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천의 눈물을 넘어, 석양의 황야를 달려라
이 애니메이션은 2007년에 나왔습니다. 마시모 코이치 감독의 미소녀 건액션 4부작(느와르, 어벤저, 매드랙스, 엘 카사도르)중 가장 마지막 작품입니다. 4부작이라고는 해도 각 시리즈가 미소녀와 총이라는 공통적인 코드를 제외하면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전작들까지 볼 필요는 없습니다. 4부작중 가장 가볍고 좋은 분위기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제가 이전 작품들을 본 것은 아니므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이 작품은 두 여자가 무턱대고 남쪽으로 가는 로드무비입니다. 두 여자가 주인공인 로드무비라고 하면 보통 영화를 좀 봤다 싶은 사람은 델마와 루이스(1991)를 떠올릴 겁니다. 다만 그 작품처럼 무슨 거창한 페미니즘 영화는 아닙니다. 어차피 킬링타임용 작품이죠.
El cazador de la bruja란 스페인어로, 번역하면 마녀의 사냥꾼(The hunter of the witch)이라는 뜻입니다. 마녀 사냥꾼이 아닙니다. 마녀의 사냥꾼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멕시코를 포함한 남미이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대체 어째서인지 일본 제목인 엘 카자도(エル・カザド)를 이상하게 읽은 엘카자드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심지어 아래에 친절하게 스페인어로 쓰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은 분명 알루카드(Alucard)를 알카드라고 읽은 놈과 같은 놈의 소행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글을 봤다면 앞으로 엘 카사도르라고 부릅시다. 음... 카사도르... 모하비 황야...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1831~1879)이 고안한 물리학 사고실험인 '맥스웰의 악마' 이론에서 유래하여, 그 '악마'의 역할을 맡는 '마녀'라는 존재가 과거에 실재했다는 설명과 함께 이 작품은 시작됩니다. 맥스웰의 악마에 대해서는... 각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일단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복잡합니다.
여담으로 스페인어는 남성명사와 여성명사를 구분하기 때문에, 여성 사냥꾼은 여성명사로 라 카사도라(La cazadora)라고 써야 합니다. 주인공이 둘 다 여성인데 남성명사인 엘 카사도르는 좀 이상하죠... 뭐 백합이니까, 다소는요?
2. 사냥꾼, 마녀, 추격자
기본적으로는 두 여자의 로드무비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둘이 한가하게 심심해서 여행이나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냥꾼은 맡은 임무를, 그리고 마녀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냥꾼 '나디'는 마녀 '에리스'와 접촉해서 에리스를 보호합니다. 마녀 에리스는 우이냐이마르카라는 일단 남쪽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는 장소를 찾아서 추격자들을 피해 무작정 떠납니다. 그리고 이 둘을 '더글라스 로젠버그'와 '블루 아이즈', 그리고 변태양반 'L.A', 마지막으로 딸을 동반한 총잡이 '리카르도'가 쫓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쫓고 쫓기는 구조입니다. 특히 에리스는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로, 거의 모든 대상에게 이래저래 노려지고 있습니다.
대조적인 두 주인공들의 모습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금발벽안에 순진무구한데다가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에리스와 히스패닉에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나디. 둘을 보고 있으면 아이 키우는 초보엄마 일기 같은 느낌도 듭니다(실제로 리카르도가 나디에게 어린이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는 대사도 있습니다). 둘은 그다지 대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나디는 보호자로 리드하는 입장이고, 에리스는 피보호자로 끌려오는 입장이죠. 나디는 처음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중반 넘어서는 순수하게 자의로 이런 마성의 여자 에리스의 보호자를 자청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둘의 입장은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아닌 여행의 동료, 파트너라는 대등한 위치까지 변화하게 되죠. 이런 면에서 보면 성장물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나디와 에리스 둘 다, 여행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니까요. 좀 구체적으로는 '친구이상 애인미만' 같은 미묘한 관계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만... 음... 뭐 백합적인 요소가 꽤 있으니까 말입니다. 의외로 나디는 노멀이라는게 함정.
이 둘의 신뢰는 결국 '동전 한 닢에 친구를 죽이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절대 나쁜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둘이 어떤 관계였고, 서로 어떻게 믿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어째서인지는 한번 직접 보면서 확인해보세요.
