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교육열, 하지만 아이들에겐…… 일본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PC 게임 시장의 황금기가 열리고 패미컴이라는 걸출한 가정용 게임기가 등장하여 본격적인 게임 시장의 역사가 시작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무렵까지도 게임 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의 시장이란 것은 대부분 음성적으로 유통된 일본의 가정용 게임기용 소프트 및 일부 부유층 자제들이나 갖고 노는 것으로 인식된 8비트 PC의 게임들을 한정된 인원들이 카피해서 주고받는 개념이 다였던 것. 그러다가 갑자기 컴퓨터 교육 과정을 정식으로 학교 수업에 넣는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오게 된다. 당시는 1970년대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기초로 국민들 사이에 (주1)치맛바람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교육 열기가 몰아칠 때였으니, 컴퓨터라고 하는 새로운 기계를 국민학교부터 중학교에 걸쳐서 정식으로 수업 과목으로 채택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컴퓨터 학원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고 아직 정식으로 채택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컴퓨터 과정이었지만,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학부모들의 극성에 의해 많은 어린이들이 컴퓨터 학원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거기에 삼성, 대우 등의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펼친 홍보전도 한몫해서 “이제부터는 컴퓨터의 시대! 당신의 자녀도 조기 교육이 필요합니다” 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그대로 적중했다. 교육용 컴퓨터 바람이 불어 닥친지 얼마 안 돼 각 가정에는 MSX나 애플과 같은 8비트 PC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PC들은 엄연히 교육용 PC였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는 모두 국민학교의 산수, 국어 과정을 가르치는 내용들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이런 교육용 컴퓨터 바람이 불기 이전에도 오락실이란 것이 존재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존재했다. 그런데 오락실이란 것은 학부모 입장에서 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에 일절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사회 통념상 아이들에게 유해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 그런 사회적 통념 탓에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어린이들, 특히 한창 공부할 나이의 학생들에게 위험한 장난감으로 치부되던 세상에서 아이들이 내몰린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과정 이외에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준 것이다. 당시의 베이직이라는 것은 지금의 (주3)비주얼 베이직 같은 것과 비교할 때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베이직 과정만 마스터해서는 게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컴퓨터 학원에 모인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르쳐준 간단한 명령문을 쳐넣어 모니터에 불꽃놀이 효과를 구현해보는 것보다는 주말마다 모여서 서로의 게임팩을 교환해보고 다른 아이들의 화려한 게임 플레이를 따라 하면서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당시 나는 (주4)MSX-베이직을 힘겹게 끝내고 (주5)어셈블리어 과정에 들어가는 단계에 있었다. 당장 배워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본의 게임팩으로 했던 게임들을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어셈블리어 공부를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러나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MSX-베이직에서는 명령문 개념으로 10행, 20행, 30행…… 형태의 주관적으로 풀어가는 언어였던데 반해 어셈블리어 과정이란 것은 결국 객관적으로 하드웨어에 접근하는 방식의 언어였기 때문에 국민학생인 내게는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당시 MSX-베이직 과정을 끝내고 블록 깨기 같은 게임도 무난히 만들어 냈던 학생들 대부분이 포기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게임 개발자로서 꿈을 한 수 접게 되는 첫 번째 계기였던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 자체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져서, 주말이면 항상 친구들과 학원에 모여 여러 가지 게임들을 플레이하며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는 식으로 게임 내용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전국적으로 이러한 환경을 경험한 많은 개발자 지망생이 있었던 시대. 그런 시대로 기억하고 있다
훗날 한국 게임 시장의 코드를 결정한 양대 플랫폼 1980년대 후반의 컴퓨터 학원 부흥기는 한국 게임 시장의 트렌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게임 시장의 직접적인 사용층이 되는 유년기의 아이들이 이 시기를 통해 게임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고 훗날 게임이란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며 구입해주는 유저층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 유난히도 게임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열정으로 넘친 아이들이 훗날 게임 개발자, 게임 관련 업종의 종사자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답답한 모노크롬 화면과 단순한 RGB 화면에서 움직이는 스프라이트가 이들의 유년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장래 한국 게임 시장의 초석을 다지는데 일등 공신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왠지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성공하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지만 일부는 실패하고 애초의 열정이 변질 되어 자신의 뜻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단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기를 거치지 않은 세대가 훗날 돈과 경제적 논리에 의해 시장을 개척하게 되는 트렌드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당시 컴퓨터 학원에 있던 8비트 PC는 MSX와 APPLE 두 종류가 있었다. MSX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본풍의 PC로, 256컬러까지 지원되는 화려한 색감에 PSG 3중 화음으로 출력되는 강력한 사운드. 다양한 타이틀…… 역시나 일본 게임이라는 것은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내용이 모토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의 시선을 뺏기는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당시 MSX에서 성인용 소프트웨어도 많이 돌아다녔다는 점.
