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더 미디엄 | 출시일 | 2021년 01월 28일 |
개발사 | 블루버 팀 | 장르 | 호러 |
기종 | PC, X|S | 등급 | 미분류 |
언어 | 한국어 미지원 | 작성자 | PforP |
고이 잠든 얼굴 위로 신의 손길이 스쳐 지나가고 이제 모르던 것을 알게 되네. 가늠만 하고 의심했던 것들을 감긴 눈망울 속에 먼 땅의 풍경이 맺혀있네. 그렇게 영원의 처소로 가게 되리라.
울면서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은빛 끈이 끊어지고 금빛 고리가 죄여 들리라. 깨어진 바가지가 물 위에 떠 있고 우물의 도르레는 부숴졌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리라.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리라.
-보이치에흐 하스, 영화 '모래시계 요양원' 중
*스토리에 대한 잠재적인 누설이 있습니다.
오, 조국 폴란드여, 너는 그렇게 방금 무덤에 파묻혔으니 너에 대해 말할 힘조차 없구나
폴란드의 고도라 할 수 있는 크라쿠프
크라쿠프 일대는 유럽 역사의 비극적인 순간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크라쿠프는 폴란드 제2의 도시긴 하지만, 중부 유럽을 여행한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인에겐 친숙하진 않을 것이다. 크라쿠프는 한국으로 치면 경주다. 역사 유적과 문화유산이 많은 고도(古都)와도 같은 곳으로, 실제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처럼 11세기에서 15세기엔 폴란드의 수도였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유적이 적은 수도 바르샤바랑 반대인 상황인데, 사실 이렇게 유적이 많이 살아남은 이유엔 제2차 세계대전하고 관계가 있다. 전쟁 당시 쑥대밭이 되었던 바르샤바랑 달리 크라쿠프는 나치 진군 당시 도망가버린 시장 대신 부시장이 인질을 자처해 폴란드 총독부로 삼아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남은 결과 크라쿠프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만행의 중심지가 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가 크라쿠프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이 설명될 것이다. 크라쿠프는 그 점에서 폴란드의 영광과 슬픔으로 가득 찬 역사가 집약된 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도 전환점이라 고백했던 레이어스 오브 피어 시리즈. 1인칭 호러 어드벤처라는 유행을 따랐지만, 차이점도 보였던 게임이었다
이후 블레어 위치 같은 메이저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수준까지 성공했다
크라쿠프에 기반한 게임 제작사 블루버 팀은 2008년 니브리스라는 잠깐 있다가 사라진 게임 제작사에서 남아있던 직원들이 새로 설립한 인디 게임 제작사다. 니브리스는 당시 Sadness라는 공포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려다가 사라졌는데, 블루버 팀이 두각을 나타낸 영역 역시 비슷했다. 이들의 출세작 ‘레이어스 오브 피어’는 1인칭 공포 어드벤처였다.
‘레이어스 오브 피어’는 암네시아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생존 대신 방을 수색하며 아이템과 단서를 모으며 스토리를 유추하고, 분위기에 걸맞은 기괴한 연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차별점이 있었다. 암네시아 붐을 이용하면서도,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에 매혹되어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괴하면서도 독특한 연출 간의 결합이라는 노선은 평단에서는 반응이 다소 엇갈렸지만,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고, 사이버펑크 호러를 내세운 후속작 ‘옵저버’에서는 유명 배우 룻거 하우어를 기용하고 블레어 위치 공식 게임을 만드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런 인지도 상승이 레이어스 오브 피어 발매 이후 4년 만에 이뤄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플레이 분량도 짧고 게임 디자인 면에서 크게 새로운 걸 고안할 필요가 없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블루버 팀은 빠른 속도로 다작을 하는 게임 제작사다.
How to Be Spirit Medium
"우리는 가는 곳마다 불안에 떨어야 하고, 모든 이웃들은 우리를 적대시하며, 막다른 궁지로 몰아세우고서, 우리의 생명을 재촉하고 있고... 세상은 우리의 비탄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게임 디자인 자체는 평이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에 가깝다
퍼즐 디자인이나 난이도는 무난하나 힌트 시스템이 없어 익숙하지 않으면 헤맬 수도 있다
고정 시점의 어드벤처 게임은 꽤 오래간만이긴 하다. 전반적으로 사일런트 힐의 오마주 성향이 짙게 드러나는 편
본작 더 미디엄은 블루버 팀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우선 본작은 공포 어드벤처이긴 하지만, 전작과 달리 3인칭 어드벤처 게임이다. 그리고 개발 계획만 따지자면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이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게임을 냈던 걸 생각해보면 설립 초기부터 계획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후술할 영계와 현계 간의 게임 디자인을 구현하는데 애를 먹어서 미뤄졌다고 한다. 시점 변경 역시 이런 게임 디자인 구현을 위해서 내린 결단이라고 한다.
