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캠페인 2회차 엔딩을 보았습니다. 2회차는 Su-57에 펄스 레이저 + 각종 업글파츠 주렁주렁 달고 학살하면서 스토리를 최대한 음미하려 해봤습니다. 에이스 컴뱃 7의 스토리는 장단이 있다고 봅니다. 이에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 봅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단점부터 언급해보겠습니다.
단점
1. 에이스 컴뱃 세계관에 정통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흑막, 일부 설정
에이스 컴뱃 7의 흑막은 에컴 제로부터 유구한 전통의 악역 벨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벨카가 어느 시점에 튀어나오리란 걸 어렴풋이 예측하곤 있었습니다. 그 이유로 독일식 이름인 "슈로더", 지속적인 협력 관계였던 벨카와 에루지아, 그리고 에이스 컴뱃 3로 이어질 예정인 엔딩, 이렇게 3가지 였습니다.
문제는 이 3가지 내용 전부 시리즈 팬이나 세계관에 정통한 사람이 아닌 이상 알 도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흑막이 벨카라고 튀어나와 놓고 벨카에 대한 설명은 슈로더 박사와 스크랩 퀸의 대사 각각 한마디씩입니다. 시리즈 입문자분들에게는 갑툭튀한 국가가 배후에 있다라고 하니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에루지아의 선전포고도 전작들을 통해 에루지아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내왔는지 알지 못하면, 너무 뜬금없습니다.
또한 에루지아가 인공위성이 박살난 상태에서 왜 군웅할거가 되었는지도 시리즈 팬이 아닌 이상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리즈 팬이라면 에루지아는 왕국이 된 후에도 자국내 급진 세력인 자유 에루지아의 봉기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연결력이 불안불안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불안불안한 상태를 로자 공주라는 구심점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으나, 인공위성의 상실과 파반티의 소실로 군 수뇌부가 큰 혼란에 빠지자 결국 여러 세력으로 나뉘게 됩니다.
에이스 컴뱃 7은 그나마 급진파와 보수파 정도로 크게 세력을 2개로 정리해 이해를 도우려 하나, 애초에 에루지아가 왜 이리 쉽게 쪼개지는지 팬이 아닌 이상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중간에 미하이의 과거를 언급해주면서 과거 에루지아의 확장 전쟁 당시 에루지아에게 먹힌 국가들이 자신의 국가를 잊지 못하고 있다 정도와, 미션 16의 호위 대상인 에루지아 장교의 발언으로 설명하려 하나 너무 부족합니다.
2. 자주 바뀌는 트리거의 소속
사실 소속 자체가 바뀌는 건 이해하겠는데, 소속이 바뀔때마다 동료가 달라진다는게 문제입니다. 제일 맘에 든 친구들이 징벌부대의 동료들이었는데 하나하나 빠르게 리타이어 하더니 5 미션 정도 이후엔 "카운트"만 데리고 스트라이더 편대로 이동합니다. 물론 스트라이더와 사이클롭스 편대는 죄수 부대 시점에서 만나긴 하나, 여전히 동료에 정붙이기에는 시간이 짧습니다. 동료에게 정을 제대로 못붙인 채로 스토리가 진행되니 동료가 죽어도 큰 상실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사이클롭스 편대 인원들 보단 솔 편대 친구 죽을때가 더 슬펐네요.
3. 지나친 팬서비스
스톤헨지, 할링 대통령, 케스트럴과 앤더슨 함장. 이 중 할링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전개에 녹아들지만, 스톤헨지는 등장이 너무 뜬금없고, 케스트럴과 앤더슨 함장 이야기는 최후반부 달아오른 분위기를 갑자기 끊어버립니다. 물론 팬들이 이것들을 보면 추억에 젖는 즐거움이 되지만, 입문자들에게는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설정이 튀어나와 전개에 있어서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4. 길고 정적인 CG 컷씬
에이스 컴뱃 7의 컷씬은 특정 인물의 1인칭 시점에서 사건을 줄줄히 읊는 전형적인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 방식의 스토리텔링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플레이어가 3인칭이 아닌 게임 내 특정 인물 1인칭의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어 화자가 되는 인물의 감정과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허나 단점으로는 정적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는 겁니다.
