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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Ones - 41
The days without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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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의 천장을 뚫고 거대한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그 발원지는 시청의 지하 깊숙히에 있는 신목. 하지만 코트에 의해 신목이 흡수되었고, 이제는 앙상한 가지만이 조금 남아있다.
"저녀석. 대체 무슨 짓을 벌인거야."
코트와 대치하던 초아는 하늘높게 올라간 기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봐. 듀얼 웨펀은 작동되나?"
"예. 아직 작동됩니다."
"그래. 그건 다행이야."
신목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큰 에너지원의 조절장치. 코트가 그것을 송두리 빼앗아 가버리면, 모든 전력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 없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듀얼 웨펀이나 에너지 웨펀을 쓸 수 있다 그 이야기군."
"녀석이 신목을 흡수했으니,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게 문제지."
초아는 품속에 넣어놓은 담배 한 개피를 꺼내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 뒀다.
'태평하게 담배나 태우고 있을 때냐.'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는데 여유롭게 담배나 피고 있을 수는 없다고 그는 자책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고 자시고 없지. 저 기둥을 따라서 올라간다."
"저걸……."
"듀얼 웨펀으로 몬스터를 실체화시켜서 올라간다. 그놈이 보란듯이 기둥을 세워서 자기 위치를 불러주고 있는데, 가만히 쳐다 보고 있을 수는 없지."
그는 새하얀 카드 한 장을 듀얼 웨펀에 올렸다.
"가자."
"예!"
초아를 뒤따라, 몇 명이고 듀얼 웨펀에 카드를 강타하여 몬스터를 실체화 시켰다.
"기다려라.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널 쓰러트린다!"
새까만 어둠 속에 약한 불빛이 밝았다. 촛불과도 같은 주황빛이 은은하게 퍼지자, 코트는 모자를 벗어던지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의 폐에 불꽃과 함께 새로운 공기가 들어찼다.
신목을 흡수하고서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지금 거적같은 새까만 물질들이 천천히 흐르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흡수라는 게 한 방에 되는 게 아니니까 시간이 조금 걸리네."
초아와 그의 부하들에게 언제라도 상대할 수 있다는 듯이 당당히 외치고 왔으나,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가 그들 앞에서 했던 말은 모두 허세. 신목의 힘을 그의 몸에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 그의 몸은 당장이라도 부숴질 것처럼 불안정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닥터."
"예. 보스."
코트가 이름을 호명하자, 어둠속에서 머리가 새까맣게 구불구불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의 이름은 닥터. 덩치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연구하다 온 것일까 새하얀 백의를 입고 안경은 렌즈 여러 개를 준비한 여섯 알짜리 안경을 쓰고 있다.
코트는 자세를 낮추고 그에게 나지막히 명령한다.
"잠깐 눈 좀 붙이고 있을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알겠습니다. 호위를 부르도록 하죠."
"한 명이면 충분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를 부르겠습니다."
닥터는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치직거리는 소리를 뿜어내는 새까만 기계에 대고, 그는 코트가 했던 말을 전했다.
"그러면 평안히 주무십시요."
"낮잠 자는 거에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어."
"시정하겠습니다."
"푸흡. 딱딱하게 굴기는."
코트는 닥터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표정이 누그러진 코트는 조금 안정된 목소리로 닥터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목 흡수가 끝나는대로, 세계를 통합시킨다."
"세계 통합……. 싱크로 차원을 상대로도 한 적이 없는 일이군요."
"그래. 여태까지 실제로 해 본 적은 없었지."
"갑자기 통합을 시키겠다는 것은 무슨 이유지요?"
"스탠다드는 내 마지막 전장. 전장을 좀 더 화려하게 바꿔볼 뿐이야."
"그것이 보스의 뜻이라면, 옳은 일입니다."
코트는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검정색 괴물체에 몸을 맡긴 채로 눈을 감았다. 닥터는 코트의 등 뒤에 수도 없이 피어있는 해바라기를 보았다. 어둠 속에, 그것도 이런 수상쩍은 장소에 해바라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 없는 과거로."
닥터는 굵은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멋드러진 필기체로 자신의 이름이 쓰인 지포라이터를 켜, 불을 붙인다.
"주변 반응을 관측해보니, 벌써 몇 명이나 죽었다."
전쟁에서 전사자는 얼마나 발생한다. 몇 명이 부상을 입고, 몇 명이 죽었는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지금, 잡졸이 몇 명 죽었는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제시아, 듀나, 이자벨."
그의 관심거리는 엑시즈 차원의 핵심 전력 초월체.
"보스는 가온이라는 녀석이 가장 약하다고 하셨지. 하지만 그녀석의 전공을 보면 도저히 그렇게는 생각할 수 없어."
가온은 샤크 슬레이와 이자벨을 쓰러트렸다. 홀로 초월체를 둘이나 상대한 적을 보고 어떻게 과소평가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왕관을 만들어낸 전적이 있는 녀석이다. 특히나 주의를 기울여야 해."
