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 쓴 까마귀-5-
바닥은 박살나고 집기들은 격돌의 풍압에 날려서 너저분하게 바닥에 떨어지고 깨져있었다.
그런 단칸방의 중심에 쓰러져 있는 여인과 그 위에 올라탄 남자 하나.
이 뭐라 형용하기 힘든 광경 속에서 여성의 위에 올라탄 남자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흐아......”
한숨을 내쉬는 남자의 주먹은 여인의 얼굴 옆 나무 바닥에 박혀있었다.
자신의 옆에 박힌 주먹을 한 번 확인하고 여인은, 아니 세로스는 잭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
무언으로 일관하는 세로스를 보면서 남자는, 아니 잭슨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세로스로부터 일어나 떨어졌다.
“......마실 건 커피로 좋나?”
잭슨의 질문에 세로스는 눈을 크게 떴다.
잠시 동안의 침묵 후에 세로스는 말했다.
“......홍차로...”
“그러냐.”
피식 하고 작게 웃어 보인 잭슨은 그녀가 처음 이 방에 찾아왔을 때와 같이 찬장으로 향했고 이번에는 아무런 방해 없이 물을 끓이고 차를 탈 수 있었다.
엉망진창의 방의 중심에서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마주하는 두 명의 남녀.
그들의 사이에는 테이블도 없고 의미 없는 담소 또한 없었다.
그저 숨 막히는 침묵, 그리고 정사후의 남녀사이에 감돌법한 아련한 분위기만이 감돌뿐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그 침묵을 최초로 깬 것은 잭슨이었다.
그는 잠시 머그잔에 담긴 밀크티를 조용히 바라보다 다시 눈을 들고 말을 이어갔다.
“왜 이런일을 벌인거냐?”
‘이런 일’ 이란 두 말 할 것 없이 갑작스레 자신을 습격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아니 좋고 나쁘고를 말하기 이전에 잭슨과 세로스는 서로 만난지 아직 1주일, 아니 3일도 되지 않은 사이다.
친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미워할 정도의 관계성도 형성되지 않았을 터였다.
“나도 한 가지만 묻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거냐......’ 라는 감상을 묻어두고 잭슨은 세로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째서 당신은 B급이지?”
이런저런 의미를 함유한 질문이었다.
“편하니까.”
잭슨의 대답 역시 이런저런 의미를 함유한 대답이었다.
“편하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로스에게는 그런 잭슨의 단답을 이해할 만큼의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냉정하게 똑 부러져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그녀 또한 티레사와 같이 한정된 범위에서 한정된 세상을 살아온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했는지 잭슨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곧 적당히 말이 정리된 것인지 잭슨은 고개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얘기다,
모험가는 A랭크에 도달 할 때부터 길드로부터 특별한 의뢰를 수주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길드의 비밀의뢰인데 이 비밀의뢰라는 놈이 거창한 이름에 어울리게 난이도는 높은데 비해 보상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 세로스는 당연한 질문을 날렸다.
“그렇다면 받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장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모험가 길드의 숨겨진 원칙상 이 비밀의뢰라는 놈은 반 년에 한 번은 반드시 수행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인원은 비밀의뢰를 수행하기 전까지 모험가 자격이 정지되게 된다.
“확실히...그건 좀 불합리하고 불편하겠군...”
물론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당장 A급이란 칭호를 달게 되면 비밀의뢰만이 아닌 길드로부터 다양한 책임과 의무를 강요당하게 된다, 당장 던전 리버스가 일어나면 제일먼저 길드에서 호출하는 인원들이 A급들이고 던전 내의 보스급 마물이 상승변이를 일으켜 등급에 맞는 모험가들의 모험이 어려워지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부르는 것도 A급이고 또 어제의 사룡사건처럼 윤곽이 파악이 안된 사건을 조사할 때 부르는 것 또한 A급이다.
“한 마디로 귀찮다는거야, 왜 어제 너네 아가씨가 갔던 쟈니 레스토랑의 쟈니 아저씨도 실력만은 A급인데 그냥 소소하게 가게하고 있잖아?”
말하자면 꼭 실력이 A급이라고 A급으로 승격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정점을 노리며 치열하게 달리는 녀석들도 있지만 나나 쟈니 아저씨처럼 적당히 지금처럼 그저 ‘살아가는 것’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다.”
내 말을 납득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해가가지 않는 것인지 세로스는 한 동안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그렇군,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건가...내 식견이 얕았군.”
거기까지 말하고 세로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래도 그 정도 강함을 가졌으면서 B급에 머무는 것은 아깝군.”
갑작스런 칭찬에 쑥스러운 기분을 감추려 머리를 긁적이며 겸양의 말을 하려는 순간.
“하지만 무기를 들면 내가 더 강하다.”
팍 식었다.
진지한 얼굴로 뭐라는 거야 이 여자는?
“............”
“............”
뭔가 말이라도 하려했지만 저 당당한 눈을 보고 있으려니 그냥 말을 말기로 했다.
“결국 네가 날 습격한 이유란 게 실력은 A급 같은데 B급으로 있는 게 수상했다......뭐 이런거냐?”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볼이 씰룩인다,
“물론 아니다.”
다행이다, 아닌 모양이다, 맞다 고 했다면 죽빵을 갈겼을 거다.
“어떻게 아가씨를 그렇게 바꾼거지?”
“아가씨라면...티레사말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의 말을 긍정한 세로스는 짐짓 진중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 좋을 것인가? 나랑 같은 이세계 전이자다...라고 말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냥 좀...말이 좀 잘 통하더라?”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이 말에 세로스가 납득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상의 변명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가......”
