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름다운 자연이 싫다. 무릇 아름다운 자연이란 때 묻지 않은 것이고, 때 묻지 않은 자연엔 벌레들이 살기 마련이니까. 혹자는 벌레가 아니라 곤충이라고 지적하지만 내 눈엔 벌레나 곤충이나 구별의 실익이 없어 보인다. 생태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구성원으로서 존재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눈엔 그저 박멸해야할 해충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평화롭고 안정된 노년의 삶, 즉 공기 맑고 물 좋은 시골에서 밭 가는 삶도 난 원하지 않는다. 그곳엔 벌레들이 있을 테니까. 차라리 퍽퍽한 공장 매연에 숨이 막혀 죽을지언정 삭막해빠진 도시에서 살 것이다.
그런 내 눈앞에 그것이 나타났다.
"씨..발..."
그저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난 이것의 악명을 그저 소문으로만, 귀로만, 글로만 읽고 들어왔을 뿐이었다. 모 지역에서 집단으로 출몰해 아파트 내부로 침입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기사 역시 모두 남의 일 뿐이었다. 나이 스물여섯, 마침내 난 그것과 조우하고 있다.
세속적인 의미의, 통속적인 의미의, 교육과 사회적 배경으로 다듬어진, 인간으로서의 교양과 이성의 범주 안에 해당되는, 그 모든 공포와 불쾌함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정말이지 원초적이고 순수한 공포였다. 그 거대하고 말도 안 되게 생긴 생명체가 '정말로'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있었다. 오오 신이시여...
말도 안 되고 부끄럽게도 첫 경험을 할 때가 떠올랐다. 사진으로만, 소문으로만, 글로만 읽곤 했던, 실제로 눈앞에 나타날 거라곤 상상할 수 없던 존재가 눈앞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문화가 엄연히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피부로 느낄 때의 충격. 그렇다. 이것은 정녕 컬쳐쇼크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왕성한 성적 호기심대신에 압도적인 공포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개..개새1끼야.."
이제 막 머리가 커지던 시절에나 했었던 일명 욕으로 쎈척하기가 나왔다. 순수한 공포와 무력감 앞에서 시간이 역행하는 기분이었다. 반갑워 사춘기. 오랜만이야. 대체 저 생명체를 뭘 어떻게 해야하니?
그렇게 팽팽한 긴장속의 대치중에 그것이 살짝 내 쪽으로 움직였다.
"흐이이이익"
큰 성량으로 내지르는 괴성에 동요하고 뛰어오를까봐 애써 신음도 자제했다. 인터넷으로 익히 들어온 바에 의하면 저 악랄하기 짝이 없는 생물체는 점프력 역시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하였다. 하긴 끔찍하게 생긴 뒷다리의 크기만 봐도 짐작이 간다.
현재 저 놈과 나의 거리는 1.5 미터 정도다. 더 이상은 뒤로 갈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도주하지 않고 저 끔찍한 놈과 대치중인 이유이며, 녀석을 무슨 일이 있어도 제거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 이곳은 안타깝게도 현재 내 유일한 거처인 고시원의 좁은 방이다.
고시원의 총무 형을 부를까도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현재 시각 밤 11시 35분. 퇴근 시간을 준수하는 올바른 청년인 그는 이미 퇴근해서 잠 자리에 들었을 시간이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고시원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단지 저 한 마리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녀석이 침대 밑이나 책상 뒤편 구석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몇 날 며칠 저 놈이 나올 때까지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하고 어딘가에서 날 노리고 있을 녀석의 시선에 지랄맞은 압박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
학원에서 나눠 준 책자를 둥글게 말아 스윙하기 편한 오른손에 쥐어 들고 왼손에 혹시 몰라 밥그릇을 챙겼다. 난 비장한 각오로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정말 아무리 쳐다봐도 정면으로 노려보기 힘든 생김새였다. 거미도 질색하는 내게 저 놈의 생김새는 정말 재앙 수준이다. 맙소사. 인터넷에 유행처럼 올라오는 녀석을 소재로 하는 만화와 각종 유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저 정도의 위용을 내뿜다니, 가히 맹수 수준이다. 정말 징그럽다. 진짜.
긴장 속에서 피말라죽느니 일단 달려들고 보자는 생각과 함께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순간이었다.
"으아ㅏ아아아ㅏㅏㅏㅏ아어ㅏㅓ & #50639;어아아가아ㅏㄱ꺅아강흐아억아허악"
녀석은 순간, 진짜 높이 뛰어서 내 쪽으로 훌쩍 다가왔다. 원채 고시원 방이 좁아서 풀 스윙은 힘들었지만 가능한 수준에서 있는 힘껏 사방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것은 철저히 본능적이고 생존을 위한 스윙이었다.
'딱'
무언가 맞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휘두르던 팔에도 확실히 뭔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신속하게 방바닥을 살폈다. 나이스!! 그곳엔 배를 까뒤집고 패배한 해충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옆집 뚱땡이 형제를 울린 이후로 이런 승리감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직 속단은 이르다. 역시 들은 바로는 저놈은 맷집 또한 보통이 아닌 놈이라 하였다. 그 유명한 모 방역업체마저 두손 두발 들었단 녀석들이 아니던가.
