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여우§ ver.2 (#1.하얀 여우 홍진우)
글쓴이 서풍의 속삭임
#1. 하얀 여우 홍진우
"헉. 헉."
젠장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얘기가 이런 것인가? 나는 담배를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 앞에서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매니악을 쫓아가고 있다.
-치직. 진우 요원 전방 300M 앞에 막다른 골목이에요. 전투에 대비하세요.-
"헉. 헉. 젠장 드디어 이 짜증 나는 추격전의 끝이 보이는구나."
옵서버인 유진 양의 이 욕 나오는 추격전의 끝을 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하필 비번일 때 나의 꿀맛 같은 휴일을 날려버린 저 빌어먹을 종자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할 수 있다는 상상 역시 입꼬리 상승에 일조를 가했겠지만.
-크르륵.-
유진 양의 말대로 얼마후 막다른 골목이 나타났고 매니악은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살기로 가득한 붉은 눈동자를 번득거리며 나를 노려 보았다.
"헥. 너. 감히 이 진우님의 휴일을. 헥. 날려 버리다니. 난장을 치려면 다른."
내가 호흡조절에 실패하며 헥헥 거리며 말하는 동안 녀석의 가슴이 부풀어 올렸다. 음파공격계인가? 까다로운 녀석이군.
녀석이 공격을 가하기 전 나 역시 준비를 해야 했기에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가면을 소환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뜨거워지며 내 혈액 한 방울 한 방울이 요동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난 가면을 소환한 후 한 번도 내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잘 모르지만, 사람들은 내가 변한 모습을 보며 하얀 여우라고 불렀다. 여우 모습의 하얀 탈을 쓴 것 같다나?
녀석은 서서히 하얀 여우로 변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격하려던 것을 멈췄다. 자신과 비슷한 기운에 놀랐겠지만.
" 어이, 벌써부터 놀라면 안되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
내 한 마디에 매니악은 다시 가슴을 부풀리며 공격을 준비했다. 녀석이 잠시 뜸을 들인 덕분에 난 50퍼센트 소환에 성공했고 그와 동시에 녀석의 음파 공격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쿠와~~~왕!-
무형의 기운이 덮쳐오는 것을 느낀 나는 그 기운의 피하려 옆으로 몸을 굴렸다.
-쾅!-
젠장. 생각보다 강한 녀석이군. 그 무형의 기운이 내 하얀 여우털을 스치며 뒤에 있던 던킨도너츠 가게를 박살 내는 모습을 본 나는 녀석의 의외의 공격력에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차라리 물리 계열이면 화끈한 백병전으로 때려 눕힐 텐데 원거리 음파계열은 상대 하기가 까다로운데다가 방금 공격으로 봐서는 적어도 B급은 넘어서는 매니악 이었기 때문이다.
-크르륵-
내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녀석이 다시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금 공격 패턴을 파악했으니 시간을 줄 순 없지.
나는 빠른 속도로 녀석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순간 녀석의 부풀어 올랐던 가슴이 다시 원상태로 변하며 은빛의 커다란 손톱이 있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젠장 역동작이. '
빠른 속도는 때론 양날의 검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런 경우인데 녀석이 음파 공격을 이렇게 빠른 순간 물리 공격으로 전환 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체 근접했던 게 불찰이었다.
-퍽-
"큭."
그리고 나는 그 잠시의 불찰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맞은편 건물 쪽으로 나가떨어졌다. 온몸의 뼈 마디 마디가 재조립되는 듯한 이런 느낌은 아마도 일반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오락가락 할 때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저이다. 매니악들이나 타락한 유저들과의 전투에서는 이런 경험을 자주 느낄 수가 있다. 그래도 전혀 익숙해질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쿠와~~왕!-
"쳇."
녀석의 음파 공격이 아직 끔찍한 고통으로 뭉기적 뭉기적 거리고 있는 내게로 날아왔다. 저건 맞으면 좀 위험 할 텐데.
-슈우~웅. 쾅.-
가까스로 몸을 날려 음파 공격을 피한 나는 방금 내가 쓰러져 있던 건물을 보았다. 역시 건물은 먼지를 뿜어내며 무너져 내려 있었다. 확실히 맞으면 위험했을듯한.
