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삶은 유한하나 의지는 영원하리.
*시리즈 전반의 스포일러를 약간 담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강한 몸과 거의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혈귀.
그 시작이자 정점, 키부츠지 무잔
그런 남자의 꿈은 태양을 극복하는 것. 마치 인간처럼.
귀멸의 칼날은 이제 단순한 만화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화를 거치며 동시대에 가히 대적할 자 없는 절대적인 상업성을 지니게 되었고
최근에 개봉한 무한성편이 웬만한 기록이랑 기록은 다 갈아치우며 거대 프랜차이즈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죠.
하지만 의외로 이런 엄청난 인기와 팬덤을 지니고 있음에도 귀멸의 칼날은 혹독한 평을 받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스토리에 관련된 부분으로요.
오늘은 귀멸의 칼날 시리즈 전반에 걸친 주제의식을 둘러보면서 이 프랜차이즈가 단순히 엄청난 작화와 유포터블 하드캐리로만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걸 조심스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왕도적인 소년만화입니다. 소년만화의 대명사인 소년점프에서 조차 이젠 보기 힘든 노력, 우정, 권선징악을 착실히 따라가는 작품이죠.
파워업 이벤트는 빠르게 넘기고 과거회상 따위 쿨하지 않으니 하지 않고 점점 모든 컨텐츠가 짧아짐에 따라 전개를 최대한 시원시원한 도파민 전개로 채우는 요즘 트렌드를 역행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더해 신파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한 한국에서는 사연과 회상을 꽤 자주 사용하는 귀멸의 칼날의 스토리에 대해서 나쁜 평가가 많은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귀멸의 칼날은 그저 혈귀를 해치우고 네즈코를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는 목적만을 가진 평범한 작품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외적인 개연성, 완급조절의 문제는 있으나 전체적인 구도에 있어서는 분명 자신의 색이 가지고 그걸 꽤나 수려하게 풀어냈다고 보거든요.
인간보다 월등하게 강력하고 영생을 살 수 있는 혈귀에 대항하는 나약한 인간. 하지만 사실 혈귀는 인간을 동경한다.
아이러니한 이 문장을 성립시키고 그걸 세대를 뛰어넘는 의지의 전승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귀멸의 칼날이거든요.
귀살대는 동급의 혈귀들에 비해 굉장히 약한 편입니다. 일반 대원들은 탄지로의 동기들을 제외하면 거의 파리 목숨으로 죽어나가고 그 정점에 있는 주들마저 혈귀들의 대장급인 상현에게 큰 차이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들 중에서도 실력자였던 렌고쿠가 상현 최강도 아닌 아카자에게 리타이어하고 이후 등장하는 상현들을 상대로도 최소 2명이상의 인원이 붙어 별의 별 잡기술과 몸비틀기를 퍼부어서 겨우 잡아내거든요.
심지어 작중 처음으로 상현을 쓰러트렸을 때는 113년만이라는 이야기마저 할 정도였으니 귀살대과 십이귀월 간의 격차가 상당했음을 할 수 있죠.
상현 하나 조차 처치하지 못한지 113년. 시대를 감안하면 적어도 3~4세대 동안 무잔은 고사하고 그 직속 부하들마저 정리하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귀살대가 창설된 지 천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세대를 거치면서 몇 번이고 괴멸될 뻔 했으나 그 의지를 이어가며 목표에 닿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역대를 논할 수 있는 전력과 이어져온 전승을 완성시켜 대의를 이룰 수 있게 되죠.
반대편에 선 혈귀는 사실 인간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나은 종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태양이 뜬 낮에 활동하지 못하는 것만 제외하면 늙지도 웬만한 상처론 죽지도 않으며 재생속도도 빠르죠. 게다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혈귀술이라는 특수 기술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이자 정점인 남자 무잔의 목표는 햇빛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일한 약점을 지우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죠.
이미 불로장생에 한없이 가까움에도 무잔은 완전한 불로불사에 집착합니다. 스스로 인간성을 포기하고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동족들을 늘려가며 인간들에게 해를 입히죠.
무잔은 이미 천년을 넘게 살았음에도 자신이 만든 혈귀들을 제외하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외톨이로 살아왔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실낱같은 생명으로 빚어낸 의지를 이어가며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목표를 이뤄내는 귀살대와 대조되는 부분이죠.
인간은 나약하나 그걸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의지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왕도적이고 어찌보면 평범하지만 강렬한 이 주제의식을 작품 전반에 걸쳐 일관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이 화려하고 퀼리티 높은 작화만큼이나 진한 작품의 매력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계속되는 회상이나 사연 나열도 결국 인간이던 시절의 혈귀와 인간의 삶의 대한 이야기임을 고려하면 최종적으로 인간의 의지를 기반으로 한 인간찬가라는 주제의식을 강화한다고 볼 수 도 있겠네요.
가족의 연, 꺾이지 않는 옳곧은 가치관, 동료 간의 유대와 믿음. 그것들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게 만든다. 그리고 일생의 끝이 있을지언정 이어지는 의지는 영원하다. 귀멸의 칼날이 말합니다.
영원의 의미 모르는 너에게 대답을 보여줄 때다.
-합동강화훈련편 op 몽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