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동네 사람들에게는 토종닭을 주고 타지 사람들에게는
미리 풀어놓은 폐계를 잡아 주던 삼거리 닭집 진용이네
같은 반을 하는 내내 도시락 반찬으로 닭고기를 싸 오던
진용이는 닭이 물리지 않는다고 했다
미용을 배우던 진용이는 일찍 동네를 떠났고 배달을
도맡아 하던 진용이네 아주머니는 두 해 전 초복, 빗길
위에서 오토바이를 몰다 떠났다
자주 취해 있던 진용이네 아저씨는 나를 알아보지 못
했는지 토종닭을 구별하지 못했는지 간혹 내게 폐계를
주었다
한번은 사 온 닭을 전기솥으로 삶은 적도 있었다 뜸이
들다가도 보온으로 넘어가는 전기솥 탓일까 혹은 그날도
폐계를 받아 온 것일까 닭은 밑도 없이 질겼다 이제 전기
솥은 고칠 만한 곳을 찾지 못하면 버릴 만한 날을 찾을
것이다
설익은 밥을 물에 말아 먹는 것으로 복달임을 대신한
다 진용이는 인천 어디에 있다는 미용실에서 백숙처럼
흰 손으로 사람의 머리털을 자르고 있을 것이다 한참을
자르다가도 멈춰 서서 이 여름 저녁으로 밀려드는 질긴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이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문학과지성 시인선 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