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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에 이어 또 한 번 PSP의 성능을 실감하게 된 게임이 발매되었습니다. 남코의 주력 대전 게임으로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철권] 시리즈의 최신작 [철권 5 DR]의 PSP 이식 버전인 [철권 DR]이 바로 그것입니다.
솔직히 [철권 DR]이 PSP로 발매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그리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전작인 [철권 5]를 PS2로도 이식했으니 그냥 PS2로 수월하게 이식할 것이지 굳이 조작계나 성능에 제약이 많은 PSP로 안쓰럽게 이식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무리 초월이식으로 유명한 남코라 할지라도 PSP로 나올 [철권 DR]은 도무지 제대로 된 게임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남코는 멋지게 이식을 해냈고, 충실한 한글화를 거쳐 7월 20일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되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그래픽과 프레임 부분입니다. 아케이드 화면을 PSP 화면 사이즈에 맞게 줄인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의 그래픽으로 돌아가면서 대전 내내 60 프레임을 유지합니다. 승리 화면이나 이벤트 화면에서 프레임이 떨어지고 진파치와의 대전 때 살짝 느려지는 감은 있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아케이드와 다를 바 없는 품질의 화면을 뿌려줍니다.
특히 승리했을 때 캐릭터의 얼굴이 확대되는 장면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케이드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복장의 텍스쳐가 아케이드에 비해 저해상도이고 발가락 같은 부분은 뭉뚱그려 표현했지만 어디까지나 화면이 확대되었을 때 튀어 보일뿐, 정작 대전을 할 때에는 저해상도 티가 나거나 각이 지는 부분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로지 대전할 때만을 상정한다면 전혀 거슬리지 않은 그래픽입니다.
전체적인 화면은 아케이드와 다를 바 없다. |
확대된 모습도 어색함이 없다. |
배경 또한 아케이드의 모습 그대로 다양한 주변 캐릭터나 풀포기, 조각상 등을 어색하지 않게 재현했으며, 심지어는 히트 마크에 생기는 광원 표현과 바닥이 깨지는 연출까지 그대로 연출했습니다. 그냥 대충 느낌만 살리고 삭제될 거라 예상했고 굳이 이런 요소까지 그대로 이식할 필요가 있을까 하던 부분이었는데, PSP라는 머신에서 그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이식을 한 남코의 집착에 가까운 이식 능력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과거 성능차를 극복하고 융통성 있게 이식을 해서 찬사를 들었던 PS용 [철권 3]보다도 훨씬 뛰어난 재현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모델링도 훨씬 뛰어나고 배경까지 그대로 재현해낸 PSP용 [철권 DR]은 그간 PSP로 제대로 된 3D 대전 격투 게임을 만들 수 없을 거란 선입견을 완벽하게 넘어선 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닥이 부서지고 히트 마크에 광원 효과가 들어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일품. |
PSP용 게임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던 길고 빈번한 로딩 문제 역시 [철권 DR]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PS2용 [철권 5]와 거의 비슷하거나 반 박자 정도 느린 정도랄까, 오랜 시간 플레이해도 로딩이 길어서 지루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게임이 진행됩니다. 알파 버전을 미리 플레이했을 당시엔 디버그킷으로 돌렸기 때문에 실제 발매되는 버전의 로딩이 얼마나 걸릴지 내심 불안하기도 했는데 정식으로 발매된 UMD 버전으로 플레이를 해도 이전과 차이가 나지 않은, 굉장히 짧은 로딩을 구현했습니다. 이 정도 그래픽을 뽑아냈으면서도 로딩은 오히려 다른 PSP용 게임에 비해 훨씬 짧은 것을 보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간 쌓은 기술력이란 것을 무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플레이 감각도 아케이드 버전을 플레이하는 것과 비교해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타격감과 판정의 느낌을 잘 살렸으며, 아케이드에서 쓰던 콤보도 별 무리 없이 그대로 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아케이드의 기분만 느낄 수 있었던 수많은 휴대용 대전 게임과는 전혀 다른, 아케이드와 다를 바 없는 게임을 휴대용 머신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철권] 시리즈의 팬이라면 누구나 반길만한 부분입니다. 다만 조작이 문제인데, 커맨드의 입력 자체는 큰 무리 없이 잘 들어가고 풍신 스텝은 물론 각종 콤보를 넣을 때도 즉각 즉각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정으로 주는 컨트롤러 어댑터도 꽤 쓸만해서 이를 부착해서 플레이를 하면 조작감이 좋아지는데다 1P 쪽에서 기술이 잘 안 나가는 분들은 옵션에서 2P 쪽으로 설정해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으니 십자키 자체 대해서는 큰 불편이 없을 듯합니다.
아케이드에서 하던 맛 그대로~. |
로딩은 굉장히 짧은 편. |
다만 스틱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던 PS2가 아니라 오로지 본체에 있는 십자키와 버튼으로 플레이를 해야 하는 PSP로는 적지않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PS2일 때는 패드로 플레이를 한다 해도 패드를 밑으로 숙이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왼손+오른발과 같은 버튼을 동시에 누를 수 있었지만 직접 본체에 있는 화면을 봐야 하는 PSP로는 패드를 잡듯 손목을 숙여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목이 위로 들리게 됩니다. [철권]이라는 게임이 워낙 희한한 버튼 입력이 많은 시리즈이기에 문제는 더욱 커지며, 저 역시 PS2로 할 때에는 카자마 아스카로 플레이를 했지만 PSP로는 주력으로 사용하는 기술의 조작이 힘들어 거의 플레이를 못하는 실정입니다. L/R 버튼을 이용해서 단축키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아케이드나 PS2로 하는 것보다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애드혹 대전은 물론 하나의 타이틀로 대전을 할 수 있는 쉐어링 기능까지 지원을 하기 때문에 특히나 [철권] 시리즈의 인기가 높은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듯합니다. 쉐어링 모드로 대전을 할 때는 데이터 전송에 시간이 걸리지만 같은 캐릭터끼리 대전을 할 경우 절반 가까이 시간이 줄어드는데다 다른 캐릭터로 바꾸지 않고 이어서 배틀을 할 경우 그대로 로딩 없이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편리합니다.
