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올해 초에 글쓰기 연습삼아 써봤던 팬픽 소설인데, 당시에는 바빠서 접었다가
지금에서야 시간이 되어서 다시 한 번 써볼까 합니다.
그런데 썼던 글이 전에 올렸던 데에는 인기가 하나도 없어서 자신이 없네요...
계속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 평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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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 팬픽 [트레이너즈] @상동
#1. 리그힛Lig_hit
열다섯 살이 되는 학생은 진로의 두 갈림길에 선다. 2년 후 열일곱살의 성인식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 할지, 아니면 한 마리의 포켓몬을 부여 받아 세상을 여행할지선택하는 것이다. 이때 하는 여행을 수행이라 하고 그 학생을 수행생이라 불렀다.
어린 나이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무척이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지만 학생들에게 학교를 벗어날 기회이기도 했으며, 포켓몬 전문 트레이너, 그 중에서도 마스터 트레이너는 밤 하늘의별과 같이 빛나는 것이었기에 꿈을 품고 여행을 떠났다.
나 역시 열다섯 살이 되어 그 선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내 꿈은보통의 아이들처럼 유명한 트레이너가 되는 게 아니라 포켓몬 연구원이 되는 것이었는데, 진학과 수행 사이에서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중등학교에 남으면 배우는 것은 뭐죠?"
나는 내 앞에 계신 진학상담 선생님께 여쭈었다.
"중등학교 포켓몬 고급과정에서는 포켓몬에 대한 특성학, 생태학, 속성학을 조금 더 심화하여 가르친단다. 몬스터볼의 구조에 대해서도 배우고, 트레이너의 전문화된 소양을 익히지."
"그러면 자기 포켓몬은 갖지 못하나요?"
"그렇단다. 법률상성인식 이전에는 개인 포켓몬을 다룰 수 없어. 예외로 오직 수행생만이 성인식 전에 자기 포켓몬을 다룰수 있는 거지."
나는 꼭 여행을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더 해도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포켓몬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는건 정말 재밌으니까. 또 여기 상록 시립 중등학교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기도 하고. 수행을 가지 않아도 나중에 여행은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반대로 수행을 다녀 와서 성인식을 한 후에 공부를 계속해도 된다. 자기소유의 포켓몬을 2년이나 더 일찍 만날 수 있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고민을 더 해봐야겠어요."
나는 결정을 못 내린 채 진학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어느 선택이더 나을지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이전 사례들을 더 찾아보고, 오키드Orchid 박사님께도 한번 여쭈어 볼까 싶었다.
"벌써 몇 학생들은 포켓몬을 받고 떠나기도 했단다. 결정은 이번 주까지 해야 하니 유념하렴."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교실에서 나와 잠시 바람을 쐬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파란 머리를 한 아름다운 소년이 먼저 자리해 있었는데 내가 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 리그힛왔니? 안녕."
"블루구나"
파란 머리의 소년 블루는 밝고 쾌활한 친구였다. 언제나 꾸밈없는 미소를잃지 않았고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같이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민이 있어."
"우리학교 박사님께서 고민이라니, 아무도 못 믿을 거야. 뭔데 그래?"
"진학에 대해서. 학교에남을지, 수행을 떠날지..."
"아, 난 너라면당연히 학교에 남을 줄 알았어. 수행은 보통 나처럼 공부에 별 관심없는 애들이 가잖아? 성인식 전까지 학교에 안 가도 되고."
"응, 그런데사실 중등학교의 고급과정에서 배우는 건 예습해서 대체로 알고 있거든. 고등학교로 바로 진학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또 학교에서 배우는 건 죽은 지식이 될 거 같기도 해서.이미 밝혀진 걸 책상에서 배우기보다 실제 세상에서 탐구해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
"뭐야, 그러면수행 쪽으로 마음을 정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수행을 가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돼서...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하고."
"너도 참 복잡하구나."
블루는 잠시 생각하더니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앞, 뒤로 결정하는게 어때? 난 자주 이렇게 결정하거든."
"우연에 맡기긴 싫은데."
"우연이라니, 이건운명이야."
블루는 동전을 던져 한 손에 움켜잡고는 손을 쥔 채로 내게 내밀었다.
"앞면이면 수행, 뒷면이면학교야. 어때?"
"음... 그게뭐야. 그게 운명이라도 그런 선택은 별로 끌리지 않는데? 난확인하지 않을래. 그보단 오 박사님께 상담하고 와야겠어."
"아, 같이 가자. 나도 박사님께 가 봐야 하거든."
블루와 나는 상록시티에서 운영하는 켄타로스 마차를 타고 태초마을로 향했다. 마차안에서 나는 블루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오키드 박사님께는 어떤 일로 가?"
"난 내일부터 수행 떠날 거거든. 오늘 학교에서 신청 완료했어. 그래서 포켓몬 받으러 가."
"뭐? 그러면오늘이 마지막으로 보는 거야? 아니, 왜 벌써? 공식적으로 떠나는 날은 나흘 후잖아?"
"의외로 잘 모르는 구나.먼저 떠나도 상관없어. 벌써 간 애들도 조금 있는데 나도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고 싶기도하고, 그때가 되면 길마다 수행 학생들로 많아 혼란스러울 것 같아서.음...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빨리 출발하면좋은 점이 있어."
"뭔데?"
"우리 박사님을 가르치니 기분이 좋군. 이걸 맨입으로 가르쳐줘야 하나..."
"어? 뭔데, 나도 네가 뭐 궁금한 거 있으면 알려줄 게 부탁해."
"농담한 거야, 상록시티에서는다른 시티와 다르게 수행 학생들이 스타팅 포켓몬 받을 수 있는 곳이 두 군데인 거 알지? 시립목장에서와오키드 박사님으로부터지. 그런데 목장 포켓몬은 어느 정도 훈련되어 있어 좋지만, 우리가 잘 아는 익숙한 포켓몬이 대부분이야. 평범하지. 하지만 박사님께 받는 스타팅은 처음엔 조금 약하다는 얘기가 있지만 희귀 포켓몬이 섞여 있어. 그리고 포켓몬은 자신이 보고 선택하는 거라 선착순으로 좋은 걸 가져갈 수 있거든. 이것 때문이지."
"몰랐어. 블루는아는 게 많네. 그런 건 책에서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조금 놀란 채로 블루를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는 수업도 잘 안듣고 매일 마술연습에, 놀기만 했던 블루가 오늘은 달라 보였다.
"나야 옛날부터 준비했으니까. 누나들에게도 많이 물어봤고. 아,다 왔다. 가까우니 금방이네."
우리는 태초마을 입구 안쪽에 내려 중앙에 있는 연구소까지 걸어갔다. 연구소안에는 거대한 기계들과 몇 명의 연구원이 있었다. 그들 사이로 두 명의 소년이 마침 포켓몬을 정했는지박사님 옆에서 스타팅 몬스터 등록절차를 하고 있었다.
"박사님!"
"아, 리그힛과블루 왔니? 레드Red와 그린Green이 방금 받은 포켓몬으로 시합을 치른다고 하니 잠시 같이 지켜보지 않을래?"
빨간 머리를 한 소년은 레드였고, 녹색 머리를 한 소년은 박사님의손자이기도 한 그린이었다. 둘은 태초마을에 살아서 나와 요새 잘 만나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에는 자주 같이 놀곤 한 친구들이었다.
등록 절차를 마치고 시합장에 선 레드와 그린은 우리가 온 것을 보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농구 코트처럼 직사각형으로 늘어져 있는 공간 양 끝에 선 레드와 그린은 서로를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포켓몬으로 하는 첫 시합인 것이다.
"그린, 학교에서와달리 봐주지 않겠어. 가라, 파이리!"
"누가 할 소리! 내승률이 더 높다는 걸 그새 잊었나? 이상해씨 나와!"
