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호라이즌 - 이세계로의 표류.
로그 호라이즌을 읽었습니다. 아직 모든 권을 다 읽은 건 아니고, 1권부터 5권까지 읽었습니다. 리뷰를 쓸 때는 보통 최신 권까지 다 읽고 쓰는 편인데, 5권에서 이야기의 초석이 다 쌓아진 것 같으니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로그 호라이즌은 ‘일단’은 게임 판타지 소설입니다. 엘더테일이라는 가상의 게임을 소재로 한 게임 판타지 소설이에요. 일단은요. 그렇지만 이 소설은 평범한 게임 판타지 소설이 아닌, 이세계 소설의 느낌도 굉장히 많이 납니다. 로그 호라이즌은 이세계 소설이란 장르와 게임 판타지란 장르의 장점이 굉장히 서로 잘 섞여 들어간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게임에 갇힌다. 단지 그 소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과 소드아트 온라인 (아인크라드 편) 을 비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소드아트 온라인도, 로그 호라이즌도 재밌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소드아트 온라인은 일단 악역이 명백하게 있습니다. 카야바 아키히코라는 미친 과학자. 카야바를 물리치기 위해 주인공 키리토는 ‘아인크라드 100층 도달.’ 이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반면에 로그 호라이즌의 주인공인 시로에는 좀 다릅니다. 게임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탈출이 아닌 적응을 먼저 생각합니다. 안경 쓴 능구렁이라는 별명답게, 시로에라는 주인공이 굉장히 건조하고 냉철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보통 탈출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요. 생존보단.
아무튼 탈출보단 생존. 생존보단 편의. 컴퓨터 바깥의 현실보단 이미 시로에는 자신이 표류한 엘더테일을 현실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합니다.
특히 가끔씩 묘사되는 컴퓨터 바깥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시로가 꿈인지, 엘더테일의 인챈터 시로에가 꿈인지 몽상하는 부분. 그런 부분들을 통해 그 점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단 탈출은 뒷전이고, 시로에는 1권부터 이 세계가 현실이라고 완벽히 적응해버립니다. 아마, 소드아트 온라인의 카야바가 찾고 있던 아인크라드는 엘더테일이 아니었을지. (웃음)
뭐, 하여튼 시로에는 이미 엘더테일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점은 시로에에게 엘더테일이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5권까진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게 없으니 일단은 대충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냉철하고 음험하지만 라이트 노벨의 주인공답게 사실 시로에의 가슴 속엔 선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권의 세라라 구출이라든가, 2권의 토우야 미노리 남매 구출이라든가. 그래서 안경 쓴 능구렁이는 생각합니다. 지금 이 거리에는 사람들을 통치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 결과 만들어진 게 <원탁회의> 입니다. 이세계에서 표류할 동안 사람들을 다룰 기구.
원탁회의가 만들어지는 계기에는 엘더테일의 NPC <대지인>의 영향도 크게 끼쳤습니다. <대지인> 이라는 소재는 제가 이 소설이 단순히 게임 판타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여러 게임을 하다보면 (주로 RPG) NPC 라는 존재는 그저 퀘스트 셔틀이라든지, 포션 셔틀이라든지 그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세계가 되기 전 엘더테일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대재해> 이후 엘더테일의 NPC 들은 변했습니다.
이 소설의 NPC <대지인> 은 말 그대로 사람입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하는 존재도 아니란 말입니다. 감정, 육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엘더테일 안에서만큼은 진짜 사람. 당연히 유저들의 괴리감은 상당할 것입니다. 게임 속 NPC가 사람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렇지만 게임에 갇힌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유저들은 결국 <대지인> 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교류합니다. 결국 시로에뿐만이 아닌 아키바 거리의 유저들도 자신들이 떨어진 곳은 게임 속이 아니라, 이세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지요.
모험자들의 기구인 <원탁회의> 와 대지인들의 기구인 <자유도시동맹 이스탈> 의 교류가 펼쳐지는 4권. 모종의 이야기를 겪으며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나름대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원주민과의 <공존>이라는 것이지요.
4권의 히로인인 레이네시아는 이 소설에서 <공존> 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살린 히로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지인이지만, 대지인의 대표로서 아키바 거리에서 거취하고 있는 원주민이라는 포지션이니까요.
히로인 얘기를 해보자면 미노리도 아카츠키도 귀엽지만 5권 말미에 등장한 누레하가 굉장히 취향이었습니다. 고혹적이라서. 누레하의 활약도 기대가 되는 부분이어요. 레이네시아도 귀여워요. 특히 목덜미가 늘어진 옷을 입고 하루 종일 뒹굴뒹굴한다는 게으른 점이 사랑스럽습니다.
아직 다 읽은 건 아니지만 밝혀질 것이 굉장히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무엇보다 재밌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1,2권이 좀 지루하다. 라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원탁회의> 가 결성 된 이후로는 글이 탄력을 받아서 술술 읽어 넘겼네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9권까지 나왔다는데, 다음 권도 빨리 읽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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