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글은 페이트 사무라이 렘넌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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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역사 및 신화 및 일왕가문의 계보가 담긴 고사기 의 일부 기록 )
히에다노 아레 그의 생몰년도 는 알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나모토노 다카아키라 (914~983) 가 편찬한 의식서 인 서궁기 (西宮記) 에서는
히에다노 아레는 예능의 신 인 아메노 우즈메노 미코토 를 섬기는 사루메노키미 일족의 일원인 히에다 가 사람 이다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문에 학자들은 히에다노 아레가 사실은 여성이 아닌가 ? 라는 설도 있었는데 이 사루메노키미 가문 구성원 자체가 여성이고
무엇보다 히에다 라는 성 자체가 오직 여성만 쓰는 성이였기에 여성이 아닌가 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남성이였다면 히에다(稗田)
보다는 도네리(舎人) 란 성을 써야 하지만 여성이 쓰는 성인 히에다 를 썻기에 여성으로 추측하는 것이지요
혹은 히에다노 아레의 정체가 나라시대 후지와라 가문의 시조격인 후지와라노 후히토 (659~720) 이 아닌가 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왜 후지와라노 후히토 인가 ? 라는 궁금증에 대해 설명하자면 당시 고사기 자체가 편찬된 시대가 나라시대 이며 율령국가 반포를 했던 시기
였기에 후지와라노 후히토 가 히에다노 일것이다 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히에다노가 허구의 인물이 아닌가 ? 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자세한 기록이나 내용등은 수세기에 흘러 과거로 넘어갈수 있는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는이상 자세한 진실은 알수가 없습니다.
과연 실존인물인지 아님 허구의 인물일지는 ..현재로서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히에다노는 어떻게 고사기 편찬에 참여했던것일까요 ? ..
당시 상황은 국왕 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국가 의 강화를 꾀했는데 672년 왕위를 둘러싸고 벌어진권력전쟁인 임신의 난 이래 정통성이 무엇보다
절실했던 왕실으로서는 유교적 충성 과 국왕이 나라의 정통적 지배자 라고 강조하고자 각 지방의 신령들을 엮어 정치적인 입장을 강화하자 했던
결과물이 바로 고사기 였던것입니다.
이때 겐메이 일왕의 명을 받은 오노 야스마로 (?~ 723) 의 주도아래 고사기가 편찬되기 시작했는데 야스마로는 덴무 일왕으로부터 일왕의
계보를 송습 (* 고전을 배워 암송하는것 ) 했던 히에다노 아레를 통해 야스마로 가 받아적어 고사기를 편찬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고사기의 편찬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는데요 원래 여러 역사서 들을 야스마로가 하나로 종합해서 편찬한것이
고사기 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사기는 총 3권으로 나뉘며 현재는 원본 대신 필사본만이 전해지고 있으며 오나카토미노 사다요 (
大中臣定世 ) 가 필사한 필사본이 가장 오래된 고사기로 알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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