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0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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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겁쟁이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04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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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겁쟁이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9):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0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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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행복했던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0):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0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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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행복했던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8):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09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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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복수귀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19):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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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복수귀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26):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10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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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로라, 누군가의 친구였던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27):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1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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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로라, 누군가의 친구였던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29):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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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어느 마지막 바이오로이드의 기록 (30):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111640
전전편: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12248
전편: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1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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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였다.
어느 새 시간이 이렇게나 흐르다니. 아직 저녁이라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이른 오후라고도 하기에 애매한 지금. 그만큼이나 이 세상에 서 있기 애매한 존재인 발러가 정비실 언덕 위에 섰다. 아마 마을 어딘가에 있을 놈도 그녀를 보았으리라.
‘그러니 오겠지’
그러니, 그녀는, 기다렸다. 놈이 나타나기를.
“오거라”
입술을 다시며 혼잣말을 하자 차라리 마음이 초연해졌다. 도망을 칠 필요가 사라지자 오히려 약간의 시간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놈에게 쫒기느라, 목숨을 부지하느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던 그녀에게. 잠시 멈춰서 돌아볼 시간이. 이 모든 비극의 의미를 생각할 시간이. 언덕 위에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예쁘기도 해라’
느지막한 오후로 넘어가는 화창한 하늘. 오늘의 잔혹함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그런 핏빛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푸르른 저 하늘.
‘아마 애니도 저 하늘을 봤겠지.’
죽기 전에 말이다. 오늘 대지 위에 피를 뿌리며 죽어간 이들을, 저 하늘은 알지도 못하고 신경쓰지도 않으리라.
그렇게, 흘러간 구름들처럼 모두 잊혀지리라.
‘나도, 그럴 테고.’
애니도 아우디도 죽었다. 이제 그녀가 마지막, 마지막 남은 바이오로이드였다. 마지막 바이오로이드,
‘나는...아쉬운 건가?’
자신은 오래 전에 이미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60년 전 그 연구소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같이. 그랬어야 할 그녀는 너무 오래 살아남았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할 목숨, 여기서 소진된대도 아쉽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면, 누가 그녀를 기억해 줄까. 누가 그녀와,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옛 시절을 대신 기억해 줄까. 발러는 아우디가 대신 그래주길 바랬다. 그녀가 발러 대신 그 일을 맡아주기를.
하지만, 그 바보 파티셰는 돌아와 버렸다. 친구와 함께하겠다고. 그렇게 돌아와 놓고선 발러보다 먼저 그녀의 눈앞에서 죽어버렸다.
“바보같이...”
마음에도 없는 우울한 혼잣말이 발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해 줄 존재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기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땅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불쾌한 인간의, 아니 인간 같은 존재감도. 그녀는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가까이, 칙 엠퍼러의 흉악한 모습이 발러의 면전에 들어왔다.
“오셨군”
그녀의 초대에. 발러가 짤막하게 놈을 응대했다. 놈이 알아들을 수 있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일단 놈은 발러를 쏘지 않았다. 그녀는 놈이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놈은 그녀가 무방비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므로.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네놈은...’
발러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놈을 노려보며.
메마른 황무지의 회전초가 굴러간다. 오늘의 그 모든 죽음의 무도(舞蹈)아래 폐허가 된 마을. 그 버려진 정비실 앞에서, 그 두 ‘괴물’이, 서로를 응시했다. 아마 놈이 그녀를 제대로, 이렇게나 가까이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일 터다. 그래, 안녕하신가. 놈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그녀는 인사하고 싶어졌다. 이 갈리는 저주와 증오를 함께 담아.
여기가 그녀와 놈의 마지막 결투장이다. 결착을 지을 때가 왔다.
...한 쪽은 이제 아무것도 없고, 아마 놈은 이제 그걸 알고 있을 테지만.
칙 엠퍼러가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거리를 빠르게 도약해 왔다. 그리고선 그 관성을 담아 그대로 거칠게 발러를 후려쳤다. 이제 자동차도, 코트도, 탄약도, 친구도, 가족도 없는 외로운 바이오로이드를.
“악!”
죽어도 이, 저주스러운 원수 앞에서는 비명을 지르고 싶지 않았는데. 무감정한 외계 괴물이 휘두르는 기괴한 금속제 부속지는 너무나 아팠다. 칙 엠퍼러의 덩치와 무게가 어디 가는 건 아니라 그녀는 너무도 쉽게 나동그라져 버렸다.
‘아파, 아파!’
