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퍼즐은 취향에 맞지 않지만 친구가 하도 강추를 하기에 플레이했고, 플레이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전체 스토리 만족한 부분
일단 소재부터가 페스트를, 그것도 프랑스 제작사가 다루었다길래 흥미가 동했습니다. 프랑스에서 페스트를 다루면서 카뮈의 페스트의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면 페스트는 불가항력적이고 파괴적인 부조리로 형상화되겠죠. (기대와 달리 부조리에 대항하는 다양한 인간군상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만)
미군맨이 해결해주기 전에는 어떠한 합리적인 선택도 오판이 되어버렸던 미스트처럼,
토착 바이러스가 해결해주기 전에는 화성인에게 어떤 대항도 유효하지 못했던 우주전쟁처럼,
해법이 있더라도 그것은 주인공이 행할 수 없거나, 알아도 선택할 수 없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좌절을 보여주리라 예상하고 기대했습니다. 반면, 영화와 달리 게임이라는 매체는 목적 달성의 성취감이 중요한데 이걸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지 궁금했죠.
그 점에서 모반이라는 개념은 게임적 구조를 성립시키는 장치로서 유용했다고 봅니다.
다만 제겐 저 저주의 신비와 그걸 탐구하는 비밀 조직 – 오더의 설정이 세밀해질수록 그것은 해결되어야 마땅할 대상이 되는 점에서 불안요소였습니다. 거대한 주제는 어설프게 다루면 유치하다고 비난받고, 그렇다고 깊게 다루면 독자의 기대가 커져서 그것을 만족시키기 어려우며, 게다가 그것을 구체적 설정을 키워가며 해결하려 들수록 작위적 인과의 틀에 얽매여 별로 신비롭고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잖아요?
파고들어야 할 부분과 흐려놓아야 할 부분, 논리적인 영역과 직감적이고 영적인 영역의 밸런스를 잡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해결될 수 없기를 바라는 페스트와 해결되어야 할 모반 사이의 모순이 이 시나리오를 제가 납득하기 위한 근본적인 불안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1편의 중간지점부터 저는
모반은 해결되었다 – 휴고와 아미시아는 구원받는다. 그러나 페스트는 해결되지 않는다 –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뿐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다.
정도의 엔딩을 예상하며 플레이했습니다. 답을 덜 내고 끝나는 것을 보고는 여정만으로도 괜찮다, 원래 이 주제는 여정이 핵심이라고 납득했죠. 이단심문관에 대한 복수는 일단락 되었으니 나름의 완결성도 있고요.
이후 2편에서 점차 망가져가는 아미시아와 자기 탓이라고 독백하는 휴고를 보며 트롤리 딜레마로 몰아가는구나 각오를 했죠. 그런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아미시아는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5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1명을 희생시킬 수 없다.’ 수준이 아니라 ‘철로 위 5명은 물론이고 철로 밖 사람들까지 죄다 죽여서라도 내 동생 1명을 살리겠다’는 태도니 트롤리 딜레마는 성립도 안 되죠. 순식간에 실존주의로 넘어가버리더군요. 주위의 ‘그렇다더라’ 하는 것들이 모두 유효성을 잃고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 보편의무도 저버렸건만 목적 달성도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밀어부치고 어느 순간에 렛잇고를 선택해야 하는가? 애초에 그 목적은 누가 원한 것인가?
결국 그 순간은 휴고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단, 세계를 위해 휴고를 죽여야 한다든지, 아미시아의 노력은 휴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휴고를 잃기 싫은 아미시아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든지 하는 단편적인 깨달음만으로 이루어진 선택이 아니라 많은 것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좋습니다. 설득 도구 중에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사람들을 해치기 전에 나를 죽여줘.’라는 익숙한 맥락도 포함되어있지만 결국 선택은 아미시아가 하도록, 아미시아가 스스로 불을 끌 때까지 휴고는 기다려줍니다. 동시에 그간의 여정이 헛된 것은 아니었음을 말합니다. 죽음과 고통뿐인 경험 같아도 그 안에는 같혀 있던 방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으며, 그것은 누나가 보여준 것이었다며 위로합니다.
그리고 아미시아는 드디어 자신의 선택을 통해 휴고의 선택을 존중해줍니다. 원하지 않은 운명에 의해 본질이 무엇인지 모를 모반을 가지고 태어나,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변화당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고집피우는 실패한 어른들의 목적에 의해 계속 부정당하던 휴고의 선택은 누나의 도움으로 실천됩니다.
