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C] 왜 이런 결정을 내렸어요? - '던전 스토커즈' 한대훈 PD가 내린 선택들
‘왜 이 게임의 PD는 이런 선택들을 했을까?’라는 제목의 이번 강연에서는 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많은 선택과 경정을 내리는 PD의 시선에서 강연자가 실제로 경험한 고민과 그 결과로 인한 변화들을 청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실제 사례들을 예로 들면서 실전적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려졌다.
먼저 한대훈 PD는 PD라는 직책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설명했다. 강연자는 PD라는 직책을 ‘이 산이 아닌가벼’ 를 말할 수 있는 직책이라고 요약했다. 즉, 프로젝트의 비전을 제시하고 약속된 기간 안에 로드맵을 짜고. 개발자를 수급하고. 프로젝트의 방향에 대한 지속적인 결정을 내리는 직책이다.
또한 PD는 프로젝트의 밸런스도 신경을 쓴다. 일정과 팀 멘탈 사이. 혹은 팀 매니징과 마이크로 매니징. 또는 업무 프로세스와 신속한 결과물 중시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는다. 물론, 세상에 리스크가 없는 선택은 없다. PD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질 뿐이다. 결국 다양한 선택을 내리는 직책인 셈이다.
PD 직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진행한 이후, 강연자는 PD로써 해야 했던 수 많은 선택들을 전달하고자 했다. 본인이 개발 중인 타이틀 ‘던전 스토커즈’를 예로 들면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전했다. PD의 입장에서는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게임의 컨셉과 규모. 기간을 예측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를 설득해야 하며,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상하기 좋고. 한 줄로 설명해아는 게임 컨셉이 중요했다. 결정권자들이 게임의 재미를 상상할 수 있어야 말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근본적으로 앞서는 것은 회사에서 전하는‘뭘 만들 건데요’라는 질문이다.
이 대답을 하기 위해서 강연자는 ‘마녀의 저주가 벌어지는 던전에서 보물을 찾고 플레이어들의 갑옷을 부수고 처치해서 파밍을 하는 게임’이라는 말로 정리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길었다. 그래서 한 마디로 ‘판타지 버전 타르코프’라는 문장으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한 줄로 게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알기 쉬운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타 게임을 언급하는 것이 편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같은 장르의 게임이 흥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설득하기가 더 용이하다는 측면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강연자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은 회사를 설득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어떠한 재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상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인디 타이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남을 설득할 필요가 없어서다.
이 과정에서 1차 테스트 버전을 1년 안에 제작한다는 기한을 정했다. 그래서 1년 동안 총 16명의 인력으로 개발을 진행하게 됐다. 이는 장르의 붐이 올 때에 맞춰서 접근 하겠다는 선택이자, 적은 인원으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었다. 이렇게 개발을 진행하면서 첫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다음에 팀 규모에 대해서 고민 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이후에는 ‘어느 시장을 타겟팅 해야 하지?’라는 선택이 자리한다. 여기서는 아시아 지역을 메인으로 둘 것인가 / 이 장르가 인기가 있는 북미 시장을 메인으로 할 것인가? 라는 두 개의 선택지였다. 여기서 강연자는 몇 가지 이유에서 아시아 지역을 주 시장으로 설정했다.
여기에는 몇 개의 이유가 있다. 북미 시장은 이미 퍼스트 무버 게임이 이슈를 선점한 상태였다. 하지만 해당 장르가 아시아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일본과 중국에서는 배틀로얄 장르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여기에 아시아 개발자가 북미 스타일을 추구하다가 큰 일이 난 케이스를 많이 봤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이유로 아시아 시장을 노리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
아시아를 기준으로 한 만큼, 카툰풍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내부의 의견도 있었으나, 시장 상황 면에서는 카툰풍 비주얼의 기준이 모든 장르를 통틀어 가장 높다는 생각. 그리고 국내에서 카툰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모델러 수급이 어렵다는 점에서 실사풍에 캐릭터를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던전 스토커즈는 반실사풍에서 캐릭터성을 살리고 고증보다는 멋을 더 신경 쓴다는 결정에 도달했다.
이렇게 회사를 설득하는 과정 이후에는 개발팀 내부를 설득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개발팀이 던지는 질문 ‘우리 게임은 뭐가 특별해요?’라는 것에 답하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개발팀의 사기와 멘탈에 영향을 미치는 질문이다. 비슷한 작품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이런게 있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만 개발자들이 버틸 수 있다. 따라서 개발팀도 설득을 해야만 한다. 이 질문에 결정과 답을 내리기 위해서 강연자는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프로토타입 개발에서는 하드코어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캐주얼하게 갈 것인가라는 선택의 영역이 자리한다. 한대훈 PD는 여기서 캐주얼하게 라는 선택을 내렸다. 이는 강연자가 평소 가지고 있는 지론 때문이다. 이 지론은 ‘ 하드코어한 게임의 약간의 캐주얼함이 더해지면서 대중에게 퍼진다’는 생각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르의 본질을 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실제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면서 잊거나 바뀌지 않아야 하는 것을 남겨두고자 했다. 그리고 불만이 있는 요소들을 혁신해야 하는 것으로. 기존 장르에 없던 요소를 새로운 것으로 분류하여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에 반영했다. 이렇게 제작을 시작한 던전 스토커즈의 프로토타입은 개발에 2달 정도가 소모되었고, 여기서 라이트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요소를 넣었다.
