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까지나 가수 쥬리(ジュリ-)일 뿐!"
사와다 켄지(澤田硏二, 52)가 변신했다. 예전에는 인기 가수로서 시대의 첨단을 달려 왔는데 최근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친근한 웃음을 선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고집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수. 새로운 히트곡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TV출연을 "타율을 저축하기 위한 포볼"이라고 말한다.
1. 대변신
"방 청소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대충 하고 시계를 보면 5시.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하나 꺼내 꿀꺽꿀꺽 마시면서 TV뉴스를 보고, 야구 야간경기를 본다. 일이 없을 때의 이런 시간들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사와다가 출연하고 맥주 광고가 아니다. 자신의 사생활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사와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신하려고 하는 그 이지만 과거의 그를 기억한다면 놀랄만한 일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톱스타로 군림했던 사와다. [허락받을 수 없는 사랑(許されない愛)] [위험한 두사람(危險なふたり)]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時の過ぎゆくままに)] [쉽게 목이 쉬어(勝手にしやがれ)].... 부르는 곡마다 히트시켰던 그는 일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언제나 높은 담이 가려져 있었다. 매스컴을 싫어한다고 알려져 단독 인터뷰를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이 그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 놓았다. 1986년 와나타베(渡邊)프로덕션으로부터 독립해 개인사무소를 설립한 이후부터 아티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재까지 15년 동안 히트곡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젠 뭐든지 해야만 합니다"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게다가 아내인 여배우 다나카 유코(田中裕子, 46) 역시 "당신이 다시 한 번 TV에서 노래하는 걸 보고 싶어요"라고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취미인 프로야구에서도 응원하는 팀이 바뀌었다. '더 타이거즈'라는 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사와다는 열광적인 한신 타이거즈 팬이었는데 지금은 거인을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자이언트 자체보다는 나가시마(長嶋) 감독의 팬이기 때문입니다. 나가시마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는 거인을 응원할 생각이예요. 집에서 가까운 요코하마 스타디움에 종종 갑니다. 나카시마 감독이 없어질 때까지는 한신 팬은 쉴 예정입니다. 미안!"
예전에 거인 감독에서 해임되어 오랫동안 낭인 생활을 했던 나카시마 감독은 다시 감독으로 돌아와 화려하게 재기한 사람이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아티스트였던 사와다가 자신의 이미지를 나카시마 감독에게 투영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2. 잡학파
그는 현재 후지TV의 생활정보프로그램인 <퀴즈! 메카라우로코>(월요일 오후 7시)의 사회를 맡고 있다. 매번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만큼 정말 시끄러워요. 떠들고 떠들고 또 떠들고... 주제는 주로 프로듀서가 정하지만 내 생각에는 하루 빨리 O-157에 대해 다루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왕년의 쥬리가 주부대상 프로그램의 주제를 고민하고 있으니 놀랄만한 일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 이외에도 요리 프로그램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 폭넓은 장르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니혼TV의 <전파소년(電波少年)>에도 등장하는 등 탤런트 사와다는 잘 나가고 있다.
"옛날처럼 멋지게 노래하고 싶다고 얘기한다고 해도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매년 싱글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전 히트곡은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라고 얘기될 뿐이죠. 지금까지 히트곡이 없던 시절이 있었으니 앞으로 10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포볼을 고르는 것도 타율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니까"
3. 부활을 위해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일세를 풍미했던 사와다. [토키오(TOKIO]에서는 등에 낙하산을 매고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남성 가수로서는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는 등 '원조 비주얼 가수'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그렇지만 최근의 무대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모자도 던지지 않는다.
"팬들에게는 나의 신선한 이미지가 남아 있어요. 그러니 더 할 필요가 없지요. 보여주지 않는 쪽이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더 좋을 지도 모르거든요"
퍼포먼스는 줄어든다고 해도 이전의 히트곡을 노래할 기회는 늘어날 듯하다. 21일부터는 정기 콘서트 투어가 시작된다. "늘 새로운 곡과 앨범이 중심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전 히트곡의 비중을 높여볼 생각입니다. 이전에는 신곡과의 위화감이 없는 정도로 히트곡들이 배치되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코너를 하나 신설해서 6곡 정도를 부를 예정입니다." 현재 이 콘서트의 티켓은 거의 매진된 상태. 그의 인기를 시들지 않았다.