(주6)핑크삭스, (주7)가루이자와 유괴안내 같은 18禁 대상의 소프트웨어가 소프트웨어 판매점, 학원가 등을 통해 무제한으로 청소년들에게 유포되었다. 이 성인용 소프트웨어를 하기 위해서 PC를 접하고 게임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 아이들도 많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면, APPLE은 철저히 서양 스타일의 PC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연산을 이용해 상대의 포 진지를 공격하는 스카치를 비롯해 영어로 나오기 때문에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독특한 설정과 테마가 돋보이는 카멘샌디에고의 모험과 같은 어드벤처 및 RPG 게임이 주종을 이루었다. 보급의 한계로 인해 컬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운드는 그저 삑삑거리는 비프 음이 다였던 PC. 컴퓨터 학원은 주로 MSX와 APPLE로 반을 나누어서 가르쳤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화려한 게임으로 무장한 MSX를 만지기 위해 MSX 반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수이지만 APPLE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뭔가 생각하거나 직접 풀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부류였는데 게임에서 영어로 나오는 대화 내용을 대부분 사전 찾아가며 노트 필기할 정도로 여념이 없던 열성 RPG 팬들이었다. 차후 이 두 플랫폼에서 갈렸던 유저 성향이 그대로 한국 게임 시장의 성향을 결정하게 된다. MSX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16비트 PC 시장으로 바뀐 이후에도 일본풍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콘솔 게임 쪽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APPLE을 선호했던 유저들은 주저 없이 16비트 PC의 게임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주8)TRPG라고 하는 정통파 RPG 보드게임의 마니아들도 많았는데 이 들 중 일부는 천리안, 하이텔 등의 피시 통신을 이용해서 서비스하는 쥐라기 공원, 단군의 땅 같은 머드 게임의 개발자가 되었고 (주9)머드 게임을 거쳐 세계 최초의 머그 게임으로 불리는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주1: 196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불기 시작한 교육 열풍. ‘내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잘 나야 한다’는 이기심에서 출발한 이런 열풍은 고액과외, 야간보충수업, 촌지사건 등의 폐단을 낳았다 주2: 1980년 앨범 “裸足の季節”(맨발의 계절)로 데뷔해 일본 전역에 아이돌 신드롬을 탄생시킨 가수 주3: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개발한 윈도 응용 프로그램 개발 언어. 기존의 BASIC 언어가 갖는 편집기, 컴파일러, 디버깅 기능 외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기능을 추가한 통합 개발 환경이다 주4: 1983년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개발한 MSX 전용 개발 언어 및 운영 체제, 하드웨어의 ROM 메모리에 탑재 되어 있어 직접 OS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주5: 기계어의 2진 코드를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아 보기 쉽도록 부호화시킨 개발 언어 주6: 1990년 웬디 매거진에서 발매한 성인용 디스크 잡지. 256컬러로 그려진 미소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미니 드라마가 옴니버스 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주7: 에닉스에서 MSX1용의 1메가 롬팩으로 1986년에 발매한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 국제적 휴양지로 잘 알려진 가루이자와의 별장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두고 여러 명의 미소녀(?)와 문답식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스토리 주8: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의 약자.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역할을 분담하여 대화하면서 하는 게임으로 유럽에서 도래되었다고 한다. 현재 RPG의 모체가 되는 게임 주9: MUD(Multiple User Dialogue), 멀티플 유저 다이얼로그 게임의 약자. 텍스트 기반의 환경에서 즐길 수 있고 1990년대 중반 주로 PC 통신을 통하여 서비스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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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한국 게임 시장의 흥망사(3)-컴퓨터 학원은 개발자들의 인큐베이터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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