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기, 베일을 벗다
올해의 E3는 여느 때보다 관람객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던 행사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파격\' 이라 할만한 볼거리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편중되어 있었으며, 전시를 주관한 IDSA(Interactive Digital Software Association)가 전시회의 준비 및 운영에서 다소 많은 문제를 노출한 까닭이다. 2004년의 E3가 소니 PSP, 닌텐도 DS 실기와 이를 이용하는 컨텐츠의 발표로 후끈 달아올랐다면, 물론 E3 2005에는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각각의 차세대 콘솔이 베일을 벗어 큰 관심을 끌어 모으긴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집중 조명을 받은 것에 비해 공개 수준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3사가 컨퍼런스를 통해 과거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작 방향에 대해 언급했고, 실기에 \'근접한\' 데모를 보여준 것이 위안이랄까. 프리-랜더링이라든가 에뮬레이션이 아닌 직접 실기에서 동작하는 파격적인 컨텐츠를 기대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했던 [킬존2(PS3)]의 데모를 처음 접했을 때 모니터 앞에서 몇 번이나 다시 감상했는지 모를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래저래 정황이 알려진 지금은 차라리 [스포어(PC)], [완다와 거상(PS2)], [젤다의 전설 : 황혼의 공주(GC)] 같은 현세대 플랫폼의 출시 예정작들이 당장 현실적이기에 더 흥미롭게 와 닿고, 관심이 간다고 말하고 싶다.
[킬존2]의 데모는 정말 대단했다
킬존2를 포함한 PS3 테크데모 동영상
스퀘어에닉스\' 파이널 판타지7\' PS3 테크데모 동영상
아무튼 E3 2005는 차세대기에 대한 많은 논쟁거리를 남긴 채 막을 내렸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차세대 콘솔 제작 3사의 제품 디자인과 컨셉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분명한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누구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세세한 스펙의 비교나 실제 성능에 대한 언급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후 양산 제품이 출시될 즈음으로 미루도록 하고, 지금 여기서는 E3 2005도 결산할 겸 충분히 윤곽이 드러난 3사의 제품 컨셉과 개발 방향에 대해 두루 살펴보고자 한다. 읽는 쪽도 복잡한 계산보다는 이쪽이 더 재밌을 테니 말이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3 - \'종합 엔터테인먼트 머신\'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의 구타라기 켄 사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하 PS)을 \'게임기\' 라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3D 그래픽에 매료되어 그것을 와 닿는 수준으로 콘솔에 적용했던 PS나, DVD 플레이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PS2, PVR(Personal Video Recorder) 시장으로 발을 담갔던 PSX, 그리고 PMP를 넘어 무선 네트웍 단말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는 PSP까지. 듣고 보니 게임은 하드웨어가 다루는 메인 컨텐츠였을 뿐, 어떤 세대의 PS에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3
기본적으로 PS3는 이전과 같은 기획에서 출발하고 있다. 게임을 메인 컨텐츠로 다루되 기존의 머신보다 분명히 앞선 무언가를 더할 것. 결국 소니가 택한 것은 PS2의 EE(Emotion Engine)보다 진보한 프로세서, 즉 IBM, 도시바와 공동 개발한 \'셀(CELL)\' 이었다. 이를 통해 PS3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매우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수퍼 컴퓨터\' 라는 매력적인 정의와 함께 다소 사치라고 생각될 정도의 강력한 연산 능력을 갖추게 됐다.
게다가 PSP가 그랬듯이 소니는 PS3에도 많은 부분에서 당장은 오버 스펙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의 충분한 제원을 미리 채택함으로써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셀 프로세서는 애초부터 램버스의 고속 XDR 메모리와 연계해 동작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더 사실적이고 빠른 3D 그래픽 처리와 더불어 범용 API 및 미들웨어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셀과는 별개로 nVIDIA의 최신 GPU까지 커스터마이징하여 탑재했다. RSX(Reality Synthesizer)라는 이름의 이 그래픽 프로세서는 PC용 그래픽 카드로도 아직 출시되지 않은 동사의 G70 아키텍쳐에 기반하고 있는데, 기존 HD급(720p, 1080i) 해상도를 상회하는 1080p 출력을 듀얼로 내보낼 수 있고, 셀 프로세서 및 고속의 GDDR3 VRAM과 충분한 대역으로 연계하도록 되어 있다. 아울러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 적합한 대용량 데이터를 담아내기 위해 PS3에는 블루-레이(BD-ROM) 드라이브도 적용될 예정이다. 덕분에 PS3는 DVD 미디어는 물론 추후 출시되는 블루-레이 타이틀과 SACD(Super Audio CD) 형식의 컨텐츠까지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 역할을 겸할 것으로 보인다.