에이스 컴뱃 04나 5 때는 이런 컷씬이 짧고 내용을 잘 압축시켜 등장했기에 문제가 없었으나, 에이스 컴뱃 7의 컷씬은 길이가 꽤나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나마 최후반부 궤도 엘리베이터 내에서 진행되는 컷씬에서 에이브릴, 닥터 슈로더, 로자 공주의 내러티브를 순서대로 나열함으로서 같은 사건을 각각 어떠한 생각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점
1. 납득가는 에이스 컴뱃 3의 세계
이번 에이스 컴뱃 7의 스토리는 어찌보면 에이스 컴뱃 3와 다른 작품들을 잇는 연결점이 되는 시점입니다. 때문에 어째서 유지아 대륙은 국가의 힘이 붕괴되고 기업의 시대에 들어섰으며, 자율형 AI가 탑재된 무인기는 미래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에이스 컴뱃 7의 스토리는 적어도 이부분에 대한 설명은 어느정도 납득가게 해두었습니다. 유지아 전역에 걸친 군웅할거와 이로인한 혼란은 국가 체계가 약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틈을 타서 뉴컴과 제너럴 리소스가 성장해 국가를 뛰어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인기의 경우도 AI를 컨트롤하는 "인간"이 모종의 이유로 사라질 경우 얼마나 자율형 AI 무인기 그 자체가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플레이어는 몸소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무인기의 기술이 힘은 없지만 잘못된 사상을 가진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에이스 컴뱃 최고의 강대국 오시아 연방에 대적할만큼 위험해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어째서 에이스 컴뱃 세계가 에이스 컴뱃 3의 시대로 발딛게 되었는지는 7편에서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했다고 봅니다.
2. 여전히 좋은 브리핑과 무전 대사
국내 유저분들이 에이스 컴뱃 자막 문제로 무전 대사를 100% 못 읽는다는게 아쉬울 정도로 무전 대사 내러티브는 좋았습니다. 에이스 컴뱃 04,5에 참여한 키토 마사히데 무전 대사 작가의 실력이 100% 발휘된 느낌입니다.
할링 대통령을 구출하려다 적의 기습에 걸려 사투를 벌이는 시고블린 부대의 급박한 무전, 후반부로 갈수록 트리거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경외시하는 아군들, 도와주면 꼬박꼬박 감사의 인사를 해주는 지상군, 1회성 NPC이지만 스톤헨지의 급박한 상황을 잘 전달한 스톤헨지 시설의 연구자들, 그리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해주는 AWACS들. 전부 맘에 들었습니다.
특히 미션 5의 내용만으로도 죄수부대 소속 동료들에게 개성을 충분히 불어 넣어줄 수 있었던 건 잘 작성된 무전 대사 덕분입니다.
브리핑은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브리핑만으로 개성을 얻은 맥킨지 사령관은 물론 미션 1에서 기지가 공습당할 때의 당혹감, 최후반부 위성이 박살나 오시아 본토와 연결이 끊겨 보급 부족에 시달리며 집에 가고 싶어하는 아군들을 볼때는, 듣는 저마저 "지금 상황은 지옥이구나"를 실감시켜 주며 힘든 상황을 몰입감있게 납득시켜줍니다.
3. 발전된 연출
CG 컷씬 연출 말하는게 아닙니다. 미션 내 연출들 말하는 겁니다.
좋은 성우 연기와 더불어 전작들에 비해 더욱 세련되어진 연출들은 향상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할링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흐르는 라즈그리즈 테마는 그 장면을 2회차에 봤어도 똑같이 소름이 돋았습니다. 파괴 되는 아스널 버드는 그간 MQ-101이 괴롭혀 왔던 모든 것이 머릿속에 지나치며 호쾌함과 장엄함을 연출합니다.
맨 마지막 궤도 엘리베이터 내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는 트리거의 모습은 드디어 모든것을 끝냈다!라는 성취감을 주는 장면이었네요.
총평을 하자면
브리핑과 무전 대사는 정말 잘 작성되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은 스토리를 뒷받침하고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해야할 CG 컷씬에서 미장셴만 강조한 덕인지, 지루함을 끌고 오며 개연성 확보에 실패했고, 동시에 전개가 무너져 내립니다.
전작들의 망해가는 상황에서 전황을 뒤집는 단순한 전개 방식으론 에이스 컴뱃 전작들과 3편의 설정을 이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색다른 전개의 스토리를 시도했는데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해 무너져 버렸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맵 재탕을 하더라도 미션수를 더 늘려서 더 많은 CG 컷씬을 넣어 흑막에 대한 떡밥을 열심히 투척하고, 전작들과의 연계성을 조금 더 줄였다면 나쁘지 않은 스토리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멀티플레이 맵만 보더라도 인시 계곡 같은 하나의 맵을 다양한 시간대로 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차라리 이런식으로 다른 시간대의 맵을 만들어서 하나의 미션으로 때워서 전개가 진행될 틈을 만들어 두는게 나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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