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쬐는 햇빛이 강렬하지도, 희미하지도 않은 적당한 오후. 점심때가 되어가자, 골목은 일제히 소란해졌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노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울려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온한 풍경속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그림자 하나가 서 있다.
"여기가...."
손에 든 메모지를 한번 흘끔, 앞에 서 있는 건물을 한번 흘끔.
뒷머리에서 살짝 올려묶은 단정한 검은머리 밑으로 보이는 몸매는 군살없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닥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차림이였지만, 청초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녀였다.
정작 그 소녀는 어딘가 불편한지 괜히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댈 뿐이였다.
사실 소녀는 이런 대낮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거리에 나와있는 것도 처음이였고, 이런 수수한 복장을 입은 것도 처음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소녀에게는 평소에 애용하던 단검이 없다.
"평범한 소녀가 허리춤에 단검을 쥐고 있을리가 없잖아!" 라면서 대장이 몰수해버린 것을 계기로, 자신을 지킬 무기를 잃어버린(지키는 데에 의미는 별로 없지만, 거의 자신과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녀는 아까부터 매우 불편한 심정이였다.
메모지에 쓰여진 여관이 이곳이 맞는 것 같기는 하지만, 섣불리 다가설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주인이 나온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평소에 별로 하지도 않는 말을 억지로 쥐어짜내 매우 작은 소리로 "저기..." 하고 부른 그 순간,
"누구세요? 아, 혹시 오늘 새로 이사온다는 그분이세요?"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소녀는 급히 상대에게 뒤돌아 서면서 들고있던 짐 보따리로 상대와의 거리를 두어 경계했다.
하지만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까부터 질리게 보고 있던 평온한 오후의 거리 풍경이였다.
"....뭐하시는거에요? 설마 저를 놀리시는 건가요?"
다시금 들려온 말소리에, 소녀는 드디어 그 목소리의 근원지가 생각보다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그게...."
당황한 소녀를 살짝 실눈으로 쳐다보더니, 그 목소리의 근원지인 여자아이가 자연스럽게 문을 열면서 말했다.
"언니가 오늘 이사온다는 그 분 맞죠? 303호."
대장에게서 들었던 정보와 맞는 것 같아, 소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짐 옮기고 계세요, 제가 주인 아주머니 불러올 테니."
나이에 맞지 않게 왠지 싹싹한 그 여자아이는 1층에 난 문을 열고 들어가버렸다.
소녀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중간에 보이는 문들은, 아마 다른 방들로 들어가는 입구일 것이다.
일반인들과 생활하기 위해서 대장이 준 메모에는 어느 한 여관(식당과 여관을 겸하는, 모험가용 숙박시설) 이였다.
물론 임무의 랭크를 따졌을 때에는 충분히 개인용 집을 마련해 줄 수 있었겠지만, 아마 이것도 대장이 고려한 사항일 것이라.
3층에 올라가서 옆으로 조그맣게 나 있는 문을 열고, 여러 방들을 지나치면서 플레이트에 무기질적으로 303 이라고 써 있는 방 앞에서 정지했다.
"일반인....이라..."
303호의 문을 열기 전에, 약간은 막막한 심정으로 문에 살짝 머리를 대었다. 아까 대장이 강조했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단순하게 말하자면, 일반인이 되라는 것이다!"
라고, 어디를 가르키는지 모르겠지만 대장이 한쪽 손가락을 쭉 피며 당차게 선언했다.
그 선언을 외치는 대장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살짝 상기되어 있었지만, 소녀는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원래 마이페이스적인 면이 엄청난 대장이였지만, 왠지 이번 건만은 살짝 자기가 더 신나하는 그런 느낌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옷을.... 아니, 그전에 속옷을....오랜만에 그 귀여운 가슴을..."
대장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다가와서, 소녀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여전히 대장의 외모는 아름다웠고, 어딘가 눈이 부셨다.
비할 데 없는 동경의 감정이 갈 곳을 잃어, 소녀는 눈을 이리저리 빠르게 굴렸지만 대장의 행동은 빨랐다.
허리춤에서 살짝 꺼낸 대장의 애도(愛刀)가, 소녀의 옷을 일도양단했다. 살짝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대장이 예전에 말했던 얄팍한 여자가 훔친 은장도였다. 거래로 가져왔다는 물건이였다.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대장에게는 일말의 수치심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장애물이 없이 맨낯에 느껴지는 밤 공기는 매우 차가워서, 소녀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일반인이라면, 이런 속옷 따위는!"
아까 소녀의 옷을 양단했던 그 은장도를, 대장은 다시 손목에서 회전시켜 소녀의 가슴을 감싸고 있던 흰 붕대까지 도려냈다.
이제 정말로 맨낯이 된 소녀를 대장은 만족스럽게 팔짱을 끼고 바라보며,
"흐음... 정말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나타나, 전라의 소녀의 모습을 새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 그와 대조적으로 새까만 머릿결(물론 머리를 고정하고 있던 끈도 다 풀어, 현재는 종아리까지 머리가 내려오고 있다.)과 살짝 홍조진 볼.
지나치게 올곧은 자세와, 적절하게 융기한 두 언덕에서 아찔하게 허리로 내려오는 곡선에 대장은 미묘한 교성까지 지를 뻔 했다.
한순간 흑심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투명한 소녀의 눈을 보고, 대장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잡념을 떨쳐내었다.
"알겠느냐? 너는 내일부터 일반인이니, 저런 붕대같은건 하지 않아도 된다."
소녀가 한순간 주춤하더니, 이내 반론을 제기한다.
"그...그렇지만, 붕대를 하지 않으면 정체를 숨긴다거나, 도주를 한다거나 어쩔 수 없이 말살을 한다거나 하는 상황에...."
"일반인은 정체를 숨기지도 않고, 도주를 하지도 않고, 말살은 더더욱 안해!"
소녀는 그날 밤, 대충 이런 우여곡절을 수도 없이 겪었다.
"알겠느냐,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능력을 사용해서는 아니된다! 완벽한 일반인이 되어서 마을을 지켜보는 게다."
하고 수도 없이 강조하는 대장에게, 소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이다. 너는 분명히 잘 해낼 수 있어."
살짝 웃으면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대장을 보며, 소녀는 다시금 결심했다.
다시는 이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리라.
다시는 이 사람을 외롭게 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이 사람을 슬프게 하지 않으리라.
자신은 이 사람의 비도(秘刀)니까.
------------------------------------------------------------
이제부터 우리 귀염둥이 섀댄은 처음 와보는 여관에 살게 됩니다!
대충 이런 느낌의 가벼움으로 서술할 생각이고요,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대해주세요!
오타, 이상한 부분 지적은 언제든지!
다음 화에서 뵙죠!
p.s 이번 아바타 나이트가 정말 예뻐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구매했습니다....
홧김에 여기에도 출연시켜버린다던ㄱ....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