레드와 그린은 자신의 머리 색에 맞게 포켓몬을 선택한 듯했다. 레드는불도마뱀인 포켓몬을, 그린은 씨앗을 짊어진 개구리 포켓몬이었다. 둘다 희귀 포켓몬이고, 두 번의 진화를 마치면 굉장히 강력한 포켓몬이 되었다. 블루도 그것을 알았는지 탄성을 질렀다.
"파이리와 이상해씨라니!"
레드와 그린은 잠깐 대치상태를 가지더니 레드가 먼저 외쳤다.
"파이리, 불대문자!!!"
이런, 속성을 비교하면 풀 타입인 이상해씨보다 파이리가 유리했다. 나는 그린의 패배를 예측하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불 대문자는강력한 불타입 기술이라 풀 타입 이상해씨는 타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끼잉?
파이리는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2. 블루Blue
그린은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괜히긴장했네. 네 파이리는 아직 그 기술을 익히지 못했나 보군. 자! 이상해씨, 너도 솔라 빔이다!!"
파이리와 마찬가지로 이상해씨 역시 당황스러운지 안절부절못했다. 그린은침착하게 다시 외쳤다.
"그런가? 그렇군. 그러면! 이상해씨! 덩굴채찍! 어? 씨... 씨뿌리기? 이익! 아무 기술이나 써봐!"
이상해씨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자 그린도 점차 허둥댔다. 레드와 그린은각자 자신이 아는 기술들을 외쳤으나 두 포켓몬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파이리! 입에서불을 뿜어봐! 불로 이상해씨를 태우란 말이야!"
"그만! 시합중지다!"
오키드 박사님은 시합을 중지시키고 우리 네 사람을 불러모아 물었다.
"어째서 파이리와 이상해씨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을까? 아는 사람?"
레드와 그린은 시합의 여파로 아직도 흥분상태였고 블루는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살짝 미소지으며 내가 생각한 이유를 답했다.
"그거야..., 레벨탓일 듯싶습니다. 스타팅으로 둘이 받은 포켓몬은 아직 속성기를 익히지 못한 것이지요. 레벨이 아주 낮은 포켓몬은 그런 경우가 있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파이리가처음 익히는 불타입 공격은 작은 불꽃을 발사하는 불꽃세례로서 이것부터 시도해 보고 익히지 못했다면 할퀴기 같은 기본 기술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해씨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린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렇군, 맞아. 내 이상해씨의 경우에도 처음으로 배우는 풀 타입 기술인 씨 뿌리기를 하지 못했어. 그러면 몸통박치기나 해야겠군."
"제가 보기엔..."
가만히 있던 블루가 잠시 생각하다 살며시 손을 들며 말했다.
"두 포켓몬이 시합이란 걸 모르는 것 같았어요. 왜 싸워야 하는지... 또 주인과의 유대도 없었고, 기술에 대한 의미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 그럴 수도있겠다!"
레드는 블루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가 더는 말이 없자 오 박사님은자리에서 일어나 말씀하셨다.
"누구 말이 맞을까? 한번다시 시험해 보겠니? 레드, 그린."
"네!"
레드와 그린은 다시 시합장으로 가서 파이리와 이상해씨를 불러냈다.
"이상해씨, 몸통박치기!"
"파이리! 이상해씨에게할퀴기!"
파이리와 이상해씨는 레드와 그린의 눈치를 보더니 앞으로 뒤뚱뒤뚱 뛰어갔다.
"됐어!"
"좋았어!"
충돌이 가까워졌을 때, 파이리와 이상해씨는 속력을 줄이고 머뭇거렸다. 그린은 답답했는지 다시 한 번 외쳤다.
"이상해씨! 파이리에게몸통 박치기를 해!"
이상해씨는 그린을 힐끗 보더니 파이리의 배를 향해 살포시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아닛?"
"하... 하하하하핫!"
오키드 박사님은 웃음을 참다못해 쩌렁쩌렁하게 터트려버렸다. 그리고는시합을 중지시키고 다시 레드와 그린을 불렀다.
"잘들 알겠니? 리그힛의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그보다는 블루의 말이 맞았구나. 학교에서의 포켓몬과는 다르게 너희가 지금 만난포켓몬은 태어난 지 얼마 안된,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란다. 언어이해라든지, 행동양식 같은 건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은 너희가 가르쳐야하는 거지. 이 경험이 너희에게 유익했으면 좋겠다. "
"네..."
나는 내 생각이 틀린 것에 시무룩해졌다. 분명 나만이 풀 수 있는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블루가 맞춘 것이다.
"그나저나, 리그힛과블루는 어떤 일로 찾아왔니?"
"저는 트레이너로서 수행을 떠나려고 해요. 리그힛은 진학상담을 하러 왔대고요."
블루가 나 대신에 답을 해 주었다.
"블루! 함께가는 거야?"
레드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재미있는경쟁이 되겠어."
"그래, 그러면리그힛은 잠시 기다리겠니? 블루는 포켓몬을 한 번 골라보렴"
박사님은 우리를 연구소 한편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로 이끌었다.
테이블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파여있었고 구멍마다 각각 몬스터볼이 놓여 있었다. 어림잡아 마흔 개 정도 되어 보였는데 비어있는 자리도 있어서 벌써 몇 명이 포켓몬을 선택해 갔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아직 많이 남았단다. 모두가사로잡은 야생 포켓몬이 아닌, 알에서 태어난 포켓몬이고, 서로다 다른 우수한 포켓몬이란다."
블루는 신중히 테이블에 놓인 몬스터들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나 역시가만히 있기보다 어떤 포켓몬이 있는지 궁금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디, 푸린, 콘치, 에레키드, 깨비참, 니드런, 이브이, 먹고자, 야돈, 꼬마돌, 미뇽, 꼬렛, 메타몽, 코일, 망키, 디그다, 나옹, 고라파덕, 주뱃, 파라스...
이중 내가 모르는 포켓몬은 하나도 없었다. 각 포켓몬의 타입과 특성, 종족값까지 머릿속에 잘 떠올랐다. 블루는 그렇지 않은 듯 턱을 짚고고민을 했다.
"모르는 포켓몬도 있어서 고민이 되네..."
블루는 잠시 고민하더니 한 몬스터볼을 집어 들었다.
"이거요. 이걸로할래요. 박사님 등록해 주세요."
"꼬부기로구나! 좋은선택이다."
나는 몬스터들을 둘러보고 한순간에 등급을 매겼는데
S랭크: 미뇽
A랭크: 꼬부기, 케이시, 고오스, 먹고자
...
F랭크: 꼬렛, 구구, 캐터피, 뿔충이
와 같았다. 그중에서도 미뇽은 아주 희귀한 드래곤 타입으로 지금은굉장히 약하지만 진화하면 무척이나 세져서 홧김에 나도 당장 수행으로 선택해버릴까 고민이 될 정도였다. 마찬가지로케이시도 지금은 약하지만 진화하면 강해지기에 A랭크를 받을 만했고, 전반적으로희귀하고 강력한 몬스터들이 많아 놀랐다. 한편, 꼬렛이나뿔충이 등은 마을 밖에만 나가도 야생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데다 진화해도 약해서 무척 가망이 없는 포켓몬이었다.
블루가 선택한 꼬부기는 물 타입의 거북 포켓몬으로 성장하기 쉽고 방어력이 높은 편이라 좋은 선택이었다. 오늘 왠지 블루가 달라 보였다.
블루는 스타팅으로 꼬부기를 부여받은 트레이너로서 전산체계에 등록하고, 오박사님께 인증카드를 받았다. 카드에는 블루의 사진과 이름, ID 넘버가적혀있었다.
"자, 이제 너희셋은 트레이너다. 트레이너가 된 기념으로 박사님이 선물을 주고 싶은데...이것은 포켓몬 도감이라고 한단다. 수행 학생들을 위해 이번에 새로 개발된 전자기기인데, 야생 포켓몬을 발견하면 자동으로 정보를 인식해 기록한단다. 물론포획하고 적당한 절차를 거처야 완전한 기록이 되겠지? 일종의 스마트한PDA라고 보면 돼. 받으렴."
