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한이 숲 안으로 들어가고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려하자 초록색 두건은 망설일것 없이 언덕에서 일어나 여한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갔다.
숲으로 들어간 여한은 그때 산도적이 알려준 산도적 소굴을 찾아 숲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겨우 3일이 지난후 였지만 레온 숲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전엔 아무리 걸어다녀도 제대로 된 길은 없고 울창한 숲과 나무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당하게 나무가 깍여나가고 조약돌과 여러 잡 재료로 포장된 도로가 숲 중앙을 향해 뻗어나가있었다.
품안에 안고 있던 돼지는 하도 내려달라고 꿀꿀거리길래 바닥에 내려놓곤 길을 따라가는 중 이었다.
'3일만에 길이 생겼고 사람이 지나간듯한 흔적들도 보여 이 숲에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건가?'
전과 달리 사람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숲을 보며 길을 따라가던 여한은 길 근처 나무를 베고 있는 한 마을 주민을 보게 되었다.
나무를 열심히 베고 있던 마을 주민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 여한과 눈이 마주쳤다.
"응? 당신은…"
마을 주민은 여한과 눈이 마주치자 잠깐 당황해하다가 여한의 얼굴을 샅샅히 살펴보던 마을 주민은 외마디 작은 탄성을 지르며 여한에게 아는 척을 했다.
별로 놀라하지 않고 아는 사람을 만난 것 마냥 반가워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마을에서 여한과 만났던 사람들중 한 명 인듯 했다.
"…페드?"
"오랜만입니다 이방인! 무사하셨군요!"
마을 주민 아니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npc인 레온 마을 주민인 페드는 하던 도끼질을 그만두고 반갑게 여한을 맞이하며 다가왔다.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몸에 자잘한 상처가 있는게 레온 마을에서 병사들에게 당해서 그런 거 같다.
여한에게 다가온 페드는 여한에게 여한이 오기 전 이곳에서 있었던 3일간의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해주며 자신과 마을 주민들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방인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3일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레온 마을에 레온 성의 병사들이 마을을 기습을 하고 이방인과 산도적이 저희 마을 주민들을 구해주셨죠 마을이 사라지고 마을 주민들도 몇몇 죽었지만 대부분은 살아남아 지금 이 레온 숲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별 문제가 없지만…"
말을 하다가 말하기 곤란한게 있는지 말을 멈춘 페드는 자세한 이야기는 산도적 동굴 안에서 하자고 하고 자신의 도끼와 벤 나무를 등에 짊어지곤 길을 따라 걸어갔다.
만나자마자 뜬끔없이 도움 요청을 받은 여한은 약간 벙찐 얼굴을 하며 일단 페드의 뒤를 따라 산도적 동굴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페드를 따라 걸어간지 몇 분 정도 지나자 전에 보았던 그 큰 동굴이 여한의 시야에 들어왔다 동굴 주변에 천막 여러개가 놓여져있었는데 천막 안엔 다친 마을 주민들이 몸져누워있거나 우울한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중간 중간 보초를 서거나 돌아다니는 산도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전과는 달리 그 수가 상당히 적어진 듯 했고 마을 주민들처럼 천막에 누워있거나 붕대를 둘둘 마른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산도적들이 다수 보였다.
"…"
'그닥 상황이 좋아보이지는 않네.'
하루 아침에 자신들이 살곳을 잃은 마을 주민들이다 저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이해가 간다.
근데 그 많던 산도적들은 어디로 간걸까? 레온 숲을 정찰하러 나간건 아닌거 같았다.
"아 저쪽은 마을 주민들이 지내는 곳입니다 일단 저를 따라와주십쇼."
그걸 본 페드는 저 천막들은 마을 주민들이 임시로 지내는 거처라고 설명하곤 동굴 앞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다가가 뭐라 말하곤 여한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대장 이대로는 골치아파집니다 빨리 마을 주민들을 내치는게 좋다고요!"
"날이 갈수록 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레온성의 병사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포위당하고 당해버려요 마을 주민들을 미끼로 내보내고 그틈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은 아니예요 대장이 미끼라니!"
