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장 2
잣눈 내리는 용정에 왔네
연변대 조문학과에서 시를 가르치는
동무 최용린은 봄이면 일송정 들판의 사과꽃이
눈보다 하얗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설원이 좋았네
이십년 전 그날도 잣눈 내렸네
동주 만나기에 이보다 좋은 날 없다우
함께 용정 가는 버스 기다리다
눈길 미끄러진 트럭에 받혀 용린의 척추가 부러졌네
의식을 차린 뒤 울고 있는 내 손을 잡고
일없다, 내년 겨울 다시 용정 가자 했네
룡정을 열애하고 진흥하자
붉은 벽돌담 위 고딕 구호는
복숭아꽃 빛깔인데
얼룩빼기 칡소가 끄는 수레 하나
옥수수 더미 싣고 눈길 가네
수레 위 흰 누비옷 입은 사내여
그대의 먼 고향 또한 북관 어디메인가
용정 표지석 서 있는 길목
기념품 가게에서 목도장을 파네
윤동주, 조선글 세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한족 공예가가 마음으로 목각을 뜨는 동안
눈은 창밖의 세계를 희게 칠했네
사랑하고
아파하고
이별하는
그리운 생의 시간들이여
그대 있음에 우리 곁에 조선의 시 동무했네
바람 불고
눈 오고
꽃 피는
지상의 시간들이여
그대 있음에 조선의 시 찬란했네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시선 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