아마 시험이 끝난 뒤에야 가능하단 소리랍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중간에 나온 노래는 그 이름도 유명한 (여친소 ost로도 사용 됐더랬죠)
낙 킨 온 헤븐스 도어!!
노래하는 음유시인 밥 딜런의 명곡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이름과 그의 이름이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한 본문 중에 나오는 로즈의 이름도
후에 낙 킨 온 헤븐스 도어를 더욱 유명하게 한,
개인적으로 원곡을 뛰어넘는다 생각 될 정도로 훌륭하게 리메이크 한
락 그룹 Guns N'Roses 의
악동 보컬 액슬 로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사실 굉장한 악동인 데다 복잡한 성장 환경 때문에 성격 이상자인
액슬 로즈의 원래 성격은 본문에 나오는 로즈의 성격과 같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외모도 젊었을 적엔 굉장한 미남이었고요. 그냥 액슬 로즈의 소녀화 -> 로즈
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싶습니다. 외모도 최대한 비슷하게 써내려갔으니까요.)
액슬과 로즈의 다른 점이라면, 목소리?
액슬의 목소리는 엄청 걸걸한데 비해 로즈의 목소리는...
.. 이제까지 쓸 데 없는 잡담이었습니다!!
그럼 모두 건필하세요!!
루리웹 연재 게시판 활성화 프로젝트, 파이팅!!!
(서로가 서로의 작품을 보면서 짧막하게나마 댓글을 답시다!
댓글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모두가 다 아실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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