PS3의 가장 큰 특징, 셀 프로세서
이렇게 다소 무리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높은 스펙의 PS3를 가지고 소니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거실 점령\', 다시 말해 가정에서 쓰이는 모든 가전 기기들의 허브(Hub)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PS3의 여러 입출력 포트를 살펴보면 더 뚜렷해지는데, 기가비트 통신이 가능한 유선 이더넷 포트와 IEEE 802.11b/g Wi-Fi 포트, 그리고 이것들을 이용한 유무선 AP(Access Point) 기능은 작게는 PS3로 가정의 네트웍 점령을 목표로 하고, 크게는 전 세계의 PS3들이 네트웍을 통해 묶이는 \'그리드 컴퓨팅\' 의 모습을 상상하게끔 한다. 즉, 간단하게는 PSP나 노트북 PC를 무선 네트워크로 PS3와 연결해 즐기고, 나아가서는 기가비트 이더넷 단자를 이용해 여러 대의 PS3를 연결함으로써 막대한 연산 능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다수의 셀 프로세서를 엮어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 PS3의 병렬 연결은 좀 더 수퍼 컴퓨터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활용 방법인 동시에 전 세계의 PS3가 네트웍으로 묶여 아무리 셀이라도 단일 기기로서는 처리하기 버거운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 벌써부터 꽤 신선한 컨텐츠들이 기대된다.
또한 디스플레이에 표준의 HDMI(High-Definition Multimedia Interface) 단자가 쓰이고, 무선 컨트롤러의 접속은 근거리 통신 표준인 블루투스 2.0, 유선 장치들을 위한 6개의 USB 2.0 포트, 소니 특유의 메모리스틱은 물론 범용의 CF, SD 슬롯까지. PS3는 여느 때보다 표준 인터페이스의 채택이 눈에 띄는 소니 머신이다. 이 역시 가정에서 흔히 쓰는 기기라면 무엇이든, 어떤 식으로든 PS3와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독자적인 포맷들을 정책적으로 고수하던 소니도 \'가전 허브\' 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각성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컨대 니콘 디지털 카메라나 컴팩의 포켓 PC가 PS3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원하는 인터페이스를 아우를 수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다양한 입출력 포트
PS 진영의 상징적인 크리에이터,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PS3를 \'특별한 저녁 식사\' 에 비유했다. 그만큼 PS3가 매력적이고 특별한 머신이라는 의미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일상 속의 물건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니가 추구하는 하이 레벨이 게이머나 컨텐츠 개발사들에게 얼마나 환영받을지 의문이란 생각도 기저에 깔려 있는 듯 하다. 실제로 초 고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개발사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고, 가정에서 PS3에 2개의 HD 디스플레이 장치를 연결해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팽배하다. 또 블루-레이 드라이브는 과거 베타 대 VHS의 싸움에서 패했던 소니가 전철을 밟지 않으려 무리해서 PS3를 통해 보급에 열을 올린다는 분석도 흔하다.
그러나 도전적인 엔지니어 마인드로 유명한 구타라기 켄은 PS3를 기존 범용 머신의 연장선이 아닌,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할 수퍼 컴퓨터의 개념으로 과감하게 몰아가고 있다. "PS3는 절대 게임기가 아니며, 갖고 싶은 머신을 만든다" 고 말하는 그는, 자동차나 TV처럼 PS3를 비싸더라도 소비자가 가치를 느껴 구입하게끔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것은 PS2가 몇 차례의 가격 인하 덕분에 보급률이 높아졌던 것을 생각하면, 콘솔로서는 분명 모험이다. 일단 PS, PS2, PSP까지 그의 과감한 도전은 성공적인 듯 보이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PS3의 가격 정책은 소니라는 회사의 사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큰 무리수를 두어선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SCE는 파트너 회사들에게 PS3를 2006년 봄까지 4만엔 이하로 만들어 내겠다 공언하고 있는 모양인데, 너무 비싸도 문제지만 PSP에 이어 PS3까지 복잡하고 원가가 비싼 머신을 무리해 싼 가격으로 자꾸 내 놓으면 결국 소니에게 큰 부담으로 누적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2007년쯤이 되면 시대의 흐름이 PS3를 진정 \'필요한 엔터테인먼트 기기\' 로 받아들이게 될지, 아니면 그 때에도 오버 스펙의 애매한 가전 기기로 표류할지. 지금 소니와 구타라기 켄의 선택은 그쯤이 돼야 성패를 논할 수 있을 듯 하다.
