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읽기에 앞서 본 게시물은 사무라이 램넌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져 있습니다.
렘넌트를 플레이 혹은 아직 플레이 하지 않으셨거나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전 시마바라의 난 그리고 아마쿠사 시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던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글을 다시보니 뭔가 난잡해서 다시 개정(* 문서의 내용을 고치는것 ) 한바 동시 좀더 상세한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 현 남동쪽에 위치한 시마바라 반도는 천주교 신자 였던 아리마 하라노부 (1567 ~ 1612) 가 다리스던 지역이였습니다.
일본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한건 전국시대 당시 중국과 무역을 위해 항해하던 포루투칼 상선이 일본에 좌초되면서 다양한 문물의 전파
와 함께 천주교 역시 전파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천주교의 본산인 로마에 4인의 천주교 신자 소년들을 보낸 덴쇼 소년단을 파견헀을정도
로 천주교의 유입이 빨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류층 일부도 이 천주교에 귀의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중엔 임진왜란 선봉을 섰던
고니시 유키나가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천주교 는 성장과 동시 탄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 를 세운 시절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지요 그렇게 천주교 신자들은 탄압을 피해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시마바라 의 영지를 다스리던 하라노부의 아들 아리마 나오즈미 가 휴가국(*오늘날 미야자키 현 ) 노베오카 (오늘날 노베오카 시 ) 로 전봉(轉封):
제후가 다스리던 영지를 다른곳을 옮기는것 ) 하면서 그곳을 다스릴 인물로 마츠쿠라 시게마사 (1574~1630) 이 오면서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마츠쿠라는 막부에 잘보이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성을 짓고자 주변성들을 철거하였는데 당시 그의 녹봉은 4만석 그러나 시마바라 성의
규모는 당시 그의 녹봉보다 더 많은 10만석의 영주가 지을수 있는 정도의 규모로 지어졌다고합니다.
이때문에 영지민들은 성에 축조에 엄청난 세금을 내야 헀기에 많은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거기다 토지도 검지(*토지의 상태를 검사하는것 )
하여 내는 세금을 배로 늘려 내게하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막부에 충성을 위해 에도 (*
오늘날 일본 도쿄 )성의 개축 비용까지 맡는등 수탈을 이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 신자의 탄압도 만만치 않았는데 천주교 신자를 붙잡아 신자의 이마에 키리시탄 (* 일본에서 부른 천주교 명칭) 이란 문구가
새겨진 인두로 지저 새기게 하거나 손가락을 자르고 운젠산 (* 시마바라 반도에 위치한 활화산) 에 유황을 이용해 고문하거나 처형을 하는등
갖은 탄압을 서슴치 않았고 뿐만 아니라 막부에 잘보이고자 루손 (* 오늘날 필리핀) 을 공략하기 위해 전쟁자금을 위한 세금까지 내라는 명까지
내려 백성들을 서슴없이 쥐어짜고 있었습니다. 이후 마츠쿠라의 아들인 카츠이에 는 아버지 보다 더 심하게 쥐어짜내었으며
세금을 내지 못한 사람을 붙잡고 도롱이 (* 짚으로 만든 우의 ) 를 입히고 불을 질러 고문하는 미노오도리란 고문을 자행하기도 했는데
시마바라 외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지였던 아마쿠사 (* 오늘날 구마모토현 남서부 섬제도 ) 에서도 천주교 탄압 으로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결국 1637년 봉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1637년 아리마 하라노부의 전 가신들이 주체 가 되어 천주교 신자와 낭인 그리고 농민들까지 가세하기 시작한 봉기는 지도자로 당시 16세 였던
아마쿠라 시로 도키시다 (* 본명 : 마에다 지로 도키시다 ) 를 주축으로한 대규모 군세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봉기한 인원은 2만 혹은 3만
7천에 가까웠다 합니다 봉기한 농민들은 대관소 (* 행정및 치안을 담당하던 곳 ) 을 습격하여 관리들을 살해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에 마츠쿠라 카츠이에는 3천의 병력을 보내 폭동을 진압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막부에 지원요청을 하게 됩니다.