여기다 블루버 팀은 그동안 쌓아온 입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드림 매치를 일부 이뤄냈다. 레이어스 오브 피어부터 블루버 팀은 연출에 있어서 공공연연히 사일런트 힐의 팬이라는 걸 드러냈고, 실제로 ‘더 미디엄’에서는 사일런트 힐의 음악 담당 (야마오카 아키라), 성우 캐스팅 (메리 엘리자베스 맥글린, 트로이 베이커) 를 기용하는데 성공했다. 어찌보면 성공한 팬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일런트 힐과 상관없지만 주인공 매리앤과 주요 조역 토마스의 페이셜 모델은 폴란드 유명 배우 베로니카 로사티와 마르친 도로친스키를 기용했다.
게임 자체는 평범한 3인칭 3D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이다. 어드벤처 게임을 오래한 사람들이라면, '친숙한 디자인이네' 싶을 정도로 평이하다. 그렇기에 이 리뷰에서 언급할 게임 디자인 일부는 작년 여름에 나왔던 '비욘드 어 스틸 스카이'랑 겹친다. 스테이지 내 핫스팟을 조사해 아이템을 획득하고 퍼즐을 풀어야 넘어갈 수 있는 스테이지 구성, 아이템 조합 및 조사 시스템, 인벤토리 및 아이템 중심의 UI이 그렇다.
퍼즐 디자인도 상당히 고전적인 어드벤처 게임류에 가까운데, 주변 단서를 열심히 찾고 추리하는 스타일에 가깝다. 나름 튀어보이는 '스틱을 이리저리 돌리며 기억 조각을 맞추는 퍼즐'도 기존 어드벤처 게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전반적으로 디자인이 반복적인 구석이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크게 모난 부분 없이 무난한 편이다. 후술할 영매 관련 디자인과 연계한 퍼즐도 나쁘지 않다. 다만 힌트 시스템은 없다는 건 아쉽다. 퍼즐 난이도가 높은 건 아니지만 일부 퍼즐은 직관적이지 않아서 헤맬 가능성이 있다.
물론 호러 게임이다 보니, 차이점도 있다. 일단 더 미디엄의 카메라 시점은 고정이다. 초기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나 사일런트 힐처럼 스테이지 구간별로 카메라 시점이 고정되고, 플레이어가 고정된 시점에 맞춰 스틱 조작을 하는 종류의 어드벤처 게임을 생각하면 된다. 최근에 나온 게임 중 이런 시점을 취한 게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구시대적인데, 이 게임이 사일런트 힐 오마주 성향이 강한 걸 생각하면 일부러 불편한 디자인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본작에서는 사일런트 힐이 그랬듯이 괴물과의 추격전과 잠입 모두 등장하는데 이런 고정 시점은 행동에 제약을 가하기에 좋은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추격전이나 잠입 디자인 자체는 평범한 편인데, 후반부에 등장하는 유체 이탈을 활용해 적을 따돌리는 디자인은 괜찮았던지라 이런게 좀 더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 있다.
제작진은 본작 제작이 계속 미뤄졌던 이유로 영계와 현계를 분할해서 보여주는 디자인을 꼽았다
유체 이탈을 비롯한 영매 스킬, 영혼 에너지 활용 같은 디자인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신 블루버 팀이 꺼내든 카드는 영계와 현계를 오가는 디자인이다. 설정상 매리앤은 영매인데, 특정 구역에 들어가면 매리앤의 자아는 영계와 현계로 나뉘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영계와 현계를 넘나들 수 있는 구간은 화면이 분할되며, 이벤트 영상 역시 분할된 상태로 진행된다. 영계와 현계는 스테이지 구성에서 서로 차이가 있으므로, 이런 차이를 활용한 퍼즐과 진행이 게임 진행 대다수를 차지한다.
