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면서-전반적인 평가
'총을 쏜다'라는 행위는 중의적이거나 다층적일 수 없다. 총은 무기이며, 탄환을 직선으로 발사하고, 올곧게 직선으로 나아가서 적을 파괴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총이란 도구 자체가 그렇기에 총을 주요한 무기로 다루는 게임들, 슈터 장르는 무기를 다루는 액션에 있어서 대체로 직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직선적인 부분이 거부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총을 다루는 게임들 대부분이 인간을 손쉽게 죽인다는 테마를 다루기에 폭력적인 게임이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직관성의 미학이야말로 슈터 장르가 갖고 있는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하고도 직관적이기에 수많은 게이머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나 배틀필드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들이 1,000만장 단위로 소프트를 팔면서 시장을 리드하는 것도 슈터 장르가 게이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FPS와 TPS, 통칭 슈터 장르는 전세계 게임 시장 트랜드라 할 수 있다. |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스플래툰이란 게임은 '총을 쏜다'라는 슈터 장르의 발상 자체를 뒤집었다. 물총을 이용해서 색칠을 하고(물론 상대방을 쏠 수도 있다), 색칠을 한 면적이 얼마나 넓은가에 따라서 승패를 겨룬다(레귤러 매치의 경우, 가치 매치 역시도 룰이 좀 다르긴 하지만 본질은 똑같다-얼마나 색을 잘 칠하는가). 스플래툰의 게임 룰은 대단히 직관적이며 간단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롭다.
물론 스플래툰의 기원에 있어서 몇몇 레퍼런스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벽면이나 도시를 색칠한다는 점에서는 더 블랍이라는 게임을 떠올려 볼 수도 있으며, 물총을 주요한 게임 도구로 삼는다는 점에서 슈퍼 마리오 선샤인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총을 쏘는 슈터 게임으로 본다면 스플래툰은 그 기원을 찾아보기 힘든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다.
더 놀라운 점은 스플래툰의 신선함이 단순하게 신선함을 뛰어넘어서 훌륭하게 조율되어 있으며,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스플래툰이라는 게임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게임을 지향한다기 보다는 '서비스'로서의 게임, 온라인 게임 같은 형식을 띄고 있고 그로 인해서 다소 아쉬운 분량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더 블랍이나 마리오 선샤인 같은 게임을 연상케 하는 스플래툰. |
■ 물총의 이중적 관념: 색을 칠한다
스플래툰이 여타 일반적인 총을 쏘는 슈터류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총을 쏘는 행위의 의미가 '이분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적을 배제하는 도구이자 무기, 두 번째는 바닥을 칠하는 색칠하는 도구이다. 스플래툰의 모든 무기는 사용할 때마다 주변에 잉크를 칠하며, 색칠된 벽면이나 바닥은 게임의 전투나 승패를 가르는데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게임을 시작할 때 정기적인 맵 로테이션이나 이벤트 등을 가르쳐준다. |
게이머가 벽면이나 바닥을 칠하는 것은 단순하게 이기기 위한 승리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의 색이 칠해진 필드에서 ZR 버튼을 누르면 게이머는 작은 오징어로 변신하고, 이동 속도가 대폭 향상, 더 나아가서 육안에 잘 안 띄게 된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필드 전체를 칠해야 하지만, 게임 자체가 다른 게임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이 오징어 모드 덕분이다.
바닥이나 벽면을 칠하는 것은 승리 조건의 만족이나 기동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넘어서 상대를 견제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색이 칠해진 영역에 들어가면 심각한 이동 속도 저하 장애에 걸린다. 이때, 게이머는 상대방에게 쉬운 표적이 된다. 이미 색칠된 상대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것은 상대방은 자유롭게 오징어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반해 게이머는 이동 속도 저하로 물총을 얻어맞기 쉬운 타깃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닥을 얼마나 잘 칠하는가가 승패의 관건이다. |
그렇기에 얼마나 넓은 면적을 칠했는가는 이로써 승부를 판가름 내는 레귤러 매치뿐만 아니라 게임의 기본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의 기동력을 빼앗으면서 동시에 팀의 기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단순하게 한 판을 이기기 위해서 타성적으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필드를 확보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 이러한 특성들이 결합하여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독특한 게임 방식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스플래툰은 닌텐도의 저력이 드러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 슈터류가 갖고 있었던 폭력의 수위를 대폭 낮추고 게임이 직관적이라는 점에서 폭넓은 게이머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상대의 영역에 들어갈 시에 이동 속도에 패널티를 받게 되어 쉬운 표적이 된다. |
■ 물총의 이중적 관념:상대를 쏜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플래툰이 색칠하기에 집중한 깊이가 없는 전투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상대의 영역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상대를 압박하거나, 상대와의 전투에서 오징어 변형 ZR 이동을 이용한 고속 카이팅(상대와 거리를 재면서 견재 및 전투를 하는 것) 등의 파고들면 오묘하고 깊이있는 구조를 가진 전투를 보여준다.