레드와 블루, 그린의 손에 쥐어지는 빨간색 도감은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와 박사님.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사님. 잘쓸게요!"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이 세상에는 발견한 포켓몬도 많지만, 미발견 포켓몬이 훨씬 많이있단다. 특정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종도 있고 해서... 너희가다양한 곳에 가 보고 기록을 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일단 우리 연구소에서 스타팅을 받아 수행을 가는학생들에게 모두 지급할 예정인데, 이를테면 현장연구원이 되는 것이지."
"오오! 열심히할게요, 박사님!"
나는 왠지 소외된 것 같아 침울해졌다. 도감에 관심도 많이 갔고 현장연구원이라니부러웠다. 그러나 갑자기 이제 와서 수행을 하겠다며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홧김에 선택하는 것 같아서 후회할까 염려가 되었고, 이미 시간이많이 지나 창밖이 어둠에 물들기 시작한 지라 집에 가 봐야 했다.
"리그힛은 어떠니? 그리고고민은?"
"음... 진학에대한 건 지금 보고 배운 걸로 충분한 답이 되었어요. 저도 이제 수행이 끌리기는 하는데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늦기 전에 집에 가 봐야 하기도 하고요."
"그렇구나. 자, 그럼 무사히 가렴. 다음에 또 오고."
레드와 그린은 태초마을 출생이라 괜찮은지 조금 더 연구소에 있기로 했다. 나와블루는 박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상록시티로 되돌아왔다.
#3. 수행
집에 오는 마차 안에서 블루는 마치 마술사처럼 손에서 몬스터볼을 굴렸다. 몬스터볼은물결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흐르기도 하고, 공간에 고정된 채 손가락만 움직이기도 했다.
"참 신기해. 포켓몬이이렇게 작은 몬스터볼에 들어간다니 말이야. 내가 수업 때 졸아서 그런 걸까? 학교에서는 안 배웠던 것 같은데…."
블루의 의문도 일리가 있었다. 중등학교에서는 포켓몬의 정체나 기원을가르치기보다 육성이나, 산업현장에 적용하는 것, 함께 살아가는것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영역에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기에 아직 교과서에 실을 수 없기도했다.
"포켓몬은 반半 정령이니까.확실한 건 아니다만. 네 꼬부기도 나중에 물대포를 쏠 텐데 그 작은 몸에서 많은 물줄기를잘만 뿜어내잖아? 그 이유를 최신 이론으로 설명하는 노탈프의 이데알 이론에 의하면, 포켓몬은 속성 이미지체로 존재하는 정령으로서 반쯤의 실체는 이데알 계에 존재해서 현실적 물리법칙에서 조금 벗어난다는것이지. 이론적인 토대는 이렇고, 근거를 따져 자세히 들어가면더 복잡한데…. 어쨌든 물 포켓몬의 물은 실제 물과는 존재성이 조금 달라. 물은 증발해버리긴 해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포켓몬으로부터 생성된 물은 물과 같은 작용을 똑같이 하고는질량 자체가 사라져버려. 어떻게 보면 빛이나 불과 같이, 파동형태인매우 가벼운 질량의 물 에너지 형태로서 존재하다가 퍼져나간달까? 이데알 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기도하고. 포켓몬도 그와 같은데, 우선 몬스터볼의 구조에 대해서설명하면……"
"그, 그만, 휴…. 내겐 너무 복잡해. 말해줘도잘 모를 거야."
"근데 사실 뭐, 이러한이론들도 가설에서 한 발짝 정도만 더 나아갔을 뿐이라 아직 어느 것도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고 한데…."
"그러니까 정확한 원인은 누구도 잘 모른다는 거야?"
"그렇기도 하고… 그보다는, 그러니까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에 있다고 해둘까? 노탈프의 이론 말고도이 현상을 설명하는 다른 이론이 있는데…. 하여튼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야."
"괜한 궁금증을 가졌다가 머리가 터질 뻔했어. 리그힛은 아는 게 참 많은 것 같아."
"…."
나는 고개를 숙이며 내가 알고 있는 이런 지식이 어쩌면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난 내일 아침에 떠날 거야."
블루는 결의에 찬 어조로 말했다.
"체육관 배지를 다 모을 거야. 리그에도 본선에 진출할 거야. 그리고… 포켓몬 마스터 트레이너가 될 거야!"
"그래. 블루."
"그리고 난 너도 학교에 남기보다 수행을 떠났으면 좋겠어. 한 번의 젊을 때는 되돌아오지 않잖아?"
"그건…. 그래."
다음 날, 나는 어제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포켓몬의 상성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기술에 대해서도, 특성과 행동태세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포켓몬 연구원이 되고자했지만, 트레이너가 되어도 또래의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프리크의 현대적 훈련이론, 도테닌이 정립한 포켓몬 일반육성학, 사토시의 기술시합 방법론까지 각종 트레이너 이론을 독학으로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제 일을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 같지가 않다. 경험으로만얻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또 실제는 이론과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한편으로는,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다.내가 트레이너로 나선다면 분명 잘하겠지만, 어쩌면 패배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도 분명 새로운 성장의 밑거름이 되리라. 무엇보다현장 연구원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의 생각 끝에, 나는 마음속으로 학교에 남기보다 수행을 떠나기로결심했다. 하지만 정한 즉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철저한준비를 한 후에 한쪽 발을 내딛는 것이 안전한데다 오히려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신청기한은 사흘이나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수행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가볍게는 수행을마치고 돌아온 선배에게 물어보는 것부터 몇 년 전까지의 수행 최다득점자의 기사까지 확인했다. 전국지도를펼쳐놓고 거쳐야 할 도로들을 점검하고, 여행 경비까지 계산했다.
수행생의 수행목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기본적으로 스타팅 몬스터의육성이 있었다. 처음부터 강력한 몬스터를 받아 여행을 떠난다면 그 만큼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정을 막기 위해 처음 받는 스타팅 포켓몬은 각 시에서 정한 목장에서만 얻을 수 있고, 수행이 끝나기까지 스타팅의 교환은 금지되어있었다. 그리고 수행을통해 성장한 스타팅 포켓몬을 얼마나 육성했는지가 수행평가 때 점수에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었다.
다음으로는 파티를 꾸려 체육관 관장에게서 승리의 증표인 배지Badge를획득하는 것이 있다. 체육관 시합은 보통 일반 규칙Rule을따르는데, 그 규칙이란 포켓몬 파티를 최대 여섯 마리까지 선택하여 시합 전에 등록하고 그 중에 세 마리까지를시합에 내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시합 도중 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나 네 마리째는 나올 수 없다. 이는 더블배틀이나 트리플배틀에서도 조금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게 적용된다.
체육관은 주요한 도시마다 하나씩 있었고, 체육관 관장은 그 도시를대표하는 트레이너인 만큼 무척이나 강했다. 도무지 막 수행을 나서는 트레이너가 이길 수 있는 상대는아닌 것이다. 그래서 체육관에서는 문하생들과 함께 수행생의 수련을 도와주고, 체육관 관장은 시합에서 수행생의 배지 개수에 따라 어떤 제한을 두게 된다. 그때문에 총 8개의 배지를 다 모은 마지막에 가서야 관장의 최대실력을 볼 수 있고, 배지를 모으는 것은 처음에는 쉬운 편이지만 갈수록 어려워져 수행 2년동안 5개 이상의 배지를 획득하는 수행생은 별로 없었다.
이런 방법 말고도 여러 도시와 산, 바다를 여행하며 기록한 리포트를제출하여 평가 점수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세이브Save라고도불리는 이 기록은 다양한 곳에서 자주 해 두는 것이 좋다. 예전에 전설의 포켓몬을 만난 수행생이 자신의리포트를 평가 자료로 제출해 점수도 많이 받고, 학계에서 반향이 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인기를 끌기 쉬운 것이 바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포켓몬 리그이다. 이 리그는 수행생 외에도 많은사람이 지원하여 본선에 진출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리그는 예선과 본선이 있으며 본선의 32강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그 지역에서 인기인이 된다. 또 리그에서 4위 안에 들어간다면 지역을 대표하는 마스터 트레이너인 사천왕에게 도전할 자격도 부여된다.