플레이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영계와 현계를 넘나들 수 있다. 첫 번째는 키를 눌러 유체 이탈하는 방식이다. 유체 이탈을 하게 되면 현계의 매리앤은 그대로 남게 되고, 영계의 매리앤만 움직이게 된다. 유체 이탈엔 제한 시간이 있으므로 본격적인 진행보다는, 빠르게 막힌 통로를 열거나 필요한 아이템을 획득하는 데 쓰게 된다. 두 번째는 거울을 통해 아예 영계로 넘어가는 방식이 있다. 영계 스테이지에서 본격적으로 진행할 때 등장하는데, 이 거울을 활용하는 방식이 고전 어드벤처 게임인 '어둠의 씨앗'의 오마주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출이 유사한 구석이 있다. '어둠의 씨앗' 역시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로 거울을 활용하며, 플레이 도중 깨진 거울 조각을 맞추는 퍼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계와 현계로 나눠진 디자인 이외에는, 영매 관련 스킬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먼저 플레이어는 통찰력이라는 특수 시야를 쓸 수 있다. 통찰력은 스테이지 내 숨겨진 아이템이나 상호작용 포인트를 찾거나, 영혼이 남긴 단서나 진행 동선을 파악하는데 쓰인다. 몇몇 아이템 같은 경우 통찰력을 쓰면 스틱을 조작해 물건에 남겨진 사념을 읽을 수 있다. 통찰력 이외에는 주로 영혼 에너지 능력이 있다. 영계 스테이지에는 영혼 우물이 있으며, 플레이어는 이 영혼 우물에서 영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이 영혼 에너지를 쓰는 기술은 두 개가 있다. 첫 번째로는 영혼 강타Spirit Blast가 있다. 영 에너지를 응축해 폭발하는 능력인데, 주로 영계에서 충전할 수 있는 전기 패널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용도로 쓰인다. 또 하나는 영혼 방패 Sprit Shield가 있는데 에너지 실드를 생각하면 좋다. 나방들로 막혀있는 구간을 통과할 때 주로 쓰며, 추격자에게 붙잡혔을 때 탈출 용도로 쓸 수 있다. 공통으로 영혼 에너지는 무한정 쓸 수 없으며, 다 떨어지면 우물로 돌아가 충전해줘야 한다. 매리앤의 팔을 보면 영혼 에너지 잔량을 확인할 수 있다.
추격전이나 잠입 스테이지가 등장하는데 완성도는 그럭저럭이다. 최후반부에 영매 능력과 연계해 따돌리는 디자인 같은 요소가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상호작용이나 길 안내 시스템이 잘 안 보이는게 큰 단점이다. 부족한 최적화도 아쉽다
전반적으로 더 미디엄은 어드벤처 장르의 기초 요소에 충실해지려는 게임이고, 결과물 자체는 무난하다. 하지만 1인칭 게임을 만들다가 3인칭 게임을 시도하면서 생긴 시행착오와 기술적 미숙함이 보인다. 우선 고정 시점과 관련 있는 단점인데 안내 시스템이 다소 엉성한 편이다. 힌트 시스템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상호작용이나 길 안내 디자인이 보기 불편하다. 공중에 나비가 조각을 흩날리는 안내 디자인은 그래도 낫지만, 발자국 디자인 같은 경우 주변 환경 그래픽과 섞여서 티가 잘 안 난다. 심지어 발자국의 주인이 아이인 경우가 대다수라서 너무 작아서 파악하기 힘들다.
심지어 중반부부터 동선이 꼬여있는 스테이지가 등장하기에 안내 시스템의 부족함이 잘 드러난다. 캐릭터 모션이나 스테이지 간 연결이 어색한 것도 단점이다. 정확히는 구간별 출입구 디자인이 직관적이질 못해서, 이게 맞는 출구인가 직접 확인해봐야 하는 경향이 있다. 캐릭터 움직임도 그다지 부드럽다고 할 수 없는 것도 한몫한다. 이외 PC판 기준으로는 최적화 문제가 있는데, 두 세계를 동시에 렌더링한다는 기술 설계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게 크지 않나 보인다.
게임 자체는 무난함이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과감했으면 괜찮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의 20세기, 너의 21세기: 선조들의 밤은 나의 새벽보다 슬프다
감시자들은 그들의 죽음을 재촉하고, 적들은 무덤 파는 사람들처럼 멀리서 손짓하는데,
그들은 심지어 하늘에서조차도 희망을 찾을 수 없으니.
