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작성 목적인 분석 서술에 관련 있는 내용을 제외하면 최대한 직접적인 내용 스포일러를 피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보는 분에 따라선 스포라고 생각될만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샤인 애니메이션 제3화까지 보지 않은 분께선 보신 이후에 열람해 주십시오.
* 이 포스팅은 러브라이브! 선샤인이 1~3화에서 부족한 점 (2부)로 이어집니다.(링크)
2016년 7월 방영의 TV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 선샤인' 제2화와 3화는 그 1화보다도 좀 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모양입니다. '성공했습니다.'가 아니라 '성공한 모양입니다.'라고 쓰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단언하려면 본방 시청률, VOD 시청률, BD 예약 지수, 각종 커뮤니티 노출 빈도 같은 수치적 자료를 제시해야 하고 그래야 증명할 수 있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논하는데 그런 시시콜콜한 자료 제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므로 이렇게 서술하는 것이고.
왜 자료 제시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면 러브라이브! 라는 브랜드의 두 애니메이션, 앞으로 '무인'과 '선샤인'이라고 칭할 이 애니메이션들 역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해서 이해를 구하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러브라이브! 브랜드의 애니메이션은 무인(* 무인의 의미는 각주 참조)의 624분(TVA) + 99분(극장판)이란 시간 동안 그랬고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72분(TVA 3화까지. 이 포스팅은 TVA 3화까지만 본 시점에 작성되었습니다.) 동안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애니메이션에 대해 논하는데 있어 구체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어쩌면 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들을 예우-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하는 데도 별달리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총 13화 분량 중 3화까지 진행된 러브라이브! 선샤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굳이 이런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는 것 역시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선 제작진의 의중을 드러난 기보를 통해 복기해 보자면 선샤인 2화는 캐릭터들의 기행을 섞어가며,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선의 움직임을 통해, 시청자의 어리둥절함과 캐릭터에 대한 관심(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을 일으키는 것으로. 어느정도 눈길과 궁금증을 끄는 목적이 있다고 보입니다. 이어 3화는 전작인 무인을 답습하는 모양새가 1/2화보다 좀 더 노골적이되, 또다른 메시지의 전달을 시도하려는 듯한 모습을 깔았고, 이것은 러브라이브! 시리즈에 이해가 있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기초가 쌓아진 상태에서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나 기대를 자아내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이후 일본 심야 TVA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된 '3화의 1차 절정'이란 명제에서 볼 때 선샤인의 3화까지는 나름대로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좀 다른 것은 무인이 좀 직선적으로 와닿는 '(1차)절정'을 목표로 했다면 선샤인은 나름의 변형과 분기점을 함께 제시하여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감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점이겠습니다만, 결국 이와 같은 움직임을 통해 2화까지는 캐릭터에 대한 관심을, 3화에서는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단 '브랜드 어필의 최전선'이란 목적에서 볼 때는 그 전개상 꽤 양호한 수를 두어가고 있는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러브라이브! 브랜드의 애니메이션은 어디까지나 가상 아이돌 캐릭터의 캐릭터성을 내세워 현실의 시청자층에게 인지도와 호감을 확보하고 그 시청자층의 소비 심리를 끌어내어 이 가상 아이돌 육성에 관련된 회사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행위의 '촉매' 혹은 '미끼'에 가까우며, 이 목적상 캐릭터성의 피로는 절대수행과제에 가깝습니다. 단지 거기에서 끝낸다면 선샤인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적어도 러브라이브! 무인 애니메이션은 흠잡을데 없이 목적을 달성한 애니메이션입니다만, 팬들이나 아직 팬이 아닌 유동층을 중심으로 자신들이 좋아하거나 좋아할 여지가 있는 캐릭터들이 보다 그럴싸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것을 바라게 되면서부터 러브라이브! 브랜드의 애니메이션은 부족한 점을 노출하게 됩니다.
러브라이브! 무인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부족한 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은 '설명 부족'과 이에 따른 '공감 부족'입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캐릭터의 행동과 사건의 개연성을 요구하는 것은 말하자면 '나는 이 이야기와 캐릭터에 공감을 하고 싶으니까 여기에 대해 설명을 정확히 충분히 해달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러브라이브! 무인의 이 '설명 부족'과 '공감 부족'을 선샤인은 적어도 3화까지 충실히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애니메이션은 스태프를 가려도 같은 제작진이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라 하겠습니다.
