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는 평작 이상은 됩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이 좀 아쉬워요.
일단 핵심 컨텐츠인 선거 파트가 재미가 없어요. 아무말 대잔치라고 해야되나, 갑자기 초등학교 레벨의 토론이 되어버립니다. 토론 주제도 주인공이 실제 처한 상황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라 긴장감이 없습니다.
10명의 캐릭터의 반응도 하나같이 원패턴인데다가, 선택지 제한시간은 왜 그렇게 짧은 건지... 대화파트에서 상대방의 비밀과 본성을 열심히 파악했지만 선거에서는 그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인원이 줄어들 수록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이나 암투의 양상이 달라졌으면 좋았을텐데, 그것과 상관 없이 패턴이 정해진 것도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어떤 그룹을 먼저 공략하고, 누구를 먼저 추방시킬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은 신선했지만... 극초반부만 그렇지 후반부로 갈 수록 이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사실 누구든 아무나 죽여도 별 의미가 없거든요.
감정이입이 어려운 주인공도 호불호가 갈릴 듯 합니다. 복수라는 테마는 좋은데 당위성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동생이 추방되는 것에 찬성했다고 다른 사람들, 특히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억을 잃은 사람들인데, 그들 입장을 싸그리 무시하고 적의를 가질 정도라면 뭔가 더 부연설명이 있어야 했어요.
요컨대 게임 시작부터 복수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주인공에게 몰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가장 인간다운 A그룹을 처단하려 할 때는 되려 상대방에게 연민을 느낄 정도.
게임 후반부 즈음 주인공이 데드엔드가 되니, 되려 통쾌하더군요. 심지어 주인공의 사이코패스력도 만만치 않지만 여주인공은 더 심한데, 왜 그런 인성을 갖게 된 건지... 자료실에도 후일담이 없네요.
게임의 전개나 설정이 대부분 예상 가능하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습니다. 클로즈드 서클에서 쓰이는 클리셰 덩어리들이 한 가득... 어떻게든 등장인물들을 한곳에 가두고 서로 치고 박게 하려고 만든 억지 설정들 때문이죠. 노리의 정체는 극초반에도 짐작갈 정도.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습니다.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의 갈등이 부딪히는 과정은 괜찮았습니다. 논리와 가정으로 상대방의 헛점을 파고들면서 논리의 모순을 찾고, 본인의 길을 개척하면서, 세계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웠구요. 진상이 밝혀지면서 달라지는 세계에 대한 주인공의 성장이나 능동적인 대응같은 게 없다는 건 좀 아쉽긴 합니다.
단점 위주로 나열했으나 총평하자면 평타는 치는 게임입니다. 보다 더 잘 만들 수도 있었는데, 잘못된 디렉션에 의해 평작 정도로만 그쳤다는 것이 아쉽네요. 저예산이다보니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야기의 몰입도는 충분했기에 나름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이런류의 게임에 관심 있으셨던 분은 한번쯤 즐겨보셔도 좋을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