-아담 미츠키에비츠, 시 '판 타데우시' 중
일반적인 호러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자극적 요소는 적다. 점프 스케어도 적은 편
전반적으로 가족 멜로드라마적 성향이 강하다
공포 게임으로써 '더 미디엄'은 자극적이진 않다. 깜짝 놀라는 것도 적고, 상술한 추격전이나 잠입 요소도 적당한 긴장을 주는 수준에서 그친다. 자극보다는 쇠락하고 비틀린 분위기에 집중하는 편인데, 실제로 제작진 역시 심리적 공포에 집중했다고 밝히고 있다. '더 미디엄'의 서사는 역사적 비극과 얽혀있는 가족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이를 잘 보여주는 설정으로 매리앤의 영매가 있다. 매리앤은 영혼하고 공감하고, 나아가 안식을 줄 수 있는 영매사다. 그렇기에 이 게임의 유령들은 사악한 일부를 제외하면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애도와 연민의 대상이다.
매리앤이 죽은 양부에게 안식을 주는 도입부는 그 점에서 게임 전반에 감도는 처연한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더 미디엄'의 강점은 자극적인 충격 효과 대신 기괴하면서도 아련한 감정/분위기 묘사에서 비롯된다. 도입부 이후 전개 역시 매리앤이 니와 리조트에서 억울하게 살해당한 영혼들을 안식을 주면서 자신과 관련된 과거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게임에서 자주 보게 될 소녀 유령인 슬픔 Sadness 은 그 점에서 게임이 추구하는 애도와 연민을 축약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애도와 연민은, 폴란드의 부조리한 현대사와 연결된다.
본작의 배경이 블루버 팀이 위치한 크라쿠프(와 그 근방)라는 점은 그 점에서 중요하다. '더 미디엄'은 크라쿠프의 슬픈 역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게임이다. 제작진 역시 인터뷰에서 영계와 현계 간의 관계, 나아가 게임 디자인에서 과거에 대한 폴란드인의 생각을 반영하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유령이 기본적으로 과거에 매여있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게임에 드러나는 영계가 단순히 기괴하고 무서운 세계가 아닌 좀 더 복잡한 함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본작의 배경년도는 1999년이다. 초반부 신문에 등장하는 NATO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폴란드 입장에서는 20세기의 소련 공산주의 시절을 청산하고, 21세기의 서방 자본주의에 편입되어가던 시기다. 시대적 전환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99년이라는 시대 배경이 의미심장한데, 실제로 냉전 이후 폴란드 사회상에 반영된 게임이다
니와 리조트와 모티브가 된 크라코비아 호텔 (오른쪽). 크라코비아 호텔은 크라쿠프 시내에서 2011년까지 운영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디스코 엘리시움'처럼 공산주의 문화의 잔해가 흥미로운 뒷맛을 남기는 게임이기도 하다
'더 미디엄'은 21세기를 앞두고 20세기의 2차 세계 대전과 공산 정권을 되돌아보는 게임이다. 이 게임의 진상은 20세기 폴란드 역사의 비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문제가 있다. 이 게임의 첫 번째 악당은, 홀로코스트가 만들어낸 괴물이라 할 수 있다. 그다음 2차 세계 대전 이외에도,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 역시 중요하게 다뤄진다. 두 번째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부터는, 공산주의 시절 폴란드의 억압적인 분위기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그 점에서 대만에서 만들어진 공포 어드벤처 게임 '반교'하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제작진은 이런 호러 장르와 역사적 관점의 결합에 대해 미국 미니시리즈 '체르노빌'과 독일 미니시리즈 '다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작중 배경이 되는 니와 리조트는 그 점에서, '더 미디엄'이 탐구하려는 과거의 폴란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설정상 공산 정권 시절 만들어진, 니와 리조트는 실존하는 호텔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크라쿠프 시내에 있는 호텔인 크라코비아 호텔로, 1960년대 공산 정부 시절에 지어진, 전형적인 공산주의식 미감이 반영된 호텔이다. (다만 1999년에도 폐쇄된 상태였던 니와 리조트랑 달리 크라코비아 호텔은 2011년에 폐관되었다) 그렇기에 프리피야트 시립 수영장 같은 공산주의식 수영장 디자인이라던가, 선전 포스터 같은 1980년대 공산권/폴란드 문화가 남긴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본 게임을 독해하는 재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와 리조트는 그 점에서 쓸쓸히 퇴장한 공산주의 문화와 미감이 만들어낸, 좋은 귀신 들린 저택이라 할 수 있다. '더 미디엄'은 오로지 폴란드, 그것도 크라쿠프에서만 가능한 게임이다. 미국이 아닌 서구 배경이라면 적당히 재조립할 수 있었던 '레이어스 오브 피어' 시리즈나 프랜차이즈가 기대고 있는 미국 전통에 기반했던 '블레어 위치', 아예 미래 사이버펑크인 '옵저버' 등 '지역색'이 적고 '세계화'된 배경과 감수성을 내세웠던 블루버 팀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동유럽은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미학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한데, 폴란드도 그 중 하나다. 폴란드 초현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알프레드 레니카