무기의 대분류는 슈터/롤러/차저로 구분이 된다. |
스플래툰의 메인 웨폰군은 크게 슈터/차저/롤러로 구성되어 있다. 슈터는 평균적인 총의 감각으로 사용 가능하며, 롤러는 밀대 대걸레 같은 느낌으로, 차저는 트리거를 당긴 만큼 총을 충전해서 쓰는 방식이다. 그리고 다량의 잉크를 소비하는 서브 웨폰과 색칠하는 면적만큼 게이지가 충전되는 킬 스트릭 개념의 스페셜 웨폰이 메인 웨폰과 한 세트를 구성한다.
무기와 서브 웨폰, 스페셜 웨폰의 조합 역시 다른 슈터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흥미로운 개성을 자랑한다. 스플래툰은 기본적으로 무기가 상대를 쏴서 쓰러뜨린다라는 폭력의 도구 개념 이외에도 벽면과 바닥을 칠한다라는 도구적인 측면이 강하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전투에 있어서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무기로 끊임없이 색을 칠하는 것은 게임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게이머는 스플래툰을 플레이를 할 때 마치 '두가지 도구'를 다루고 있는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무기 상점을 제외하면 매일 저녁 24시에 상점 내 물건 카탈로그가 바뀐다. |
이러한 경험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다른 슈터류 게임에 있어서도 '2차 발사 모드'라는 개념이나 총기 악세사리 등을 통해서 총기의 성능을 대폭 변화시킬 수 있기도 하지만, 스플래툰과 같은 느낌으로 같은 무기를 두가지 행위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전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임 모드가 바로 가치 매치이다. 슈터류 게임 멀티 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킹 오브 더 힐즈(일정 지역을 점거하는 플레이어/팀이 점수를 얻는 방식)를 스플래툰 형식으로 재해석한 가치 매치는 영역을 칠하여 승부를 내는 레귤러 매치에 비해서 적극적인 교전이 많이 일어나는 모드이다. 다만 레벨 10 이후에 참여 가능하며, 레귤러 매치의 경우 많은 돈과 보상을 얻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지게 되면 등급이 강등되기도 하는 스트레스 받는 매치이기 때문에 자주 플레이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스페셜 웨폰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전황을 타개할 수도 있다. |
■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
스플래툰의 흥미로운 점은 매치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레귤러 매치는 3분으로 일반적인 슈터류 게임이 성립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 동안 행해진다. 하지만, 이 3분 동안 게임은 완벽한 흐름을 보여준다. 색을 칠하는 것에서부터 적과의 교전까지. 게임은 집중하지 않으면 압도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다가도 상대에게 역으로 밀리거나 하는 등의 일발 역전극이 심심치 않게 진행되기도 한다.
