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히카루가 지구에 있었을 무렵
장르 : 러브코미디 + 추리
제가 라노벨을 보기 시작한게 마술사 오펜 나오던 시절부터이니 나름 역사는 길지만, 남들만큼 사모으거나 하는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라노벨 오래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10 종류 사면 보통 절반은 지뢰고 절반의 절반 정도는 그냥저냥, 그리고 1/4 정도만 건져도 잘 건졌다고 할 정도로 지뢰작이 많은 장르죠... 이 때문에 소싯적에 멋모르고 종류별로 수십권씩 지를땐 발목이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뭔가 저 많은 작품중에 좋은 작품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일본에서 이 라이트노벨이 대단하다 라는 투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작품이 눈에 띄었죠.
그게 바로 '문학소녀' 였습니다.
이 작품이 왜 인상깊었냐면 당시 대세인 이능배틀물도 아니고, 여자들이 훌렁훌렁 벗는 에로물도 아니었는데 순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림체가 순정만화틱해서 이거 여자들이 투표를 많이 했나 싶었는데, 의외로 남자독자들의 호평도 많았었죠.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당시 나온 문학소녀 전권(완결 나기 전이었음)을 구매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히카루가 나오기 전까지 제 마음 속 최고의 라노벨 1순위에 당당히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역시 수준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필력과 설득력있는 인물상, 반전 있는 스토리, 그리고 깨알같이 섞여있는 개그코드,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만큼 작가가 다양한 문학작품을 상당히 탄탄하게 조사 하여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나무랄데가 없다는 점입니다. (아니면 작가가 진짜 문학을 좋아해서 저 작품들을 전부 줄줄이 꿰던가...)
만화든 라노벨이든 작가가 자신이 쓰는 작품의 배경 지식이 탄탄하다는 것은 엄청난 강점입니다. 일례로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 같은 라노벨은 문학작품이 주요 코드임에도 작가가 문학작품에 대한 지식이 졸렬하여 읽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재밌게 읽으신 분에겐 죄송 --;) 반면에 문학소녀는 작가가 최소한 해당 작품들을 좋아하는구나...를 넘어서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묘사하였는데, 이는 작가가 문학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탄탄하여 설득력있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튼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단점이 없는거도 아니었습니다.
첫째로, 스토리가 너무 질척질척한 치정극 위주라 호불호가 많이 갈렸고(주인공과 토오코 간의 사랑은 나름 담백하고 깔끔한데, 얘들이 말려들어가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막장드라마 뺨치는 사건들이라...), 개그 코드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진지한 분위기라 무거운 분위기를 싫어하는 독자들은 기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좋아하던 히로인인 나나세가 라노벨 사상 가장 비참하게 실연당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여서 뒷맛이 좀 안 좋았죠...
그래서, 좋은 작품이고 재탕도 좀 했지만 가볍게 다시 꺼내 읽기는 좀 부담스러운...그런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가고 문학소녀의 작가 노무라 미즈키의 후속작인 히카루 시리즈가 발매되었지만 이땐 일부러 관심을 끊었습니다.
왜냐면 표지만 보고 아 이건 문학소녀하고 비슷한 분위기겠구나... 근데 완결도 안났는데 사 보다가 나나세 차이는 이벤트같이 뒷맛 안좋은 상황에서 스토리가 끊기면 다음 권 나올때까지 고문이 따로없을테니 이건 나중에 완결나면 사야겠다... 이런 마음에 그냥 안 사고 지나쳤죠.
그리고 또 시간은 흘러흘러 충격과 공포의 후속작이 등장하는데...
첨 보고 동명이인인가 싶었던 작품 -_-;
노무라 미즈키가 문학소녀에서 간간히 보여주던 개그코드가 저와 꽤나 잘 맞았기 때문에, 이게 뭥미 싶긴 했어도 나름 환영이었습니다.
그래도, 라노벨 중에서... 특히 문장형 제목 중에서 워낙 지뢰가 많아서, 나중에 평을 보고 사려고 당장 사진 않고 기다렷는데, 그럭저럭 평이 좋고 코믹스도 재미있길래 1~2권을 같이 주문했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는 김에, 미뤄뒀던 히카루 1,2,3 권을 같이 주문했습니다. 첨엔 마일리지 맞추기 위해 권수 맞추기 용으로 히카루 시리즈를 주문한 것이었죠.
도착한 후 드레스... 도 나름 재밌게 보고 히카루를 보기 시작했는데 2권까진 그냥저냥 재밌게 봤습니다.
일단 새로운 캐릭터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니 정리하기도 힘들고, 매권 히로인이 바뀌니 이게 신만이 아는 세계 같은 옴니버스식 스토리인가 싶어서 크게 몰입하지 않고 그냥 괜찮네 싶은 정도로 봤었죠..
갠적으로 이런 옴니버스식 구성은 캐릭터에게 정들려고 하면 물갈이가 되는게 싫어서 그리 좋아하진 않는 장르입니다.
그래도 워낙 기본 필력이 탄탄한 작가니깐 나름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3권에서 포텐이 터지더군요.