러브라이브! 애니메이션이 말하는 이야기, 그리고 선샤인이 그대로 답습하는 바에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거나 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선샤인 1화와 2화에 걸쳐 잘 드러납니다. 1. 치카의 행동, 2. '바다의 소리'란 두 가지 때문입니다.
A. 치카의 행동
타카미 치카라는 캐릭터는 러브라이브! 선샤인 프로젝트의 가상 아이돌 9인방 중에서도 이른바 '리더' 정도의 역을 부여받은 위치에 있으며 선샤인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는 충실히 표방되어 적어도 3화까지는 거의 모든 구간에 걸쳐 이 캐릭터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 3화까지, 72분 동안 이야기를 끌어간 이 캐릭터가 한 일은 간단히 요약해서 '나, 자아실현 하고 싶으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스쿨 아이돌 할래. 너희도 같이 하자' 입니다. 정말 그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요약에서 어떤 부분이 공감을 사기 어려운가 하면 '자아실현', '반짝반짝 빛나는' '스쿨 아이돌' 이 세 가지가 그러합니다. 치카는 스쿨 아이돌의 빛나는 모습을 동경하여 자기도 그렇게 되면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뭔가 했다는 기분이 들 거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정작 '어떤 점에서 스쿨 아이돌이 빛나는 건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공감을 얻기 힘든 것입니다. 스쿨 아이돌이라는, 직업이라고 하기도 뭣하고(분명 돈 없이 할 수 없는 활동, 돈 없이 유지되지 않는 행사들, 돈 없이 오가지 않을 물품들이 나오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큰 소리로 거론하지 않으니 그런가보다 하는) 그렇다고 순수 학교 동호회 활동이라고 하기도 뭣한(애초에 외부의 팬을 자의건 타의건 모으는 활동을 한다는 것부터가 학교 울타리 내의 동호회 활동이란 견지에서 다뤄질 수 없으므로) 이상한 직종에서 '빛난다'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치카는 그에 대해 납득하고 있을 것이고 어쩌면 애니메이션 제작진도 납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납득하지 않으면서도 설정은 얼마든지 세울 수 있으니까 100% 보장할 순 없지만), 시청자는 러브라이브! 무인 때부터 지금까지 스쿨 아이돌이 빛난다라는 명제는 주입받았지만 그게 왜 빛나는지에 대한 해설은 듣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러브라이브! 무인의 극장판에서 아야세 에리란 캐릭터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빛나려 하는, 스쿨 아이돌이 좋아요.'라고 하여 학교 졸업을 끝으로 스쿨 아이돌을 그만두려는 행동은 설명했지만 역시나 '빛나려 한다'가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인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러브라이브! 브랜드의 애니메이션들은 시종일관 얼버무리고 있을 뿐입니다.
B. 스쿨 아이돌, 그것이 빛난다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
물론 이걸 얼버무리는 이유는 충분히 짚이는 데가 있습니다. '인기를 모으고 팬들이 많이 생긴다.'가 '빛난다'라면 직업 아이돌과 다른 게 뭐야? 가 되어 일껏 세운 '스쿨 아이돌'이란 설정이 의미가 없어지고 그렇다고 순수한 학생처럼 '남들이 어떤 반응이건 좋으니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가 '빛난다'라면 아이돌 말고도 익숙한 다른 학교 동아리 활동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애초에 '아이돌'이란 우상으로 생각해 줄 팬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직업 혹은 행동입니다. 팬이 한 명도 없이 춤과 노래를 보여주는 것은 누구도 '아이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가무 기예 혹은 행위 예술이라고는 불러줄지 모르지만. 즉, 이 도무지 이해시키기 어려운 '스쿨 아이돌'이란 설정은 그래서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컨텐츠에선 단단히 발목을 잡게 됩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러브라이브! 라는 가상 아이돌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브랜드는 가상 캐릭터의 '설정'을 먼저 만들고, 그 다음 (홍보를 위해)각종 이야기 컨텐츠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뒤바뀐 순서가 모든 문제의 씨앗입니다.