부조리한 세상 속 실존적 투쟁이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형상화 되었습니다.
전체 스토리 아쉬운 점
개인적으로는 트롤리 딜레마가 좀더 일찍 충분히 다루어졌어야 한다고 봅니다.
[방법도 모르지만 휴고 살리는 것이 중허니 남을 위험하게 하더라도&우리의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야겠다. VS 치료가 안 되고 그저 진행을 늦출 수 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 피해입지 않게 외딴 곳에서 요양하고 살자]
이 대립이 좀 더 강렬하게 드러나야 아미시아가 모든 시도를 해본 셈이 되고 그룹이 충분한 고민을 한 셈이 되어 플레이어도 감정이입하기 좋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 구간이 너무 빠르거나 가볍게 지나가고 ‘역병을 몰고 다니게 된 것은 괜히 자극한 니들 탓이다’로 고정되어버려서 감정이입이 피곤해집니다.
물론 그런 내용을 강화하기에는 타이밍이 애매하긴 했습니다. 초반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거나 알아낼 방도가 없다’가 확정되지 않아서 그냥 1명과 5명 다 구할 수 있으리라고 아미시아는 기대했을 것이고, 저 구조가 성립되고 나서는 아미시아가 이미 미쳐서 한 쪽으로 기울어버리죠.
하지만 꼭 아미시아가 그 둘 중에 고민하지 않더라도 어머니나 마지스터 바우딘, 루카스, 소피아 등이 그런 갈등을 구체화해주면 될 텐데, 어머니는 하는 일이 없다가 각성 도구로 소모되고, 바우딘은 내심은 어쨌든 우격다짐으로 갈등 구조를 단순화시키며, 루카스는 너무 모든 것을 다 고루 인정하고 에둘러 말하며, 소피아는 너무 쉽게 아미시아에게 동조해버리죠.
그래서 딜레마가 극대화되지 못합니다. 제작진의 관심사가 주위 사람들의 트롤리 딜레마가 아니라 아미시아의 실존주의였다면 딜레마를 부각할 생각이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죠. 혹은 그건 당연한 건데 뭘 부각까지 하냐고 여겼을 수도 있고요.
단, 2편은 1편에 비해 나를 공격해오지 않는 무고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 것이 휴고 때문에(이단심문관이나 각 지역 영주의 오판 때문이 아니라) 순식간에 무너지는 과정을 더 깊이 보여주는 점에서 트롤리 딜레마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 의아할 정도로 직접적인 언급이 안 되더군요.
지금은 산속에 은거하는 것이 세상에도 좋고 휴고에게도 좋은 해법이었는데 빅터백작이 일을 그르쳐 달성되지 못한 것처럼 연출되었습니다.
그보다는, 산속에 은거하는 것이 미리 제안되고, 휴고는 점차 약해지면서도 그런 평온한 삶을 원하고, 그럼에도 그것은 해법이 아니라 지연일 뿐이며 휴고는 결국 단명하거나 발작해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고, 인퀴지터 잔당들이 계속 추적해오기 때문에 영구적인 해법이 아니므로 타인을 위험하게 하더라도 나가서 치료해야겠다는 그룹의 결정이 있는 쪽이 좋았다고 봅니다.
미친 양봉업자나, 괴팍하고 무능한 바우딘이나, 전문가한테 맡기지 않고 괴상한 고집부리는 아미시아 등으로 억지로 몰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야 말로 ‘네가 전쟁을 떠나도 전쟁이 너를 그냥 보내주지 않고 따라온다’는 마지막 업보가 더 강렬하게 와닿겠지요.
몰랐는데 휘말린다는 부조리감은 1편으로 충분하잖아요. 알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아니었다는 부조리감으로 발전 해야죠.
게임 내에서 휴고를 감싸주는 아미시아의 변명은 '휴고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건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우연한 결과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고전적 원리죠.
이것이 확장되면,
- 자신은 휴고를 치료하려던 목적일 뿐, 마을을 위험에 빠트릴 생각은 없었다. 나는 살아 남으려 했을 뿐, 상대를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의 죽음은 우연한 결과이고 적 병사의 죽음은 그들의 업보이다.-
라는 아미시아의 정당화에 이릅니다.
