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먹어도 사슴고기는 안먹잖아요? 한국에서는. 그래서 평소에 먹지 않는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왠지 못 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왠지 사슴에게 미안해지기 까지 하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토끼고기라든가. 개고기라든가. 개고기에 이르면 왠지 잘못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세상에는 사슴도 토끼도 개도 다 누군가는 먹는단 말이에요. 눈을 돌리고 평소에 먹던 것만 먹는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죠. 난 돼지고기만 먹고 싶은데 왜 자꾸 내 앞에서 개고기를 먹느냐고 비난해 봤자. 그 사람은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니까 뭐 어쩔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의 라이트 노벨들은 어땠는가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먹고 싶은 것만 먹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이트 노벨에 수 많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모두들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고 서로 아웅다웅 하지만 결국에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이 '정해진 대사'나 '정해진 행동'을 통해서 갈등을 해소해 줘요. 보여주는 건 항상 맛있는 부분 뿐이고 맛 없고 상한 곳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런 거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근데 이 소설은 그걸 보여줍니다.
사실 8권까지는 거의 보여주지 않아요. -이제 와서 보면 중간중간 떡밥같은게 있긴 하지만- 저도 8권까지만 읽었을 때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얘들은 결국 친구인 걸 인정만 못할 뿐이지 사이좋은 녀석들 아닌가 했는데, 오산이었습니다. 편견이었습니다. 누구랑 누구는 좀 불편한 관계고 누구는 누구를 친구라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고... 이런 저런 어긋남이 잔뜩 있었고 그게 세나의 고백이 기폭제가 되어서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작가도 8권까지가 프롤로그라고 했을 정도로 9권 이후의 전개가 굉장히 하드코어하고 생생하고 괴로워요. 괴롭다고는 해도 보면 끔찍하다는 그런 게 아니고 너무 생생한 현실을 들이미니까 불편하다고 해야겠죠.
책 중간에 이런 말이 나와요.
복잡하지 않은 인간 따윈 없다.
친구나 연인이 된다는 건, 표면적인 교제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상대의 숨겨진 면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뜻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9권을 보면서 든 생각도, 지금까지의 라이트노벨이 그려온 인간관계가 너무도 표면적이고 맛있게만 그려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불편한 관계, 실패한 관계도 분명 있을 텐데 그런 건 전혀 보여주질 않거든요. 히로인의 마음이 무너지면 마음을 흔들 멋진 대사로 관계를 회복한다? 그런 대사는 생각도 못하는 녀석들도 많다구요.
9권에 등장하는 버스 좌석 배치도
저걸 굳이 저렇게 이미지화해서 보여준 걸 보고 이 작품 진짜 하드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어딜 놀러간다고 하면 그냥 재밌게 가는 거지 중간에 누가 누구 옆에 앉아서 가나 생각따윈 안하잖아요? 왜냐면 내 일이 아니니까. 남 일이니까. 소설 속 캐릭터들 일이니까. 근데 사전에 이 사람들이 어떤 관계에 처해 있는지 알려주고 저렇게 좌석 배치를 보여주면 신경쓸 수 밖에 없어요.
마리아는 세나가 상대 안 해줄게 뻔하고 리카는 또 외톨이고 말입니다. 리카가 지금 제일 불쌍해요 제일. 개인적으로는 독자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보는데 8권까지 보고서 '얘들은 사실 모두 친구'라고 생각했던 독자에게 '실은 이웃사촌부는 정말로 서로 친구가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들은 충격을 리카를 통해 받고 있습니다. 리카도 모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거든요.
물론 리카 혼욕신이라거나 이런 저런 장면이 있는 소설이지만 , 이런 미소녀 하렘물에서 '친구 관계'라는 테마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대단해요. 충격받았어요.
그동안 너무 맛있는 것만 먹은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조금 자기 반성도 하고.
아무튼 라이트 노벨에서 금기되어 왔던 것들은 전부 끄집어내서 적나라하게 늘어놓는 대담함에 당했습니다. 9권까지 와서 이러는 건 좀 배신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즌 2라는 느낌이라 즐거웠네요. 사실 이런 일상물로 9권까지 오면 질릴 만도 하니까.
그래도 이웃사촌부 애들이 좀 친해졌으면 좋겠네요.
담권 네타 보니까 교통정리하듯이 팍팍 진행하는거 같던데 봐야 알겠지만 아직 다 정리되지는 않은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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