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3627134
1619년 음력 7월 25일, 철령을 함락한 누르하치는 이후 음력 7월 26일 자신을 습격한 자이사이의 군대를 다이샨을 시켜 격퇴했다.
다이샨은 자이사이와 그외 150여명을 생포하여 철령으로 끌고왔고, 누르하치는 그들에게 술을 대접해주며 안심시키는 한 편 그들에게 절을 받음으로서 그들의 복종을 확인했다.
이후 누르하치는 포로중 10명을 석방하여 그들에게 자이사이가 패배하고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본국에 알리도록 했다.
그들은 즉시 본국으로 돌아가 그 사실을 옹기라트와 자루트, 코르친등에 전했다.
한편 임시 도성 자이퍈으로 복귀한 누르하치는 다시 한 번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여 상황이 도대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파악케 했다.
지난 7월 무렵에 사신을 다시 한 번 보냈는데 도저히 답서가 오질 않으니 궁금해진 것이었다.
그 조치 이후에는 자신이 포로로 잡고 있던 몽골 포로중 자이사이등 최중요 인사들을 제외한 모든 포로들을 석방해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지도자급 인사를 제외하고서는 그들을 잡아놓고 있어봐야 별 다른 이득이 없어서였다.
이렇게 외교적 조치를 이행한 뒤 누르하치는 잠시 한 숨을 돌리며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그러던 찰나에 내무쪽에서 중요한 일이 터진다.
심판관이자 누르하치의 오른팔, 개국공신의 필두이자 진만인적이라고 불리던 후금 제일의 장수 피옹돈이 탄핵을 받은 것이었다.
철령 전투 이후, 피옹돈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사사로이 노획물을 분배한 것이 감찰에서 걸렸기 때문이었다.
피옹돈은 이미 지난 개원 전투에서도 전과가 있었기에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누르하치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결국 이런 말을 함으로서 피옹돈의 직책을 유지시켰다.
"피옹돈은 내 휘하에 장수가 별로 없을 적에 내게 귀부하여 내 오른팔로서 활동한 자이다. 없을 때 얻은 철은 금보다 귀하다고 하니, 이번 전투서의 전리품만을 압수한다."
그로서 피옹돈은 간신히 직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누르하치가 피옹돈 문제로 주춤하고 있을 때 쯤, 요동땅 해주에 누군가가 도착한다.
그는 사르후 전역의 패배, 이어진 개원 상실 문제로 해임된 양호 대신 새롭게 요동 경략으로 부임한 인물이었다.
그는 양호보다 훨씬 유능했으며, 훨씬 시야가 넓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명은 물론이고 후금에도 이름이 익히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웅정필, 그게 그의 이름이었다.