아미시아가 자기방어의 수단을 넘어 적을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살해를 행할 때 루카스나 소피아가 지적을 해줍니다. 아미시아는 방어기제를 발동해 고집스레 정당화하죠. 이 대비가 플레이어에게 감지됩니다.
반면, 휴고의 행보는 휴고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주위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휴고 자신에 대한 정당화가 쉬워집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런 휴고의 본성(모반)이 이 세상에 부정적으로 작용되도록 선택한 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하고, 휴고를 이용하려다 인과응보로 죽어간 사람들 외에, 보호자로서 선택을 대행한 이들의 책임도 조명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미시아가 휴고 대신 선택했음에도 책임지지 않고 외면한 것이 무엇인지 명료해져야, 자신이 선택한 세상과 삶이 아님에도 책임지는 휴고의 공리적 선택과, 그 선택을 실천하도록 도운 아미시아의 실존적 결정의 차이와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겁니다.
그냥 그 장면만으로는 너무 흔하잖아요.
세부 불만
한편, 개별 장면에서 캐릭터의 행동의 '묘사'는 약간 구멍이 느껴졌습니다.
아르노가 자기 부하를 다 죽여서 백작에 대한 복수 계획을 망친 아미시아에게 너무 넉살좋게 다가가거나, 여정에서 쥐에 대해 배울 거 다 배우고도 대낮에 백작에게 도전하며 쥐를 불러내라고 휴고를 윽박지르는 것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모반에 대한걸 숨겨서 소피아를 위험하게 만든 것을 넘어 죄없는 사람들을 몰살시킨 아미시아를 너무 쉽게 용서하는 소피아도 아쉬웠죠.
과하게 적대적인 잡캐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
아르노가 휴고를 이용할 생각이 있어서 내심과 다르게 행동하다가 서서히 변화했구나,
아들의 원수를 눈 앞에 두니 정신이 나갔구나 하고 이해해주게 되죠.
그런 면에서 2편은 캐릭터 형성이 잘 되어있어 단점이 잘 가려졌습니다.
1편에서도
도적 남매가 과하게 우호적이라든지, 대장장이 아들 로드릭이 작위적인 희생을 한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었었죠.
예를 들어 로드릭의 희생 장면에서 적 대사로 "수레의 문짝이 방해돼. 다리를 쏴" 정도만 넣고,
이후 로드릭이 잠시 주저앉았다가 괴성을 지르며 밀다가
각도가 다 노출되어 등에 화살을 맞는 등 약간의 변주만 줬어도
자연스러웠을 텐데,
이미 동료를 위해 죽음을 각오한 듯, 아미시아의 걱정에도 몸을 보호하려는 시늉도 없이, 수레에 손대자마자 고함지르며 죽으려고 드니까 클리셰가 너무 심하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직전에 불타버린 자신의 집을 보고 결의를 다시 굳힌 상황인데 이렇게 서둘러 보내버리나 싶었죠.
그런 문제들이 있어도
1편에서는 이단심문관 덕에 적의 지나친 적개심이 설명되고, 그 악행에 대한 분개 때문에 아군의 동기 부족이 메워졌죠.
2편에서는 등장인물을 좀 줄이고 긴 호흡으로 표현해주는 개별 캐릭터의 서사와 대사처리, 그에 따른 캐릭터에의 애착 덕에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었고요.
이런 세부 표현은 많은 게임들이 이만하면 되었다고 타협하기 십상이니... 개중에는 오히려 우수한 편입니다. 만족했습니다.
전작에서 아미시아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가를 보여줬다면(충분치 않았었도)
이번 레퀴엠에서는 어떻게 망가져있는가를 보여준 점도 마음에 듭니다.
단순히 ㅁㅊㄴ 취급 당하지 않게 잘 조형했네요.
마무리 총평
전투는 제가 워낙에 잠입과 퍼즐 취향이 아니라서
달려서 출구 찾고 죽은 후, 다시 달려서 출구 근처 전장 정리하고 숨었다가 상황 진정되면 체크포인트 지나가는 식으로,
즐기지 않고 ‘공략’을 수행했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할 수 없겠네요.
다만, 1편은 전투마저 퍼즐인 구성이 나름 오밀조밀했고, 2편은 단순해진 대신 시원시원하고 강제성이 약해져서 양쪽 다 나름의 맛이 있다 싶습니다.
자기네 자원과 역량에 맞게 적정선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딱 채워주는 현명한 게임 설계였다고 만족하면서,
긴 소감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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