포켓몬 리그는 연말에 한 번 있어 수행생은 총 2번의 도전 기회를얻게 되는데, 명예를 얻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실력을 키우며, 평가점수도 많이 받을 수 있기에 순수한 트레이너를 지망한다면 이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4. 지우
신청 마감일인 오늘까지, 나는 사흘간의 자료조사로 최적의 수행방법을찾아 냈다. 그래선지 학교로 향해 가는 발걸음도 무척이나 가볍게 느껴졌다.
오늘 할 일은 학교에서 수행을 신청하고, 시립목장이나 연구소에서 스타팅포켓몬을 부여받아 트레이너로서 최종 등록완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학교에서 여는 환송회에참여한 후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환송회를 꼭 할 필요는 없지만, 이날 학교에서는 수행생을 위해 몇 가지 약품들과 몬스터볼, 약간의지원금을 제공해 주기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학교는 신청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많이 어수선했다. 아직 개학하지않아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소란스러웠고,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지 허둥대는 학생들도 보였다.
"어떡하지? 갑자기이렇게 돼서..."
"그러게 말이야, 진작에신청하는 건데.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아야 할까?"
무슨 문제가 있는 듯 들려오는 소리에 궁금하기도 했지만, 우선 나는수행 신청부터 하기로 했다. 신청소에는 몇 명의 학생들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관심 없이그들을 지나쳐 진로담당관님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중등 D반의 리그힛입니다. 수행 신청하러 왔어요."
그런데 진로담당관님도 역시 다른 학생들처럼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머뭇거리다 이윽고 말씀 하셨다.
"아, 음. 안타깝게도… 그게 좀 어렵게 되었다."
"네? 무슨 일인데요?"
나는 예상치 못한 일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제야 수행신청에문제가 생겼고,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이 문제로 당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래.지난번 회색시티에서 범죄조직에 의한 사고가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니? 그 때문에 회색 시립목장직원들이 다쳐서 수행생들에게 지급할 포켓몬을 많이 기르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지. 회색시티는 지리적으로가장 가까운 우리 상록시티에 협조를 구했고, 그 결과 상록 시립목장에서 예년보다 적은 수의 스타팅 포켓몬을기르게 되었어. 또 이번 해에 수행생 지망 학생이 많이 늘어나서...방금 전 상록 시립목장에서 스타팅 포켓몬을 모두 분배해서 더는 수행생을 신청받지 못한다고 연락이 왔단다."
"어? 그러면저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쉽겠지만, 수행보다는진학을 선택해야 할 거야. 진학도 나쁘지 않단다."
"그게... 회색시티나청색시티에서 도움을 받거나 할 수 없나요?"
"원칙적으로 수행 학생은 자신의 시에서 태어난 스타팅을 사용하게되어있어. 회색시티의 경우도 범죄집단에 의한 사고였고, 상록시티에서지원받은 것도 인력일 뿐이라서... 이럴 때 정 수행을 가야겠다면 일 년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을 듯하네. 미안하다."
나는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어지러웠다. 세워놓은 계획이 처음부터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러면 박사님은, 그러니까연구소는요?"
"아, 연구소는엄밀히 말해 우리 직속 담당이 아니기에 내가 연락받은 것은 없는데... 잠시만, 연구소에 지금 통화에서 물어볼 게.”
진로담당관은 잠시 자리에서 벗어나 전화를 하고 왔다.
“지금 통화를 해 보니 연구소에는 아직 네 마리가 남아있다고 하네. 그런데 지금 막 학생들이 수행 신청하러 많이 들어왔다고 해.”
"그렇군요. 그래도혹시 모르니 일단 연구소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수행으로 신청해 주세요 담당관님."
나는 한 줄기 희망을 안고 서둘러 태초마을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가면서도 다급한 마음에 마부 아저씨를 계속 재촉했다. 한편 무기력하게 마차 안에 앉아 있으니 드는 생각은온통 후회뿐이었다. 좀 더 빨리 신청을 해야 했다. 진작에스타팅을 받아 놓을걸.
원래부터 연구소는 목장에 비해 가능한 스타팅 포켓몬의 수도 매우 적었고, 목장에서는수행생의 안전을 위해 조금은 성장한 포켓몬을 지급했기 때문에 연구소 포켓몬은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나는 별 탈없이 박사님께 포켓몬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계획을 세우며 너무 안일했다.
연구소에 가도 원하는 포켓몬은 받지 못할 것이다. 아! 이제 와서 후회라니, 블루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날로 되돌아갈수 있다면... 미뇽을 스타팅으로 얻을 수 있었다면!
태초마을에 도착해 연구소로 뛰어들어가는데 막 연구소에서 불평하며 나오는 소년과 마주쳤다. 그 소년은 나와 같은 상록 시립학교의 동기로 친하지는 않았고, 인사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리그힛, 들어가봐야 소용없어."
소년은 짜증 어린 표정으로 내게 말하고는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가슴이철렁 내려앉았다. 다 끝난 건가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간절함으로 연구소 안으로 들어섰다.
연구소 안쪽에는 다섯 명의 학생이 보였는데 세 명의 학생이 트레이너 전산체계에 등록하고 있었고, 그들 위에 있는 거대한 화면을 확인해 보니 스타팅 포켓몬으로 각각 구구, 캐터피, 뿔충이를 선택한 거로 보였다. 또 다른 두 명의 학생은 잠시 망설이다가이내 되돌아섰다. 나는 멀찍이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 박사님께 다가갔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보아하니 다 끝난 것 같지만, 혹시 스타팅 포켓몬으로 남은 것이있나요? 아니면 숨겨두신 거라든지."
"리그힛 왔구나, 이번처럼갑자기 학생들이 연구소로 몰려 온 게 얼마 만인가 싶은데. 그래 수행을 가기로 정한 거니? 포켓몬은 이제 한 마리가 남았단다."
"어? 어, 그게, 그게… 정말이에요?"
나는 예상치 못해 놀라고, 기쁨에 차서 되물었다. 포켓몬이 남아 있는데 다른 학생들이 왜 등을 돌린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포켓몬은 어떤 학생도 받으려 하지 않아서..."
"네?"
나는 박사님을 따라 이전에 보았던 긴 테이블로 향했다. 몬스터볼이가득 차 있던 구멍마다 구석에 하나를 빼고는 모두 비어있었다.
박사님은 마지막으로 남은 몬스터를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몬스터 볼에있는 것은 바로 꼬렛이었다.
꼬렛. 들쥐 포켓몬. 크고날카로운 앞니를 가지고 딱딱한 물건을 잘 갉아먹는다. 경계심이 매우 높아 자고 있을 때에도 귀를 움직여주변의 소리를 듣고 있다. 마을 뒷마당에만 가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포켓몬이며, 작은 체구에 잽싸지만 힘이 약하고 노말 타입이라 특출난 기예가 없다. 귀엽지도않고 약간은 흉포하게 생겨 상록시티의 아이들은 포켓몬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구구는 흔하지만 비행타입으로 쓸모가 있고, 캐터피와 뿔충이는성장이 빠르기에 조금은 낫다.
하지만 꼬렛은 정말 답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꼬렛 하나만 남은것을 보고 되돌아 간것도 이해가 되었다. 수행생들에게 스타팅은 굉장히 중요한데 꼬렛으로 시작할 수는없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너무 흔해선지 꼬렛에 대해서는 가르치지도 않았고, 실습해 본 적도 없었다.
나 역시 꼬렛을 보고 망설여졌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그냥 수행을 포기하고 진학을 선택할까 싶었다. 꼬렛으로는첫 번째 체육관도 넘어서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아 버려진 몬스터...