3. 단점
이 작품의 단점은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점입니다. 엔X위키에서 검색해보면 대부분 내용들에 친절하게 스포일링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후반에 밝혀지는 몇 가지 사실들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초반부터 다 밝혀집니다. 특히 캐릭터의 포지션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예를들면 X하위키에서는 나디가 에리스와 의도적으로 접촉했다는 것을 스포일링 경고 처리 해놓았지만, 사실 그건 1화만 보면 바로 나옵니다. 게다가 로젠버그가 흑막이라는 사실도, 조디 헤이워드(블루 아이즈)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라는 것도, 리카르도가 로젠버그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도, L.A는 로젠버그의 하수인이라는 것까지 전부 1~3화만에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개로 치면 "이 캐릭터는 누구고 저 캐릭터는 누구일까? 자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가 아니라 "이 캐릭터는 누구고 저 캐릭터는 누구고 얘는 누구야. 자 앞으로 어떻게 될까?"인 거죠. 스포일링계의 전설과도 같았던 '내가 갑옷 거인이고 얘가 초대형 거인이야' 라는 대사가 1화부터 나오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이건 좀... 재미없죠. 다 알려주고 시작하면... 마치 느긋하게 보고 싶은데 설명충 하나가 옆에 붙어서 짜증나게 다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작품의 템포가 꽤나 루즈하기도 합니다. 중심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사실 26화중 별로 없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어딘가에 들러서 어떤 사건을 겪는 식의 평범한(?) 여행 이야기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어떻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느냐가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런 게 싫다면... 이 작품이 재미있을 거라고는 못하겠군요.
외적인 단점으로는 L.A라는 캐릭터를 꼽는 분들도 있습니다. 확실히 이 변태양반의 변태행각은 좀 이래저래 짜증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캐릭터 자체는 굉장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요. 인공생명체로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이 순전히 자기 것인지, 아니면 남이 주입해준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일 뿐인지에 대해 고뇌하는 장면 같은것은 꽤나 명장면이죠. 좀 과장하면 로보캅 1편같은 느낌? 하여튼 하는짓이 좀 짜증나도 참고 보시면 나름대로 이 캐릭터에 대해 납득이 갈 겁니다. 약간의 동정심도 들고 말이죠.
4. 결론
오프닝 영상이나, 캐릭터나, 스틸샷 같은 것을 보면 또 '뭐야 흔한 기집애가 총들고 설치는 만화인가...' 하고 생각하고 실망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오프닝은 거의 낚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런 「까고자빠졌넴마-!」를 외칠듯한 클론 야쿠자들은 하나도 안 나오고, 에리스가 기관단총 들고 싸우는 일도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의외로 총 들고 싸우는 장면이 오히려 별로 없는 편이죠. 캐릭터 모에를 내세운 작품도 아니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카지우라 유키의 훌륭한 음악들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4화 삽입곡인 Forest와 마지막화의 삽입곡인 I reach for the sun은 신곡(神曲)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게 'OST만 좋았다'라는 의미는 아니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그다지 크게 눈에 띄는 작붕도 없고, 액션씬도 과장된 액션이 의외로 배제되어 있는 것이 상당히 볼만합니다.
작품의 주제는 꽤나 진중하지만 진행은 가볍고, 개그도 많습니다. 나디가 열창하는 아미고 타코스의 노래라던가, 의외로 개그 캐릭터 소질이 있는 블루 아이즈라던가... 기본적으로 가벼운 템포로 진행되는 것은 후반 에피소드인 24, 25화 같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작품의 마지막도 '모든 사건은 끝나지만 열린 결말'로, 상상을 자극합니다. '과연 나디와 에리스는 이후 리리오를 만났을까?' 하는 거죠. 이것도 한번 보면서 확인해보세요. 후속작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추천하는 대상: 캐릭터 모에에 질린 사람, 백합 매니아, 웨스턴물 좋아하는 사람, 로드무비가 좋은 사람
여담으로 이 작품은 의외로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가 있는 것 같더군요.
하여튼... 정말... 좋... 은... 작품입니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