그냥 주변에 PSP를 가진 친구가 있다면 타이틀이 하나만 있더라도 큰 무리 없이 제대로 된 대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로 작용할 듯합니다(하지만 장담컨대 학교에 가져가서는 절대 안 될 타이틀).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를 이용해서 대전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휴대용 대전 게임으로서 가능한 모든 대전 방식을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에 맞는 충실한 지원을 해줍니다(참고로 일본판과 한국판끼리 대전도 지원합니다).
[철권] 시리즈의 명물인 엔딩 무비 역시 고화질로 빠짐없이 담아냈으며,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볼 수 있는 시어터 모드도 불편했던 PS2용 [철권 5]보다 간편한 방식으로 바뀌어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원작에서 호평을 받았던 멋진 BGM도 들을 수 있도록 따로 모드를 만들어놨습니다. 기본적으로 [철권 5]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엔딩 무비는 PS2 버전과 동일하지만 새로 추가된 캐릭터들의 엔딩 동영상은 새롭게 제작을 해서 수록했으며, 여러모로 후속작에 어떤 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될지 약간은 짐작하게 해줍니다. 굳이 해당 캐릭터로 스토리 모드를 클리어하지 않더라도 포인트만 모으면 따로 구입을 할 수 있는 것도 특이하다면 특이한 부분.
이 아가씨 엔딩은 참 뭐라 해야 할지…. |
이번 작품에서는 전국의 도장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고스트 캐릭터와 대전을 벌일 수 있는 철권 도장 모드가 수록되었으며, 그 외에도 PS2용 [TTT]에 들어갔던 철권 볼링 모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콤보를 연습하며 서로 경쟁할 수 있는 콤보 액션 모드도 보너스 모드에 추가되었는데, 단순히 빠른 기록을 내어서 경쟁한다는 개념을 떠나 이 모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콤보들을 많이 익힐 수 있습니다. 따로 공략을 보지 않더라도 잘 쓰지 않는 캐릭터들의 콤보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을 익힘과 동시에 혼자서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오랫동안 붙잡을 수 있는 용도로도 쓰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다른 격투 게임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될 때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기를 바랄 정도로 괜찮은 모드라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도장 깨기 모드라 할 수 있는 철권 도장 모드. |
캐릭터 구성도 [철권 5]에 등장했던 모든 캐릭터를 빠짐없이 그대로 넣었으며, 아케이드용 [철권 5 DR]에 추가되었던 캐릭터들도 포함되었습니다. PS2 버전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모든 캐릭터를 고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처음부터 30명이 넘는, 휴대용 게임으로는 보기 드문 캐릭터수를 자랑합니다. 여기에 실제 플레이어의 고스트 캐릭터들도 새롭게 추가되었으며, 이들과 대전을 하면 실제 플레이어가 주로 쓰는 콤보를 (맞아가면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세가의 [버쳐 파이터 4]를 적극 벤치마킹해서 아케이드용 [철권 5]에서부터 도입했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모드 또한 플레이어 각자의 개성을 잘 나타내주는 요소로 작용하며, 캐릭터 자체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해줍니다. 아이템의 수가 너무 적었던 PS2용 [철권 5]에 비해 그 수가 늘어나고 재미난 아이템이 많이 등장한 것도 반가운 부분입니다.
저 무수한 캐릭터들. |
한글화 역시 PS2용 [철권 5]의 데이터를 그대로 쓰지 않고 새롭게 작업을 해서 대사가 약간씩 바뀐 모습인데, 스토리 모드나 철권 도장에서의 모든 설명과 대사 자막이 자연스러운 한글로 출력됩니다. PS2 버전에서는 대사 번역을 표준어로 처리했던 아스카의 경우 오사카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설정 때문인지 PSP용 [철권 DR]에서는 대사를 사투리로 번역하는 등 한글화에 신경을 쓴 모습입니다. 대전 게임이라는 장르라서 굳이 한글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근래 발매되는 대전 게임은 단순한 대전을 떠나서 육성 모드와 같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모드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스토리 모드를 강화한 타이틀이 많기 때문에 한글화를 하지 않았을 경우 꽤 불편함을 겪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철권 DR]의 충실한 한글화는 유저 입장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어를 구사하시는 백사범님. |
역시 한글이 좋지라. |
PSP의 등장과 함께 발매되어 뛰어난 완성도와 풍부한 볼륨으로 마스터피스의 이름을 단 [릿지 레이서즈]. 그 뒤를 이어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 타이틀로 등장한 [철권 DR]. 그간 제대로 된 3D 대전 게임을 즐길 수 없었던 휴대용 머신에서 이 정도로 아케이드의 분위기를 잘 살린 타이틀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며, 또한 자연스러운 한글화를 거쳐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국내 유저들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올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