나는 가만히 꼬렛이 담긴 몬스터볼을 바라보았다. 버려진 몬스터. 그 안쓰러움은 익숙한 감정이었다. 나는 세워둔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마음먹고 몬스터볼을 손에 들었다.
"리그힛. 그걸로하겠니?"
"네... 박사님. 등록해 주세요."
"너무 실망하지는 말아라.스타팅 육성에 대한 평가는 절대평가나 상대평가 말고도 얼마나 성장시켰는지에 따른 능력지향 평가 또한 기준에 있으니까. 또 마스터 트레이너중 하나인 카렌은 '강하거나 약한 포켓몬은 사람이정하는 것일 뿐이니 정말 강한 트레이너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포켓몬으로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이야기했단다."
포켓몬은 각자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약하다고 불릴지라도 노력한다면얼마든지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지 않을까? 챔피언 트레이너 세준의 파치리스처럼 말이다.
"아,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다만 어쩐지 그 꼬렛은 조금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던데...뭐, 아니다. 등록하러 가자꾸나."
연구소는 학생들이 다 되돌아가서 한산했다. 나는 전산에 트레이너 등록을하기 위해 방금 받은 몬스터볼을 거대한 기계 위에 올려놓고 인적사항을 입력했다.
-트레이너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노랑시티출생, 상록시티의 수행생 리그힛. 스타팅 포켓몬은 꼬렛(No.19). 트레이너의 아이디 넘버는 299-792-458입니다.
나는 내 트레이너 인증카드를 받아들고 감상에 젖었다. 아쉬운 점도있었지만 아슬아슬하게 트레이너가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러웠다.
"리그힛, 네가올해 우리 연구소의 마지막 수행생이구나. 꼬렛은 너무나 흔한 포켓몬이라서인지 역설적으로 연구된 것이깊지 못하기도 하다. 그래서 네가 꼬렛과 함께 다니며 많은 리포트를 남겨 주기를 원한단다. 자, 이것은 포켓몬 도감이다. 설명은전에 들어서 알고 있겠지?"
"네 박사님. 노력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연구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소년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바... 박사님! 늦잠을 자버렸어요!"
눈 앞에 보인 것은 태초마을에 사는 지우였다. 지우는 레드처럼 용감하지도않았고, 그린처럼 사람들을 휘어잡는 매력도 없었다. 블루처럼유쾌하지도, 나처럼 지적이지도 않은 그냥 어수룩한 애였다. 항상덤벙대고 마음이 여린 친구였다. 장점이라면 착하고 순한 것 정도랄까?
"어? 리그힛도와 있었네요. 박사님 저... 수행을 떠나려는데요... 스타팅을 받으려고 왔는데... 목장에서 포켓몬을 모두 분배했다는말을 들었는데... 아우, 어떻게 해야 하죠? 설마 남은 포켓몬이 없나요...?"
지우가 허둥대며 말했다. 지우도 수행을 가려는 모양인데 아쉽게도 상록시티의수행생은 내가 마지막이었다.
"미안하구나."
박사님은 지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었다. 지우는 대답을 듣자 망연자실하게가만히 서 있다 고개를 떨구었다. 나도 조금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우라면 내가 받은 꼬렛이라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포켓몬으로 등록했을 텐데.그렇다고 양보할 마음은 없었다. 이미 등록되어 바꿀 수 없기도 했지만.
그때 멀찍이 있던 한 연구원이 박사님께로 다가왔다.
"박사님,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전에 스타팅으로 준비되어있다가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치료실로 보냈던 포켓몬이 있지않습니까? 막 확인해 보니 다행히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것 같습니다."
"오, 정말인가? 그렇다는구나. 지우야. 잘되었구나."
"저... 정말인가요? 으아아아."
결국 지우는 이날, 정말 마지막으로 스타팅 포켓몬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포켓몬은 피카츄였다. 피카츄는 꼬렛과 비슷한 토끼쥐 포켓몬으로꼬렛과는 달리 희귀한 편이었다. 꼬렛과는 달리 귀여운 외모로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으며, 꼬렛과는 달리 강력한 전기타입을 가지고 있었다.
꼬렛과는 달리.... 나는 뭔가 무척 아쉬운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5. 시작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나를 맞아주었다. 저녁 식사 때라 할머니는큼지막한 나무 열매 속을 파내 각종 채소로 속을 채우고 쪄낸 요리를 해 주셨는데, 밥을 먹기 전 꼬렛이생각나 불러냈다.
꼬렛은 나오자마자 밥 냄새를 맡았는지 킁킁거렸다.
“오호? 리그힛. 꼬렛을 스타팅으로 받았구나.”
할머니는 꼬렛을 보고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반응을 예상했는지라살짝 기운이 빠졌다. 처음 꼬렛을 받았을 때는 나라면 잘 키우고 어떻게든 훈련하면 될 거라는 자신감이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차츰 시들고 꼬렛의 약함이 내 치부인 것처럼 부끄럽기만 했다.
“자, 꼬렛도 밥을 먹어야지? 리그힛은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이는구나. 흠…”
할머니는 접시에 요리를 조금 담아 꼬렛에게 주고는 나를 따로 잠시 불러냈다.
“기운이 없는 게 혹시 꼬렛 때문이니?”
“….”
“할머니는 말이다. 네가수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전처럼 밤을 새워 계획하고, 책을 뒤적이는 걸 보며 조금 놀랐고 많이 기뻤단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돌아와 이렇게 변하다니 약간은 실망스럽다. 그게어떤 이유에서건. 너의 그런 모습은 포켓몬에게도 비추어진단다. 자신을부끄러워하는 트레이너에게 그 포켓몬은 얼마나 애처롭니? 그럴 거면 수행은 떠나지 않는 게 좋겠다.”
“…네, 하지만 꼬렛으로는첫 번째 체육관도 어려운 걸요.”
“정말로 좋은 트레이너는 훈련방법이 좋은 이도 아니고, 포켓몬 지식이 뛰어난 이도 아니란다.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이도, 많은 배지를 가진 이도 아니며, 다만 진심으로 포켓몬을위하는 트레이너. 그가 진짜란다. 할머니는 네가 뛰어난 트레이너가아니라 좋은 트레이너가 되길 바라.”
할머니의 말이 맞다. 뛰어난 트레이너이기 전에 우선 좋은 트레이너야한다. 잘 알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왜 이럴까? 나는 머리를 힘껏 저으며 부끄러움과 남아 있던 아쉬움을 지워냈다.
“할머니, 알았어요. 제가 중요한 걸 잊었네요. 고마워요.”
할머니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래, 먼저는 꼬렛과 친해져야겠다.
다음날 환송회 날이 되어 나는 다시 학교에 갔다. 학교에는 많은 학생이있었는데 저마다 몬스터볼을 자신의 벨트에 잘 드러나게 채워놓고 있었다.
환송회는 생각보다 싱겁게 진행되었다. 학교 대강당에 모여 선후배의축하와 몇 가지 지원 품을 받았고,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들었다.
“수행 신분의 트레이너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한동안은 집에서 머물며 포켓몬을 단련해도 되지요. 다만, 너무 오랫동안 한 곳에서 여행하지 않고 머무른다면 리포트에 쓸 내용이 부족해 점수를 받기 어렵고, 낮은 점수가 계속되면 심한 경우 수행생 신분을 회수하고 학교로 되돌아오는 조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수행을 하며, 여러분이포켓몬의 포획방법과 육성기술을 얻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포켓몬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쌓는 것입니다. ‘수행의 참 목적은 포켓몬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이다.’라고이야기한 마스터 트레이너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상해꽃 같이 크고 힘 좋은 포켓몬이 있다면 짐을 많이싣고 다닐 수가 있고, 거북왕 같은 물 포켓몬은 등에 타고 파도타기 기술로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또 리자몽과 같은 대형 비행 포켓몬을 타고 함께 하늘을 날 수도 있지요. 포켓몬의물은 아무리 마셔도 갈증을 해결할 수 없지만, 설거지를 할 수 있고,추울 때 포켓몬의 불은 몸을 녹여줄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범위 안이라서 큰 감흥이 없었다. 마지막순서로 사진 촬영을 하고 환송회가 끝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최종 점검을 했다.
