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몽인간]
본래 모든 이들은 태어난 순간
평생 자신을 기다려준 부모를 만난다.
처음으로 진정한 세상을 맞이하는 그 순간,
모두가 행복이라는 감정에 젖혀 기쁨과 감동을 느끼는 그 순간
그러한 때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답고 신성한 순간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난 그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무지의 상태로 계속 살아갔다.
당시 나는 하나의 생명체였으나 하나의 생명체라고는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의지도 목적도없이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망나뇽과 마기라스의 세력다툼에도
한카리아스에 의해 흔들리는 대지의 기운에도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갔다.
빛이 있는 곳에 있으면서도 암흑 가운데에 서있으면서 어디까지 가야 끝날지 모르는 공간에서 방황하는나를반겨주는 이가 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웃음으로서 맞이하여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의 첫 주인이다.
그날 또한 다른 날과 차이점이 없는
그저 지나갈 것만 같았던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수풀사이로 움직이던 나의 앞에 한 소년이 다가왔다.
소년은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서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물체를 꺼내들었다.
그는 문명의 이기라 부를 수 있는 그 물체를 보더니 살며시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서는 무릎을 굽혀 얼굴을 나에게 들이대었다.
소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슬며시 움직였으며
이내 소년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말을 하였다.
“안녕?”
이 세상에 존재할 때부터 홀로 세월을 살아가던 나에게 처음 본 소년의 웃음은 끝나지 않을 것만같은 암흑 속에 내려온 한줄기의 빛과 같았으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가뭄 속에 내려온 한줄기의 비와 같은 것이었다.
소년은 나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리고서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와 함께 해주지 않을래?”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나는 소년과 함께 하게 되었다.
소년과 함께함으로서 나는 진정한 지적 생명체로 거듭났다.
모든 순간이,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고 새로웠다.
망나뇽과 마기라스의 세력다툼에도 한카리아스의 지진에 흔들리는 대지의 기운에도나는 즐거워하였다.
나는 왜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가?
조금만 바라보아도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멋진 모습이 보이는데
나는 왜 무지의 존재로서 세상의 흐름에 나 자신을 맡기며 살아갔던 것일까?
나의 정신은 하루하루 성장해나갔으며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대부분의 포켓몬들과 비슷한 정신의 성숙을이루었다.
나와 소년은 2주 동안 함께 생활했다.
함께 세상을 여행했고
함께 잠을 청했으며
함께 밥을 먹고 행복을 나누었다.
매일 밤 나는 하늘을 향해 하나의 소원을 빌었다.
이 삶이 끝나지 않도록 빌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날들도 끝나갔다.
소년과 만난지 2주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소년은 나를 데리고 어느 외딴 집으로 향하였다.
그 집에 도착하자 소년은 어느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손을 흔들고 문을 열고 밖으로나갔다.
나는 그가 나를 잠깐 이곳에 맡기고 다른 곳을 간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다시 이곳으로 와 미소로 나를 맞이하여 줄것이라 믿고 있었다.
금방 오리라, 조금만 지나면 그이가 다시 나를 찾으러 오리라라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1시간...2시간....12시간...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항상 나를 미소의 얼굴로 바라봐주었다.
그런 그의 태도를 보며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해주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는 며칠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걸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무슨 목적이 있기에 나를 이곳에 둔 것일 터인데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패닉에 빠진 내 곁에 있어준 이는 한 노인이었다.
소년과 대화를 하고 있던 그 노인 말이다.
항상 소년의 사랑을 받으며 즐겁게 지내던 난 홀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소년 말고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넓은 들판에서 살살 불어오는 봄바람의 향기를맡으며 누워있었다.
노인은 혼자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나에게 다가와 말도 걸어주고 먹을 것들도 챙겨주며 친근하게대해주었다.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즐거움도 없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던 내가 상호작용을 하던 사람은 오직그 노인뿐이었다.
그렇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도 그 소년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그 노인은 항상 나를 볼 때 안쓰럽다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실 때나 음식을 주실 때마다
매 순간마다 그의 얼굴에서는 동정과 연민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본 그의 모습은 마치 죽기 직전의 존재를 보는 어느 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난 그가 왜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궁금하였다.
그에 대한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내가 그곳에 온지 약 1주가 지난 후 그 소년이 다시 내게로 와주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또 다른 포켓몬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
나는 그가 돌아 온 것을 알고서는 곧장 그를 향해 달려갔다.
소년의 그 밝은 얼굴을 난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문을 열며 나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그가 나를 볼 수 있도록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그는 뒤를 돌아보며 나를 바라봐주었다.
그런데, 그는 웃음을 짓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웃음은 나를 위한 웃음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 웃음은 어린 소년의 순수한 웃음이 아닌 탐욕스러운 어른의 웃음이었다.
소년은 그 날 한 포켓몬을 맡기고 갔다.
그 뒤는 아마 대부분이 알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교미의 반복, 매일 매일 계속되는 교미와 알 낳기 그리고매일 매일 그 알을 가져가는 나의 주인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는데 다른 메타몽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노인이 그런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도 이 때문일까?
나 이전의 수많은 메타몽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던 것을 봐왔고
나 또한 그리 살거라 알고 있었기에...
물론 이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나를 둘러싼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새로운 이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난 하루하루 향락과 쾌락에 빠져 살아갔다.
매일 소년의 노예처럼 살아갔고 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삶이 좋았던걸가..
아니면 그 소년에게 느낀 배신감에 크나큰 상처를 받아 그 상처의 고통을 잊기 위해 쾌락에 빠져살아갔던 것일까?
그때 나는 당시의 삶에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먼 곳에 우뚝 솟아난 산 사이로 올라오는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바깥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바깥세상의 공포심이, 또다시 그런 상처를 받을 거라는 두려움이 그 호기심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끔씩 해본다.
어느 정도 지났을려나.
매일 같은 삶을 살아갔던 나는 이제 세상에 무감각해져갔다.
마치 처음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한 포켓몬이 다가왔다.
초록 머리에 하얀 얼굴
초록색의 몸통과 살살 불어오는 봄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치마
그녀는 나를 보고 말하였다
“안녕?”
들판에 누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보이지도 않을 세상의 저편으로 날아가던 피죤을 바라보던 나는뒤를 돌아보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약간 놀라는 듯한 행동을 취하더니 웃으면서 “안녕? 나는 가디안이라고 해.”라고 말을 덧붙여 말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소년으로부터도
노인으로부터도
그 누구로부터도 느껴본 적이 없는 어떤 감정이 내 마음속에 생겨났다.
나는 그녀를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았다.
이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고
1달 뒤 그녀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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