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
이 지상에는 없는 복숭아밭이 바다 속에 있는 게 틀림없다
수족관 속 저 도미 좀 보아라,
꽃 핀 복숭아나무에다 얼마나 몸을 비벼댔으면
저렇게 비늘 겹겹이 발갛게 물이 들었겠느냐
사랑이란, 비린 몸을 달구는 일이었으리라
바다 속 그 복숭아밭은 도대체
오천 평이었던가, 오만 평이었던가,
끝없는 그 너머였던가
도미는 한창 열 오른 복숭아나무들을 생각하다가
또 꼬리지느러미로 철버덕 물을 치는 소리를 낸다
봄날 복사꽃 난만, 난만하게 흩날리는 것처럼
지금 횟집 유리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저녁 여섯시
사랑이라는 말이 아프고 무거워서
무릉도원에 가지 못하고
소주 첫 잔에 목구멍에서 똥구멍까지 찌르르 숨통이 트이
는가
벗이여, 도미 좀 보아라
어깨가 돛배같이 얇은 사내들 앞에서
마침내 옷을 가지런히 벗고 눕는 것을
하늘도 제 살을 맛있게 저며 뿌려주는 날,
술잔에 꽃잎을 띄워 마신들 한량이 되겠느냐
눈발처럼 코를 박고 펑펑 운들 사랑이 오겠느냐
쟁반 위에 두런두런 눈만 내놓고, 도미는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안도현,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