단역인줄 알았던 애들이 다 거미줄같은 인간관계로 연결되어 있어서 재등장하고, 해당권이 끝나면 존재감 사라지는 줄 알았던 히로인들도 재등장해서 스토리에 마구 얽혀듭니다. 더구나 1,2권의 조용한 히로인들인 아오이, 유우에 비해 3권 히로인인 시이코는 그 성격때문에 개그적인 상황이 자주 연출되어 개그물이었던 드레스 차림의...보다도 빵빵 터지면서 보게 되었죠.
뭣보다 옴니버스나 단편집이 아닌 전체 스토리를 아우르는 큰 줄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음권의 스토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들어줍니다.
매우 운이 좋았던 것은 제가 1,2,3권을 구입한 타이밍이 4권이 나오기 직전이라, 곧 4권인 오보로즈키요와 5권인 스에츠무하나를 바로 구매해서 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다음권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에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었죠.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캐릭터들이 개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이라는 점인데, 특히 주인공 코레미츠가 남캐임에도 매우 매력적이라는 점입니다.
코레미츠는 양아치같은 분위기에 험악한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클리세는 라노벨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클리세라 신선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설정을 얼마나 스토리에 잘 이용하느냐에서 작가의 역량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죠.
이런 설정으로 유명한게 토라도라인데, 사실 이 작품은 초반만 지나면 이런 설정이 완전 무의미합니다. 동급생들은 '너 사실 좋은 놈이었구나' 라고 이해하며 중반이후엔 유우지가 눈매가 사납다는게 스토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질 않죠. 나는 친구가 적다같은 작품은 코다카가 인상이 안좋지만 그건 처음 친구가 없고 나중에 친구가 안생기는 설정에만 이용되지 스토리 진행에는 있으나마나한 설정입니다. 두 작품 다 재밌게 봤지만, 기껏 설정한 걸 스토리에 제대로 못 이용한 느낌을 주죠.
히카루 시리즈에서 코레미츠의 외모는 역시 양념적인 요소지만 스토리에 끊임없이 이용됩니다.
뭔가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외모때문에 뭔가 사건을 저지르는 것으로 오해받고, 그게 스토리에 뒤얽혀 예상못한 재미를 터트려주죠.
이 부분은 스포일러 떄문에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선 작가가 설정한 캐릭터를 아주 잘 써먹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외에도 버릴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캐릭터들이 개성적이고 매력적으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뭣보다 이런 러브코미디물은 히로인이 주인공을 좋아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독자의 몰입도가 급격히 식어버릴 위험이 높습니다.
소년지에선 보통 한눈에 반했다라던가 뭐 어릴적에 인연이 있다 라는 클리세를 많이 써먹는데, 이 작품은 주인공의 외모가 외모이니만큼 한눈에 반한 히로인도 없고 어릴적에 인연이 있는 히로인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지는 적절한 이유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역시나 작가는 치정극의 달인다운 능력으로, 교묘한 심리묘사와 밀당으로 러브코미디물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려줍니다. 일례로, 주인공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학생회장 사이가 아사이(일러스트에서 왼쪽아래)가 1권에서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때의 반응과 2, 3, 4, 5권에서 점차 변하는 반응들을 보면 작가의 심리묘사에 탄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러브코미디지만, 주인공과 히카루의 우정도 심도있게 다루기 때문에 나름 감동적인 면도 있습니다.
첨에 남자 두명의 더블 주인공 체제인거 보고 이거 여자 작가니깐 BL물로 빠지는거 아닌가 싶은 우려도 있었는데, 그런 요소는 없이 코레미츠와 히카루의 순수한 우정을 보여주는터라 나름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정도 단순히 감동적인 연출에 한번 써먹고 끝내는 요소가 아니라, 스토리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설정으로 남게 되죠.
뻔한 클리세를 자주 쓰는데도 식상하지 않게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는 필력 덕문에 러브코미디류를 좋아한다면 꽤나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고, 히로인들이 단순하게 벗어대면서 들이대기만 하는 하렘물 라노벨과 달리, 섬세한 심리묘사와 달달한 분위기 및 밀당을 잘 표현하여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적어도 러브코미디라는 장르 자체를 꺼려하는 독자만 아니라면 이 작품은 재밌게 볼 확률이 높습니다.
여튼 지금까지 수많은 라노벨을 봐왔는데, 그 중 가장 잘 쓴 라노벨이라 단정지을 순 없어도, 제가 지금까지 본 라노벨 중엔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러브코미디류에서 노출이나 에로같은 요소보단, 달달한 심리묘사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선택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긴 글을 쓴 이유는...
이렇게 잘 쓴 작품이 이상할 정도로 인지도가 없이 묻힌게 아까운 점도 있고...
4~5권을 광속 발매하던 학산이 갑자기 6권을 내놓지 않아 위기감이 들어(라노벨이 안팔리면 번역 중단하고 발매 그만두는 경우가 워낙 많다보니...) 한명에게라도 알리기 위한 불순한 목적도 있습니다.
더구나 6권 히로인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이가 아사이라서 6권 정발 기다리다 암이 걸릴 지경이더군요.
나도 들개라고 불리면서 밟히고 싶다...
독자가 늘면 학산이 6권을 빨리 발매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도 있습니다. -_-;
그러니깐...
학산은 6권을 뿌려라!
학산은 6권을 뿌려라!
학산은 6권을 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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