그야 그녀는 지금껏 철충에게 이렇게 직접 유린당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는 저격수였고 늘 초장거리에서 철충을 상대해 왔다. 칙 엠퍼러가 가진 질량은 발러의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는 몸부림쳤다. 생각보다 너무, 아팠다. 너무.
단 한 번의 타격으로도 쓰러진 그녀는 온 몸의 뼈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간신히, 그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저격소총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아악!”
두 번째로 놈이, 간신히 일어나려는 그녀를 깔아뭉개듯이 쳐날렸을 때는 놓치고 말았다. 모신나강이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주르륵 미끄러졌다.
“아!”
그녀는 본능적으로 총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놈의 발이 더 빨랐다. 으직.
“안돼!”
그녀와 평생을 함께 했던 모신나강이 부러져 내동댕이쳐졌다. 발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했던, 그녀 삶 속의 가장 오랜, 어느 홀로 남은, 어떤 외로운 발키리의 존재의미, 그녀의 존재를 증거하던 한 오래된 물건이 산산히 부서져 흩어졌다.
“아, 아....”
그녀는 부질없다는 걸, 이젠 아무 소용없다는 알지만 절망적인 아쉬움 속에 박살난 소총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놈은 그것마저도 봐주지 않았다.
으드득.
“아, 아아아악!!!”
놈의 발 아래 그녀의 팔은 우습도록 간단하게 짓이겨져 떨어져 나갔다. 피가 철철 흘렀다. 바이오로이드의 금속제 골격이라고 해도 역시 진짜배기 육중한 쇳덩어리인 철충이 무게를 실어 짓밟는 걸 견딜 수는 없었다. 이것으로, 놈은 발러가 놈을 쏠 가능성을 완전히 봉쇄했다. 이제 그녀는 놈을 죽일 수 없다. 적어도 놈은 그리 생각하리라. 분명, 승리감에 찼겠지.
“흐윽, 흑”
미쳐버릴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발러는 다른 쪽 손으로 자신의 비참하게 떨어져나간 팔을 간신히 쥘 수 있었다. 놈이 발러의 배를 거칠게 걷어차기 전에.
“커헉!”
원한다면 칙 엠퍼러는 단번에 발러를 죽여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놈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인간처럼 지능 높은 생물체가 악의를 가지고 무력한 존재를 조롱하듯, 놈은 발러를 딱 즉사하지 않을 만큼만 힘을 조절해 가며 마구 짓밟고 부수고 걷어찼다. 발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개처럼 두드려맞는 것뿐이었다.
와직, 콰즉, 우드득, 퍽, 콰당,우지끈.
“카학, 아윽, 아큭! 헉, 아으악!”
처참한 구타와 신음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일어나려는 그녀를 다시 짓밟아 뭉갠다. 피멍이 들도록 패대기친다. 살이 찢기고 피가 후두둑 떨어진다. 화풀이를 하는 것일까. 동료에 대한 복수심일까. 아니면 그저 한떄 기세등등했으나 이제는 완전히 무력해진 상대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즐기는 것일까. 뭐, 어느 쪽이든 그럴 만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철충은 어떤 면에서 놀랍도록 인간과 유사하다.
인간들의 전쟁에서도 저격수는 가장 많은 증오를 받는 이들이다. 전장에서는 유달리 저격수에 대한 증오가 많다. 저격수의 표적이 된 동료들이 한 명 한 명 죽어나갈 때마다, 그걸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본 이들은, 극도의 공포와...그 일을 행하는 저격수에 대한 증오에 휩싸인다. 당연하다. 바로 전까지 살아서 함께하던 전우를 순식간에 시체로 만들고, 불구로 만들어 고통에 울부짖게 하고, 심지어 그들의 목숨까지 도구로 쓰거나 미끼로 걸며 도발하는 것, 그것이 저격수의 싸움법이니까.
‘부도덕하고, 비열하지’
무자비하게 깔아뭉개지면서 인정했다. 발러도 그랬다. 그녀는 변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키예프에서 그녀도 철충들에게 그리했으니까. 놀랍지만 철충들에게도 감정이, 그리고 동료애 같은 것이 있다. 놈들도 사냥당하면 공포를 느끼고, 부상당한 동료를 돌봐주고자 하며, 눈앞에서 전우가 죽어가면 격심한 분노에 휩싸인다. 그리고 발러는 놈들의 ‘마음’을 이용했다. 그녀가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다리를 쏘고 움직이지 못하게 된 철충을 미끼로 삼았다. 그놈을 도우러 온 동료 철충들을 하나하나 저격했다. 동료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격분해서, 비이성적으로 무턱대고 돌격하는 적을 버러지 잡듯이 쏘아 죽였다. 철충들조차 그녀가 자신들의 목숨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증오를 갖는 것이 당연하리라. 자기들보다 더한 괴물로 생각되었으리라.
