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많은 장점은 필요하지 않다. 누구보다도 특출 나게 뛰어난 장점 하나만 있으면 된다. 장점은 많은데, 그 중 어떤 것도 특출 나지 않다? 그런 자를 세간에서는 범인(凡人)이라 부른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평범함.
반면에 다른 부분은 보통 이하지만 그 대신 한 가지만 뛰어나다면 그 사람은 특별하다.
지잡대 16학번 유가림은 특별한 복학생이었다. 등록금만 내면 구구단도 못 외우는 꼴통도 입학하는 그런 대학에 다닐 만큼 공부를 못했고,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을 잡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없었다. 그렇다고 화술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와 10분 이상 대화를 해본다면 눈치 챌 것이다. 어휘력이 초딩을 방불케 할 정도로 딸린다는 것을. 심지어 성격마저 좋지 못해서 외모가 아깝다는 평이 지배적인 청년. 그런 그가 특별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예인도 울고 갈 정도의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
다른 모든 스테이터스는 평균 이하를 찍고 있지만, 외모 스테이터스만은 한계돌파하여 천상계로 가버린 남자가 바로 유가림이었다.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군살 하나 없는 조각 같은 몸. 그리고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은 조각을 넘어 CG의 영역에 들어서 있었다. 여기에다 북유럽 사람을 보는 듯한 화사한 블론드의 머리카락에 자수정 같은 보라색 눈동자가 아름다움에 신비함을 더하고 있었다.
유가림은 토종 한국인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외모로 인해 어린시절부터 많은 이목을 끌어 왔었다. 연예인 제의는 수도 없이 받아 봤고, 그 이질적인 외모의 비밀을 캐내려는 자도 많았다.
오직 지나치게 잘생겼다는 것 하나만으로 유가림은 누구보다 특별했고,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남자라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시련인 군대에서 조차도 그는 자신의 외모를 십분 활용하여 비교적 편한 군생활을 해왔었고, 제대 이후 복학생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유가림의 주변에는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도 끊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는 동성마저 홀려버린 것이다. 그가 다니는 대학에는 일본 학원물에나 볼법한 그의 팬클럽이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했고, 조금이라도 더 그를 접하고 싶은 스토커들도 넘쳐났다.
그러나 유가림은 스토커 등의 잘생김으로 인한 폐해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축복 받은 외모를 이용해 편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할뿐. 오히려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아하는 이른바 관종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외모를 돈벌이 수단으로 쓰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비정기적으로 하는 인터넷 개인 방송은 불과 몇 달 만에 노후에 쓸 자금까지 벌어들이게 했고, 지금은 억대에 달하는 1세대 포드 머스탱을 멋으로 타고 다닐 정도다.
수익으로 따지면, 전 세계에서도 손꼽을 수준이다. 방송 시작과 동시에 후원금이 쏟아진다. 거기에 광고수입이 어마어마하게 붙는 그의 방송은 아무 내용 없는 얼굴노출.
정말로 아무런 컨텐츠가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고 한다면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잘생김이 전부. 그 외에는 부족한 어휘력으로 시청자와 적당히 잡담을 나누거나, 하품하기. 그 외에 노래 틀어놓고 가만히 있기.
그런데도 세계 탑급의 방송 수입을 올리는 것이 그의 외모다. 덥다고 웃통을 깠을 때는 10분만에 어지간한 봉급쟁이가 평생을 일해도 벌지 못하는 돈이 후원으로 들어왔다. 이쯤되면 범인 입장에서는 박탈감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까지 많은 돈을 손쉽게 벌어들이는 그의 외모에 경외심이 생긴다.
월드클레스 존잘남이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인. 외모만으로 부와 명예. 미녀까지 손쉽게 얻는 최고로 잘나가는 남자.
유가림은 사실, 일장춘몽이었다.
*
지난겨울에 꾸었던 호접지몽. 유가림인 유카리인지, 유카리가 유가림인지. 나는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에 그리운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 내 심층의식이 만들어낸 유가림이란 아바타는 명백한 이레귤러였다.
