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부터 일본은 전래를 찾아볼수 없는 대규모 과격 시위에 몸살을 앓게 됩니다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전공투 사태는
지금 생각해봄
압축성장의 부작용으로 인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거라 볼수 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대학교 비리총장 긴급 압수수색 도중 집안에 비자금이 무려 22억엔 이나 발견 됩니다
당시 상당수의 대학생들은 가난했기에 이 사건에 분노가 폭팔하고
등록금 인하 와 학생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 합니다
그런데 그런시위 도중에 일본주둔 미군이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다 보는데도
여대생을 겁탈하는 사건이 터지자
오랫동안 가난한 환경과 기득권의 갑질에 눌려있던 대학생들의 분노가 제대로
폭팔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전범 국가라 자위대 인원 너무 적었고
경찰인력도 너무 턱없이 부족 했던 상황이라
야쿠자와 운동부소속 학생들로 진압을 하는데
이건 진짜 불난집에 제대로 기름 쏟아버린 실수 였습니다
진압에 참가한 야쿠자 몇명이 기시노부스케 가 시키고 자금을 대어주었다 라고 폭로하자
아예 전국에 있는 대학생들 모두가 폭팔적으로 분노하며 거리로 나왔고
대학생들은 모두
전국 대학생 공동 투쟁 연합이라 해서
전공투라 자칭하는데
얼마후 에는
고등학생 들 까지 전공투에 가담하며 그 시위는 정말 겉접을수 없을 정도로 극에 달하게 됩니다
날마다 수만에서 수십만의 인파가 시내로 나와서 몽둥이와 화염병을 던지며 분노했고
시위하는 자들과 시위를 진압하려는 자들의 아비규환이 끄니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공투 세력은 사회 기득권의 갑질과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를
따지자는 초심에서 벗어나
극단적으로 일단 공산주의 로 가고보자 는 방향으로 변질되게 되었고
파벌이 나누어 지고
서로 더 과격경쟁 하다가 결국은 김일성을 옹호하는 집단까지 나오고
극단적 테러 세력까지 나오면서
결국 전공투는 거의 스스로 자멸하다 시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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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건 이후로 시위 = 부정적인 것 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려서 우리나라 처럼 대규모 시위도 보기 힘들어짐 | 17.11.17 20: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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