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진 4
석탑石塔 거리에 들어선다
해방 이전 세상에서 가장 큰 코리아타운
골목골목 밥 짓는 냄새와 된장국 냄새
한글이 쓰인 가게 간판이 보이면 들어가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어르신 고향은 어디인가요
묻는 동안
함박눈이 내리고
개 짖는 소리 들렸다
석탑 골목 개 짖는 소리는
해방 이전 조선말로 짖는 것 같다
소월이나 백석이라면
뭐라 말하는지 해독할 수 있을 텐데
작은 구멍가게 선반에서
먼지 쌓인 마오타이 술 두병 찾았는데
수수로 빚은 이 술은 외삼촌들이
만주 벌판 달리며 즐겨 마시던 술이다
나는 또 작은 골동품 가게에서
복福 자가 새겨진 붕어 모양 놋쇠 자물쇠를 샀는데
한눈에 내 어린 시절 외갓집 마을 사람들이
반닫이나 장롱에 채워놓은 자물쇠였다
골목 안 가게 불빛들 반짝반짝 빛나고
여자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눈사람 손에 얼후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얼후 소리가 들려왔다
손수레에서 파는 테이프 음반이었다
춤추는 눈발
아이들 웃음소리
개 짖는 소리
이명처럼 말발굽 소리 들려왔다
진달래단고기집에 들어가
수육 한접시에 수수술 한잔 마시는 동안에도
창밖에 수북수북 눈이 내렸다
어디선가 외삼촌의 호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말을 타고
눈길 사흘 달리면
중강진에 이를 텐데
선생님 한국에서 제일 추운 곳 다녀왔어요
아홉살 내 담임선생님 환하게 웃을 텐데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시선 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