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모닥불 파동의 움직임을 천천히 감상 중이었다. 근처 나뭇가지를 모아 대충 만든 모닥불이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만은 충분했다. 조금 더 불꽃을 키우기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천천히, 그리고 강렬히 타올라간다. 작은 모닥불 주제 그 불꽃은 불타는 그락카락의 그것처럼 넘실대는 기운을 뿜는다.
흡사 인간들의 사는 방식과 같다. 물을 끼얹으면 금방이라도 꺼질 작은 불꽃 주제에. 나는 그 옆에 기다란 나뭇가지에 꽂아놓은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살고자 버둥거리던 놈은 이제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고 한쪽 면이 노릇노릇 익어간다.
꼬르륵.
나는 감상을 버리고 물고기를 둘려 반대쪽 면을 익혔다. 감상적인 마음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내일을 살게 해주진 않는다. 전부 귀찮은 감정일 뿐.
"으음..."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동굴에 멋대로 침입한 돌연변이의 울음소리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돌연변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봐도 봐도 신기한 기운이다.
예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던 시절에, 슈주 지방에서 수련을 했다는 넨 마스터라는 모험가를 본 적이 있었다. 파동을 느낄 수 있게 된지 얼마 안 된 그 때 느낀 바로는, 세상에 정말 이렇게 빛이 나는 파동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내 앞에 있는 돌연변이는 그와 정반대의 파동을 지녔다.
끝 없는 어둠. 칠흑과도 같은 순수한 어둠의 기운이다. 보통 인간은 밝지도, 어둡지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파동을 지닌다. 이런 순수한 어둠의 파동을 가진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음... 뭐, 뭐야! 여기는 어디야! 너는 누구고!"
정신을 차린 돌연변이가 나를 경계하며 갸르륵 거렸다. 그럴 줄 알고 미리 밧줄로 묶어놓았기 때문에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돌연변이는 자신의 몸이 결박 당한 것을 깨닫고 당황해 했다. 그녀의 파동이 두려움 때문에 굉장히 흔들린다.
"나, 나를 어쩔 셈이야!"
그건 그렇고,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놀랍다. 비록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사람과 언어가 통할 정도의 지능이라니. 어쩌면 굉장한 발견일지도 모른다.
발견이고 뭐고, 사실 그런 거에 전혀 관심은 없지만, 눈 앞에 있는 이 신기한 생물체에게는 호기심이 갔다. 무엇보다 저 파동. 정말로 순수하게 호기심이 일었다.
"어쩌다니? 내 호기심을 충족시킬 생각인데."
"히이익!"
돌연변이의 파동이 점점 더 심란하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이내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침착해졌다. 마치 지진에 흔들리는 강물을 딱 맞는 크기에 상자에 가둬버린 듯한, 오묘한 느낌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찰나, 돌연변이의 입이 먼저 움직였다.
"래, 랜턴 파이어!"
그리고 뜨거운 열기가 나를 덮쳤다.
"젠장!"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려 얼굴을 보호했다. 그 뜨거운 열기는 내 옷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뜨겁다! 단순한 열기가 아니라 진짜 불꽃이다. 이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니, 내 생각이 짧았다. 말이 통할 정도로 지능이 높다는 걸 깨달았을 때 여기까지 생각해뒀어야 하는데!
나는 잽싸게 입은 옷을 벗어 던지고 돌연변이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밧줄로 묶어둔 탓에 아직 움직이지 못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무엇보다 목숨이 우선이다. 단순한 호기심을 위해서 내 목숨을 위협할 만한 것을 남겨둘 만큼, 나는 학구열이 강하지 못했다.
나는 왼손에 파동을 집중시켰다. 돌멩이 때는 적당히 봐줬지만 내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이상, 봐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는 남의 고통을 즐기는 버릇도 없다.
한 방에 깔끔하게 죽인다.
"윽... 엄마..."
돌연변이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멈춰버렸다. 아차 싶었을 땐 나도, 저 돌연변이도 싸울 의지를 상실한 뒤였다.