상록시티에서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상록시티 체육관이 되어야 할 테지만, 이체육관은 몇 달 전부터 비어 있었다. 체육관은 목장과 더불어 지역 포켓몬의 훈련을 돕기에 꼭 필요하지만, 체육관 관장이 되기 위해서는 마스터 트레이너 이상의 까다로운 조건이 있고, 상록시티체육관 관장이 범죄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에 아직 체육관 관장을 할 만할 사람을 못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록시티의 수행생들이 배지를 얻기 위해 갈 만한 가까운 곳은 북쪽의 회색시티, 동쪽의 녹색시티(무지개시티)와갈색시티, 남쪽의 홍련섬에 있는 적색시티 정도였다.
내 계획은 상록 숲을 거쳐 먼저 회색시티로 가는 것이었는데, 상록숲은 훈련하기에 좋고 산장이 많아 노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회색시티의 체육관에서 훈련하고, 배지를 얻은 후 달맞이 산을 거쳐 청색시티로 간다. 이런 수행 코스는예전부터 상록시티의 많은 수행생이 선택해온 정석적인 방법이었다. 그만큼 좋은 방법이었다.
“할머니,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몸 건강히 잘다녀오너라. 가끔 편지하고!”
“네!”
나는 상록 숲으로 가기 전, 잠시 포켓몬 마트에 들렸다. 여행에 필요한 식량과 옷 등은 배낭에 챙겼으나 몬스터볼과 상처약 같은 아이템은 미처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트에 도착하자 많은 초행 수행생들 사이에 지우와 피카츄가 있었는데, 지우는배낭을 몬스터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우야!”
“아, 리그힛이구나”
“무슨 몬스터볼을 그렇게 잔뜩 샀어?몬스터볼이 얼마나 비싼데…”
“아… 이왕이면 포켓몬이보이는 데로 다 잡으려고!”
나는 머리가 살짝 아파졌다. 이렇게 순진한 애한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
“지우야… 너 여행 중에먹을 식량은 있어?”
“어?”
“그리고 해독제는? 상처약은?”
“….”
“아무리 수행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포켓몬 센터가 있다지만, 중독된 포켓몬은 센터까지 오기 전에 빈사할 수도 있어.”
“아…”
“그리고 몬스터볼은 처음엔 5개에서 6개 정도로 가지고 다니면 충분해. 어차피 6마리 이상의 포켓몬을 가지고 다니는 건 규정 위반인걸”
“그런데 한번 포켓몬 포획에 실패하면 그 몬스터볼은 망가지잖아? 그러면…”
“그렇다고 개당 200 노우(돈의 단위: 100노우=10,000원정도)씩이나 하는 몬스터볼을 일회용으로 쓰려고? 부서지면수리해서 쓰면 돼”
“그, 그거 어렵잖아. 나 할 줄 모르는데”
“음… 수리해주는 곳이있긴 한데, 뭐 간단하니까 내가 가르쳐 줄게”
수퍼볼도 아니고 일반 몬스터볼은 요령만 있으면 생각보다 쉽게 수리할 수 있었다.
“그럼 당분간은 같이 다녀야겠다.”
나는 학교에서 지원받은 3000 노우로 회복약과 해독제, 말린 과일 등을 사서 지우와 나누었고 대신 몬스터볼을 받았다. 지우는다행이라며 가방에 짐을 다시 쌌다.
“지우야, 넌 어디로 가려고했어?”
내 계획은 회색시티로 가는 것이었지만, 이제 지우와 동행하기로 하였으니의견을 들어봐야 했다.
“서쪽으로 가려고 했어.”
“응? 서쪽? 서쪽은 왜, 거긴 석영산맥이잖아?거긴 배지가 없으면 출입 제한이 걸리는데”
“어? 몰랐어… 석영산맥에 강한 포켓몬이 많이 있다고 해서, 레드랑 그린은 거기로갔는데…”
지우와 나는 조금의 이야기 끝에 회색시티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전에잠시 서쪽으로 가서 레드와 그린을 찾아보기로 했다.
서쪽 길은 막혀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지 길 위에는 수행 중인 트레이너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심 노상시합을 기대했는지라 조금 아쉬웠다.
“근데 왜 피카츄를 꺼내놓고 다녀?”
처음 마트에서 봤을 때부터 지우의 모자 위에는 피카츄가 올라가 붉은 뺨에서 미세한 전기를 내뿜고 있었다.
“피카츄가 몬스터볼에 들어가기를 많이 싫어하거든…”
지우의 말을 듣고 전에 읽었던 포켓몬 육성논문이 떠올랐다. 그 논문에서는포켓몬을 꺼내두고 함께 다닌다면 피로도가 쌓여 당장 시합 때에는 불리할지라도, 평상시에 훈련이 되며친숙도가 올라 특정 기술은 위력이 높아지고, 진화에 관련되기도 하는 만큼 결과적으로 장점이 많다고 했다.
나도 꼬렛을 꺼냈는데 꼬렛은 수줍은 성격이라서인지 울지도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그때 본 꼬렛이네? 안녕 꼬렛.”
꼬렛과 피카츄는 비슷한 체격이라 나도 꼬렛을 들어 머리 위에 올려놓아 보았다.그런데 피카츄와는 달리 꼬렛은 중심을 못 잡고 미끄러졌다.
“음… 이건 안 되겠다.”
나는 꼬렛이 물리공격을 위주로 하는 포켓몬인데도 특수공격을 하는 피카츄보다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걸 보고 침울해졌지만,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뭐, 괜찮아 괜찮아. 꼬렛. 이제부터 같이 갈 건데 잘 따라올 수 있지?”
-꼬렛!
꼬렛은 작게 울어 내게 답했다.
#6. 시합
“어? 리그힛, 잠시만.”
지우는 내 옷깃을 살며시 붙잡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앞쪽에 있는 나무위를 가리켰는데, 망키 한 마리가 굵은 가지에 늘어져 있었다.
“조… 좋아, 이건 기회야! 리그힛 잠시만 기다려줘.”
지우는 망키를 잡을 생각인 듯 가방에서 빈 몬스터볼을 꺼냈다.
망키는 돼지 코를 가지고 있는 원숭이 포켓몬으로 몸놀림이 가볍고 난폭하다. 격투타입으로노말타입인 내 꼬렛으로는 상성이 나쁘지만 피카츄라면 괜찮을 것이다.
피카츄가 지우의 머리 위에서 껑충 뛰어내리자 지우는 모자를 뒤로 돌려쓰며 외쳤다.
“가라 피카츄! 어제 했던거 기억하지? 전기쇼크!”
-파직!
피카츄의 두 붉은 뺨에서 스파크가 강렬해지더니 순간 망키가 있는 자리에 전격이 가해졌다.
“좋아 피카츄!”
“아직이야!”
나는 피카츄가 전기쇼크를 쏘기 직전 망키가 재빨리 자리에서 피하는 것을 보았다.
망키는 옆 나무로 옮겨가 나무열매를 던졌는데, 열매 중 하나에 머리를맞은 피카츄가 화가 났는지 전기쇼크를 망키에게 마구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망키는 좌우로 공격을피하며 피카츄 바로 앞까지 달려와 강하게 할퀴기를 했다.
“피, 피카츄!”
“안 되겠다. 꼬렛! 몸통박치기!”
나는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꼬렛에게 공격을 지시했고 꼬렛은 전날에 가르쳐 준 대로 망키를 향해 힘껏 달렸다. 그러나 망키는 꼬렛의 공격 역시 살짝 피했고, 순간 피카츄가 그자리에 전격을 발사하면서 꼬렛이 대신 맞아버렸다.
-캬악!
“아, 아니!”
“꼬렛!”
나와 지우는 당황했다. 망키 한 마리가 원래 이렇게 센 건지, 우리가 약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꼬렛은 피카츄의 공격에 기절했고피카츄 역시 힘이 다했는지 쓰러졌다.