러브라이브! 브랜드, 개중에서도 무인 쪽에 속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컨텐츠' 중 SID로 대표되는 소설과 오피셜 코믹스에서도 이 문제는 다뤄지지 않습니다. 대신 소설에선 다만 스쿨 아이돌이란 활동을 해야하는 당위성을 개개인의 심리 묘사로 말할 따름이고, 오피셜 코믹스에서도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고 들면 젊은 청춘의 발로, 뭐라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마침 저 세계관에는 존재하는' 스쿨 아이돌이란, 독자들의 현실에선 도무지 정체불명의 직종을 통해 나타나고 실현되어 그게 '빛난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건 독자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한' 거지 러브라이브! 브랜드의 누구도 이것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한' 모습은 없으며 이건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전술한 대로의 모순에 빠지기 때문일 것이고.
다시말해 '스쿨 아이돌'만 아니었다면 굳이 모호한 '빛난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없고 제작진의 부담은 그만큼 경감되었을 것입니다. [취주악부 활동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청춘을 부딪혀 보겠다]와 [스쿨 아이돌이 되어, 그렇게 '빛나서' 무언가를 한 것 같다고 느껴보려고 청춘을 부딪혀 보겠다]는 건 '취주악부'와 '스쿨 아이돌'이란 단어 그리고 거기에 딸린 세부 소재만 다른 사실상 똑같은 주제이자 발상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 더 이야기를 풀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까? 단연 후자입니다. 똑같은 각본가가 전자를 가지고 쓴 모 애니메이션의 스토리가 그리도 그럴싸하다고 칭송받는 것만 봐도 증명이 될 것입니다. 하물며 러브라이브! 무인만 해도 그나마 '스쿨 아이돌이 되어, 인기를 끌어, 입학 희망자를 늘려서, 학교를 살려 보겠다.'라는 (상대적으로 알기 쉬운)목적이라도 있었고 무인 TVA 1기는 이 목적만을 강조해서 (상대적으로)그럴싸한 이야기로 만들어 가기라도 했습니다. 하지만 러브라이브! 선샤인에선 아예 이런 그나마 알기 쉬운 목적조차 없습니다. 제작진에게 동정이 갈 정도입니다.
C. '바다의 소리'?
선샤인의 주역 중 한 명인 사쿠라우치 리코란 캐릭터는 애니메이션 제작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도쿄'의 '오토노키자카 학원 출신'으로 캐릭터 생성 당시부터 이미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전술한대로 러브라이브! 브랜드 애니메이션이 철저하게 '가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이런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역시 틀을 정해준 상태에서 무언가를 끼워넣는 식의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말하자면 작가에게 이야기를 만들 수단을 처음부터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진은, 이 설정을 이야기로 만들고자 이런 셋팅을 합니다.
...리코는 원래 피아노를 잘 치는데, 어떤 발표회를 기점으로 실력도 재미도 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도쿄를 떠나 바닷가 마을로 가서 (발표회에서 치려고 했던)곡에서 모티브가 된 것 같은 '바다의 소리'를 들으면 다시 흥미도 찾고 실력도 늘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치카가 있는 바닷가 마을로 이사오게 되었다...
'바다의 소리'라는 명제는 애니메이션 2화에 걸쳐 분명 언급되며 위와 같은 셋팅은 자못 진지해 보이기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적어도 2화까지 이 명제는 진지한 척한 것일 뿐 여전히 진지하지도 않고 이해를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만 실증해 주고 있을 따름입니다. 2화에서 이 '바다의 소리'란 자못 그럴싸할 수도 있는 소재를 다루는 방법은 엉망진창입니다. 1. 어떻게 했는지 도무지 화면 속 행동 묘사에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리코는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2. 하지만 그걸 들었다 해서 리코가 고민하는 문제가 딱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3. 그래서 치카가 내민 노래 '꿈의 문'을 매개로 하여 스쿨 아이돌 활동을 하면 피아노나 아니면 삶에 흥미나 활력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게 이 소재를 써먹은 부분에 대한 최대한 가감없는 요약입니다.
