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게시글은 페이트 사무라이 렘넌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뒤로가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미야모토 이오리는 1612년 하리마 국 (* 오늘날 일본 효고현 남서부 ) 출신의 무사 타하라 히사미츠의 둘쨰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616년 하리마 번주의 시동이 되었다 1624년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의 양자가 되었지요 당시 무사시에게는 나키가와 사마노스케의 셋째
아들인 미키노스케 를 양자로 들였으나 미키노스케가 섬기던 영주 혼다 타다토키 가 영면했을때 순사 (* 주군 혹은 주인이 세상을 떠났을때
신하 또는 하인이 자결하는것 ) 하게되어 무사시가 다시 양자들 들였다고합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타하라 이오리 를 양자로 들인것에 대해 오구라미야모토 가계도 (小倉宮本家系図) 란 가보기록을 보면 미야모토 와 타하라
가문과 친척관계 여서 입양할수 있었다고 나와있습니다. (* 번역기 에는 숙부 조카사이라고 나와있어 친척으로 해석했습니다.)
1626년 아카시 (* 오늘날 일본 효고현 아카시 시 ) 의 영주 오가사와라 다다자네 (1596~1667) 의 근위무사 로 시작하여
1632년 에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싯세이 (*執政) ( 노중 혹은 가로 등 고위직을 말하는 것 ) 가 되었고 주인인 다다자네를 따라
고쿠라(*오늘날 일본 규슈 기타큐슈 북부지역 ) 로 옮겨와 그곳에서 녹봉 2.500석을 받았으며 1637년 시마바라 반도에서 벌어진
시마바라의 난 당시에는 영주 인 다다자네를 따라 참전하였으며 사무라이 대장 과 총군부교를 역임하고 활약했으며
그공으로 1.500석이 가증되어 4천석의 녹봉을 받게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수 있게되었다고하지요
이후 미야모토 이오리는 1678년 65세의 일기로 눈을 감게되었습니다 이후 이오리의 후손들은 오가사와라 가문의 가신으로서 세를
이어갔다고 전해집니다.
기록이 워낙 짧아 글쓰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본래는 쿠훌린의 이야기를 쓸려고했는데
찾아보니 쿠훌린의 기록과 전승이 엄청많아서 포기해버렸습니다 .. 쓰기 정말 암담해질정도로 말이죠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