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소감을 적을때 이후 구매를 고민해 보시는 분들을 위해 가급적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쪽으로 최대한 간략히 적는 편인데,
이 게임의 경우는 할 말이 조금 많아질 것 같고 저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스포일러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예 스포일러가 되어 있지 않은 소감을 원하시면 지금 글을 닫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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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서두에 밝혀두건대, 저는 단간론파 시리즈를 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이 단간론파에서 영감을 받았고 대부분 단간론파의 열화판 정도로 보는 평가가 많이 보입니다만,
제가 해보지 않은 게임이기에 그런 평가들에 대해서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저는 단간론파와 추방선거를 비교할 수 없고 그저 저만의 의견을 적을 뿐입니다.
사실 니폰이치사의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추방선거는 장르적 호불호까지 많이 갈리는 텍스트 어드벤처죠.
일단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를 좋아해야지 이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은 당연할 겁니다.
게임의 흐름은 선지를 통한 스토리의 분기방식으로 텍스트 어드벤처로서의 흐름에 충실합니다.
플레이어가 처음에 맞닥뜨리는 스토리 흐름은 복수라는 흔해빠진 플롯이지만,
여기에 주인공의 공감각과 선거라는 요소를 첨가하여 특이성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이 선거를 위한 토론이라는 시스템의 신선도가 너무나도 빨리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처음 토론을 할 때에는 난생 처음인 그 상황을 파악하는 가운데 이쪽저쪽에서 난무하는 말들을 듣느라 상당히 긴장감이 있었습니다만,
몇번 하면서 익숙해지다가 토론의 기본적 흐름이 전부 비슷비슷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는 되려 지루해 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이 신 하야리가미2 보다 이후에 나온 게임인데도 반론할 때 선지를 고르는 느낌이 오히려 신 하야리가미1 수준으로 퇴행한 건 어찌된 일인지...
토론의 신선도가 빠르게 죽는 것도 문제이지만 내가 반론을 하고자 할때 선지에 너무 단편적인 말만 적혀있는 데다가 제한시간이 너무 짧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원하는 말로 시원하게 받아친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건 확실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 자체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 전반에 녹아 있는 설정 중 하나가 자칭 관리자라는 존재가 등장인물들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지우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 게임은 일단 복수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복수계획을 진행시켜 갈 수록 고조되는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이나 원한의 연쇄, 복수가 또다른 복수를 낳는 상황이나 극단적으로 갔을 때의 유혈사태 등이 일반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앞으로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관리자가 등장인물들의 기억을 만지고 있다는, 어찌보면 편리하기 그지없는 설정을 이용해 이러한 기대를 배신하고 갈등요소를 깨끗이 제거해 버립니다.
선거를 통해 사람이 하나씩 없어져도, 심지어 자기 혈육이 없어져도 남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물론 이야기가 왜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가에 대해서는 감춰진 사실이 존재하고, 트루 루트에 진입했을 때 그 전말이 드러나지만, 그 전말 자체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전말을 다 알고 난 후에 불호쪽에서 호쪽으로 반등했습니다만 이건 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니까요.
총평은 시작과 마무리는 나쁘지 않았지만, 과정상의 몰입도가 좋지는 않았던 게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니폰이치사가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는 회사라 신작이 나올때마다 호불호가 갈리고 인기도 들쭉날쭉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마냥 좋은 평가만을 해 주기는 힘든 게임을 만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볼 때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담-
제가 해본 니폰이치사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중 유일하게 음성더빙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듣느라 플레이 시간이 40시간을 넘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