[ PS3 상세한 자료 보러가기 ]
마이크로소프트 Xbox 360 - \'절치부심 Xbox v1.5? v2.0?\'
마이크로소프트는 엄청난 자금력과 개발 능력 덕분에 지금까지 손대서 안된 사업이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회사다. 때문에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든 제품이 v1.0(시장 진입), v2.0(포지셔닝), v3.0(독과점)의 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2001년 내 놓았던 게임 콘솔 Xbox는 지난 3년 여 기간 동안 적자 실적을 거듭했으나, 사람들에게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는 분명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v2.0에 해당하는 후속작, Xbox 360을 통해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하려는 분위기다.
마이크로소프트 Xbox 360
높은 하드웨어 성능과 폭 넓은 온라인 대응은 기존 Xbox의 특장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Xbox 360도 이러한 특징을 계승한다. Xbox 360은 기존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 기반의 플랫폼을 버리고 PowerPC 계열의 IBM 프로세서를 채택했으며, 이것은 9개의 코어를 가지고 있는 PS3의 셀과 마찬가지로 3개의 멀티 코어로 구성되어 있다. 듀얼 코어 이상의 프로세서는 갈수록 복잡한 연산을 수행해야 하고, 게임 이외의 분야로도 활용될 게임 콘솔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 듯 하다. 또한 Xbox 360은 소니와 합작한 nVIDIA 대신, ATi와 손을 잡고 최신 R520 GPU의 커스텀 버전을 탑재해 3D 그래픽의 성능 향상을 꾀했다. 이로써 Xbox 360은 용도나 해석에 따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PS3에 버금가는 높은 사양의 하드웨어를 갖추었다. 아무래도 현세대의 콘솔 중 가장 좋은 제원을 가지고 있던 Xbox이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기에서도 높은 성능을 기본 경쟁력으로 가져가고 싶었으리라 본다.
Xbox 360에서의 온라인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무료 정책이 도입됐고, 부분적으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종전처럼 패키지를 구매해 좀 더 특화된 서비스를 받는 등 과금 방식이 다양해졌다. 이것은 보다 많은 사용자들을 Live! 서비스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이며, 그렇게 사용자들이 늘어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Live! 네트웍은 자연스럽게 제곱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된다. 하드웨어적으로도 Live! 서비스 활성화의 일환으로 컨트롤러에 원터치 온라인 접속 버튼을 추가했다.
Xbox 360 버튼이 인상적인 새로운 패드
하지만 Xbox 360의 진정한 매력은 기존의 장점을 강화한 것보다, 오히려 v1.0(Xbox)에서 취약했던 부분을 전폭적으로 개선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존 Xbox의 단점으로 꼽히던 투박한 디자인은 일본계 디자인 그룹에 의해 잘 빠진 외관으로 재 탄생했고 크기도 줄었다. 게다가 제품 전면의 패널을 사용자가 임의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컨트롤러는 PS3와 마찬가지로 무선 처리해 더 이상 Xbox는 인테리어를 방해하는 요소가 아닐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종전의 부실했던 대형 서드 파티와 소프트 라인업을 대폭 보강하여 하드웨어만 뛰어난 게 아니라 \'게임이 재미있어야 한다\' 는 당연한 명제에도 부응하는 느낌이다. 이미 공개된 서드 파티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효자\' 테크모는 물론 소니 PS 진영에 큰 힘을 실어주던 남코, 락스타 게임즈, 스퀘어 에닉스와 같은 유수의 제작사들이 Xbox 360 진영으로도 참여 의사를 보였으며, 일본식 RPG의 대부 \'사카구치 히로노부\' 사단을 영입함으로써 [로스트 오디세이], [블루 드래곤]과 같은 대작 RPG의 라인업도 갖췄다. 여기에는 단순히 하드웨어가 끌리기 때문에 제작사가 따라온 것이 아니라, 로열티 면제 정책 등 제작, 유통사의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PS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이 숨어 있다.