-치익. 야 임마! 홍진우. 똑바로 안 할래?-
-치익. 팀장님 저 가면 소환 후에는 감각이.-
"큭. 고막 나가겠네."
내가 피하는 동안 명동의 건물들이 하나 둘 무너지자 참다못한 나지현 팀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하얀 여우로 변해 예민해 있던 감각을 사정 없이 자극하며 귓가에 울려 퍼졌다.
노처녀의 히스테릭한 목소리는 유저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턴(변신) 상태에서의 예민한 내 감각에는 음파 공격을 맞는 게 좀 더 괜찮지 않을까라는 웃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슬슬 반격 해주마."
-크르르-
녀석의 가슴이 다시 한번 부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의 품으로 쇄도 하여서 들어갔다. 이번에 녀석은 음파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품안으로 들어오는 나에게 음파 공격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녀석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하지 않았다.
녀석의 음파 공격은 갑작스럽게 멈춰 선 내 앞의 보도블록을 박살 내며 파괴력을 여지없이 보여줬지만, 녀석이 박살 내길 원한 건 나였을 테니 실패한 공격이었다.
녀석은 멍한 표정으로(물론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공중으로 솟아오른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그런 녀석에게 죽음의 비라는 나만의 공격기술을 퍼부어줬다. 내 손을 떠난 검은 기운들이 녀석에게 쏟아져 내려 녀석을 강타했고 타격을 입었는지 붉은 피를 뿜어내며 뒤로 밀려났다. 여기서 멈춘다면 녀석은 다시 음파 공격을 할 것이다.
"틈을 줄순 없지."
나는 검은 색 기운을 모아 창 모양으로 만들었다. 내 사랑스러운 전투병기 구미호를 소환해낸 후 죽음의 비에 강타당해 비틀거리는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은 무의식적으로 은빛 손톱을 휘둘렀지만, 그것으로 녀석의 반격은 끝났다.
내 구미호가 녀석의 가슴에 꽂혀서 녀석의 가슴을 사정없이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는 듯 검은 기운은 녀석의 상체에서 요동치며 딱딱한 갑각질의 가슴을 말 그대로 찢어버렸다. 몇 번 허우적대던 녀석은 붉은빛과 함께 폭발하였고 살점들과 뼛조각이 사방으로 쏟아졌지만 죽음의 비가 내린 구역에서 생성된 검은 결계덕에 더 이상의 피해는 주지 못했다.
전투가 마무리되자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이 쑤셔왔다. 나는 턴 상태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통증을 참고 있는 나에게 나지현 팀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익. 보고는?-
"에효~좀 쉬지도 못하나?"
-치익. 뭐라고?-
"아. 아닙니다. B랭크로 추정되는 프로토타입 매니악 명동에서 사살 완료했습니다. 처리반 좀 보내주십시오. 가면은 회수해서 본부로 복귀하겠습니다. "
-치익. 알았다. 빨리 와라 훈련을 제대로 안 하니까 B랭크 한 테도 빌빌 데지!-
"치익 치익. 어 팀장님 수신율이 좋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본부에서 보고드리죠."
나는 옛날 개그맨 누군가처럼 입으로 무선이 안 터지는 것처럼 꾸미며 무선을 끊었다. 물론끊기기 전까지 이 자식 너 오면 죽는다. 같은 악담을 듣기는 했지만 당장은 피곤이 먼저였다. 피와 살점 덩어리들 사이에서 매니악의 가면을 찾았고 주머니에서 특수 봉투를 꺼내 집어넣었다. 몸에 붙은 살점 덩어리와 피를 털어내며 명동역 쪽으로 걸어 올라갔고 내 시야에 바리케이드를 걷으며 뛰어오는 처리반 요원들이 보였다.
"후우. 목욕이나 하고 푹 좀 자고 싶은데."
한참 걸어 올라간 나는 처리반 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검은색 벤에 올라탔다. 당장 씻고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본부에서 보고가 우선인 관계로 내 바램은 중요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바리케이드 지역 밖으로 일반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험지역임에도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차던 나는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져 오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아. 씻고 자야하는데,,,'
by. 서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