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그녀로부터 편지가 왔다.
열차는 내마음속과는 정반대로 느긋하기 그지없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열차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양떼구름이 지나가는 푸른하늘과 포플러나무가 눈에 띤다.
...도대체 무슨생각인거야 혜진아.
그녀와 만난건 대학교2학년 말이었다.
우연히 같은 강의를 듣게되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지루한 교수의 설명에 슬슬 잠이오기 시작한 나는 턱을괴고 얼핏 옆자리를 쳐다보았고,
졸고있는 여대생을 봤다.
턱에 겨우닿을 정도의 단발머리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있었다.
고개만을 숙인채 새근새근 콧소리까지 내는 그녈 나는 강의가 끝날때까지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결과는 강의가 끝난 후, 나랑 같이 교수에게 불려갔다.
역정을 내며 설교하는 교수앞에 그녀는 당황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고 죄송하단 말을 되풀이했다.난 교수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2시간후에나 교수는 우릴 놓아줬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그녀는 말을 걸어왔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어휴ㅡ"
"아니,뭐.."
별로 그쪽이 나한테 잘못한 건 없는데.
"요즘 밤마다 공부를 하고있어서 잠이 부족해서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학점이 딸린다는 건가.
"아,아니!다른 걸 공부하고 있어요!아까전의 과목이 아니라 원예쪽의..."
안물어봤는데.
"..흠!그럼 안녕히 가세요!"
내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얼른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걸어갈려고 했다.
"아.잠깐만요."
"왜요!"
난 호주머니속에서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들고 내 입근처를 검지로 가리켰다.
멀뚱히 날 쳐다보던 그녀도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왜요?"
"침..."
"침?...아."
손수건을 빼앗듯이 건네받고 그녀는 내가 계속 쳐다보던 부위를 닦았다.
내가 상념에 빠져있자 어느세 열차는 목적지에 가까워 가고 있었다.
나는 짐칸에 올려두었던 가방을 끌어내리고 일어서서 문쪽으로 걸어갔다.기차가 서기까질 기다리기엔 내마음은 너무나도 고양되 있었다.
문앞엔 이미 나처럼 성급한 사람들이 몇명 기다리고 서있었다.난 양쪽으로 흔들리는 진동에 쓰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서있자 한여자가 눈에 띄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여학생...
"갑자기 왜?"
혜진이와 사귄지 1년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갑작스레 나온 이별의 말에 나는 적지않게 당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진호오빠가 싫어진 건 아니에요.지금도 오빠를 좋아해요."
그런데 왜?
"음ㅡ제가 학점이 많이 낮은 거 알죠?그래서 집에 박혀서 공부 좀 할려구요."
어차피 전공공부를 하려는게 아니잖아.
혜진이가 의과계열이 아닌,원예쪽에 취미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만날때마다 자기가 키우는 꽃이 말라죽었다는 둥,물을 너무 많이 줬다는 둥 하는 말을 자주 했으니깐.
"헤어지잔 말이 아니구.그냥 잠깐동안만 떨어져 있잔 거에요.문자도 자주 보낼께요 네?"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건 잘알고 있다.그녀는 순진해서 거짓말을 하면 금방 티가 난다.
난 그녀의 어설픈 연기에 속아주기로 했다.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멀리서 손을 흔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도 마주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편지가 왔다.
역을 지나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편지에 적힌 주소를 찾아 꽤나 헤맨 뒤 커다란 정원이 있는 대문앞에 오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한번도 혜진의 집을 온적이 없었다.그녀는 항상 날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길 꺼려했다.아마도 집안사정도 있을꺼다.
그녀의 아버님은 해외여행 중,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어머님은 살아돌아오셨지만 실성하신 후,역시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벨버튼에 손가락을 갖다됬다.
딩동ㅡ
"실례합니다 여기가 전혜진씨 댁이 맞나요?"
침묵.
딩동딩동ㅡ
"혜진아!나 진호야 류진호.집에 있어?"
그녀가 집에 없으면 어떡하지?설마 이미 이사간 건가?편지의 내용으로 봐선 그럴 가능성도 있다.
내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할때 조용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그세여-?"
몹시 느리고 띄엄띄엄한 목소리.
"혜진아?나 진호야."
"...아ㅡ지노,오파ㅡ"
"혜진아,일단 문좀 열어봐!할 얘기가 있어!"
잠시동안의 침묵끝에 문이 열리는 기계음이 들렸다.
나는 얼른 문을 열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당에는 넓은 정원과 한구석에 꽤 커다란 유리온실이 있었다.상당히 잘 차려진 집이었으나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가 풍겼다.
코를 잡고 정원을 지나자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집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곳의 현관문에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윽!..."
쾌쾌한 냄새의 진원지를 알았다.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우유의 곰팡내보다 독한,그것은 매우 눅눅하고 어두운...죽음의 냄새.
시체썩는 냄새가 온집안을 뒤덥고 있었다.
신발을 벗기가 싫어져서 운동화발로 들어갔다.이미 오랫동안 환기가 되지 않아서인지 창고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곳곳에 널부러진 짐승과 아이들의 시체였다.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들의 사체는 너무 부패해서 형태를 구별할 수 없다.
어린아이들의 시체는 비교적 부패정도가 양호하나 차라리 짐승의 사체가 훨씬 보기 좋았다.백보양보해서 썩은 걸레뭉치로 보이지않는 것도 아니니깐.
모든 시체는 하나같이 두개골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고,굳이 그 안을 확인해 볼 것도 없이 내용물은 비어있을 것이다.이걸로 편지의 진위여부는 말할 것도 없군.
나는 시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안으로 걸어갔다.
"혜진아!어디있어!혜진,웁!.....혜진아!"
젠장.시체냄새에 숨을 못쉬겠네.
숨을 쉴때마다 기도에 곰팡이가 필 거 같다.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다시한번 부르려 할때,
"...오파ㅡ여기ㅡ"
혜진아!
시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안도감과 함께 구토감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설사 이 시체들을 만든게 정말 그녀라고 해도,아니 혜진이임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이 죽은 공간에서 살아있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난 눈을 굴려 소리가 난 쪽을 봤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안쪽의 아담한 사랑방...
"...혜진아?"
나는 천천히 방문으로 다가갔다.적막감에 왠지 모를 긴장이 되었다.
문고리를 잡았을때,두려움과는 다른 무언가가 심장을 죄어왔다.가슴이 쿵덕쿵덕 뛴다.
난 입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킨 후,손잡이를 돌렸다.
"혜진아 나 들어간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응?"
뭐지 저건?
나는 한동안 이해를 못하고 서있었다.
방은 커튼이 쳐져 있어 어두웠지만 커튼을 투과하고 들어오는 빛이 희미하게 방안을 비췄다.
그 희미한 역광 속에 그림자가 서있었다.하지만 [그걸] 전에 알고 지내던 여자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건]이해가 불가능할 만큼 이상했다.
난 눈을 떼지않고 손을 더듬어 벽의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딸깍소리와 함께 확연히 들어난 모습은...
"오파ㅡ왔서...?"
사람의 몸을 단 화분이었다.
본문
[공포] 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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