"... 나참."
나는 집중시킨 파동을 원래대로 돌려보냈다. 갑자기 연민이 들었다던가 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저 저 전투의지를 상실한 돌연변이가 내 목숨에 해가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을 뿐이다.
돌연변이는 언제 나를 공격했냐는 듯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파동 또한 일정하지 못하고 크게 흔들렸다.
나는 더 이상 이 돌연변이를 해칠 수 없다. 그렇게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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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인?"
"그래! 돌연변이 같은 게 아니야!"
소녀는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굴 속이라 소리가 울려서 귀가 따갑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소녀의 파동이 다시 흔들렸다. 정말 알기 쉬운 녀석이다.
"마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건 들었어. 그래서, 그 마계사람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그리고 내 동굴에는 왜 들어와있었어."
나는 물고기를 꽂아놨던 꼬챙이를 뽑아 들며 말했다. 양쪽 면이 노릇노릇하게 익어 금빛 기름기를 자르르 흘리고 있는 게 보지 않아도 뻔히 느껴졌다. 살도 통통히 오른 녀석이 오랜만에 별미가 될 것 같다. 내가 크게 한 입 베어 물려는 찰나,
꼬르륵.
동굴 속에 내 것이 아닌 공복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이가 없어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소녀의 파동이 더욱 크게 흔들렸다.
"뭐, 뭐야!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단 말이야! 어쩔 수 없잖아, 생리현상이니까!"
뭐 뀐 놈이 성낸다고, 소녀는 내게 버럭 화를 냈다. 원래 저런 성격인가. 이젠 호기심 같은 건 저 멀리 하늘 너머로 날아간지 오래고, 귀찮은 녀석이랑 엮여버렸다는 생각만 든다. 그냥 저대로 강물에 던져버릴까. 손발을 묶고 있으니 떠올라도 살진 못하겠지.
꼬르륵.
내가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소녀의 뱃속은 또 한 차례 자신의 공복을 알렸다.
정말, 뭐 이런 귀찮은 녀석이랑 엮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들고 있는 꼬챙이를 소녀에게 내밀었다.
"야. 먹어."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감사의 인사 한 마디도 없이 냅다 물고기의 배를 물어뜯었다. 이렇게 보니 야생동물이 따로 없다.
"니가 들고 먹어, 니가."
"@%@&#!"
"뭐라는 거야."
소녀는 입안 한 가득 물고기를 담고는 뭐라고 소리쳤다. 시끄럽다. 귀찮다.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 이 녀석이 마계인이라는 것을 알기 전이었다면 분명 돌연변이의 지능의 한계라고 생각했을 거다. 마계 사람들은 전부 어릴 때부터 대단한 사람들만 있다던데, 다 거짓말인 모양이다.
내가 물고기를 빼앗아 오자 소녀는 물고기를 가시째로 씹어서 목구녕 너머로 급히 삼켰다. 어지간히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꿀꺽! 손을 풀어줘야 내가 먹을 거 아니야!"
순간 이 소녀의 손을 풀어줘 버릴까 생각했다. 말투는 좀 험하지만 이제 더 이상 공격 의사는 없어 보이고, 또 공격한다 한들 방심만 하지 않으면 그다지 위험이 될 거라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역시 괘씸하니 풀어주기 싫다.
나는 소녀의 손을 풀어주지 않기로 결정하고 손에 들고 있던 물고기가 든 꼬챙이를 소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너무 가까이 가져갔는지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면서도 물고기는 참 잘만 먹는다.
왠지 이러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개한테 먹이 주는 기분이다.
"... 다 먹고 나면 니가 뭐 하는 놈인지 물어볼 거니까 생각해두고 있어."
내 뱃속에서 공복을 알리는 꼬르륵 소리가 울렸지만 소녀는 물고기를 먹느라 정신이 팔렸는지 듣지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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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시는 분들 다들 잘쓰셔서 긴장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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