개인적으로 현재 가장 기대하는 Xbox 360 게임
로스트 오딧세이 E3 공개 동영상 wmv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11\' XBOX360 테크데모 동영상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의 콘솔 시장 접근 방식이 좀 더 노련해 진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 360과 관련된 흥미 거리들에 대해 미리 조금씩 루머와 사실 정보를 섞어 흘려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전략을 여유 있게 구사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 세계 MTV 채널로 시끌벅적하게 홍보 방송을 쏘는 특유의 물량 공세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기존 Xbox의 마케팅이 후자와 같은 그야 말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면 추진하기 힘든 대규모 물량 공세(비효율적인 행사도 많았다) 위주였다면, 이제 Xbox 360은 게이머들이 스스로 정보를 갈구하는 타이틀이 늘어난 만큼 보다 세밀하고 효과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Xbox 360에 쏟아 붓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든 노력은 결국 소니와 마찬가지로 가정의 미디어 허브 자리를 최대한 차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PS3의 풍부한 표준 입출력 포트에 비하면 Xbox 360은 일견 내세울 것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PowerPC 기반이면서도 윈도를 바탕으로 한 운영 체제를 사용한다는 점 덕분에 윈도 미디어센터 익스텐더와 같이 PC에 담긴 다양한 미디어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점은 큰 매력이다. 기존에 불법적인 개조를 통해 가능했던 작업들을 이제 Xbox 360 스스로 공식적인 거실의 PC가 됨으로써 양지로 끌어낸 셈이다. 요컨대 Xbox 360은 경쟁사 중 가장 먼저 올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300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거실에 놓이는 강력한 게임기이자 미디어센터 PC가 될 전망이다.
닌텐도 레볼루션 - \'올 억세스 게이밍\'
강력한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화려한 게임들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하지만 뛰어난 그래픽은 게임에 사실성과 드라마틱한 요소를 부여하는 한편으로 개발사에게 물적, 인적, 시간적으로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때문에 불황까지 겹친 최근 게임 시장의 트랜드는 신규 장르를 개척하거나 독특한 게임성을 가진 게임을 무리해 만들어 내는 것보다, 영화와 같은 다른 산업의 흥행작을 크로스오버 하거나 기존 흥행작의 후속작을 안정적으로 제작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이미 PS2나 Xbox 급의 게임기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게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차세대기가 등장하는 것이고, 이를 향한 시장의 요구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종종 \'이게 정답인가\', \'끌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기분이 든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가까운 예로 휴대폰은 갈수록 다른 기기들과의 컨버전스를 통해 복잡한 기기로 거듭나고 있으며, 그것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허나 이것은 반대로 단순한 휴대폰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메가 픽셀 카메라와 MP3 플레이어 기능이 없는 대신 깔끔하고 미려한 디자인의 초슬림, 초박형 휴대폰을 요구하는 시장의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고, 실제 그런 제품이 소수나마 출시되어 히트를 치는 걸 보면 지나치게 빠른 변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도 충분히 크다는 걸 잘 말해준다. 리트로(Retro) 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고 말이다.
닌텐도 레볼루션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레볼루션(Revolution)\' 은 대략 이런 컨셉을 바탕으로 제작되고 있다. 한 마디로 게임기다운 게임기가 목표라는 것인데, 이는 앞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강력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게임은 물론 다양한 멀티미디어 활용까지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거실을 점령하겠다는 야심을 보인 것과 상반되는 컨셉이다. 즉, 게이머들에게 충분한 감동과 재미를 주는 걸작들은 현 세대의 게임기로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고, 차세대의 하드웨어는 굳이 지나치게 앞서지 않아도 컨텐츠로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번만큼 차세대기가 정말 \'차세대\' 로 멀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우선 제대로 사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투자해야 할 장비들이 많다. HD급 디스플레이에 5.1채널 사운드 시스템이 이미 있다고 해도, PS3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동일한 성능의 디스플레이를 하나 더 장만해야한다. 만일 그렇게 두 대의 디스플레이를 마련했다 해도 아케이드가 아닌 일반 가정에서 그것을 어디에 둘 것인지는 또 문제가 된다. 