이야기의 작법상으로 볼 때 이게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떻게 했는지 화면 속 행동으로 알 수 없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 두 가지입니다. 전자는 당연히 보는 사람을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것이니 좋지 않은 것이고 후자는 이렇게 맥없이 부정될 요소였다면 왜 그것 때문에 굳이 도쿄에서 먼 시골 바닷가로 이사까지 오게 했느냐는 걸 설명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이 '바다의 소리'란 걸 들으려고 가상의 미소녀 캐릭터가 교복을 훌훌 벗어 던지면서 그 속에 입고 있었던 수영복 모습을 보여주고, 잠수복을 입혀 몸매를 드러나는 게 목적이었다면 캐릭터 어필이란 측면에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 감안해도 저런 모양새로 등장/퇴장하게 하기 위해 굳이 저 (뭔가 시적이고, 그럴 듯해 보이는)소재를 써야 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물론 리코는 제2화에 묘사된 대로 바닷속으로 잠수를 하면서 수면 위에 비치는 햇빛과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잡았는지도 모릅니다. 같이 잠수를 했던 치카와 요우도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배 위에 있던 카난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 캐릭터들만 이해하고 지나가는 것을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바로 '설명 부족'이라고 합니다. 최근의 어떤 영화가 실증해준대로 소재나 분위기가 진지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좋은 작품이 되는 게 아닙니다. 작품의 분위기와 공감도는 별개지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작품 속 캐릭터들의 행동이 얼마나 이해가 되는가, 혹은 이해할만큼 설명을 하는가, 아니면 최소한 생각하게끔 미끼라도 던지는가 입니다. '바다의 소리'는 이 셋 모두와 관련이 없이 쓰였습니다. 뜬금없이 들렸고, 어이없이 퇴장했기 때문입니다.
D. '바다의 소리'!
선샤인 애니메이션을 칭송받는 이야기(= 받아들여지기 쉬운 이야기, 자못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면 이 뜬구름 잡는 듯한 '바다의 소리'(리코의 1차 목표라고, 리코가 주장했던 것)를 여기서 대충 들었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 애니메이션 최후반부까지 찾게끔 만들었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치카의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스쿨 아이돌로 이뤄지는 자아실현 말고, 뭔가 좀 더 그럴듯한 사람들이 이해와 공감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기 쉬운 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모습과 그에 대비하여 '바다의 소리'란 환상에 매달리는 리코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끝까지 이 두 사람을 메인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식이라면 좀 난이도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최소한 아홉 명이나 주역을 내세울 필요없이 세 사람 정도로만 메인을 축소해도 스토리 텔링 난이도는 훨씬 줄어듭니다. 상상력이 없거나 모자란 작가에게 그럴싸한 이야기를 쓰는데는 이러한 난이도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바다의 소리'란 것도 어쩌면 이렇게 쓰였다면 상당히 멋지게 제기능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하지만 러브라이브! 선샤인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행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애니는 '아홉 명의 가상 아이돌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따라서 홍보하는 목적을 가진 컨텐츠입니다. 즉, 캐릭터 아홉 명을 어떤 식으로든 선보이고 부각시켜야만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이 캐릭터들과 담당 성우들의 라이브라는 '아이돌 활동'(이건 절대 '스쿨' 아이돌이 아닙니다!)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리코가 바다의 소리를 충분히 고찰할 시간 같은 건 없습니다. '이야기'라는 말판 속에서 '캐릭터'를 체스 말처럼 움직여 긴 호흡의 스토리 텔링을 할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캐릭터를 팔기 위한 애니가 아니라 이야기를 팔기 위한 애니였다면 바다의 소리, 자신만의 자아 성찰을 얼마든지 시간을 들여 후반까지 끌고 갈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이야기의 부담도 줄어들지만- 이 애니메이션에선 그럴 여유는 없습니다.
하기는 그래도 일단 두 화(1, 2화)에 걸쳐 언급을 했으니 제작진에게 생각이 있다면 이만한 비중의 소재를 그냥 맥거핀조차도 못 된 폐품 정도로 끝내지는 않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후반에 다시 이것을 가지고 뭔가 그럴싸한 갈등이나 전개의 연료를 만들 히든 카드로 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작진이 그렇게 쓸 지는 앞으로 남은 열 편의 에피소드를 봐야만 알 일이겠고.
각주 :
무인 : 이는 일본쪽의 표현인 無印을 그대로 읽은 것입니다. 보통 어떤 시리즈의 가장 첫 작품은 아무 부제나 구별 기호 같은 게 붙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시리즈 후속작이 나오면 저 첫 작품만을 특히 지칭하기가 어려워 나온 낱말입니다.
* 이 포스팅은 러브라이브! 선샤인이 1~3화에서 부족한 점 (2부)로 이어집니다.(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