제작진은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더 미디엄'엔 단순히 '사일런트 힐' 워너비라 볼 수 없는, 뿌리 깊은 미적 전통이 있다. 바로 자국의 초현실주의다. 동유럽 초현실주의가 부흥하게 된 계기는 1940년대 이후 공산 정권의 성립과 관련이 있는데, 공산 정권이 표준으로 여기는 미학인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검열에 저항하기 위한 대안에 가까웠다. 공식적으로 '더 미디엄'이 존경으로 표하는 초현실주의 전통은 화가 즈지스와프 벡신스키가 있다. 벡신스키는 삶의 단조로움과 더불어 전쟁의 공포, 공산 정권 시절 황폐한 심리를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그려냈는데, 그가 그린 그림을 본다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갈색과 적색 위주의 두텁고 어두운 색감, 표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지거나 분리된 얼굴 ('더 미디엄'은 여기다 가면이라는 소도구를 활용해 변주하고 있다), 특정한 소도구를 극도로 확장하거나 비튼 세트 디자인에서 벡신스키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토마스가 '탐사'하는 심리 세계는 그 점에서 벡신스키의 유산을 충실히 공부해 묘사해 낸 근사한 지옥이다. 물론 아르카디우스 레이코프스키와 야마오카 아키라가 담당한 음악 역시, 과장하지 않고 비주얼에 걸맞는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벡신스키가 비주얼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전개나 연출에 있어서는 현대 폴란드 영화의 전통과 닿아있다. 특히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밤의 제3부분'이나 '악마', (브루노 슐츠의 소설을 영화화한) 보이치에흐 하스의 '모래시계 요양원' 같은, 역사적 비극을 호러/판타지 장르와 초현실주의를 빌어 표현한 폴란드 영화들의 영향력이 강하다. 상술한 영화들에서 인물들은 역사가 주는 부조리한 고통에 짓눌려있으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모호한 시공간을 헤매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이 헤매는 모호한 시공간은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다. '더 미디엄'의 전개와 연출 역시 이런 그로테스크 미학에 충실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종종 무너지고, 때론 과잉되고, 때론 매혹적으로 배치된 비현실적인 배경과 소도구들 사이로 부조리한 고통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허우적거린다. 이런 인물들을 관찰자이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매리앤 역시 역사적 비극 속에서 자신과 관련된 비밀와 마주하며 많은 고뇌를 겪게 된다.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부분이 있다면, 영혼이 쓰고 있는 가면이었다. 가면 디자인 그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얼굴을 잃어버린 영혼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 가면을 찾아서 씌워주는 전개가 여러모로 씁쓸한 감정을 자극했다. '더 미디엄'은 역사에 희생된 무명의 희생자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찾아주는 얘기기도 하다.
여러모로 '디스코 엘리시움'와는 사상적으로 반대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점에서 후반부의 한 스테이지는 공산 정권의 감시 체제에 대한 폴란드인의 트라우마를 읽을 수 있다
어찌보면 '디스코 엘리시움'처럼 슬라브 국가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게임인데, 정치사회적 관점은 '디스코 엘리시움'과 확연히 다르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네오 누아르와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 실패한 혁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산주의가 여전히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이고 있는 게임이다. 이런 관점은 박노자나 슬라보예 지젝 같은 구 공산권 출신 진보 사상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점이다. 하지만 '더 미디엄'은 공산주의 정권 (정확히는 스탈린주의식 감시 체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중 핵심 캐릭터인 토마스는 매리앤처럼 영매인데, 이 토마스가 어떻게 능력을 얻었는지에 대한 설정부터 시작해 과거사, 분열적인 인격 묘사, 다소 폭력적인 해결 방식은 현대 폴란드인이 생각하는 '공산 정권의 폭압성이 폴란드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된 악당 역시 전형적인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에 충성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소비에트 정권 나아가 현 러시아의 패권주의를 혐오하고 경계하는 구 소련 출신 슬라브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반 소련적인 관점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폴란드는 이전부터 러시아의 압제에 시달렸으며, 지금도 러시아를 가상 적국으로 볼 만큼 유구한 악연이 있다.