관군이 올때까지 아직 시간이 걸린다는걸 알고 있던 반란군은 인근지역 인 나가사키 지역을 점령해서 시간을 벌어야 했기에 요충지 였던 도미오
카 성을 공격했지만 완강한 방어에 밀려 실패하자 결국 반란군은 폐성이 된 하라성을 보수하여 거점으로 삼게됩니다
재미있는건 당시 반란군이 로마 에 지원을 요청해서 지원군을 불렀을거라는 연구결과 도 있는데 당시 기록물들 에서 반란군이 천주교의 본산인
로마에 지원을 요청하여 천주교와 연관이 있었던 포르투칼의 지원군을 요청했는데 이때 포르투칼은 열도에 상륙조차 못하고 실패했다
라는 기록이 있다는것이지요. 만약 성공했다면 일본은 아마도 외세에 의해 흔들렸을지도 모르는일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로 조선에서도 후에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란 사람이 조선의 천주교 탄압을 막고자 베이징에 있던 주교에게 편지를
보내 군병력을 조선으로 파견을 시도하려 했다 발각된 황사영 백서 사건이 있습니다
이에 막부는 이타쿠라 시게마사 (1588~1638) 을 지휘관으로 삼은 토벌군을 급파하지만 공에 눈이먼 시게마사는 무리한 돌격을 명령하다
병력 손실은 물론 본인 마저도 전사하고 맙니다 이에 막부는 다시한번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를 새로운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서국 제후들의 병력
까지 동원하니 그 수가 12만에 가까웠는데 사실 이렇게 한 이유는 당시 서국 지역 영주들은 모두 세카가하라 전투 당시 도요토미 편에
붙었다 다시 도쿠가와의 편에 붙었던 도자마 다이묘 들로 이들 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고 중앙정부인 막부에 의존케 하려는 전략이 숨어있엇지요
그렇게 바다와 육지 모두 포위한 막부군은 하라성에 농성하는 반란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나 실패하고 관군은 코가 닌자들을 급파하여 동태를
살피고 내통자 였던 화가출신의 야마다 에모사쿠를 통해 상황을 살피며 보급을 차단하여 안으로부터 붕괴시키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그렇게 1638년 성이 함락되면서 반란군 지휘자인 아마쿠사 시로 와 함께 남은 반란군 모두 막부군에 의해 진압 당함으로서 시마바라의 난은 마무
리 됩니다.
한편 막부는 천주교에 대해 탄압을 가속화 함은 물론 모든 국민을 불교로 개종시키는 데라우케 제도 와 5인 감시제도 및 천주교 신자를
색출하고자 했던 후미에 (* 예수가 새겨진 동판을 바닥에 두고 밟게하여 천주교 신자를 확인하는 검문법 ) 를 동원하여 탄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은 천주교 인들은 저 멀리 마카오로 피해 떠나거나 불교로 개정하거나 혹은 숨어 살면서 천주교 를 믿어갔으며
난의 원인을 일으켰던 마츠시케 카츠이에는 영지를 몰수당하고 에도로 끌려와 참수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새 영주를 후임으로 세웠으나
또 백성들을 수탈한 탓에 쫒겨나 결국 도쿠가와의 방계인 마츠다이라 가문이 통치하게 됩니다.
한편 이 사건은 조선에도 전해지게 되었는데 당시 동래부사인 정양필 (1593~1661) 에 의해 조정에 보고되어졌습니다.
웃긴게 당시 네덜란드 도 이 시마바라의 난 진압때 참전했다 그만 물러간 적이 있는데 이후 조선에 하멜이 표류했다 일본으로 넘어오는 일이
발생했을때 일본은 조선에게 네덜란드는 우리 식민지 네덜란드는 조선은 우리의 식민지 다 라는 말을 했다는겁니다 .. (무친넘들)
후에 시마바라 난의 최후격전지 였던 하라성을 발굴하면서 유해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당시 유해들의 입에 십자가 모양의 총알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병자성사 (* 중병을 겪는 신자를 위해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선익에 기여하는 성사) 를 했다는것으로 보입니다
시마바라의 난 당시 반란군이 다양한 재료를 섞어 먹었다고 하는 구조니 라는 음식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엔 어묵.떡.쑥갓.닭고기.장어
같은 다양한 재료를 넣고 끓어먹는 떡국으로 시바마라 의 명물중 하나라고합니다. 그외에 폐허가된 시마바라에 히로시마 주민들을 이주시켜
이주민들이 만든 소면 역시 시마바라의 특산물중 하나라고 합니다.
당시 시마바라의 전 영주 였던 아리마 나오즈미는 부친인 하루노부의 뇌물 사건 때문에 천주교와 연을 끊고 이후 천주교 신자 였던 동생들을
살해하고 시마바라의 난 당시 나오즈미 를 따르던 가신과 백성들을 가차없이 베어버렸다고 합니다. 그가 천주교를 끊은 이유는 아버지 하라노부
의 뇌물사건 때 자신 영지도 몰수당할뻔했으나 이에야스와 의 친분으로 영지몰수만큼은 면했고 이런 사건을 일으킨 천주교 인들에 대해 환멸했다
합니다.
이후 마계전생 사무라이 스피리츠시리즈. 사무라이 참푸르 등 다양한 서브컬쳐 매채에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페그오에서는 1부와 2부 중간 스토리인 에픽 오브 렘브란트 의 스토리중 시모노사쿠니 에피소드 와 깊은 관련이 있고 거기에 난의 지휘관이였던
아마쿠사 시로 까지 실장했으니 이 시마바라의 난에 관련된 캐릭터도 엄청난 파트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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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묘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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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이런사연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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