망키는 가슴을 치며 승리를 노래했다. 그 소리에 나무 위에서 다른망키들이 하나둘씩 더 나타났다.
“이런!”
“우, 우리 어떻게 해?”
한 마리로도 버거운데 여러 마리라니! 망키들은 우리 주위로 천천히다가와 둘러쌌다.
“시… 시합은 끝난 거아니야? 화가 많이… 났나?”
“읽은 적이 있어. 망키들은영리하게도 무리생활을 하며 지나다니는 약한 트레이너에게 화풀이하고, 가방을 털어가기도 한대.”
“와… 완전 산적 떼잖아?”
망키들은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 어느 순간 모두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으… 으악!”
그때, 한쪽에서는 화염이 뿜어졌고,다른 한쪽에서는 넝쿨이 채찍처럼 날아와 망키들을 공격했다. 공격을 당한 망키들은 예상치못한 공격에 우리에게서 멀찍이 떨어졌고, 나는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 지우와 리그힛이잖아?”
망키 무리 뒤쪽에서 레드와 그린이 천천히 다가왔다.
“파이리, 불꽃세례!”
“이상해씨! 넝쿨 채찍!”
파이리와 이상해씨가 공격을 하자 대부분의 공격이 적중했고, 망키들은허둥댔다. 우리와는 달리 실력에 차이가 있었다. 파이리와이상해씨는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을 시도했으며 가끔은 망키가 피하는 곳으로 빠르게 공격했다.
둘의 공격이 어찌나 강한지 망키들은 다가올 생각도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모두 물러갔다.
“대단해!”
“그래, 정말 대단해! 너희 언제 이런 실력을…?”
“이 정도야 뭘. 아 그런데리그힛은 오늘 출발한댔지? 벌써 꼬렛을 잡은 거야?”
“꼬렛은 내 스타팅 포켓몬인데…”
“….”
전투가 끝나고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레드의 파이리와그린의 이상해씨는 많은 훈련을 거쳤는지 지친 모습이 없이 늠름한 자태로 서 있었다.
“너희 둘이서 벌써 석영산맥에 갔다가 오는 길이야? 거기 막혀 있지는 않았어?”
“응, 나는 사실 막혀있는 걸 알고 회색시티로 바로 가려 했는데, 레드가 강한 포켓몬이 있다며, 몰래 들어가자고 꾀어서… 그런데 안 되네. 위험하다고 돌아가래. 전투경찰 트레이너가 새 포켓몬으로 경계하고있었어.”
“뭐야, 그린 너도 석영산맥가는 거 동의했잖아. 나만 탓하기는. 또 덕분에 익스퍼트트레이너 만나서 조금 배우고 좋았잖아?”
“그건 그래. 크크”
“이, 익스퍼트를 만났어?”
“응 그 전경 누나였는데 무지 세더라고. 나랑 그린이랑 같이 덤벼봤는데 한 방에 져버렸어.”
“우와.”
익스퍼트는 우리가 상대할 실력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포켓몬 트레이너는 실력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졌는데, 초보자부터 아마추어까지의대부분인 트레이너를 유저User라고 불렀다. 유저 간에도실력에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프로 수준이 아니라서 구별하는 것에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저라는 말은 보통 생략하고 트레이너라고만 부른다.
그 위로 소수의 전문가를 익스퍼트Expert 트레이너라고 불렀는데익스퍼트는 체육관 배지를 모두 갖고 있으며, 포켓몬 리그 본선 8강이상에 오를 경우에나 주어지는 등급이었다.
익스퍼트 위의 단계가 마스터Master 트레이너로, 리그 결승전에 간 두 명에게 주어지는 호칭이었다. 이때 한 가지이상 타입에 대한 전문 소양이 있을 때 사천왕High master이나 체육관 관장Gym leader에 지원할 자격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챔피언Champ이라는 칭호가 있는데, 이는 그 지역 정점에 서있는 단 한 명의 트레이너로서, 매해 리그우승자와 타이틀 매치를 해 칭호를 지켜내야 했다.
“충분히 쉰 것 같은데… 어때레드? 여기서 시합 한번 해 보자.”
그린이 도발적인 표정으로 레드에게 말했다.
“그래, 좋지. 그날 이후로 특훈을 거듭해 온 파이리를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후후, 너와는 두 번째시합이구나. 블루도 같이 보면 좋을 텐데. 뭐, 어쨌든 리그힛. 그때 그 꼴사나운 일은 잊고 너라도 잘 봐둬! 나와 이상해씨가 승리하는 모습을!”
레드와 그린은 시합할 만큼의 간격을 두고 마주 섰다.
“와, 너희 지금 시합하려는거야? 두근거리는데? 리그힛 우리도 쟤네 끝나면 시합하자.”
망키와의 싸움에서 조금 보기도 했지만, 연구소에서 보다 둘의 실력이얼마나 늘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시합이 예상되기도 했는데,역시 풀타입의 이상해씨로는 불타입의 파이리를 이기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 내가 심판을 볼게. 시합규칙은 일대일 싱글 배틀! 좌측은 레드의 파이리, 우측은그린의 이상해씨! 자. 그럼, 시합 시작!”
“후후, 레드. 타입 상 우위라고 방심하지 말라고. 가라 이상해씨! 접근해서 독가루!”
이상해씨가 파이리 근처까지 다가가 등에 달린 씨앗에서 보라색 가루를 뿜어 쏘아냈다. 그 주변은 어느새 가루로 뒤덮였고, 파이리는 가루를 들이마셨는지콜록거렸다. 그 즉시 이상해씨는 파이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앗, 파이리! 독 가루 주변을 피해!”
“이미 늦었어! 지금 쓰려고여태껏 몰래 숨겨온 기술이다!”
파이리는 이상해씨의 독 가루를 피했지만 이미 중독이 된 듯 비틀거렸다.
“힘을 내, 파이리! 불꽃세례!”
끝내 시합에서 이긴 것은 처음 내 예측과는 달리 그린이 되었다. 그린의이상해씨는 파이리에게 약한 풀타입 공격 대신 독타입 공격으로 지속데미지를 주고, 적당히 피하면서 시간을끄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파이리 전투불가로 시합 종료! 승자는그린!”
“파이리!”
심판을 보던 내가 끝을 알리자마자 레드는 파이리를 부르며 뛰어들어갔다. 그린도독 가루를 쓴 것이 미안했는지 레드에게 다가가 해독제와 상처약을 건넸다. 다행히 치료를 시작하자 파이리의안색이 다시 좋아졌다.
“으윽. 그린 따위에게지다니. 치욕스럽다!”
“하하핫. 이제 내 실력을알아보시겠는가?”
“리그힛, 우리도 시합해보자!”
레드와 그린의 시합을 지켜보던 지우가 내게 시합을 요청했다.
“그래, 너희도 시합해봐야지. 내가 심판 볼게!”
그린이 심판을 보기로 하고 나와 지우가 거리를 벌려 마주 보고 섰다.
조금은 긴장되는 나의 첫 시합이다. 물론 학교에서 실습 시합을 많이했었지만, 그때는 어느 정도 짜인 범위 내에서 지시를 내릴 뿐이었으므로 이렇게 내 포켓몬으로 하는 자유로운시합은 처음인 것이다.
피카츄는 호기롭게 지우 앞으로 나섰고, 꼬렛도 조용히 내 앞으로 와서섰다.
그리고 시합이 시작됐고, 나는 졌다.
#7. 상록숲
우리 넷은 상록시티에서 포켓몬을 완전히 회복시킨 후 북쪽 도로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간간이 마주친 다른 1년 차 수행생과 시합을 했는데, 과연 레드와 그린은 독보적으로 강해 상대되는 트레이너가 없었다. 반면지우의 승률은 절반 정도였고, 나는 아쉽게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조금 답답한 심정이지만, 그래도 꼬렛이 내 훈련을 잘 따라와 주고있으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실제로 전에는 허무하게 지던 걸 요새는 아쉽게 져 버리곤했다.