동굴 안에는 의자에 앉은 산적 두목과 그 옆에 선 부두목인 미르렌 그리고 아래에 쭉 나열한 산도적 내에서 나름 역할을 하는 간부 급 산도적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라기보단 의자에 앉은 산도적 두목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산도적들은 하나같이 동굴 바깥에서 생활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을 내쫓자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나중에…손님이 왔군 일단 물러가있어."
가만히 부하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산도적 두목은 동굴 입구에서 이곳까지 내려온 여한과 그 옆에 있는 페드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했다.
산도적 두목은 여전히 위압감이 넘치고 보는이가 오금이 저리게 하는 모습이다 그 옆에 있던 미르렌은 전과 달리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팔 한쪽이 부목을 칭칭 감겨져 있고 얼굴이 침울해보이는게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듯 했다.
전엔 목소리로 미르렌이 여자인걸 확신했는데 얼굴을 제대로 보니 확실히 여자이긴 했다 단발의 검은 머리에 검은 두눈 빠른 몸놀림에 비해 얼굴이 동글 동글하게 생긴게 얼핏보면 어린애 같아 보였다.
"저놈은…"
"……"
산도적 두목의 말에 일제히 여한에게로 시선을 돌린 산도적들은 여한에게 한마디라도 할 법한데 다들 벙어리라도 된양 입을 다문채로 순순히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여한 본인은 잘 모르지만 단신으로 레온 숲을 순찰하는 산도적 둘을 쓰러뜨리고 산도적 두목 앞에서 당당히 맞서고 나중엔 홀로 병사들과 싸웠던 여한이다.
여한에게 여러가지로 미움을 받는 산도적일지언정 산도적 대부분이 두려움과 강자에게 느끼는 경외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여한에게 함부로 대하지를 못한다.
산도적들이 나가고 동굴 안에는 여한과 페드 산도적 두목과 부두목 만이 남게 되었다 100여명이 넘는 산도적이 머무를 수 있는 크기의 동굴이라 그런지 네 명만이 있는 동굴의 모습이 허전해보였다.
"으음…오랜만이다?"
넓은 동굴에 넷만 남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조용히 있던 여한이 반갑게 손을 들어 산도적 두목에게 말했다.
산도적 두목은 여한의 인사에 인상을 찌푸리며 죽일듯이 노려보았고 미르렌은 무덤덤하게 여한을 쳐다보았다.
인사를 해도 별 말이 없어 무안해진 여한은 그냥 입을 다문채 가만히 서 있었고 옆에 서 있는 페드는 나갈 타이밍을 놓쳐 나가지도 그렇다고 저 두 산도적에게 말을 걸지도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굳어 있었다.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가장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산도적 두목이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오면서 보았겠지만 지금 우리 산도적이 머무르는 동굴 주변엔 마을 주민들로 가득차 있다 갈곳이 없으니 잘 공간 정돈 마련해 줄 수는 있고 식량도 나름 있어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레온 성의 병사들이다."
산도적 두목의 말은 이러했다 레온 성의 병사들이 습격한 그날 병사들의 대장을 잡고 병사들을 인질로 잡은 산도적 무리는 다른 병사들의 습격이 오기 전 살아남은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산도적 영역인 레온 숲으로 들어가 생활하게 되었다.
워낙에 넓은 레온 숲이었고 열매나 자원이 풍부했기에 식량이나 주거 공간의 걱정은 없었지만 문제는 레온 성의 병사들이었다.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레온 숲으로 들어간지 한 나절도 안되 300여명의 레온 성의 병사가 레온 숲을 포위한 것이다 숲을 포위한 병사들에 맞서 산도적들이 맞서 싸웠지만 레온 마을에서와는 달리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레온 숲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있었는데도
산도적 무리가 약해서 진게 아니었다 부하들을 이끄는 장군 즉 우두머리의 차이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
300여명의 병사들을 이끄는 장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의해 산도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숲 안으로 퇴각했고 병사들은 숲 안쪽 까지 쫓아가지는 않고 레온 숲을 둘러 싸 빠져나오지 못하게 끔 몇 명씩 짝을 지어 주변을 돌게 했다.
"그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장군 녀석 너보다 강한 녀석인거야?"
조용히 산도적 두목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한은 지휘하는 장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의해 산도적들이 패했다는 말에 그럼 산도적 두목이 그 레온 성의 장군에게 졌다는 말이냐고 물어보았다.