가치 매치의 경우에는 레귤러 매치와는 다소 다르게 흘러간다. 게임 제한 시간은 5분 남짓이지만, 5분을 모두 꽉 채워서 게임이 진행된다기 보다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넉아웃 시키는 것으로 게임의 승패가 좌우된다. 물론 랭크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타임 오버에 의한 결판이 나는 경우가 많지만, 게임은 딱 '길지도 짧지도 않고 적당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레귤러 매치든 가치 매치든 중요한건 얼마나 팀의 영역을 잘 관리하느냐이다(사진은 레귤러 매치 판정 스샷). |
■ 서비스로서의 게임과 닌텐도
스플래툰이 게임으로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치명적일 정도로 부족한 '볼륨'의 문제일 것이다. 게임 발매 당시에는 게임 모드 1개, 맵 5개라는 치명적인 볼륨 부족을 보여주었다. 이건 볼륨이 부족하다라는 표현도 모자르며, 기준에 따라선 게임 역사상 최악의 볼륨 부족이란 표현을 갖다붙여도 될 정도이다. 하지만 스플래툰이 흥미로운 점은 게임 자체가 미완성인 것이 아니라, 미완성인 게임을 완성으로 이끌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닌텐도는 스플래툰에 작은 규모이지만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꾸준하게 하고 있다. 투표를 이용한 페스티벌이 이미 6/6 일본, 6/13 북미, 6/20 유럽에서 있을 예정이며, 여름에 신규 맵 추가, 무기 추가, 모드 추가 등의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을 예정이다.
닌텐도는 이 게임의 대부분의 내용을 완성시킨 상태에서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게이머들의 관심을 끄는 쪽으로 갈피를 잡은 듯하다. 즉, 온라인 게임과도 같은 '서비스로서의 게임'이라는 개념을 스플래툰은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출시 당시의 콘텐츠를 적게 잡은 것과 함께 싱글 플레이를 다소 등한시한 점이 패키지 게임에 있어 괜찮은 것인지는 껄끄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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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싱글 히어로 모드. |
그러한 부분을 제외하면 스플래툰에 있어서 멀티 플레이 환경은 쾌적하다. 북미/유럽 유저와 플레이 시 다소간의 랙은 존재하지만 게임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며, 게임은 빠르게 잘 잡히는 쪽이다.
스플래툰의 멀티 환경에 있어서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멀티를 시작하기 전의 '광장'이란 부분이다. 여기서 게이머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다양한 게이머들의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으며, 그들이 어떤 장비를 하고 있는지, 미버스에 어떤 그림을 투고하였는지를 확인해서 볼 수 있다. 특히 닌텐도 내의 게임 SNS인 미버스에 투고한 그림들이 마을이나 게임 맵 상에 그래피티 형태로 드러낸 점이나 마을에서 미버스에 투고한 그림들에 좋아요!를 찍어줄 수 있는 점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이다.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게임 내부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준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닌텐도 자사 플랫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스플래툰의 멀티 환경은 닌텐도가 지향하는 비전 어딘가에 놓여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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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버스에 올라가는 그림들이 광장이나 벽면 그라피티 형태로 올라가는 점은 높게 평가할만 하다. |
■ 결론
결론적으로 스플래툰은 게임 자체로는 자잘한 부분들을 제외하면 흠을 잡을 만한 곳이 없다. 문제는 분량이다.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부족한 업데이트를 꾸준하고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 것인가, 아니면 부족한 볼륨을 커버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 것인가. 사실 스플래툰의 완전한 평가는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긴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게임의 시스템, 구성 등의 '규칙'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스플래툰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볼륨 부분만 커버할 수 있다면, 스플래툰은 Wii U로 나온 게임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더 나아가 '이 게임 때문에 Wii U를 구매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킬러 타이틀이 될 것이다.
■ 장점
+여지껏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직관적인 게임 시스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게임 시스템은 거의 완성되어 있다.
+영역 싸움과 고속 엄폐-이동에 기반한 전투로 짧은 시간 동안 극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독특한 아트워크와 음악
■ 단점
-게임 분량이 상식적인 패키지 게임과 비교하여보았을 때, 심각하게 부족하다(현재 맵 6개, 모드 2개, 다소 짧은 분량의 싱글 플레이).
■ 미묘한 점
=게임이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서 분량을 늘려나가고 있으므로, 추후 상황을 지켜보면서 게임을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이로 센서 조작이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럽지만, 익숙해지면 할만하다.
=가치 매치는 재미는 있지만 랭크전+팀의 문제로 다소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있다. 클랜이나 팀 매치를 할 수 있는 옵션을 추가해줬으면 한다.
=보이스 채팅이 없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견 차가 있을 것이다.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 요약
분량이 부족한 것만 빼면 재미, 신선도, 게임의 흐름 등등이 모두 완벽하다. 다만 분량 부족이 치명적이다. 여름으로 예정된 대규모 업데이트의 흐름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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