우리 넷은 상록 숲으로 들어서서 우선 머물 곳을 알아봤다. 상록 숲이라고나무만 잔뜩 있는 것이 아니라 유원지도 있었고, 마트도 있었으며 포켓몬 센터도 있었다.
포켓몬 센터에서는 수행 중인 학생을 위해 싼값에 숙소를 제공하기도 하였는데, 우리가머물기에는 센터가 가장 나아 그곳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는 각자의 훈련을 위해 따로 헤어져 다시 상록숲으로 들어갔다. 넷이서 몰려다니면 그만큼 야생 포켓몬이나 다른 트레이너를 만날 때 나눠서 싸워야 하기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캐터피?”
캐터피는 녹색의 나비 애벌레처럼 생긴 벌레 포켓몬이었는데 힘이 약하고 속도가 느려 상대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만약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독침붕처럼 무리를 지어다니는 포켓몬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 그럼 꼬렛, 약하게 몸통박치기!”
포획할 목적도 아니었고, 훈련일 뿐이므로 강하게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캐터피의 화만 돋울 수 있으면 되었다.
-쾅!
꼬렛의 박치기에 몸집이 가벼운 캐터피는 저만치 뒤로 밀려났다.
“꼬렛. 이제 물러나서피해!”
캐터피는 화가 많이 났는지 꼬렛을 향해 마구 실을 내뿜었고, 꼬렛은좌우로 쓱쓱 피하기만 했다.
이것은 꼬렛의 반사신경과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내가 고안한 훈련 방법의 하나였다. 캐터피가 내뿜는 실은 무척이나 끈끈해서 맞게 되면 스피드가 떨어진다. 또바닥에 들러붙은 실들도 방해되어 점점 피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꼬렛은 최근 훈련의 성과가있었는지 캐터피의 실뿜기를 모두 쉽게 피해냈다.
“이젠 캐터피 하나의 공격 정도는 잘 피할 수 있네. 그럼 꼬렛! 실뿜기에 한번 맞아볼래?”
“꼬렛!”
꼬렛은 내게 답하고는 일부러 캐터피의 실에 맞았다. 끈적끈적한 실일뿐이므로 데미지는 없을 것이다. 이는 꼬렛의 스피드를 낮춘 상태에서 피하는 훈련이었는데, 과연 속력이 떨어진 꼬렛은 조금 더 힘들고,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꼬렛이 계속 피해내자 캐터피는 더 실을 못 뿜고 머뭇거렸다. 꼬렛도공격하지 않자 캐터피는 그 자리에서 뒤로 도망쳤다. 따라가서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캐터피를 쓰러트리고얻을 경험치가 별로 없어서 그냥 놓아주었다.
“잘했어!”
나는 내게 다가온 꼬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꼬렛은 신기할 정도로 이해력이 좋았다. 힘은 많이 약했지만, 명령파악이나 상황판단력이 무척 뛰어났다.
포켓몬은 사람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기보다는 어떠한 의미인지를 대략 판단하는데,그래서 트레이너가 기술을 명령할 때에도 ‘날카로운 앞니에 기운을 싣고 강하게 물어서 공격해!’ 보다는 방법을 가르친 후 ‘필살앞니!’라고 지칭해 부른다. 명령어가 너무 길면 시합 중에 착오가 생길수 있었고, 설령 잘 이해했다 하더라도 반응이 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꼬렛은 그런 게 없었다. 얼마든지 섬세하게 지시해도 빠르게 반응했다.
더불어 꼬렛은 조금 내성적으로 보여 걱정했지만, 사실은 생각이 깊은것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스스로 전략을 세워 혼자서도 잘 싸울 정도였다.
꼬렛과 나는 같이 자고, 먹고 하는 시간을 보내니 많이도 친해졌고, 훈련도 체계적으로 계속하여 스피드가 오르고 기술이 쌓여 갔다. 레드와그린, 지우가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비밀 무기도 준비되어있으니 어쩌면 시합해서 내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지캐터피와 뿔충이뿐인 이 근처에선 더 할 훈련이 없는데. 근거리에서 뿔충이의 독침도 잘 피하고… 허가가 안 나서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데.”
훈련을 더 하려면 아무래도 회색시티로 가서 배지부터 얻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우리는 아직 1년 차 수행생인 만큼 배지 개수에 따라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 있었고, 상록숲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려면 배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단포켓몬 센터로 돌아가서 다른 친구들과 의논해 봐야겠다.
센터로 되돌아가니 1층 로비에는 그린과 지우가 먼저 와서 TV를 보며 쉬고 있었다. 그린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여, 리그힛! 오늘 훈련은 잘됐어?”
“물론이지. 넌 어때? 아, 근데 레드는 아직 안 왔나 보네.”
“응. 어? 마침 저기 오고 있네. 어이 레드!”
레드는 포켓몬 센터로 성급히 들어오며 소리쳤다.
“간호사 누나!”
그리고는 우리를 지나쳐 성급히 프런트데스크로 달려갔다.
“치료를 부탁해요!”
레드는 몬스터볼을 꺼내 포켓몬 간호사에게 내밀었고, 간호사는 받아서치료실로 뛰어들어갔다.
“어? 레드, 괜찮니?”
“파이리가 많이 다쳤어.”
“어쩌다가?”
“…그게, 다 내 잘못이야. 상록숲 금역으로 들어갔었거든. 거기로는 가는 게 아닌데…”
레드는 자책하며 말했다. 금역은 너무나 위험해서 배지를 모두 가지지않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레드가 거기로 간 것이었다. 어쩌면레드 만이라도 무사히 돌아온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흥, 그러게 조심해야지! 정말 죽을 뻔했잖아? 지나친 용기가 만용이 돼서 결국 파이리만 다쳤구나.”
“뭐야? 그린, 너 말이 좀 심하다!”
“사실이잖아? 전에도 그랬었고.”
“그, 그만. 그만해 너희.”
지우는 싸울듯한 레드와 그린을 말렸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아. 일단올라가서 파이리가 낫기를 기다리자.”
우리는 파이리가 치료를 받을 때까지 3층에 있는 숙소에 올라가 있기로했다.
“…처음 보는 신비한 포켓몬이 있었어. 전국 도감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레드는 침울하게 말을 꺼냈다.
“그 담홍빛의 포켓몬은 허공을 자유롭게 떠다니며 놀고 있었어. 무언가 기묘한 느낌이었어. 뭐랄까…마치 그 주변은 환상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지. 나랑 파이리는 그 마력에 빠져 쫓아간 거야.”
“신종 포켓몬!?”
“그런데 잡을 기회를 노리다 그 포켓몬이 나랑 파이리가 뒤따라가는걸 눈치챈 순간 사라져버렸어. 그리고 우리는 길을 잃었는데, 주위엔독침붕과 도나리, 나시와 라플레시아… 우츠보트들이 잔뜩 있었어. 나오고 나서야 거기가 금역인 걸 알았고, 상대 하기는커녕 걔네들한테서도망쳐 나오는 것도 무서웠다. 그리고 그 와중에 파이리가 공격당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레드가 본 그 기묘한 포켓몬에관심이 갔지만, 이 자리에서 더는 물어볼 수 없는 일이었다.
“후… 상록숲에서 이상해풀까지는진화하고 진행하려 했건만. 이 근방에서 더 할 훈련은 없는데 계속 있을 필요는 없겠지. 모두 어때? 파이리가 다 치료되면 회색시티로 가는 거야. 배지를 얻자.”
그린이 의견을 제시했다. 나 역시 동감하는지라 회색시티로 가는 것이좋을 것 같았다. 레드가 본 그 신종 포켓몬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로부터 4시간 후, 파이리는완전히 회복되었다.
“다시는 널 이렇게 아프게 하지 않을게. 강해지자 우리.”
레드의 다짐을 뒤로하고, 우리는 센터에서 나와 회색시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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