왕관. 비록 완성된 왕관은 혜르와의 싸움, 양과의 싸움이 끝나고 파괴되었다지만 안심할 수 없다.
코트는 왕관의 힘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코트가 전쟁을 시작한 것은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보스는 신경을 쓰지 않고 계시지만, 우리의 계획에 있어서 사실상 유일한 변수. 그게 바로 이녀석."
코트가 가진 왕관의 약점은 단 하나. 또다른 왕관 소유자의 미래에 간섭할 수 없다. 닥터 본인은 왕관을 가지고 있지 않고, 코트가 말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추측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의 눈에 미래가 어떤 방식으로 비치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요소라도, 미래에 이르러선 크나큰 풍파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온은 존재 자체가 문제시된다.
"지상병력으로 가온이란 녀석을 처리한다. 결코 보스와 만나게 해서는 안 되."
그는 가장 먼저 쓰러트려야 할 적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가온을 선택하며, 무전을 통해 그 말을 전한다. 가온을 마킹해야 한다고.
"그것은 보스의 명령입니까?"
무전을 날리는 닥터의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나이가 스물 정도 되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호위를 맡기로 한 것은 너였구나. 라이너."
남자의 이름은 라이너. 머리는 회색빛이 조금씩 드러나는 검은 머리카락. 옷은 제복 차림 위에 망토를 걸친 특이한 차림새다.
"방금 무전한 내용은 내 명령이다."
"그렇습니까."
"너와는 상관없는 명령이다. 너는 여기서 나와 같이 보스를 지킬테니까."
"보스를 지킨다. 그분도 남에게 보호받을 때가 있군요."
"보호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아주 잠깐이다. 보스께서 신목을 완전히 흡수하는 동안이니까."
"신목을 흡수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우리 세계의 기둥이 돌연히 나타난 것도 그 때문이었군요."
"보스는 우리 세계와 이 세계를 통합시키기로 하셨다."
"세계 통합이라는 것은……."
"그래. 보스께서는 아마도."
닥터는 두 손가락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세계를 끝내버릴 생각이시다."
……
스쿨의 지하에 여인의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여우의 귀가 머리 위로 쫑긋 솟아오른 묘령의 검은 머리 여인 폭시 크리스타다.
"듀얼을 하다 말고 어디로 튀어버린 건지 모르겠구나."
그녀는 세라 밀리언스와 듀얼을 하고 있었다. 듀얼의 내용은 폭시가 세라를 압도했고, 세라는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링커를 소환했다. 역전의 패를 꺼내들어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은 세라는 그녀의 링커 스트로리에게 믿을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링커로 덤벼들지 않고, 벽을 부숴서 도망칠 줄은."
당연히 자신에게 덤벼들거라 생각하고, 함정을 발동시키려던 폭시는 한 대 얻어맞은 듯이 얼어붙어 뒤늦게 쫒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뒤따라 갔을 때는 이미 늦어서, 어디로 도망쳤는지 모르게 되었다.
"세라. 서렌더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도망을 가다니. 그러고도 듀얼리스트더냐?"
어둠 속에서 큰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폭시. 폭시와 세라는 모두 초월체, 멀리서 난 소리라고 하더라도 귀를 세우면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다. 그렇기 떄문에 폭시는 일부러 세라에게 들리도록 크게 도발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폭시는 그제서야 세라가 듀얼리스트의 긍지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여자임을 떠올렸다.
'뭐. 눈에 불을 켜고 잡을 필요는 없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할까.'
지하를 두리번 거리다가, 지상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사라지고, 완전히 잠잠해지는데 몇 분이 흘렀다. 그 기나긴 시간이 지나자, 스트로리는 세라의 가슴속에 얼굴을 파묻어 애써 참고있던 숨을 크게 내뱉었다.
- 푸휴우!!!
"숨 소리가 너무 커."
- 세라가 숨 못쉬게 막았잖아!
"손으로 막아도 소리가 다 날 정도였으니까 어쩔 수 없지."
- 하마터면 저녀석이랑 다시 부딪히기 전에 질식사로 갈 뻔 했어.
"그래도 녀석이 사라졌으니, 이제 당장 걱정거리는 사라졌네."
- 그런데 세라. 왜 갑자기 도망치자고 한 거야?
"그 능글맞은 녀석의 필드가 너무 단단햇으니까."
- 우우. 그래도 공격만 통했음 이기는건데.
"지금 당장 저놈과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
세라는 듀얼 웨펀에 장착된 무전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듀얼 웨펀을 가진 사람 전원에게 들려줄만큼 기술이 되지 않기에 그녀는 누구 하나를 특정해서 통화를 해야 했다.
"들려?"
"그래."
듀얼 웨펀 너머로 가온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렇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우리들이 저놈들 윗대가리를 무찌를 방법은 하나 뿐이니까."
그녀는 듀얼을 시작하기 전, 폭시가 자신에게 들려준 정보를 난김없이 가온에게 전했다.
……
아군은 실질 전력이 한 손에 꼽히는데, 적군은 계속 늘어나는 이상사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