이 라이트함은 마녀의 저주 / 갑옷 파괴 / 3인칭 시점 / 캐릭터 기반이라는 특징으로 이어졌다. 실력 기반 타이틀에서 운이라는 요소를 추가하는 한편, 비주얼 측면에서의 표현도 더했다. 실제 테스트에서 마녀의 저주가 좋은 타이밍에 터지면 재미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고, 갑옷 파괴 시스템이 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도 얻었다.
하지만 당초 약속한 첫 테스트까지 1년. 즉, 12개월의 기한에서 프로토타입 제작에 2개월이 소모된 상태. 남은 시간은 10개월이었다. 그래서 프로토타입 이후에는 충원에 집중했다. 그리고 인력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PD가 없더라도 개발이 가능해지는 시점이 왔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개발이 알아서 진행되는 이 시점에 PD는 무엇을 할까? 강연자는 이 시기에 PD는 더 큰 그림을 본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빠르게 개발 팀 충원에 집중하고 주변 인맥을 활용하며 인재를 영입하는 과정을 거쳤다. 스카웃을 위해 제안을 하기도 하고, 영업을 위해서 원하는 캐릭터를 하나 추가할 수 있게 한다는 중요하지만 사소한 약속으로 실제 인력을 영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마법사인 네이브다.
강연자는 ‘이 즈음 되면 적당히 조립을 했는데 막상 게임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런 묘한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이걸 갈무리하고 게임처럼 다듬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또한 선택의 영역이다. 중간마다 게임을 다듬을 것인지. 아니면 빠르게 작업을 한 다음 개발 후반에 다듬을 것인지라는 선택이다. 강연자는 여기서 지속적으로 게임을 다듬는 선택을 내렸다.
실제적으로는 마일스톤 단위를 3개월로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2~3주를 폴리싱 과정으로 일정을 수립한다. 이를 통해서 게임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플레이를 하면서 퀄리티를 체크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렇기에 상시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 빌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따라서 개발 초기부터 스팀에 게임을 올려두고 팀원 누구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강연자의 말에 따르면 ‘제일 잘 한 선택 중 하나’다. 이로 인해서 개발자들이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고 의견을 편하게 줄 수 있게 됐다.
개발이 진행되는 시점에 회사는 ‘모바일 버전도 진행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전했다. 당초 던전 스토커즈는 PC와 모바일에서 둘 다 돌아가는 타이틀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두 플랫폼을 모두 잡는 과정에서 애매한 게임이 되어갔다. 모바일이라 하기에는 불편하고. PC 타이틀이라 하기에는 별로인. 그런 애매한 상황이 나온 상태였다. 여기에 비주얼적인 문제와 게임 플레이 문제도 나왔다. PC와 모바일. 두 유저 사이에 어떤 안전 장치를 두어야 할 것이라는 고민도 필요했다.
여기서 강연자는 제대로된 재미를 주기 위해서 PC 버전을 택했다.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팀이 PC 버전을 만드는 데에 의욕이 있었다. 즉, 팀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모바일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홍보 비용에 대한 걱정 / 강연자 스스로 익숙한 플랫폼이라는 점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결정을 회사에서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던전 스토커즈는 PC로의 개발이 진행됐다. 이외에도 본격적 개발이 진행되면서 더 많은 결정들이 필요했고 그 때마다 선택을 하다보니, 어느새 출시를 앞둔 상황이 다가왔다.
그 마지막에는 또 하나의 설득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게이머를 설득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설득이 아니라 지금까지 개발 과정에서 내린 선택이 게이머들에게 납득이 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순간이 온 셈이다. 게이머들은 이 과정에서 피드백들을 남기게 되며, 이를 게임 개선을 위해 반영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는 ‘게이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피드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상충되는 의견들이 여럿 나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밸런스에 대한 내용이다. 원거리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 vs 근거리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의 대립과 같은 것이다.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은 결국 선택의 영역이 된다. 하지만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PvE 모드가 반응이 좋다. PvE를 강화하자와 PvP가 재미있다는 의견이 있다. PvP 빈도를 늘리자는 의견이 시기에 따라서 한 사람에게서 모두 나오기도 했다. 이는 어떻게 보자면 양자택일처럼 보이지만, 꼭 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강연자는 여기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MMR을 도입해서 초보자와 숙련자를 구분해 매칭한다’는 선택지를 가져갔다. 조금 더 본질적인 의견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했을 때에 ‘즐겁게 싸우고 싶다’는 것임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즐겁게 싸울 수 없기에 PvE로 대피를 하는 것이고. 그래도 PvP는 재미있는데? 라는 흐름이 느껴졌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따라서 같은 수준의 장비를 입은 사람끼리, 공평하고 재미있는 전투를 원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곧 제 3의 선택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설명하며 강연자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아이디어란 여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복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눈에 보이는 선택이 아니라, 안 보이는 선택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사례로 PD가 고민하고 내리는 선택을 설명한 강연자는 마지막에 이르러 ‘수 많은 선택을 내리고. 후회를 하고 있을 모든 개발자들을 언제나 응원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