나는 조심스레 쓰러진 녀석에게 다가갔다. 패배자의 모습이었지만 배를 까뒤집은 녀석의 혐오스러움은 오히려 배가 된 듯하다. 더러운 놈. 내 보금자리에서 썩 꺼져. 그때였다. 녀석의 다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히익"
이 요충 같으니라고. 함정인가? 무식하게 맷집으로 승부 보는 타입인 줄 알았으나 잔머리까지 비상한 녀석인가? 순간 녀석은 또 움찔하였고 놀라고 다급해진 난 순식간에 그만 밥그릇으로 녀석을 덮어버렸다.
"으어억. 너,넌 갇혔어!!"
가뒀다! 이겼다! 그동안 온몸에 남아있던 긴장감이 한 번에 빠져나가면서 힘이 쫙 풀렸다.
"하..."
방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밥그릇을 보며 나지막이 욕설을 중얼거렸다. 드디어 이 잔혹무도극악간교포악한 작은 괴물을 처리한 것이다. 비록 생을 완전히 마감시킨 것은 아닐지라도 제 아무리 날고 긴다한들 저 안에서 몇 날 며칠을 지낸다면 굶어 죽을 것이다. 밥그릇을 저렇게 며칠 방치해야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놈 꼴을 보느니 차라리 그렇게 가둬놓고 죽이는게 백배는 나을 것 같다.
힘이 빠져서 그런지 잠이 왔다. 설마 저 놈이 밥그릇 마저 들어 올리고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도무지 해충의 수준이 아닌 것 같았다. 설령 그런 식으로 나온다해도 그 수준이면 이미 내가 어떻게 해볼 수준은 아니고. 시간이 늦었다. 난 바닥의 밥그릇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충 뒷정리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악당 하나를 처치하여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한 기분이었지만 왠지 소이 찜찜했다. 밥그릇이 아니라 책으로 눌려죽였어야 했나. 어쨌든 빠르게 몰려오는 피로에 쓸려 그렇게 잠이 들었다.
.
.
.
.
익숙한 알람이 귓가에 울렸다. 잠에서 아직 덜깬 채로, 아니 엄연히 말하면 거의 잠들어 있지만 반복된 경험의 중첩으로 인해 무의식중에 핸드폰의 알람을 껐다. 지금 바로 일어나야 하지만 그런 적은 거의 없다. 어차피 30분 정도는 더 자도 충분할 것이다. 항상 그랬으니깐. 항상 그랬..응?
"으..끄아아아아악!!!"
놀란 고함 속에 어제 새벽의 상황이 떠오르며 잠이 달아났다. 두 걸음 뒤로 물러서다 침대에 걸려 걸터앉았다. 어제의 놀라움은 혐오를 동반한 것이었다. 공포는 원초적이었지만 동시에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에 철저히 현실에 매달려있을 수 있었다. 허나 지금 눈앞에 있는 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뭐,뭐,뭐 뭐에요? 아니 그,그러니까 지금.."
젠장, 당황스러움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하다못해 요괴 수준의 벌레와 조우했을 땐 대처 방법이라도 알 수 있다! 상대가 누가 됐던 간에 전투는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쭈욱 함께 해온 생존 방법이니까. 그것은 본능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할지 교육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매뉴얼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자고 일어났더니 웬 낯선 여자가! 밥그릇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 그것도 나체로! 무릎 꿇고 공손히 앉아 자기를 쳐다보고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 찰나에, 아침 햇살이 새벽의 어둠을 걷어내고 창문으로 새어 들어왔다. 햇살에 서서히 들어나는 여성의 실루엣은 일견 신비해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충분히 신비로웠다.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해할 수 없어서 반쯤은 마비된 이성 대신 본성이 앞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것은 비할 데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세속적인 의미의, 통속적인 의미의, 교육과 사회적 배경에 다듬어진, 인간으로서의 교양과 이성의 범주 안에 해당되는 미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정말이지 원초적이고 완전한 아름다움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작은 얼굴, 하얀 피부, 오똑한 콧날, 얇지만 또렷한 입술, 갸름한 턱, 그리고 날 지긋이 올려다보고 있는 큰 눈과 완벽한 굴곡의 몸매. 작동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한 이성의 한켠엔 왠지 영화나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고 느껴졌다. 도무지 현실 감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미모였다. 젊은 남성이라면 여성을 보고 느껴야할 동물적인 감각들, 색욕과 연애감정 마저 짓눌러버리는 압도적이고 완전한 외모였다.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고 꿈 꿨을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이상향의 여성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움은 이미 사라졌다. 느낄 겨를이 없었으니깐. 어제 새벽에 느꼈던 감정이 또 한 번 치고 올라온다. 이 현실 감각이 전혀 없지만 눈앞에 확실히 살아 숨 쉬는 존재는 10대때의 첫 경험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또 하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느끼는 감정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지만, 눈앞의 여인은 어쩐지 어제 새벽의 그 해충을 떠오르게 하였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