잠시의 침묵, 그리고 다시 입을 연 세로스는 아까와는 달리 무언가를 결심한 것으로 보였다.
“잭슨 나를 도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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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말했다.
자신과 티레사가 에이던에 온 이유를, 그들의 목적은 2가지인데 그 중 첫 번째는 이 에이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십이성재보를 찾는 것.
“십이성제보(十二聖財寶)!?”
“그렇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이 녀석들과 만난 이후로 최대의 경악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십성제보라면, 이제는 멸망한 영원제국 알트리우스에 전해 내려오는 보물중의 보물을 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부는 모르지만 잭슨도 그 중 몇 가지는 알고 있었다.
지고의 성검이자 최강의 신검이라 불리는 궁극의 검 성문천검-星紋天劍-레이그람
빛의 정화이자 순수의 정점에 있다는 신비의 마경 순광정경-純光正鏡-라비아슈
천중이자 동시에 천강이며 또한 천벽의 갑주 신갑 무용강벽武龍强壁-알 아크티
만변을 담았으며 만화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지팡이 근혼혜곤-根魂惠棍-피리아 아지프
근원의 화염이자 천의 화염이며 새벽의 정화를 담은 창염의 잔 여명신잔-黎明新盞-소마
진리에 다다르며 만중의 지혜를 담은 지고의 책 전지만서-全知萬書-니푸르
...잭슨이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 였다.
“우리들도 이 에이던에 어떤 제보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 나는 처음 십이성제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들었던 의문을 입에 담았다.
“......너희들은 제국의 잔당인가?”
“......그건 말 할 수 없다.”
제국.
영원 제국 알트리우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2년 전에 사라진 나라의 이름이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돈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제국과 관련된 뭔가를 하려는 거라면 포기하라고 말해둘게...”
1000년도 넘게 이어져왔던 제국, 그리고 2년 전에 사라진 제국,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사라졌는데 고작 2년 만에 세상은 그것을 잊은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제국을 무너트린 아홉 왕관의 까마귀들이 전쟁이 끝난 후 철저히 그들의 흔적을 지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력은 어디에도 있으며 그들의 눈은 이 대륙 전체에 미치며 그들의 손은 천하를 뒤흔든다.
호사가들은 물론 밑바닥의 거지들조차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
이 시대의 패자는 아홉 왕관의 까마귀들이다.
제국을 무너트리고 그 왕좌를 찬탈한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패자들임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알고 있다......”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더 이상의 질문이나 충고는 사족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2번째 이유는 뭐냐?”
나는 그녀가 아직 꺼내지 않은 2번째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건...이 에이던에 숨어 있는 아홉 왕관의 까마귀 중 한명을 찾는 것이다.”
“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뭐? 뭐가 있다고? 내가 잘못들은 것 아니지? 아홉왕관의 까마귀? 그 시대의 패자 놈들? 제국을 1년 만에 부숴버린 그 괴물 중 한 명이......
“에이...던에...있다는 거냐?”
“있다. 확실히”
나의 볼품없이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세로스도 내가 믿지 못한다고 여긴 것인지 확실히 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니, 잠깐 애초에 이런 이야길 나한테 왜 해주는 거야?”
“네가 우리들을 도와주길 바란다.”
“뭐?!”
뭐요? 뭐에 뭘 도와요? 십이성제보랑 왕관까마귀 찾기를요???
“너...그 말들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는 거냐?”
“글세? 무슨 의미지?”
이제 와서 시치미를 때는 거냐...뭐, 확실히 마지막 말까지 해버리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되 버릴 테니까...하지만 여기까지 말한 것으로도 대략적인 뜻은 전해진다.
“......일단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겠어?”
“그러지”
거기까지 말 했을 무렵 나는 이 대화 끝에 생긴 근원적인 의문을 물었다.
“그런데...넌 뭘 믿고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거냐?”
그 말에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의 홍차를 들이킨 세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감, 내 감은 잘 맞거든.”
“미쳤네......”
그 외의 말은 떠오르지 않아 멍해진 내 모습을 보고 자신이 생각해봐도 방금 말은 좀 멍청했다 생각했는지 세로스는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옅게 붉혔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가씨가 이렇게 사람을 믿고 따르는 건 처음봤다”
“그거야......”
이전의 티레사가 어떤 사람인지 따위는 자신은 모른다. 다만 그녀가 자신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분명 나와 그녀가 같은 지구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거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그것을 설명해줄 수 없기에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가 믿는 사람이라면 나도 믿을 수 있다, 그것뿐이다.”
“그러냐......”
그 이상의 말은 떠오르지 않기에 침묵할 뿐인 나를 두고 세로스는 ‘잘먹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잔을 바닥에 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 방을 나서려는 순간.
“기다려”
그녀를 붓잡았다.
“......벌써 결심이 선거냐?”
돌아보는 세로스를 보고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 잠은 어디서 자냐?”
“......그야 여기가 네 방이니 여기...서......”
말을 마저 이어가지 못하고 세로스는 난장판이 된 방을 둘러보았다.
나무 바닥은 작살이 나있었고 침대는 뒤집히고 집기들은 휘날려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창문의 깨진 파편들이 바닥을 장식한대다가 결정적으로 휘날린 나무 바닥 조각과 가루들이 방 전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난 이만 돌아가......”
“기다려!!!”
“에잇!! 이거 놔라! 사나이라면 이 정도 일은 대범하게 넘겨야 하는 것을!!”
“웃기지마!!! 내 방 어쩔 거야!!! 난 잠 어디서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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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시국입니다, 독자분들도 힘내서 이 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를 바랍니다~
네이버 웹소설 첼린저 리그에서도 연재하고 있어요 시간이 있으시면 한 번 들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