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하는데 있어서 동기나 목표는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일단 무언가를 시작하게 만들고 그것에 열중할 수 있게 해주며 중간에 슬럼프가 와도 포기하지 않도록 잡아주죠
작품의 주인공 아리마 코우세이도 피아노를 치는데 있어서 이런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어릴적에는 병든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온갖 학대에도 기꺼이 피아노 치면서 콩쿨을 휩쓸었고 엄마가 죽고난 후에 슬럼프가 찾아왔으나
카오리를 만나 그녀를 위해 연주하겠다는 '불순한 동기'가 생기면서 2년의 공백을 깨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죠
주인공 코우세이 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칭)라이벌 에미와 타케시는 코우세이 덕분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무대에 서는것, 그의 경지에 도달하는것을 목표로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타케시의 여동생 나기는 오빠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피아노를 쳤으며
음악인은 아니지만 소꿉친구 츠바키는 코우세이 희망진학고교와 가까운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여 친구들을 전부 놀라게 할 정도로 성적을 향상시킬 수있었죠.
그리고 코우세이와 한번 더 연주하고 싶다는 동기로 인해 인생을 포기했던 카오리가 다시 희망을 되찾고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동기'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중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동기의 한계
어릴적 엄마를 위해서 피아노를 쳤던 코우세이는 엄마가 죽자 귀가 안들리면서 더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으며
코우세이와 같은 무대에 서면서 경쟁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에미는 코세이가 없어지는 순간 목표를 상실함으로 인해 기복이 심해졌고
타케시는 2년만에 만난 자신의 우상이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완전히 변해버리자 충격을 받고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년후 다시 피아노를 치기 코우세이 역시 마지막 연주를 제외하면 전부 특정 누군가를 위해서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연주를 했었습니다.
첫번째의 듀엣은 카오리의 부탁으로, 두번째 개인 콩쿨은 카오리를 위한 연주를 했고, 사랑의 슬픔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마지막 곡이었으며
나기와의 듀엣은 카오리에게 힘을 주기 위한 연주였습니다. 이렇듯 코우세이는 연주하는데에 항상 카오리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을 보면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어릴적 엄마를 위해서 피아노를 칠 때랑 상황이 비슷하죠.
엄마의 역할이 카오리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어릴적 엄마에게 맞아가면서 피아노 쳤을때도 당시 코우세이에게는 컬러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결국 코우세이의 2차 슬럼프는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르죠
동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동기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거죠.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겁니다
그리고 믿고 의지하고 있었던 동기나 이상이 깨지는 순간, 사람은 기댈 곳을 잃고 방황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동기에 의지하게 되면 그것에 맞춰서 모든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구속하는 요인이 될수도 있죠
-동기의 극복
1. 에미
사실 이 작품에서 제일 아쉬운 게 에미입니다. 특별히 성장한 것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냥 코세이 돌아오니 부활했다 느낌?
하지만 굳이 이 장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콩쿨에서 다른 훌륭한 연주자들과 경쟁하면서 음악 그 자체에 기쁨을 찾았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네요
2. 나기
다음은 나기인데요 마지막화만큼이나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락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보기도 하구요
나기의 '불순한 동기'는 오빠에게 인정받고 같은 길을 가고 싶어서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성격을 작중 내내 보여줬죠
하지만 코우세이와 듀엣으로 연주한 학교 축제는 평소랑은 달랐습니다.
콩쿨도 아닌 학교축제 연주를 위해서 평소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연습했으며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나기는 처음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전에는 그냥 듣고 흘렸던 자신에 대한 기대나 평가들도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말이죠.
이제는 단순한 동기를 넘어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그 행위 자체에도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겁니다.
이 순간만큼은 타케시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연주가 성공할 지 어떨지가중요해진거죠.
3. 타케시
결국 달라진 코우세이의 연주와 나기로 인해 타케시도 깨달음을 얻고 '자신에게 피아노를 치게 했던 원동력이자 동시에 구속하기도 하는 존재였던'
코세이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그를 극복합니다. 이제 그는 코우세이에게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피아노를 만들기에열중할 수 있게 된거죠.
4. 아리마 코우세이
마지막 연주에서 코우세이는 츠바키의 재채기로 인해 자신의 연주는 카오리만을 위한 것이 아닌
보러 온 모두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을 위해서 연주해야된다는 것도 말이죠.
그래서 그는 연주를 시작합니다. 더이상 카오리가 듣지도 못할텐데도 말이죠.
왜냐하면 그는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이상대로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마 제가 생각하기론 10%도 안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현재 무슨 일을 하건 혹은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되건 그것은 특정 동기에 의한 우리 자신들의 의지일수도 있고 혹은 어쩔 수 없어서 어쩌다 일수도 있습니다.
동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고 몰입하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거죠.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체에서,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카오리쪽과의 해피엔딩을 원하시지만은 전 단순히 드라마틱한 전개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의 죽음은 코우세이가 동기를 넘어서 하나의 완전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는걸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젠간 극복해야 할 것이라도 동기나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에 열중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은 오늘날의 그들을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들이었습니다.
타케시나 에미에게 있어 서로와 경쟁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코우세이가 어릴적 엄마와 함께 피아노를 연습했던 추억, 그리고 카오리를 만나면서 다시금 피아니스트로 재기했던 과정들
그 모든 것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죠.
그리고 불순한 동기(아리마 코우세이)를 아직 극복하지 못한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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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봄이 오겠네요.... 아이고...아이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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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봄이 온다히힛! | 17.01.15 1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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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자체의 완성도때문에 건들기 부담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 17.01.15 04: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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