새삼 우스워졌다. 멸망전쟁이 아니라 연합전쟁이었다면 그녀는 바로 인간에게, 바이오로이드에게 그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행한 자신을 남편은, 연구소 사람들은, 그리고, 아우디는, 사랑해 주었다. 극악한 살상 병기인 그녀가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나 있는 것이었을까. 지금 그녀의 바로 이런 처지는, 그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업보가 아닐까.
...그런다고 지금 발러를 때려눕히는 칙 엠페러를 용서할 생각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결국 놈도 그녀와 똑같은, 수십 년 묵은 잔인한 괴물에 불과하니.
다시. 저격수는 철저히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확실히 노리고 쏜다. 안전한 곳에서, 은폐한 채, 명백한 살생의도를 가지고. 그리하여 그 표적이 된 이들은 명백한 공포와 악의를 느낀다. 누구도 사냥감처럼 사냥당하는 느낌, 자신을 노리고 정조준하는 그 명백한 살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불공평하다고, 비겁하다고 느껴질 터다. 그리고 그 감정이 공포와 두려움과 합쳐지면 그것이 극도의 증오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니, 그 저격수가 적에게 따라잡힌다면, 편하게 죽을 생각은 버려야 한다. 발러도 알고 있었다. 한 때 살의를 가지고 자신들을 사냥했던 자가 무력해져서 자신들 앞에 던져지면, 그들이 품었던 증오와 분노는 그 자를 결코 편히 보내주지 않을 테니. 지금 발러가 당하고 있듯이.
‘그러니, 네놈도 나와 똑같아’
다시 한 번, 차라리 웃고 싶었다.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증오에 미친 것은 그녀나 놈이나 매한가지인지도 몰랐다. 그녀나 놈이나 둘 다 괴물인 것처럼.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오늘 지지 않는 쪽은 그녀라는 것이다.
이기진 못할지라도.
어쨌든 철충이 이처럼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퍽이나 흥미로운 일이고, 발러는 그걸 알고 있었다. 물론이다. 그랬기에 그녀가 이겨온 거니까. 키예프의 피구덩이 속에서도, 시뮬레이션에서도.
“윽, 으흑, 흑....”
발러의 비명은 이제 애처로운 흐느낌 같이 변했다. 죽어도 이 개새1끼한테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야속하게도 몸은 참 정직했다.
“쿨럭”
발러가 피투성이 만신창이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온 몸이 멍들고 깨져 피가 흘렀다. 몸에 있는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코피가 난다. 놈의 화풀이에 가까운 발길질에 내장이 상했는지 목구멍에서 피가 역류했다.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음속으로나마 웃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예상 내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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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처에 대한 이야기
삽입된 곡은 고전 서부영화"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time in the west)"(1970) 의 OST, "엔리코 모리코네(Ennio Morricone)"가 작곡한 최후의 대결 장면의 음악입니다. 무시무시한 적과의 최후 결전에 어울리는 두려운 느낌 물씬 나는 곡이죠.
1. 본편에 대한 이야기
1) 결말이 다가옵니다. 발러는 나아갑니다. 모두가 잊혀질 걸 알면서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괴물이 되어서.
2) 전장에서 저격수가 적들에게 특히나 큰 증오를 받으며, 그래서 생포될 경우 고문당하고, 조리돌림당하다 죽는 등, 끔찍하고 무자비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실제 고증입니다.
2. 잡담
와다다다 끝까지 다 올립니다. 내용이 엉성하지 않음 좋겠군요.
언제나 제 뻘글들을 항상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추천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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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썼듯이 저격수에 대한 증오 때문에, 그리고 발러가 파악한 놈의 성격 상 그러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발러는 거기까지 다 계산에 넣어 둔 셈이죠. | 21.11.16 0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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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엠페러의 또다른 명칭은 앵그리칙 입니다. 절대로 칙엠페러는 분노란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요... | 21.11.16 03:51 | |
(IP보기클릭)58.227.***.***
다른 연결체의 임무지령이 갑자기 떨어져 급히 떠난다든가 생각해봤습니다. | 21.11.16 08:4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