최종 보스의 정체와 더불어 결말이 새벽에 끝난다는 점은 그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미디엄'은 더 이상 이런 비참한 역사와 고통이 이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통의 연쇄를 끊는 방법 역시 약자의 희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매리앤의 마지막 선택 역시 작중 악당들이나 토마스의 선택하고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자세한 내용은 누설이라서 적진 않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가톨릭적 휴머니즘에 기반한 대답으로 제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진은 '더 미디엄'이 매우 '개인적'인 게임이라 밝혔는데, 본작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작가진 나아가 제작진의 가족사에서 역사적 비극이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분명 다룰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고,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뤘긴 하지만 쿠키 영상은 아리송한 구석이 있다. 후속작을 암시하는 내용이긴 한데, 다소 생뚱맞게 붙어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결말에 대해서는 누설하지 않겠지만, 역사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끊는 방법에 대한 질문과 답이 담겨있다
'더 미디엄'은 두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콘셉트를 제외하면, 평이한 (종종 부족함을 보이는 기술적 완성도)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골격과 폴란드에서만 만들 수 있는 흥미로운 서사와 인상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만약 어드벤처 게임을 좋아하지 않거나 서사를 음미할 생각이 없다면, 추천할 게임은 아니다. 여기다 2000년대 이후 호러 어드벤처 게임의 대세라 할 수 있는 극한의 서스펜스를 밀어붙이는 1인칭 생존 어드벤처하고도 다른 노선이기에 이런 쪽을 찾는 사람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 반대로 '반교'나 '환원'처럼 역사적 비극과 호러 간의 결합을 추구한 호러 어드벤처나 벡신스키 같은 동유럽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미디엄'은 꽤 괜찮은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내용과 소재를 좀 더 잘 살릴 수 있는 개성이 담긴 게임 디자인이었다면 좀 더 좋았을 뻔 했지만 말이다.
자극적인 호러 게임을 찾는 사람이라면 추천하지 않지만, 분위기를 음미하거나 호러라는 렌즈를 통해 역사적 문제를 바라보는 걸 좋아하면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디자인이 다소 평이한게 흠이긴 하지만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만 하리.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시 '끝과 시작' 중
작성 PforP / 편집 안민균 기자 (ahnmg@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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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미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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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bs.ruliweb.com/game/85613/read/2507212 호러만 생각하시고 플레이하신다면 실망하실 수 있고 다소 게임 디자인이 평이한게 문제긴 하지만, 약간 깊이감이 있는 게임을 원하거나 퍼즐을 기반으로한 어드벤쳐물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꽤 재밌게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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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스팀판은 유저 한패 제작중이라고 하네요 (초벌번역 끝난 상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xboxconsole&no=67173&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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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생각보다 꽤 재밌습니다. 근데 언어 압박이 상당해서 영어가 안되면 내용 이해나 게임 진행에 곤란한 점이 굉장히 많을 겁니다. 플레이 타임은 5시간에서 6시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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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이네요 한글 패치되고 세일하면 그때 해보는걸로 게임패스는 유저패치가 안되니 너무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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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제목때문에 무슨 광고글인줄 알았음 얼굴 없는 영혼들은 끝없는 밤의 밑바닥을 헤맨다 ㅇㅈㄹㅋㅋㅋ | 21.02.26 13: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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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백치도 만만찮은 중2병 닉네임입니다만. 동족혐오라는 거죠? | 21.03.04 2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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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미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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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모닝스타
PC/스팀판은 유저 한패 제작중이라고 하네요 (초벌번역 끝난 상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xboxconsole&no=67173&page=1 | 21.02.25 1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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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kman
좋은 소식이네요 한글 패치되고 세일하면 그때 해보는걸로 게임패스는 유저패치가 안되니 너무 아쉽... | 21.02.26 15: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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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생각보다 꽤 재밌습니다. 근데 언어 압박이 상당해서 영어가 안되면 내용 이해나 게임 진행에 곤란한 점이 굉장히 많을 겁니다. 플레이 타임은 5시간에서 6시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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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bs.ruliweb.com/game/85613/read/2507212 호러만 생각하시고 플레이하신다면 실망하실 수 있고 다소 게임 디자인이 평이한게 문제긴 하지만, 약간 깊이감이 있는 게임을 원하거나 퍼즐을 기반으로한 어드벤쳐물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꽤 재밌게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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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 리뷰 한때 점수 올린적 있었어요 그때 논란 엄청 많아서 다시 점수 기재 안함 | 21.03.21 20: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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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알고 있음 ㅋㅋㅋ 저분 진짜 장난 아님 ㅋㅋㅋㅋ | 21.03.21 1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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