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서구 외세의 침탈에 직면한 비서구 전근대 국가의 국민들은 크게 4가지 유형의 반응을 보였다(흔히 '구체제에 대한 태도'와 '외세에 대한 태도'로 나뉜다).
- 첫째는 현재의 지배층과 사회구조는 부패하고 잘못되었으니 타파하고, 최대한 빨리 개방적으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
- 둘째는 현재의 지배층과 사회구조는 부패하고 잘못되었으니 타파하고, 과거의 보다 순수하고 근본적인 체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전통/복고주의 입장,
- 셋째는 위기에 처한 현재의 지배층과 국가를 도와, 도깨비 같은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입장,
- 넷째는 위기에 처한 현재의 지배층과 국가를 도와, 현 체제에서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개화와 근대화를 유도하자는 입장.
거의 모든 비서구 국가들이 위의 4가지 운동을 모두 경험해보았다(조선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임오군란, 위정척사,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 동도서기론 등은 대부분 저 카테고리에 다 포함시킬 수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베트남의 껀브엉 운동은 이 중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 껀브엉은 한국식 한자로 발음하면 근왕(勤王)이고, 말 그대로 왕을 지키자는 운동이다.
(응우옌 왕조의 깃발)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당시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는 응우옌 왕조다. 베트남 왕조사상 최대 판도를 확보한 왕조였지만, 한 가지 태생적 문제가 있었다. 이전 왕조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힘을 빌린 것이다.
(전 유럽을 상대로 전략겜을 플레이 중인 황제의 모습.jpg)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씡나게 유럽 열강 전부랑 맞짱뜨던 시기라 베트남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베트남은 당분간 간섭 없이 잘 살았지만, 애당초 프랑스의 지원으로 세워진 나라인데다 북쪽에서는 영국에게 개쳐맞고 문호를 개방(당)한 청나라가 "아, 기존의 중화질서를 근대 국제질서로 바꿔볼까? 근데 그러면 조선이나 베트남 등 내 제후국들은 다 내 종속국이거나 식민지인 거 ㅇㅈ?" 이러던 터라, 완전한 자주성을 구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 프랑스는 자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나자 원래부터 눈독을 들이던 동남아로 눈을 돌린다. 영국이 청나라를 아편전쟁(1840~1842)으로 시비털어서 흠씬 두들겨패는 것을 보고 배운 프랑스는(참 좋은 거 배운다), 동남아 각국에 대해서도 무력을 앞세운 정책을 구사하게 된다.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인 다낭의 현재 모습)
1847년 프랑스는 베트남이 선교사를 박해하는 것을 구실로 베트남의 다낭 항구에서 무력시위를 하면서 사형 선고를 받은 프랑스 선교사 5인의 석방을 요구한다(병인양요가 생각난다면 기분탓이 아니다!).
소치제: 그래...뭐....해달라는 대로 해줘라
당시 베트남의 황제였던 소치제는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선교사들을 석방해준다.
"엌ㅋㅋㅋㅋㅋ 해달라고 진짜 하네 ㅋㅋㅋㅋㅋ 그런다고 물러날 거 같았냨ㅋㅋㅋㅋ"
그러나 프랑스는 다시 선교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다낭에 정박 중이던 베트남 함대 5척을 침 ㅋ 몰 ㅋ 시키고, 그 결과 베트남은 사망자 40여명, 부상자 90여명, 행방불명 1000여명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베트남은 이미 약속대로 선교사들을 석방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결국 빡쳐서 홧병난 소치제는 아들 사덕제에게 모든 외국인을 사형에 처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 또 왔쩡 ㅋㅋㅋㅋㅋㅋ"
이후 베트남은 쇄국적인 태도를 유지하였다. 이후 프랑스는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무력으로 베트남을 공격(1858년 ~ 1862년, '다낭 침공')하였고, 전쟁에서 대책없이 깨진 베트남은 프랑스, 베트남, (그리고 끼어든 에스파냐) 사이에 제1차 사이공 조약을 맺는다.
‘제국의 무덤’이라는 별명답게 베트남인들은 몽골과 같이 육로로 침략하는 적들을 엿먹이는 데에는 아주 이골이 나 있었지만, 바다에서 함포를 쏴대며 들이닥치는 유럽 열강은 전통적인 무기로는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베트남인들의 "침략자 꺼져!" 근성이 어디 간 선 아니어서 각지의 민중과 토호들이 봉기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1873년에는 하노이가 점령당하고 2차 사이공 조약을, 1883년에는 1차 후에 조약을 맺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약을 맺을 때마다 베트남의 땅은 야금야금 뜯겨나가 식민지가 된다. 뭐 그래도 아직까지 응우옌 왕조는 유지되고 있었고, 일단은 주권국가였다.
"야, 베트남아, 이 형이 좀 맞고 다녀도 그래도 니넨 내 속국이야, 알지?"
상술했듯 청나라는 기존의 중화질서를 근대 유럽식의 국제질서로 전환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독립적인 제후국이었던 조선이나 베트남을 자신의 '종속국'(내지는 식민지) 취급하기 시작한다(조선도 청나라가 개입한 임오군란이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등을 겪는다).
"뭐 시1발? 나랑 해볼래?"
그런데 문제는...베트남에 눈독 들인 상대가 바로 당시 세계 최강급 열강(영국에 이은 콩-라인)인 프랑스였던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먹으려고 청나라를 패퇴시겼듯이, 프랑스도 (좀 치사한 방법을 써서)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던 청나라를 두들겨 패서 내쫒는다(청불전쟁). 결국 2차 텐진 조약에서 청나라는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의 권리와 보호권을 인정한다. 본인인 베트남인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이로써 베트남은 사실상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다 (참조: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1150181).
* 청일전쟁 후 조선도 똑같은 꼴을 겪는다. 러일전쟁 이전까지 일본은 프랑스에 비하면 좀 2류 열강 취급을 받아서, 청일전쟁, 시모노세키조약, 영일동맹, 가쓰래-태프트 밀약, 러일전쟁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조선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게 되지만.
p.s: 루리웹 이거 크롬에서 사진크기 어케 조정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