그에게 가수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한 것은 타이거즈 때부터 소속되어 있던 와타나베프로덕션으로부터의 독립이였다고 한다. "자전거 조립이라도 좋으니 자력으로 굴러가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쭉 생각해 왔습니다. 흑자가 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생각을 바꾸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군소 프로덕션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었지요. 콘서트에, 영화에, 무대에... 여기서 나온 모든 수입을 전부 레코드를 제작하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신곡이 팔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만들어갔던 것이죠"
새 앨범 [새로운 추억(新しい想い出)] (20일 발매)에는 같은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뒤만 돌아보는 건 서글픈 일인 것 같아요. 우리들 세대쯤 되면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불안하기 마련이죠. 몸이 걱정되고 병에 든 것 같다고 하면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나 듣는 나이죠. 그렇다고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더 밝게 살아가야 하고 그런 기분을 넣은 것이 이번 앨범입니다.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면서 삶을 조금 더 전향적으로 만들자' 하는..." 아직도 새로운 히트곡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 주부대상 프로그램의 사회자로서가 아니라 가수 쥬리로서 부활하는 그 때를 기다려 보자.
사와다 켄지(澤田硏二) 1948년 6월 25일생. 돗토리(鳥取)현 출신. 교토의 고등학교를 2학년에 중퇴하고 키시베 잇토쿠(岸部一德)와 함께 '더 타이거즈(ザ タイガ-ス)'를 결성. 1967년 [나의 마리(僕のマリ-)]로 데뷔. 1971년 해산 후 솔로로 전향해 1973년 [위험한 두사람(危險なふたり)]를 크게 히트시켰다. 1977년 [쉽게 목이 쉬어(勝手にしやがれ)]를 크게 히트시키며 그 해 일본레코드대상을 수상. 1975년 '더 피넛츠(ザ ピ-ナッツ)'의 멤버였던 이토 에미(伊藤エミ)와 결혼, 아들 하나를 얻은 후 이혼. 1989년 여배우 다나카 유코(田中裕子)와 재혼했다. 6월 8일, 싱글 [그 날은 비(あの日は雨)]를 발매. 주연을 맡은 뮤지컬 영화 [가타쿠리가의 행복(カタクリ家の幸福)](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내년 1월에 개봉된다. 혈액형 A형.
http://www.tojapan.co.kr/
사와다 켄지(澤田硏二, 52)가 변신했다. 예전에는 인기 가수로서 시대의 첨단을 달려 왔는데 최근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친근한 웃음을 선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고집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수. 새로운 히트곡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TV출연을 "타율을 저축하기 위한 포볼"이라고 말한다.
1. 대변신
"방 청소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대충 하고 시계를 보면 5시.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하나 꺼내 꿀꺽꿀꺽 마시면서 TV뉴스를 보고, 야구 야간경기를 본다. 일이 없을 때의 이런 시간들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사와다가 출연하고 맥주 광고가 아니다. 자신의 사생활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사와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신하려고 하는 그 이지만 과거의 그를 기억한다면 놀랄만한 일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톱스타로 군림했던 사와다. [허락받을 수 없는 사랑(許されない愛)] [위험한 두사람(危險なふたり)]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時の過ぎゆくままに)] [쉽게 목이 쉬어(勝手にしやがれ)].... 부르는 곡마다 히트시켰던 그는 일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언제나 높은 담이 가려져 있었다. 매스컴을 싫어한다고 알려져 단독 인터뷰를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이 그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 놓았다. 1986년 와나타베(渡邊)프로덕션으로부터 독립해 개인사무소를 설립한 이후부터 아티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재까지 15년 동안 히트곡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젠 뭐든지 해야만 합니다"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게다가 아내인 여배우 다나카 유코(田中裕子, 46) 역시 "당신이 다시 한 번 TV에서 노래하는 걸 보고 싶어요"라고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취미인 프로야구에서도 응원하는 팀이 바뀌었다. '더 타이거즈'라는 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사와다는 열광적인 한신 타이거즈 팬이었는데 지금은 거인을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자이언트 자체보다는 나가시마(長嶋) 감독의 팬이기 때문입니다. 나가시마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는 거인을 응원할 생각이예요. 집에서 가까운 요코하마 스타디움에 종종 갑니다. 나카시마 감독이 없어질 때까지는 한신 팬은 쉴 예정입니다. 미안!"
