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북미의 \'게임기 전쟁\'이 한참 불붙고 있을 때다. PS2가 1년 앞서 나간 상태였지만 아직 여러모로 불안했다. MS는 브랜드와 더욱 강력한 성능을 앞세운 X박스를, 닌텐도는 왕좌의 탈환을 꿈꾸며 게임큐브를 시장에 내보내려던 순간이었다. 소니의 입장에선 이들과 맞설 수 있는 킬러 소프트웨어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전문가들의 대부분 코나미의 초대작 <메탈기어 솔리드 2>가 이러한 저격수 노릇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북미권에서 두 게임기의 도전을 물리치고PS2의 입지를 세운 구세주는 <그랜드 시프트 오토 3 GTA3>였다. 판매 주기가 짧은 보통의 타이틀과 달리 이 게임은 꾸준히 판매량을 유지하며, PS2의 시스템 셀러(하드웨어 판매를 견인하는 게임)가 되었다. 2003년 8월 현재, 오리지널은 약 450만장을, 그리고 속편인 는 530만장을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PC와 PS로 발매되었던 전작들도 일정한 고정팬을 지니고 있었지만, 시리즈는 결코 \'대중적\'인 타이틀은 아니다. 주인공은 보스의 명령을 받아서 조직의 더러운 뒷일을 손보는 초보 깡패다. 정의, 모험, 우정과 같이 익숙한 게임의 키워드와는 거리가 먼 이 게임이 어떻게 PS2의 시스템 셀러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북미에서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연령층이 옮아간 데에서 찾을 수 있다. 1세대 비디오게임의 아이콘인 마리오와 소닉을 동경하며 패드를 잡았던 아이들은 자라서 성인의 나이에 들어섰다. 머리가 자란 이들이 여전히 마리오를 원했을까? 성인 게이머에게 아기자기하고 화사한 동화 속 세계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들은 보다 노골적이고 사악한 욕망에 이끌렸다. 현실에서 벌어질 법 하지만 실제로 겪을 수 없는 것들, 바로 게임이 대신 줄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는 이렇게 변화한 게임 소비층의 욕구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이미 존재했던 형태였지만, 대중화된 플랫폼의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그 잠재력을 비로소 폭발시키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탑뷰(카메라를 머리 위 둔 시점)에서 역동적인 3D로의 시점 전환도게임의 성공에 기여했다. 전작들과 유사한 플롯과 진행이었지만 의 3D 그래픽은 게임의 감각을 몇 배로 증폭시켰다. 탑뷰에서는 운전, 암살, 총격전과 같은 행위는 상징적인 것일 뿐 사실적인 몰입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3D로 탈바꿈한 는 범죄의 도시 \'리버티시티\'를 화면 위에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게임이 화제가 된 만큼 를 둘러싼 잡음도 많았다. 얼마 전 북미에서를 즐긴 청소년들이 저지른 모방범죄가 큰 논란이 되었다. 앞으로 게임의 표현은 사실성을 더해갈 것이며, 이에 기대어 은밀한 꿈을 좇으려는 사용자의 요구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게이머의 욕망과 사회적 부작용 사이에 타협점이 있을까? 이미 대형 히트작이 된 가 던져준 과제이기도 하다.
< 허준석 anarinsk@hananet.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