결국 \'대중성\' 을 이야기하자면, PS3는 HD 디스플레이가 지금보다 더 폭발적으로 보급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 그 필요성에 대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PS3를 구입해 단절된 네트워크 환경에서 29" 브라운관으로 게임을 즐기는 게 같은 환경으로 PS2 컨텐츠를 즐기는 것 보다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MP3 플레이어가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까닭이 대중성을 띤 규모의 경제, 즉 누구나 가질 수 있고, 좋아하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란 점을 생각하면, 한동안 PS3는 코어 게이머들을 위한 기기로 머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닌텐도는 레볼루션으로 정확히 이 점을 공략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기의 컨셉을 가지려 하고 있다. 일명 \'올 억세스 게이밍\' 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는 닌텐도의 차세대기 컨셉은 스스로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고성능의 하드웨어 개발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의 강점을 잘 살리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닌텐도는 마리오나 젤다 시리즈 같은 자체 소프트에 의해 플랫폼이 유지될 정도로 자사 게임의 인지도 및 완성도가 높아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으로도 먹고 살만 한 회사이긴 하다. 또 현재 진행 중인 PSP와 NDS의 싸움에서 고성능의 기기가 반드시 우위를 점하진 않는다는 걸 확인했기에, 닌텐도가 이러한 컨셉에 자신감을 갖는지도 모르겠다(참고로 NDS는 최근 [닌텐독스]의 발매 덕분에 \'제 2의 발매\' 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판매량이 급증한 반면 PSP는 이렇다할 킬러 타이틀이 없어 다소 시들해져 가는 추세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이름 \'젤다\'(주인공의 이름은 링크!)
소프트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의 적절한 예
프로토타입으로 살펴본 레볼루션의 특징으로는 우선 심플한 디자인을 들 수 있다.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의 말을 빌리자면 \'조용함, 작음, 심플함\' 이 레볼루션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컨셉과 어울리는 디자인이라 할 만 하다. 최종 양산품은 DVD 케이스 3장을 쌓아둔 것과 같은 크기로 줄여낼 계획이라 하니, E3 2005에서 공개된 모습보다 더 컴팩트한 사이즈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독특한 컨트롤러도 레볼루션의 큰 특징이 될 것 같다. 독특한 컨텐츠로 승부하겠다며 NDS에 듀얼/터치 스크린을 채택했듯이, 레볼루션에서는 지금까지의 콘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컨트롤러와 인터페이스가 채택될 것이라 한다. 일각에서는 HMD(Head Mounted Display)가 유력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으나, 오히려 이것은 특별한 것을 찾다가 도가 지나친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반대다.
\'닌텐도 Wi-Fi 커넥션\' 이라는 Xbox Live! 개념의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레볼루션은 이를 위해 유무선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새로운 특징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NDS와의 무선 연결은 물론 전 세계의 게이머들과 대전을 펼칠 수 있다고 하니, 적어도 닌텐도가 독특한 컨텐츠를 위해 몇 가지 새로운 길을 뚫어 놓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E3 2005에서 레볼루션의 빈곤함을 채워줬던 게임보이 마이크로
\'게임보이 마이크로\' 실기 시현 동영상 wmv
E3 2005에서 닌텐도는 레볼루션에 대해 제품 디자인과 개략적인 스펙만 공개하고, 경쟁사처럼 뭔가 직접 시연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오히려 관심을 새 휴대기인 게임보이 마이크로에 분산시켜, 정보 공개의 빈약함을 교묘하게 메우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을 필두로 여러 관계자들이 외쳐댄 \'올 억세스 게이밍\' 도 결국 제품이 나와봐야 변명인지 진짜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가려운 부분을 열심히 설파한 덕분에 레볼루션은 E3에서 공개한 내용에 비해 경쟁기들이 억울할 정도로 호평 받는 분위기다. 물론 한편에선 잔뜩 기대했던 차세대기의 강점으로 하위 컨텐츠 호환을 내세운 닌텐도를 꼬집어 레볼루션 대신 \'에뮬루션\' 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는 등 삐딱한 시선도 있다.
소니, 마이크로소프트와 정 반대의 컨셉을 개발 방향으로 잡은 닌텐도 레볼루션의 판매 예정가는 $200 근처. 발매 시기가 2006년 말 혹은 PS3 발매와 비슷한 시기로 예정되어 있어 3사 중 가장 늦을 것이라는 게 다소 걸리지만 계속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는 것보다는 잘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살린다는 측면에서 이번 레볼루션의 컨셉은 닌텐도로서 반드시 시도해 볼만 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Xbox 360의 긍정적인 변화와 더불어 덕분에 모처럼 3사의 차세대기가 대등하게 경쟁하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