예전에 거인 감독에서 해임되어 오랫동안 낭인 생활을 했던 나카시마 감독은 다시 감독으로 돌아와 화려하게 재기한 사람이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아티스트였던 사와다가 자신의 이미지를 나카시마 감독에게 투영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2. 잡학파
그는 현재 후지TV의 생활정보프로그램인 <퀴즈! 메카라우로코>(월요일 오후 7시)의 사회를 맡고 있다. 매번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만큼 정말 시끄러워요. 떠들고 떠들고 또 떠들고... 주제는 주로 프로듀서가 정하지만 내 생각에는 하루 빨리 O-157에 대해 다루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왕년의 쥬리가 주부대상 프로그램의 주제를 고민하고 있으니 놀랄만한 일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 이외에도 요리 프로그램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 폭넓은 장르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니혼TV의 <전파소년(電波少年)>에도 등장하는 등 탤런트 사와다는 잘 나가고 있다.
"옛날처럼 멋지게 노래하고 싶다고 얘기한다고 해도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매년 싱글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전 히트곡은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라고 얘기될 뿐이죠. 지금까지 히트곡이 없던 시절이 있었으니 앞으로 10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포볼을 고르는 것도 타율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니까"
3. 부활을 위해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일세를 풍미했던 사와다. [토키오(TOKIO]에서는 등에 낙하산을 매고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남성 가수로서는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는 등 '원조 비주얼 가수'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그렇지만 최근의 무대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모자도 던지지 않는다.
"팬들에게는 나의 신선한 이미지가 남아 있어요. 그러니 더 할 필요가 없지요. 보여주지 않는 쪽이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더 좋을 지도 모르거든요"
퍼포먼스는 줄어든다고 해도 이전의 히트곡을 노래할 기회는 늘어날 듯하다. 21일부터는 정기 콘서트 투어가 시작된다. "늘 새로운 곡과 앨범이 중심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전 히트곡의 비중을 높여볼 생각입니다. 이전에는 신곡과의 위화감이 없는 정도로 히트곡들이 배치되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코너를 하나 신설해서 6곡 정도를 부를 예정입니다." 현재 이 콘서트의 티켓은 거의 매진된 상태. 그의 인기를 시들지 않았다.
그에게 가수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한 것은 타이거즈 때부터 소속되어 있던 와타나베프로덕션으로부터의 독립이였다고 한다. "자전거 조립이라도 좋으니 자력으로 굴러가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쭉 생각해 왔습니다. 흑자가 되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생각을 바꾸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군소 프로덕션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었지요. 콘서트에, 영화에, 무대에... 여기서 나온 모든 수입을 전부 레코드를 제작하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신곡이 팔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만들어갔던 것이죠"
새 앨범 [새로운 추억(新しい想い出)] (20일 발매)에는 같은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뒤만 돌아보는 건 서글픈 일인 것 같아요. 우리들 세대쯤 되면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불안하기 마련이죠. 몸이 걱정되고 병에 든 것 같다고 하면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나 듣는 나이죠. 그렇다고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더 밝게 살아가야 하고 그런 기분을 넣은 것이 이번 앨범입니다.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면서 삶을 조금 더 전향적으로 만들자' 하는..." 아직도 새로운 히트곡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 주부대상 프로그램의 사회자로서가 아니라 가수 쥬리로서 부활하는 그 때를 기다려 보자.
사와다 켄지(澤田硏二) 1948년 6월 25일생. 돗토리(鳥取)현 출신. 교토의 고등학교를 2학년에 중퇴하고 키시베 잇토쿠(岸部一德)와 함께 '더 타이거즈(ザ タイガ-ス)'를 결성. 1967년 [나의 마리(僕のマリ-)]로 데뷔. 1971년 해산 후 솔로로 전향해 1973년 [위험한 두사람(危險なふたり)]를 크게 히트시켰다. 1977년 [쉽게 목이 쉬어(勝手にしやがれ)]를 크게 히트시키며 그 해 일본레코드대상을 수상. 1975년 '더 피넛츠(ザ ピ-ナッツ)'의 멤버였던 이토 에미(伊藤エミ)와 결혼, 아들 하나를 얻은 후 이혼. 1989년 여배우 다나카 유코(田中裕子)와 재혼했다. 6월 8일, 싱글 [그 날은 비(あの日は雨)]를 발매. 주연을 맡은 뮤지컬 영화 [가타쿠리가의 행복(カタクリ家の幸福)](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내년 1월에 개봉된다. 혈액형 A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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