내게 있어서 길고 긴 꿈이지만, 유가림이란 인물은 실존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차원에 만들어 놓은 분신. 또 하나의 나다. 나에게서 태어난 유가림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 나와 의식을 동조한다. 그동안의 나는 나라는 사실을 잊고 유가림으로서 활동을 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이어졌던 의식이 분리되어 나는 나로 돌아간다.
겨울 잠을 잘 때마다 다른 차원의 아바타로 다른 인생을 경험하게 되긴 하지만, 유가림은 뭐랄까. 성별이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나를 너무 빼다 박았다. 보통 인간 레벨에 맞춰 전체적인 스펙이 하향 되어야 하는데, 유가림에 한해서는 다른 부분이 크게 너프된 대신에 외모가 이 얼굴 그대로 가져가 버린 거다.
그래서 너무 잘생겨 버렸단 말이야.
외모만 보면 나 TS버전. 나를 베이스로 했으니 당연한 거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심쿵할 정도로 훈남이라서 막 덮쳐버리고 싶다니까.
아, 그러면 자위가 되는 건가?
분신과 떡을 치면 그것은 단순한 ㅅㅅ인가, 아니면 자위인가. 심오한 문제네. 독립된 자아를 가진 분신이니까, 역시 ㅅㅅ를 하는 게 되겠지?
실제로 분신이랑 ㅅㅅ는 조금 NG지만.
내가 나를 덮친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생각보다 멀쩡한 거 같잖아."
"요력만 봉하는 거니까."
대화가 들려왔다. 이제 막 정신이 든 거라 눈앞이 흐리긴 하지만, 누가 말하고 있는지는 특정할 수 있다. 카나코와 스와코, 두 콤비신이네. 그녀들의 대화 내용처럼 내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멀쩡한 것도 아닌 게.
"강제 구속제어술식인가 보네.. 힘이 전력일 때의 절반 이하. 8분의 1수준인 건가?"
골드 프리저가 1단계 프리저가 된 것처럼 요력의 출력이 확 줄어버렸다. 평소에도 재미삼아 별 의미 없이 힘에 제한을 걸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걸린 것과는 차이가 크다. 그러니까 비유를 들자면 정조대를 착용 당한 거다.
크윽, 이딴 굴욕.
이런 걸로 나를 복종시켰다고 생각하지 마!
"묘하게 얼굴이 붉은 것 같은데, 부작용 같은 건가?"
"아닙니다. 멋대로 흥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그젝틀리! 역시, 내 식신. 믿고 있었다니까, 젠장! 나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 하고 있잖아! 누군가에게 강제로 구속당한다는 시츄에이션 때문에 흥분상태가 된 나를 신들은 그저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란이 정확한 설명으로 그녀들을 이해시켰다.
좌우지간 나는 정조대 플레이를 강요하는 신들에게 억울함을 피력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예요?"
"우리 사나에에게 저지른 짓 기억나지 않나 보구나."
야사카 카나코의 무서운 얼굴이 나를 압박한다. 이게 그 인자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는 신님? 거짓말, 인자한 신이 아니라 살의에 찬 한냐다.
"제가 사나에한테 뭘 저질렀다구요~? 유카리 그런 거 잘 몰라요."
나는 혀를 살짝 내밀며 애교를 부려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 더 죽일듯이 노려본다. 아니,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내가 그 2p무녀한테 뭘 저질렀다는 거야? 장난 한 두번 친 적은 있어도 저질렀다고 할 정도의 일은 한 적 없다니까.
오버 니삭스를 신은 카와이한 금발로리가 혀를 쯧쯧차며, 카나코에게 말했다.
"소용없어 카나코. 저 바보 현자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자각조차 없으니까."
"음. 그러니까,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벌을 내리는 거지만."
카나코의 눈이 생각에 잠긴 듯 가늘어졌다.
"쉽게 고쳐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유능한 여우식신에게 맡겨두면 되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카나코의 시선이 란에게 향했다. 영광스럽게도 신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란은 맡겨 달라는 의지가 느껴지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의 식신을 신용하는 카나코가 차가운 어조로 내가 저지른 잘못을 밝혔다.
"장난으로 넘길 만 한 사소한 건 푼수짓으로 여기겠다만, 사나에를 갸루라고 불리는 불량한 애로 타락 시켰던 일만큼은 용서하기 힘들었다."