이 세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여한이지만 산도적 두목은 여한이 본 NPC중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였다 그런 녀석이 질 정도면 여한이 어찌해 볼 상대는 아닐것이다.
"그때 그 레온 성의 장군과 싸운건 내가 아니었다 여기 있는 미르렌이지."
"……"
여한의 말에 산도적 두목은 고개를 저으며 그때 나갔던 사람은 자신이 아닌 미르렌이라고 말했고 미르렌은 더욱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산도적 두목은 레온 마을에서 병사들의 대장과 싸운 후 산도적 소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당시 산도적을 이끌던 대장은 산도적 두목이 아닌 부두목 미르렌이었다 산도적을 이끌고 병사들과 싸우던 미르렌은 앞장서서 산도적들을 썰어버리는 레온성의 장군과 맞서 싸우다 부상을 입게 되고 그로 인해 사기가 떨어진 산도적들이 패배하게 된것이다.
그후 레온 숲을 포위하게 됐지만 워낙에 둘레가 넓은 숲이라 300여명의 병사들 전원이 포위막을 만들어도 중간 중간 작은 틈새가 드러나게 되었고 한 두 명정도는 그틈으로 레온 숲 바깥을 나설수 있었다.
"약간의 틈이 있기는 하지만 빠져나갈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 두명 10명정도의 인원이 숲을 나갈려고 하면 주변 병사들의 눈에 띄여 곧장 공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숲안에만 있잖니 언제까지 마을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도 없고 가능하면 빠른 시일내에 마을 주민과 우리 산도적 일원이 이 레온 숲을 빠져나가야한다."
"인질은? 레온 마을에서 잡아둔 레온성의 병사들이 있지 않아? 그들을 내보내서 협상이라도 해보는게…"
"이미 시도해보았다 인질을 보내보긴 했지만 오히려 그쪽에서 활을 쏘아 인질들을 죽이더군."
3일전에 잡아둔 레온군 인질들을 이용하는게 어떻겠냐고 말하자 산도적 두목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그들은 협상할 생각 따윈 없다고 오히려 인질로 잡힌 그들을 죽였다고 말을 했다.
요약하자면 레온 숲을 포위한 레온 성의 병사들이 숲을 태우거나 총공격을 감행하든 그들이 뭔 짓을 하기 전에 사람들을 데리고 숲을 빠져나가야한다.
긴 이야기를 마친 산도적 두목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 성큼 여한에게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다가온거 같은데 얼굴이 단단히 굳은걸 보니 꽤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이야기는 이정도면 되겠지…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부탁이다."
"그러지 뭐."
산도적 두목은 거의 애원하는 애원하는 말투로 여한에게 도움을 청했고 여한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무덤덤하게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페드가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때부터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어."
사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산도적 두목이 굳은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 할 때도 그냥 별 생각없이 듣고만 있던 여한이었다.
순순히 페드를 따라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는 촌장을 찾아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함이었다 빨리 퀘스트를 완료하고 이 지역을 떠날려고 했지만 찾으려는 촌장은 보이지가 않고 더 복잡한 일에 휘말리게 생겨버렸다.
'그렇다고 거절하면 여기 레온 숲에 있는 마을 주민들은 떼죽음을 당하고 촌장도 죽겠지.'
퀘스트를 준 장본인인 촌장이 죽으면 퀘스트는 자동을 취소되어버린다 촌장이 어디있는지 모르니 촌장만 데리고 레온 숲을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
여기서 물러서면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고 시간만 버리게 된다 어차피 이왕 시작한 퀘스트이니 끝까지 해보겠다고 다짐한 여한이었다.
"그런가…"
너무나도 쉽게 도움 요청을 승낙하는 여한의 태도에 산도적 두목은 굳은 얼굴을 풀었다 아마 여한이 요청을 거절할까봐 걱정을 한 모양이다.
의외로 마음 씀씀이가 있는건가?
"그런데 내가 도울일은 뭔데? 내가 도와준다고는 해도 숲 전체를 에워싼 병사들을 이길 만한 능력은 없어 아니 애초에 난 너보다 약하고."
"너한테 그 레온성의 장군하고 싸우라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이끌던 산도적을 네가 이끌어야한다."
"……엉?"
오랜만에 연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