"에? 흑갸루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나에를 흑갸루화 시켰던 건 벌써 반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ntr, 조교물 등에 질러 새로운 장르를 팠었고, 타락물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타락물 중에서도 청순한 여고생이 흑갸루 빗치화 된다는 파격적인 설정에 꽂혀버렸다.
아싸였던 소녀가 인싸무리에 끼기 위해 무리한 변신을 시도하다 갸루로 타락한다니, 얼마나 현실적인 설정이야! 나는 그러한 타락을 실제로 보기 위해 인위적인 시도를 했고, 그 대상이 바로 사나에였다.
환상향에 실존하는 전직 여고생은 그녀뿐이니, 다른 적합자가 없었지. 아무튼, 만능도구인 경계의 능력을 이용해 사나에의 심층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삐뚤어지고 싶다는 심리를 표면으로 끌어 올렸고, 반대로 카제하후리로서의 그녀를 심층에 가라앉게 만들었었다.
그렇게 갸루에 대한 지식까지 불어 넣어 흑갸루 사나에라는 희대의 작품을 완성 시켰었는데, 두 신님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참 재밌었는데."
떠올리는 것만으로 입가가 절로 올라간다. 그 정도로 당시의 사나에는 가관이었다. 비주얼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무엇보다 그런 사나에를 보며 충격을 받은 카나코와 스와코의 반응은 정말이지.
"푸하하하하-. 아-. 지금 생각해도 웃겨! 푸케헤헤헤!"
"이것 봐. 저 요괴년에게 자기반성이란 건 존재하지 않다고."
웃음보가 터져버린 나에게 한심한 시선들이 쏘아진다. 그중에서도 스와코가 특히나 한심하다는 눈을 하고 있었지만, 나한테는 포상이다. 좀 더 차가운 눈으로, 구더기를 보는 듯한 혐오의 시선을 요청하는 바다.
이어 마타라 오키나가 자신의 차례인양 입을 열었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짓만 저지르고 다니는 구나. 같은 현자로서 부끄러워."
"너도 현자라면 이해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현자타임을 위해서는 쾌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흥. 너랑 똑같은 취급하지 말아줄래? 그래서 내 동자들을 레즈비언으로 만들어 버린 게 잘했다는 거야?"
"당연히 레즈일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실망이었다고! 그래서 레즈로 만들어 준 거 뿐인데, 이게 왜 잘못인데?"
"정말이지, 너랑은 대화가 안 통해."
서로 한 몸인 것처럼 딱 달라붙어 다니면서 백합 분위기를 내던 아이돌이 알고 보니 전부 컨셉이었고, 실제론 별로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내가 오키나의 동자에게서 느낀 감정이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아, 쟤네들 그렇고 그런 사이구나.'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어 놓고 아니었다니. 얼마나 오랫동안 딸감으로 이용해 왔었는데!
솔직히 지금도 배신당한 기분이다.
나를 기만한 그 동자들에게 벌을 줄 겸, 진정한 모습으로 만들어 준 것뿐인데, 오키나가 노발대발하며 날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오키나에게 충분히 혼쭐이 났었는데, 왜 이제 와서 또 이러는 거지?
"그때 한 번 벌을 줘 놓고, 또 이러는 건 너무하지 않아?"
"전혀 반성이 없으니까야."
오키나가 그렇게 말하지만, 솔직히 내가 뭘 잘못 했어야지 반성을 하던지 말던지 할 거 아니야? 거짓된 백합이야말로 타기해야 할 잘못이거늘. 본디 있어야할 속성을 가지게 한 나를 탓하는 것은 2대 호카게가 개탄할 일이다.
나를 추궁하며 탓하는 시간은 계속 되었다. 외계인약사는 발정기인 레이센을 거근 후타나리로 만든 일로 탓했고, 레이무는 잦은 성회롱을 탓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장 피해자인 양 행동하는 란이 내 앞에 섰다.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란은 그동안 나로 인한 피해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대사를 내뱉었다. 나도 잘 안다. 란이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그런데, 꼬리에 난 원형 탈모의 원인을 나로 돌리는 건 너무하지 않니? 탈모의 원인이 스트레스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고작 그런 걸로 주인을 배신하다니.
구미호라고 해도 결국은 짐승인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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